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구시보/ 김정호 (편집위원) 번역
등록일 : 2023.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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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언어의 주술에 걸리면 상식적인 판단력을 상실하게 된다. 한국사회의 경우 그 언어는 ‘한미동맹’이라 할 수 있다. 대통령실에 대한 도청조차 ‘동맹’이니 괜찮다면서 한마디 제대로 된 항의도, 재발 방지에 대한 요구도 못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특정 국가에 지나치게 치우치는 것은 오판’일 수 있다는 중국대사의 말엔 내정간섭이다, 무례하다느니 하면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ㅡ 번역자 주

 

 

원제목: 한국 외교,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은' 경지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2023-06-13  00:27 (현지시각)


한국 대통령실의 한 당국자는 6월 12일 기자회견에서 "싱하이밍(海明) 주한 중국대사가 한국 정부의 외교정책을 논평"한 일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대사가 가교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자국과 주재국의 국익을 해칠 수 있다며, 싱 대사가 <빈 외교관계협약>을 위반했다고 은근히 지적했다. 이는 한국 정부와 보수 언론에 의한 싱 대사 공격이 연일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나온  한 단계 수위를 높인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의 연합뉴스는 대통령실이 특정 국가의 대사를 직접 겨냥해 비판적 발언을 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면서, 대통령실이 현 상황을 심각하게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최근 한국 외교부와 보수 언론은 싱 대사를 향해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신분과 품격에 맞지 않는 각종 격한 언사와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 한국 외교가 또다시 정서적으로 지극히 불안한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는데, 영문도 모른 채 화를 내며 말을 가리지 않는 모습이 마치 실성한 사람 같다. 한국 정부는 싱 대사를 불러내 항의하고, 한 무리 정치인들은 "명백한 내정 간섭이자 심각한 외교적 결례"라며 흥분하고 있다. 심지어 어떤 의원은 SNS에서 싱 대사를 '환영받지 못할 인물'로 분류하도록 정부를 선동하기까지 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한국 보수 언론들의 격앙되고 일그러진 모습은 더 말을 안 해도 알 만하다.

 

그렇다면 도대체 싱 대사는 어떤 '지나친' 짓을 했고, 무슨 '과도한' 말을 해서 한국 외교가를 이처럼 벌집을 쑤신 것처럼 만든 것일까? 얘기를 하면 정말 믿기지 않는다. 싱 대사는 6월 8일 관저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나 중·한 관계, 한반도 문제 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주재국의 각계 인사와 폭넓게 접촉하는 것은 어느 나라 대사라도 할 수 있는 지극히 정상적인 일인데, 이것이 무슨 '과도한' 일인가?

 

또 이날 싱 대사가 한 말을 보도록 하자. 중국 측은 한국과의 중·한 관계를 중시해 과거·현재·미래를 막론하고 중·한 관계가 좋아질 이유는 천만 가지나 되고, 나빠질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점을 주요하게 언급했다. 그는 또한 대만 문제에 대한 중국의 태도도 밝혔다. 한국 측이 트집을 잡을 만한 것은 단 한마디, 즉 싱 대사가 "대중 관계를 다룰 때 외부 요인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미국이 중국에 압박을 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사람은 미국이 이기고 중국이 진다는 것에 내기를 거는데, 이는 명백한 오판이자 역사의 대세를 읽지 못한 것이다."라고 한 부분이다. 이 말은 사실이 아닌가? 어디가 '지나치’고, 어디에 한국을 '위협‘ 한 부분이 있는가? 그리고 어떤 부분이 한국에 대한 내정 간섭이란 말인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조차 중국어 사이트 12일자 칼럼에서 한국 정부가 과잉 대응하고 있으며, 의도적으로 과격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조태용 한국 국가안보실장은 9일 "지금과 같은 국력과 국민 식견에 걸맞게끔 '비굴하지 않고 거만하지 않은 외교'를 펼쳐 '건전한 한·중 관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참 곱씹어 볼 만한 말이다. 우선, 그것은 미국의 '실력외교론'을 본뜬 한국판 실력외교론이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한국 당국의 심리야말로 날로 오만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 같은 기고만장함은 특히 중국에 대해 두드러진다. 하지만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겠다'고 했지만,  한국 외교는 이 표현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 같다. 그 가장 두드러진 모습이 미국·일본에 대해선 '비굴'하고 중국에는 '거만'한 것이다. 이런 엄연한 현실을 한국 당국은 왜 자각할 수 없는지 모르겠다.

 

싱 대사가 한국에 대해 한 말은 모두 충언이고 간언이다. 또 온화하고 좋은 말로 상당히 정중하게 표현했다. "미국이 이기고 중국이 지는 것에 거는 것은 오판"이라고 한 그 구절에는 누구의 이름도 거론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그 주어가 된다 해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마치 한국 정부에 들어맞는 말이라고 모두들 생각하는 듯하다. 현재 윤석열 정부의 외교는 적어도 두 가지 측면에서 심각한 불균형을 보이고 있다. 하나는 과거 한국 정부는 중·미 관계에서 균형을 잡았는데, 지금은 명백히 '줄서기'하는 경향을 보인다. 미국에게 판돈을 다 거는 것은 급진적인 도박꾼의 심리로 매우 비이성적이다. 다른 하나는 부단히 팽창하고 있는 한국의 강대국으로서 포부와 현실의 편협한 도량 사이의 불균형이다. 이 때문에 한국 외교는 자존심이 강하면서도, 다른 한편 민감하고 의심을 잘하며 연약하고 미숙하다.

 

정리하자면, 중국 대사를 공격하는 것은 한국 외교 스스로 치욕을 자초하고 약점을 드러낼 뿐이다. 반대로 한국은 중국에 대한 태도를 바르게 해야 툭하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며, 끊임없이 스스로를 증명하려는 소국적 심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원문보기) https://opinion.huanqiu.com/article/4DHbB14o44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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