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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헬러의 소설 『캐치-22』가 이 시점에 다시 읽히는 이유는 단순히 전쟁의 잔혹함 때문이 아니다. 이 소설이 정조준하는 과녁은 ‘자기모순의 논리’다. 빠져나가려 할수록 체제의 덫에 더 깊숙이 갇히게 되는 구조가 캐치-22다. 이란 전쟁은 그 자체로 거대한 캐치-22였다. 미국은 위협 제거를 명분으로 선제공격을 감행했으나, 첫 포성이 울린 순간부터 전쟁은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위해 쉼 없이 새로운 목표를 설정해야 했다. 위협이 남았으니 타격을 계속해야 하고, 타격이 계속될수록 초기 공격의 정당성을 더 강하게 우겨야 하는 악순환이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쏟아낸 언어는 그 모순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핵 문제를 말하다가 정권의 교체를 흘렸고, 미사일과 지역 영향력을 들먹이더니 급기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열지 않으면 기반 시설을 타격해 “하나의 문명 전체가 사멸할 수 있다”는 식의 극단적 협박까지 내놓았다. 그러다 4월 8일에는 돌연 호르무즈의 즉각 개방을 조건으로 2주 휴전에 동의하며 이란의 10개 항을 “협상 가능한 기초”라고 불렀다. 이것은 벼랑 끝 위협과 급선회가 반복된 정치적 파산 선고다. 미국은 군사적 우위에도 자신이 설계한 논리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이번 휴전은 승전 선언이 아니라 패배의 자인이다. 전쟁 목표를 달성했다면 상대가 내놓은 조건 문건을 협상의 출발점으로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 지금의 국면은 전면 종전이 아니라 시한부 휴전이다. 미국은 이길 수 있다고 믿고 시작한 전쟁에서 결국 상대의 요구를 테이블 위에 올리지 않고서는 출구를 찾을 수 없는 지점까지 밀려난 것이다. 한편 이스라엘은 레바논 전선은 휴전의 대상이 아니라면서 노골적으로 종전을 방해하고 있고, 이란은 열려던 호르무즈를 다시 닫아걸고 있다. 미국은 이스라엘을 멈춰 세우고 호르무즈는 결국 열릴 것이다.
심각한 것은 이 전쟁이 세계에 남긴 흉터다. 2월 28일 시작된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 그리고 그에 따른 보복은 수천 명의 사망자와 대규모 피란민을 낳았다. 유가는 폭등했고 호르무즈 봉쇄로 글로벌 에너지와 물류 시장은 마비됐다. 유엔은 이미 수백만 명의 이란과 레바논의 실향 가능성을 경고했으며, 휴전 소식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긴장은 쉽게 풀리지 않을 조짐이다. 명분은 빈약했고 결과는 파괴적이었다. 이제 미국에 필요한 것은 “목표를 달성했다”는 허세가 아니라 “세계를 망가뜨렸다”는 책임의 언어다.
지금은 휴전을 넘어 ‘책임의 제도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미국은 이란이 요구한 핵심 사안들, 즉 재발 방지 보장, 피해 보상, 그리고 전후 복구 지원 요구를 대부분 수용해야 한다. 이란 측이 밝힌 조건들은 패전국에 대한 관용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국이 져야 할 최소한의 책무를 묻는 것이다. 미국이 이미 상대의 제안을 “협상 가능한 기초”라 불렀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모호한 수사가 아니라 실질적인 수용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복구비용을 선제적으로 부담하는 것이 협상의 기본 전제가 되어야 한다. 그들이 세계 질서를 파괴했기 때문이다.
이란 시민들의 결의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트럼프의 문명 말살 망언이 발설되었을 때 이란 시민들은 발전소 주변에 모여 인간 사슬을 만들었다. 무도한 침략자를 막아내기 위한 애국적인 결기라고 보는 것만으로는 그들의 의지는 너무도 숭고했다. 그것은 인류 문명을 파괴하려는 반인류 집단에 대한 희생적인 의거였다고 보는 것이 좀 더 그 의미에 근접하는 것이리라. 이러한 인간의 웅장한 의지 앞에서 침략자들이 느꼈을 서늘한 공포감은 그들이 이 전쟁을 결코 그들이 이길 수 없다는 냉혹한 깨달음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이란 국민들에 대한 세계인의 존경과 경외심은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가질 수밖에 없는 당연한 찬사다.
호르무즈 문제는 새로운 시각으로 봐야 한다. 해양법상 자연 해협 통과에 일방적인 통행료를 매기는 것은 법적 논란이 크다. 하지만 현실은 기존 질서가 이미 파괴되었음을 말해준다. 세계는 자유항행을 외쳤지만 전쟁은 이를 지키지 못했고, 미국은 자유항행을 구실로 더 큰 불안을 키웠다. 해법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새로운 전후 질서의 설계다. 호르무즈 통항 문제를 단순히 이란의 횡포로 치부해선 안 된다.
미국이 재건 지원비를 예치하고 복구가 궤도에 오를 때까지 국제사회가 관리하는 한시적 통항 부담금 메커니즘을 검토할 수도 있다. 이는 법의 예외를 영구화하자는 게 아니라 파괴된 질서를 복구하기 위한 과도기적 장치이자 피해 시민들에 대한 인류의 응답이어야 한다. 미국은 돈이 될 것 같으니까 벌써 합작투자 운운하고 있지만 턱도 없는 얘기다. 결국 미국과 이스라엘의 재건 부담이 본류가 되고 통항 부담금은 그 책임을 강제하는 보조 수단으로 기능해야 한다. 그리고 임시 통항료 허용은 전 세계인의 이란 국민들에 대한 오마주일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새로운 중동 질서와 호르무즈의 규칙이다. 미국이 마음대로 때리고 위협하다가 막판에 휴전으로 선회하면 세계가 그 뒤처리를 떠안는 구조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호르무즈가 영구히 특정 국가의 통제 아래 놓여서도 안 되지만, 미국의 군사 도발이 자유항행의 이름으로 면죄부를 받아서도 안 된다. 다자적 틀 안에서 항행의 자유와 연안국의 안전, 전후 복구와 분쟁 재발 방지를 통째로 설계해야 한다. 캐치-22를 깨는 법은 전쟁을 시작한 자가 스스로를 정당화할 수 없도록 책임과 복구를 강제하는 새로운 규칙을 세우는 것이다.
한국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가 그 연장선에 있다. 이번 전쟁은 미국의 캐치-22에 갇힌 전쟁이 동맹국에 어떤 부담을 강요하는지 똑똑히 보여주었다. 한국은 역외 분쟁에서 주한미군이 자동적으로 동원되는 구조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전략적 유연성은 잘못된 전쟁의 위험이 우리 영토와 이해관계로 옮아 붙는 통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의 동의 없는 역외 군사 활용은 불가하다는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한다.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캐치-22에 편입되지 않겠다는 선을 긋는 것이 지금 한국이 취해야 할 가장 시급한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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