연재
허영구(민주노총 전부위원장)
등록일 : 2023.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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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혼잡을 고려해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대성리에서 아침식사하고 칼봉산으로 향했다. 가평읍을 들어서자마자 칼봉산자연휴양림 표시가 보인다. 좌측 좁은 길을 따라 구불구불 몇 키로미터 들어가 산림휴양관과 관리사무소에 도착한다. 입구 안내판에는 김춘수의 ‘꽃’, 윤동주의 ‘서시’와 함께 테마산길(산책로) 경반계곡, 전망대, 산책로가 표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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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100mountain.tistory.com

 

그러나 칼봉산 등산로는 점선으로 표시되어 있을 뿐 정확한 거리도 없다. 할 수 없이 경반계곡이 내려다보는 휴양시설 ‘숲속의집’을 지나 임도를 따라 걸어 올라간다. 곳곳에 그 유명한 가평 잣송이가 뚝뚝 떨어져 있고 밤송이도 흩어져 있다. 걷다 말고 산밤을 줍는다. 산은 잣나무를 비롯해 많은 나무로 빽빽하게 우거져 있다. 

 

임도인데 가끔 차가 지나다닌다. 한참을 걷다가 약간 내리막길인가 싶더니 계곡을 만난다. 임도를 따라오느라 조금 돌아온 셈이다. 계곡 바로 옆 평평한 곳에서 캠핑을 하는 사람들이 보이는가 했는데 곧바로 아담한 건물이 나온다. 예전 ‘경반분교’ 자리에 조그마한 카페가 있다. ‘개인사유지’, ‘KBS 1박 2일’ 촬영지 표시가 보인다. 이 골짜기 계곡에 학교가 있었다니 신기하다. ‘자연인’이란 간판도 보이고 거위나 토종닭을 키우는 걸 보니 몇 가구 정도 거주하고 있는 모양이다.

 

여기서부터 등산객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한참 지나자 관리하지 않은 지 오래된 안내판이 보인다. 여기 매봉과 칼봉산은 독립적인 산이 아니고 연인산(1,068m, 원래 우목산이었으나 가평군의 공모로 1999년부터 붙여진 이름) 자락으로 되어 있다. ‘현위치’ 위아래로 거리가 표시되어 있는데 지점마다 뭔가 콕콕 찍은 듯 글씨가 희미한 부분도 있다. 거리와 시간을 가늠하고 있는데 일행들이 우르르 몰려오더니 안내판에 앞에 선다. 위치를 확인하려는 듯 웅성거리더니 남녀 두 사람이 연이어 뾰족한 스틱 끝으로 안내판을 툭툭 치며 떠들어 댄다. 그제서야 안내판 글씨가 뭉글어진 이유를 알게 됐다. 그러지 마시라고 한마디 했지만 들은 체 만 체다. 

 

그런데 그들의 신발이 각양각색이다. 등산화를 신은 사람도 있었지만 장화, 물신(아쿠아슈즈),  슬리퍼 등 다양하다. 그러고 보니 칼봉산에 대해 알아보려고 인터넷을 검색했을 때 등산 이야기는 없고 경반계곡 트레킹이야기가 주로 실려 있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들은 주로 칼봉산 등산이 아니라 그 상류에 있는 수락폭포까지 경반계곡을 트레킹 하는 사람들이었다. 완전한 1급수 물고기 터전이 사람들의 발에 처참하게 밟히고 있는 셈이다. 도립공원이라 그런가, 요즈음 국립공원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조금 오르니 경반사(사찰)가 나온다. 거기서부터 오르막이고 회목고개까지 3km 정도 오른쪽은 철조망으로 막혀 있다. 이 높은 곳이 모두 사유지라서 그런가 했는데 ‘아프리카돼지열병(ASF)전파를 막기 위해 정부에서 설치한 시설’이란 안내문이 붙어 있다. 따라서 능선을 타고 정상으로 가는 길은 아예 표시조차 없다. 휴전선처럼 동서로 빈틈없이 철조망을 치지 않은 채 군데군데 이런 철조망으로 멧돼지의 남하를 막을 수 있는지 의문이다. 정상적인 등산로만 막힌 셈이다. 

 

오직 임도를 따라 구불구불 따분한 길을 걷고 또 걷는다. 그 많던 등산객들은 모두 수락폭포로 향하는 경반계곡으로 갔는지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지루한 시간이 끝나고 드디어 회목고개다. 경반리까지 7.2km라는데 출발부터 임도를 따라 올랐으니 이보다 더 먼 길을 걸어 올라온 셈이다. 양쪽으로 매봉(929.2m) 1.2km, 칼봉산(899.8m) 0.8km 거리로 두 봉우리가 있다. 양쪽 다 다녀오면 4km다. 오늘은 칼봉산 등산을 목표로 왔는데 시간이 많이 흘렀고 서서히 힘에 부치기 시작하는데 어떻게 하나 고민하다가 그래도 높은 봉우리인 매봉부터 다녀오기로 했다. 일요일인데 등산객은 없고 아랫동네에서 오신 것 같은데 트럭에서 내린 두 사람이 큰 포대를 들고 있다. 아마도 도토리나 밤을 주우려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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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봉으로 가는 길은 보통 동네 앞산의 등산로처럼 평탄했다. 숲으로 둘러싸여 멀리 경관을 볼수는 없다. 정상까지는 또 오르락내리락 봉우리를 넘는다. 어느 정도 걸어 올라가는 데 ‘매봉’, ‘가평군 하면(2015년부터 옛 이름을 따서 ’조종면‘) 마일리 산 1번지’라는 작은 표지석 하나가 서 있다. 아하, 산동네에서 가장 높은 곳부터 1번지로 시작하는구나! 주변은 겨우 한두 사람 정도 앉을 공간밖에 없다. 정상에서 만끽하는 주변 전망을 둘러볼 수도 없이 나무로 가려져 있다. 그러니 등산객들이 찾지 않는 산이 되었나 보다. 그래도 높은 곳에 올랐고 전날 923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했으니 ‘기후위기’ 관련 인증샷을 안 남기지  않을 수 없다. 간단한 요기하고 서둘러 회목고개까지 하산한다. 

 

잠시 쉬면서 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맞은편 칼봉산을 오른다. 하산하는 등산객 딱 한 사람 만난다. 발이 점점 무거워진다. 짧은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 그나마 간혹 눈에 띄는 성급하게 물든 붉은 단풍이나 바위를 뚫고 뿌리를 내리며 서 있는 나무를 보는 것으로 지루함을 잊는다. 드디어 정상이다. 역시 공간에 ‘칼봉산’ 표지석 하나 우뚝 서 있다. 그 뒤에 매봉에서 본 작은 크기의 표지석도 서 있다. 여기서는 교육문제에 대한 인증샷 한 장 남기고 하산한다. 싸리나무와 함께 키 큰 나무들에 가려 역시 조망하는 것은 어렵다. 겨우 북쪽방향으로 나뭇가지 틈새로 연인산으로 추정되는 봉우리를 가늠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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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하산이다. 지루한 임도를 따라 다시 걸어야 한다. 경반분교 찻집에는 불이 꺼져 있다. 거기서부터는 올라올 때 걸어온 임도가 아니라 계곡길을 따라 내려가야 한다. 날이 어둑어둑해지면서 전등불을 켜고 걷는다. 온통 바위가 뒤섞인 자갈길이다. 계곡물은 큰 소리를 내면서 흐른다. 여러 차례 부실한 돌다리를 통해 계곡을 이쪽저쪽으로 건너야 했다. 트레킹 하는 계곡으로 변해버린 하천길은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다. 돌다리를 건너다 자칫하면 물에 빠질 것 같았다. 

 

출발지인 경반리가 가까워지자 불빛이 몇 개 보인다. 칼봉산 정상에서부터 8km를 걸어 내려오는 동안 해가 지고 어둠이 깔렸다. 주위는 캄캄하다. 관리사무소에 당도하자 내 차만 덩그러니 서 있다. 동네 길을 빠져나와 가평읍내를 지난 뒤 경춘도로로 들어섰다. 새벽 일찍 출발했는데 밤이 되었다. 식당 간판이 눈에 띄는 대로 들어가 만둣국을 먹는다. 뜨거운 국물이 피로한 몸을 녹인다. 

 

495회, 칼봉산, 매봉, 2023.9.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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