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구시보 사설/ 김정호 번역
등록일 : 2026.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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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차 뮌헨안보회의를 앞두고, 회의 주최 측이 「2026년 뮌헨안보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의 표지에는 눈에 띄는 코끼리 한 마리가 그려져 있고, 제목은 “Under Destruction”(파괴 중)이다. 무엇을 가리키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작년 뮌헨안보회의에서 미국의 밴스 부통령은 군림하듯 훈계조로 유럽을 질타해, 유럽 엘리트 집단을 집단으로 ‘멘붕’에 빠트렸다. 올해 회의에 참석하는 미국 대표단은 루비오 국무장관이 이끌 예정인데, 그의 표현이 밴스보다는 “온건”할 수는 있겠지만, 대서양을 사이에 둔 양측 관계의 균열은 이미 심화되었다.

 

그린란드 “매입”을 들먹이며 위협하고, 무역을 무기화하며 다자체제를 체계적으로 허물고, 우크라이나 위기 같은 핵심 안보 사안에서조차 오락가락하는 태도에 이르기까지, 워싱턴의 행보는 유럽으로 하여금 차가운 현실을 뼈저리게 체감하게 만들었다. “뮌헨안보지수”에 따르면, 거의 모든 G7 회원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의 응답자들은 미국이 초래하는 글로벌 리스크가 작년보다 더욱 심각해졌다고 보고 있다. 그들은 이제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한때 국제질서의 “기둥”으로서, 유럽을 중요 동맹으로 여겼던 미국은, 이제 그 질서가 더 이상 자국 이익에 부합하지 않으며, 굳이 지키고 유지할 필요도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사실을.

 

유럽이 미국의 압박 속에서 “깨어나긴” 했지만, 동시에 하나의 현실과 맞닥뜨리지 않을 수 없다. 세계 경제에서 유럽이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 않고, 유로화는 세계 2대 기축통화이며, EU는 거대한 단일시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미국의 일방적 횡포 앞에서 유럽은 국제질서를 지키기는커녕, 자국의 이익조차 온전히 방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 근본 원인은, 유럽이 오랫동안 스스로를 “규범적(power of norms) 힘”으로 자처해 왔기 때문이다. 대외 경제 의존, 통합이 주는 제도적 강점, 그리고 이른바 민주 가치의 도덕적 정당성은, 미국의 힘의 정치, 일방주의적 강압, 포퓰리즘·보수주의 앞에서, 비대칭적인 힘의 격차 때문에 오히려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이라는 '파괴용 철구(Wrecking Ball)'에 정통으로 얻어맞자, 유럽은 비로소 독자적인 안보 기둥도 부족하고, 통일되고 결단력 있는 외교 자세도 갖추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유럽의 불안은 이중적이다. 한편으로는, 점점 더 예측 불가능해지고 ‘미국 우선’을 극단까지 밀어붙이는 동맹국에 대한 깊은 불안, 다른 한편으로는 스스로의 전략적 자율 능력 부족과 내부 결속력 취약성에 대한 뼈아픈 우려이다. 나토(NATO) 틀 안에서의 안보 의존은, 전후 70년 동안 유럽의 “안락지대”였다. 그러나 지금 이 “안락지대”는 “위험지대”로 변모하고 있다. 유럽 내에서는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세계가 약육강식의 ‘정글법칙’ 시대로 퇴행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깨닫고 있다. 그런 퇴행은 소국·중견국들에겐 악몽일 뿐 아니라, 글로벌 공공재 공급 체계의 붕괴를 뜻하며, 결국 누구도 그 여파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글로벌 거버넌스가 심각한 적자를 겪고, 국제 규범 체계가 잇따라 충격을 받는 오늘, 유럽은 더 건설적이고, 더 독립적인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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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외정책의 기저 논리는 이미 바뀌었고 안보, 경제·무역, 그리고 ‘공통의 서구 정체성’이라는 대서양 동맹의 세 기둥 모두가 흔들리고 있다. 예전처럼 미국을 달래면서 공개적 갈등을 피하는 방식으로는 이제 아무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유럽은 수동적 의존에서 능동적 주도로, 충격에 휘둘리는 우울함에서 전략적 각성으로 바뀌어야만 앞으로 닥쳐올 도전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다. 유럽은 합리적인 글로벌 거버넌스 구상을 내놓을 능력과 지혜가 있고, 자국 경제력을 떠받칠 수 있는 안보 역량을 키울 잠재력도 충분하다. 다만 필요한 것은 마음가짐을 바꾸고, 결정적 순간에 용기를 보여주는 일이다.

 

유럽의 안보 불안과 걱정은 답이 없는 문제가 아니다. 다만 그 해답은 워싱턴에도 없고, 그저 불평하거나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데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작년 뮌헨안보회의 ‘중국 세션’ 연설에서, 왕이(王毅)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은 이미 이렇게 경고한 바 있다. “규칙이 사라지면, 오늘은 식탁에 둘러앉아 있던 이들이 내일은 메뉴 위에 오를 수 있다.” 외부 압력이 거세질수록, 유럽은 신념을 굳게 지키고, 규칙을 수호하며, 다자주의를 실천하고, 개방·상생을 존중해야 한다. 애매하게 눈치를 보며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자신이 받는 압력을 제3자에게 떠넘길 궁리만 하는 것은 결코 해법이 될 수 없다.

 

새해의 뮌헨안보회의가 곧 막을 올린다. 이제 유럽도 마땅히 보여줘야 할 변화를 보여줄 때다. 뮌헨안보회의는 한때 “대서양 가족모임”으로 불렸지만, 지금 이 “가족”은 이미 금이 가고, 겉만 그럴듯한 채 속은 갈라진 상태다. 과거의 이른바 영광에 계속 도취해 있을 것인가, 아니면 이번 기회를 늦어진 ‘성인식’의 완수로 삼을 것인가. 답은 분명하다. 국제 체제와 질서를 수호하는 데 있어, 유럽은 훨씬 더 건설적인 역할을 완전히 수행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은 미국의 ‘하위 파트너’로서가 아니라 평등하고, 자율적이며, 책임 있는 하나의 세계적 축으로서일 것이다.

 

진정으로 전략적 자율성을 가진 유럽만이 자신이 지닌 부와 지혜, 그리고 역사적 유산에 걸맞는 위상을 갖게 될 것이다.

 

 2026년 2월 12일 

출처: 환구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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