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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로구 가산디지털단지 인근에서 안전한 일터와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캠페인을 진행하는 민주노총 조합원. 작업중지를 의미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최고의 치료는 예방'이라는 문구는 예방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널리 쓰인다. 노동현장의 산업재해에 이 문장을 대입해봤을때, '예방'은 '작업중지권'으로 치환된다. 산업재해를 줄이는 가장 근본적이고 빠른 길은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이 '실질 보장' 되는 것이라고 민주노총은 주장한다.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권리행사의 주체가 되고, 중지권 행사시 불이익을 받지 않는 온전한 작업중지권 실현을 투쟁의 목표로 삼는다. 

 

작업중지권은 재해 발생의 위험이 있다고 판단한 노동자가 그 위험으로부터 대피하거나, 해당 작업을 거부하는 것으로서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자연법적 권리'다. 민주노총이 4월 '노동안전보건의 달'을 맞아 작업중지권 이슈를 알리고, 쟁점화시키려는 이유는 '노동자가 유해 위험에 대해 알 권리, 유해 위험 작업을 거부할 권리, 재해 예방에 참여할 권리는 기본권이자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권리'이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의 요구는 ▲노동조합의 작업중지권 보장 ▲작업중지시 하청노동자 휴업수당과 손실보장 ▲작업중지에 대한 징계, 소송 등 불이익 처우 금지 ▲폭염, 한파 등 기후위기로 인한 작업중지권 보장 ▲완전한 개선 조치 이후, 노사가 모두 동의시 작업재개 법제화다. 

 

지속적인 노동계의 요구로 1995년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이 도입되었고, 1996년에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한 노동자에 대한 불이익 처우 금지 조항이 도입됐다. 그러나 처벌조항 도입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폐기됐다. 2018년에는 감정노동자 보호입법 개정에서 업무의 중단이나 전환 요구 등에 대한 불이익 처우 금지를 도입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노동자 작업중지권은 개별 노동자의 '작업대피권' 정도에 머물러 있는 수준이다. 한국에서 작업중지권을 보장하는 법은 허술하거니와 그마저도 제대로 집행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 51조 '사업주의 작업중지'와 52조 '근로자의 작업중지'에는 "급박한 위험이 있을 시 즉시 작업을 중지시키고 사업주의 경우 적절한 조치를 노동자의 경우 대피를 해야한다"고 나와있다. 그러나 '급박한 위험'이 무엇이고 '작업재개를 위한 적절한 조치'란 무엇인지 명시돼있지 않아 실질적인 규제가 어려운 상황이다. 

 

또한 산안법 52조 4항에서 '작업중지 대피 노동자에게 해고나 불합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된다'고 적혀 있지만, 사업주가 작업중지 노동자를 대상으로 불이익을 가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은 없는 상태다. 사실상 '작업중지 노동자에 대한 불이익 금지'는 강제력과 구속력이 없다는 지적이다. 

 

일례로 2016년 세종시의 한 사업장에서 화학물질 누출사고가 발생했을때, 인근 사업장의 금속노조 간부들이 작업중지권을 발동한 것을 두고 사측이 징계를 내린 사건이 있다. 8년만에 대법원은 '간부에 대한 징계는 부당하다'고 판결을 내렸지만, 이 사건은 작업중지권이 얼마나 '그림의 떡'인지를 확인하는 사례로 남았다. 

 

폭염시 재해 예방의 근본 대책으로 작업중지권이 지속 제기됐으나, 십 여년째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건설현장을 비롯한 옥외 작업, 이동노동자들에 대한 폭염, 폭우, 폭설, 한파 등 기후위기로 더 위험의 빈도와 강도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강력한 작업중지권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현재 개별노동자에게만 작업중지권을 부여한다는 것은 사실상 기능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산업재해를 막는다는 취지에 어긋난 '땜질'에 그친다는게 민주노총의 설명이다.  현장의 유해 위험이 개별 노동자의 개별 작업에 만 발생하지 않고, 동일 업무, 동일 공정, 선후 공정에 위험이 연속되기 때문이다.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작업중지권이 실질 작동하기 위해서는 노조에게 작업중지권이 부여돼야 한다는 논리다. 사업장 전체의 유해 위험한 작업환경으로부터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는 책임을 갖고 있고, 조합원이 위원으로 속해있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나 명예산업안전감독관에게 작업중지권이 부여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민주노총은 완전한 개선조치가 이뤄진 후 작업이 재개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작업중지 이후 완전한 개선조치가 되기 전에 사업주의 작업재개를 허용하는 것은 작업중지권 보장이 아니며, 한국 정부가 비준한 ILO 협약 위반사항이기도 하다. 

 

 

민주노총이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작업중지권 범위을 살펴보면, 산안법을 개정해 위험작업이 개선되지 않았을 시 작업재개를 금지하는 내용, 급박한 상황이 발생한 이후 뿐 아니라 작업 전에도 안전조치가 미비하다고 판단될 때에 작업중지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있다. 감정노동, 방문노동으로 인한 폭행, 폭언등 작업중지권 행사의 범위가 사고성 재해만이 아니라는 것이 명확히 명시돼야 한다는 것도 포함됐다.

 

한국정부도 비준한 국제 노동기구인 ILO 협약에는 '개선조치가 되기 전에 노동자에게 작업재개를 강요할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의 산업안전보건법은 규정이 없어 협약을 위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작업중지 이후 개선조치에 대해서는 노동자가 판단 기준이어야 하고, 노동자, 노동조합의 동의 없이 작업재개를 하는 사업주에 대한 처벌이 명시되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또한 작업중지시 하청노동자에 대한 임금, 공사기간, 손실보전은 원청에 연대책임이 있음을 규정하는 항목을 넣어, 비정규-하청노동자 또한 실질적으로 작업중지권을 발동할수 있게 하자고도 주장한다. 작업중지 기간의 하청 노동자 임금과 하청업체 손실을 원청이 책임지도록 법제화 되지 않으면 저가 낙찰과 저임금에 허덕이는 하청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은 현실화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쇳물 쓰지마라'는 2010년 청년노동자 김씨가 위험작업을 하다 쇳물이 담긴 용광로에 빠져 숨진 산업재해를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의 제목이다. 이후 가수 하림 씨가 노래로 만들며 대중에게 재차 알려지기도 했다. 2010년에도 작업중지권은 산안법에 담겨있었지만, 실질화되지 못한채 문장으로만 남아있었기에 김씨는 목숨을 잃을 수 밖에 없었다.  아직도 한해 874명이 일하다 사고로 사망하는 사회에서(2022년 기준), 민주노총은 작업중지권 실질화 투쟁을 통해 이렇게 외친다. "그 작업 하지마라".

 

2020년 부산에서 열린 故 김용균 노동자 2주기 추모문화제에서 노래패 소리연대가 ‘그 쇳물 쓰지 마라’를 불르고 있다. 사진=노동과세계 자료사진

2020년 부산에서 열린 故 김용균 노동자 2주기 추모문화제에서 노래패 소리연대가 ‘그 쇳물 쓰지 마라’를 불르고 있다.

 

출처:  노동과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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