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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ㅡ 미리 예상하는 상호관세 위헌판결
이경렬(전 주앙골라 대사)
등록일 : 2026.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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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대법원.

 

1차 세계대전의 원인을 논할 때 흔히 ‘사라예보의 총성’이나 ‘군사 동맹’을 떠올리지만, 그 기저에는 19세기 말부터 30년 넘게 이어진 처절한 ‘국제 관세전쟁’이 있었다. 이번에 미 연방대법원이 내린 상호관세 위헌판결은 지난 수년간 세계 경제를 유령처럼 배회하던 ‘관세 만능주의’에 종지부를 찍는 역사적 분기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이라는 수단을 동원해 의회의 고유 권한인 조세 및 관세 부과권을 찬탈해온 행정부의 독주에 사법부가 헌법적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그동안 미국은 안보와 비상사태라는 모호한 명분으로 우방국들을 겁박해왔다. 그러나 이번 판결로 그 칼날은 무뎌졌고 근거는 사라졌다. 그렇다고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압박을 그만 거둘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 정부는 무너진 근거 위에 세워진 부당한 통상 합의를 과감히 파기하고,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새로운 판을 짜야 할 기회를 맞이했다.

 

이번 판결의 핵심 논거는 권력분립이라는 미국 민주주의의 근간을 재확인한 데 있다. 미국 헌법 제1조는 관세를 포함한 모든 조세 부과권을 명백히 의회에 부여하고 있다. 대법원은 IEEPA가 일반적인 무역장벽을 세울 수 있는 ‘백지위임장’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로써 1970년대 이후 비상권한을 전방위적으로 확대하며 의회를 건너뛰고 자의적 통치권을 행사해온 행정부의 관성은 수축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는 대통령의 즉흥적이고 정치적인 ‘관세 외교’가 더 이상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음을 선언한 것이다.

 

판결의 파급효과는 단순히 법적인 영역에 머물지 않고 천문학적인 경제적 손실 보전으로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이번 위헌판결에 따른 관세 환급 규모가 최소 수백억 달러에서, 간접적인 피해 보상까지 합산할 경우 천억 달러를 상회하는 거대한 법적 분쟁으로 번질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 기업들이 지불해온 관세 액만 해도 수십억 달러는 될 것 같다. 자동차, 배터리 등 한국의 핵심 수출 품목들이 미국 국제무역법원(CIT)에 위법성 소송을 제기해 놓았다면 이제 승소를 담보하는 확실한 동력을 얻었다.

 

특히 이번 판결은 지난 1월 15일 미 국무부가 야심차게 공개한 ‘국무부 전략 계획’(ASP: Agency Strategic Plan) 및 ‘전략 목표 프레임워크’(SGF: Strategic Goal Framework)의 실행력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국무부는 해당 문서를 통해 공격적인 통상압박을 외교정책의 핵심 축으로 설정했다. 동맹국들에게까지 ‘수탈’을 자행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전략목표를 이행할 법적 수단의 하나가 헌법에 의해 거부당하면서 ‘수탈’의 속도와 정도는 주춤할 수밖에 없게 됐다.

 

그러나 미국이 이대로 물러설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상호관세라는 포괄적인 무기가 봉쇄된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사법적 검증을 이미 마친 기존 무역법 체계로 신속히 복귀할 것이다. 무역확장법 232조(국가안보)나 통상법 301조(불공정 무역)에 기반한 ‘품목관세’로의 전환이 그것이다.

 

품목관세는 상호관세에 비해 정치적 폭발력은 낮아 보일 수 있지만 특정 품목을 정밀하게 타격해 장기간 지속시키는 구조적인 위협이다. 이는 반도체와 미래 모빌리티 등 우리 산업의 급소를 찌르는 정교한 칼날이 될 수 있다. 한 번 발동되면 법적으로 회피하거나 되돌리기가 훨씬 어렵다는 점에서 상호관세보다 더 치명적인 악재가 될 수도 있다. 미국은 이제 ‘국가 대 국가’의 대결 구도보다는 ‘국가안보’나 ‘불공정 무역’을 명분으로 우리 주력 산업군을 집요하게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미 정부가 돌려줘야 할 금액은 약 천억 달러 이상으로 추산된다. 미국은 관세 환급을 지렛대로 이용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법적으로 돌려줘야 할 돈을 순순히 내주는 대신 상대국으로부터 다른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협상 카드로 활용한다는 얘기다. “관세를 돌려줄 테니 너희 국가에 있는 어떤 규제나 비관세 장벽을 없애라”고 요구하는 식이다.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연계하여 압박할 수도 있다. “새로운 품목관세에 따라 내야 할 관세가 이만큼이니 서로 퉁치자”는 논리를 펼 수도 있다. 요는 미국이 “돈을 받고 싶으면 우리가 원하는 것을 가져오라”는 식의 고압적인 통상 전략을 구사할 것이 뻔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정부의 대처는 분명하면서도 단호한 것이 되어야 한다. 저자세로 우물쭈물할 이유가 없다. 결기 있는 주권 행사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미국 헌법에 어긋나는 근거를 바탕으로 맺어졌던 기존의 관세협상 결과는 즉각적으로 파기되어야 마땅하다. 법리적으로 이는 합의의 목적과 근거가 상실된 ‘사정변경(Frustration of Purpose)’이다.

 

우리가 상호관세를 낮추는 조건으로 수용했던 대규모 투자 약속, 마스가(MASGA) 합의, 민간부문의 별도 투자 계획, 미국 에너지 수입 약속 등은 이제 철회되어야 한다. 미국이 위헌적인 수단으로 우리를 협박해 얻어낸 양보를 우리가 계속해서 이행할 이유는 없다. 정부는 이 모든 불평등한 약속을 전면 무효화하고 우리 기업들이 국익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투자의 우선순위와 규모를 재조정할 수 있도록 재협상에 나서야 한다.

 

기업 차원에서 ‘집단 소송’을 통해 관세 환급권을 확보하는 것도 필요하다. 도요타 통상, 스미토모 화학, 리코, 요코하마 타이어 등 일본의 주요 기업들은 작년 12월 이미 미국 정부를 상대로 관세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미 정부가 버티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법적 말뚝 박기다. 이미 조치를 하지 않았다면 우리 기업들도 서둘러야 한다. 우리 정부로서는 관세 환급에만 초점을 맞추어 한국의 대미 투자와 연결해 실리적 압박을 가할 수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기존 합의를 전면적으로 원점으로 돌리고 원점에서부터 협상해 나가는 것이다.

 

한미 FTA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도 필요하다. 미국은 한미 FTA를 사실상 사문화했다. 상호관세란 우리의 대미 무관세 수출원칙을 근본적으로 침해한 것이다. 앞으로 품목관세가 상호관세를 실질적으로 대체한다면 죽은 FTA는 회생할 여지가 없게 된다. 그렇다면 두 가지 길이 있다. 협정을 파기하든지 새로운 협정을 맺는 길 뿐이다. 우리는 동맹이라는 수사가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족쇄가 되지 않도록 상호존중에 기반을 둔 통상의 틀을 새롭게 짜야 한다. 상대가 편법을 동원해 관세 장벽을 쌓는 것에 대한 방지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동시에 우리는 미국 일변도의 통상 구조가 가진 치명적인 취약성을 인식하고 경제 영토를 과감하게 다변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중국, 러시아와의 실질적인 경제 협력을 복원하고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하는 데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브릭스(BRICS)나 상하이협력기구(SCO) 같은 다자간 협력 체제에도 참여해야 한다. 다극화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우리의 생존 공간을 스스로 개척하는 주권적 선택이다.

 

한미동맹의 성격에 대한 근본적인 재고도 필요한 시점이다. 진정한 동맹은 우방국의 숨통을 죄는 일방적 압박이 아니라 보편적 가치와 공정한 규칙 위에서만 지속될 수 있다. 이번 미 연방대법원의 위헌 판결은 우리에게 부당한 합의의 사슬을 끊어내고 당당한 주권 국가로서의 권리를 회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선사했다.

 

정부는 더 이상 미국의 눈치를 보거나 낡은 동맹의 논리에 갇혀 저자세로 일관해서는 안 된다. 판을 새로 짜는 담대한 통상 전략과 결연한 의지만이 거센 보호무역주의의 파고 속에서 우리 국민과 기업의 미래를 지켜내는 유일한 길이다. 국익을 위한 투쟁에는 양보가 없어야 한다. 지금은 대한민국 통상 주권을 바로 세울 최적기다. 

 

[편집자 주]

 

이 칼럼은 저자가 상호관세 위헌판결을 ‘미리 예상’하면서 쓴 글임을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2026년 1월 현재,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 정책은 하급심의 위헌 판결과 연방대법원의 선고 보류로 인해 법적 기로에 서 있습니다.


먼저 하급심인 미 국제무역법원(CIT)과 연방항소법원은 지난 2025년 5월과 8월, 해당 관세 조치가 대통령의 권한을 남용한 위법한 결정이라고 판결했습니다. 당시 재판부는 대통령이 근거로 내세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대해, 이 법이 대통령에게 수입을 '규제'할 권한은 부여했지만 '관세를 부과'할 명시적인 권한까지 준 것은 아니라고 핵심 쟁점을 짚었습니다.


이후 사건은 연방대법원으로 넘어갔으며, 대법원은 2025년 11월 5일에 구두 변론을 열고 본격적인 심리에 착수했습니다. 당초 2026년 1월 중 세 차례(9일, 14일, 20일)에 걸쳐 판결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대법원은 해당 기일에 다른 사건들의 판결만 발표했을 뿐 상호관세 건에 대해서는 선고를 계속 미루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에 따라 최종 판결 결과는 대법원의 휴정이 끝나는 2월 말 이후에나 명확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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