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호우(중국국제문제연구원 아태연구소 초빙연구원)
등록일 : 2023.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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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 강국 협력체'(MIKTA)

 

우크라이나 위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중등 강국'(Middle Power)' 용어가 국제무대에서 다시 부상하고 있다. 국제 언론계에서 보이는 관심은 점점 '중등 강국'’과 국제질서 진화를 연계시킨다. 미국이 '강대국 경쟁' 시대를 자극하는 방향으로 회귀함에 따라, 강대국 사이의 '중등 강국'이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고 있다.

 

사실 '중등 강국'이라는 개념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국제사회는 이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일정한 경제적·군사적 역량을 갖추고, 지역적 영향력이 강하고 국제적 인지도가 높은 국가를 지칭한다. 국제 권력의 등급에서는 중간에 위치하는데, '초강대국'(Great Power)과 '글로벌 파워'(Global Power) 밑에 있고 광범위한 중소 국가보다는 상위에 있다.

 

세계 구조와 국가역량 대비의 변화로부터 비롯되는 '중등 강국' 범위 역시 끊임없이 변화한다. 예컨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캐나다가 제일 먼저 '중등 강국'임을 자처했으며, 일본과 독일도 '중등 강국'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0세기 후반에는 '중등 강국' 대부분이 선진 자본주의 국가였다.

 

냉전 이후 세계화와 지역 통합의 지속적인 발전과 함께, 개발도상국이 집단적으로 부상함에 따라 '중등 강국' 진영의 확대가 두드러졌다. 현재 국제정치적 맥락에서 볼 때 '중등 강국'은 유엔 상임이사국 5개국과 일본·독일·인도 등 '글로벌 강대국'을 제외한 국가들인데, 이들은 이탈리아·스페인·캐나다·호주 등 구(舊) 선진국, 그리고 한국·멕시코·인도네시아·터키·남아공·이집트·이란·사우디아라비아·카자흐스탄·파키스탄·아르헨티나 등 신흥경제국을 포함한다.

 
2008년 국제금융 위기 이후 ‘주요 20개국'(G20)은 글로벌 거버넌스에 참여코자 하는 '중등 강국'들의 가장 중요한 무대가 되었는데, 앞서 언급한 '중등 강국'들이 그중 과반수를 차지했다. 2013년에는 멕시코, 인도네시아, 한국, 터키, 호주가 ‘G20’ 틀 내에서 '중등 강국 협력체'(MIKTA)를 출범시켰다.

 

이러한 '중등 강국'의 부상은 세계 경제가 한쪽은 상승하고 한쪽이 쇠락하며, 미국의 단극 패권이 쇠퇴하고 다극화 구도가 진척되는 가운데서 비롯됐다. 마음이 맞는 일부 '중등 강국'들은 상호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한편, 글로벌 및 지역적 도전에 대응하기 위한 다자간 솔루션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해 우크라이나 위기와 중·미간 전략게임에 의해 촉발된 국제적인 대격변기 속에서, '중등 강국' 개념과 집단 전체가 다시 주목받는 것은 과거와 다른 시대적 의미를 담고 있다. '중등 강국'에는 미국의 확고한 동맹 파트너도 있지만, 미국·유럽과 '가까웠다 멀었다' 하는 비(非)서구 국가들이 많다. 다시 말해서 '미국·서구 대 중·러'의 진영 구도 속에서 지금의 '중등 강국'들은 구성원의 성격은 '중간지대', 정책에선 '제3의 노선'에 기울어져 있다.

 

'중등 강국'들이 국제 정치에서 부상하는 논리는 어느 편에 줄 서기를 하지 않는 전략적 자주 요구에 기인한다. 그 영향력은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라는 진영 논리를 버리고, 독립성을 견지한 데서 비롯된다.

 

미래 국제질서 구축에 대한 이들 '중등 강국'의 영향을 평가하는데 있어, 다음 세 가지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다.

 

첫째는 가치관 차원인데, 탈 이데올로기화와 현실 추구 경향이 두드러진다. 전통적 서구 국제관계 이론에서 '중등 강국'의 정의를 내릴 때 이념적 색채를 중시하고, 서구 '민주주의 국가'의 이데올로기 속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대표적인 '중등 강국'들을 보면 정치체제와 문화적 전통이 다르고, 종교적 신념 또한 다양하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서방의 이념상 반러시아적 기류 속에서, 다수의 아시아·아프리카 ‘중등 강국’들은 미국과 유럽의 대러 제재를 따르지 않는다. 나토 회원국인 터키나 '친미' 국가로 평가받던 사우디도 미·서방의 반러시아 기조에 동조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러시아와 접촉을 유지하고 있다. 미·서방이 포장한 '민주대 독재'의 강대국 경쟁 논리에 다수 '중등 강국'들은 더욱 무감각하다. 러시아에서 에너지를 사고, 중국과 사업하는 것이 여전히 '중등 강국'들의 현실적인 선택이다.

 

둘째 정책 지향적 차원에서 보자면, 자강자립(自强自立)에 입각한 대국 균형 전략을 추구한다. '중등 강국'들은 국가역량에 있어 제약을 받으며, 국제 공공재에 대한 제공 능력 또한 제한적이다. 따라서 국제질서 구축 등 글로벌 거버넌스에서 발언권이 제한되어 있어 강대국 주도의 규칙 체계를 벗어나기 어려워, 종종 '초강대국' 틈에 끼여 어느 한 편을 들어야 하는 곤란함에 직면하게 된다. 


이에 대해 다방면으로 배팅하는 위험 분산(헤지) 전략을 채택하는 경향이 있다. '중등 강국'들은 강대국 간 경쟁의 희생양이 되지 않으려면 강대국 균형 전략을 고수하고, 제한된 국가역량을 전략적 자주 능력으로 전환하는 길밖에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객관적으로 볼 때 강대국 간의 치열한 게임으로 인해 미국은 중동 등 아시아·아프리카의 '신중간지대'에 간여할 여력이 부족해졌다. 지역 중심 국가인 '중등 강국'들은 이런 기회를 틈타 지역 협력을 강화하고, 자주적인 지역 안보 구조와 권력 배치를 하는 한편, 더 많은 세계 강대국 및 신흥경제국과 포괄적 파트너십을 맺어 다원화된 발전과 안전 보장을 모색하고 있다.

 

셋째, 국제질서 차원에서 강대국 간 대결의 완충 역할을 하는 것이다. 중·미·러·유럽 4자를 주체로 하는 대국 게임 구조에서, '중등 강국'은 두드러진 지역적 영향력으로 강대국들이 앞다퉈 힘을 빌리는 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강대국 갈등과 마찰을 중재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터키는 흑해 곡물 제안을 달성키 위해 4자간 협상을 중재하여 세계 식량 안보에 적극 기여했다. 미래 글로벌 거버넌스에서 신흥경제국을 중심으로  '중등 강국'들이 연합하여 단결된 목소리를 낸다. 유엔과 WTO 등 다자간 메커니즘의 개혁을 공동으로 추진하며, 지역적 공급망과 산업 사슬의 재편을 도모하고, 이를 통해 미국의 '협소한 벽돌쌓기'와 '탈동조화, 산업사슬 끊기' 식의 집단적 대결을 추진하는 데 대한 강력한 견제가 될 수 있다.

 

강대국 게임과 지정학적 경쟁의 먹구름이 짙어지는 요즘, '비(非)서방'적인 '중등 강국'의 부상은 귀중하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국익 극대화의 현실적 경향에 따라 다원적 균형 전략을 추구하며, 양극화된 '신냉전' 구도의 형성을 강력하게 저지한다. 이는 '탈서방 중심주의' 다극적 구도의 형성을 가속화하며, 서구 이데올로기가 주도하는 국제질서를 다원적인 세계이념으로 대체하도록 촉진하는 작용을 한다.

 

미국과 서방의 패권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일부 강대국들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중등 강국'들은 경계의 대상이자 중점적 유인 대상이다. 하지만 서구 강국들이 다극화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단극 패권의 낡은 꿈에 매달린다면, '중등 강국'과는 점차 멀어질 수밖에 없다. 강대국이라면 마땅히 천하를 품에 안고 인류의 전반적 복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인류 운명공동체 이념에서 글로벌 발전의 제창, 글로벌 안보의 제창, 글로벌 문명의 제창 등 이상  3개 이니셔티브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강대국 이념은 이 같은 세계 대세에 순응하고 있다. 중국이 사우디와 이란 수교를 중재한 것도, 글로벌 강대국들이 '중등 강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할지에 대한 하나의 해석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2023-04-28 

 

출처:  환구시보
https://opinion.huanqiu.com/article/4CfVdW5z9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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