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ㅡ 9년 피땀으로 비정규직 권익 지켜낸 아사히지회에 칼 내민 금속노조 구미지부
안길성 (노동운동가)
등록일 : 2026.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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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만에 공장으로 출근하는 아사히글라스지회 조합원들이 장미꽃 한송이를 들고 공장 정문 앞에서 축하를 받고 있다.

 

한국 노동운동의 강철 대오이자 민주노조의 자부심으로 불려 온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마저 심각한 관료주의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최근 금속노조 구미지부가 선출직 지부장의 개인 임금을 보전해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9년이 넘는 세월 동안 거리에서 투쟁하며 비정규직 권익을 지켜낸 아사히글라스지회를 징계위원회에 올려 논란이 일고 있다.

 

앞서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부에서 발생한 직장 내 괴롭힘과 이에 항의하며 30미터 고공과 지상 천막에서 목숨을 건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양규서·함계남 사건에 이어, 민주노총 주요 산하 산별노조 전반에 걸쳐 하부 조직과 약자 위에 군림하려는 관료주의와 특권의식이 걷잡을 수 없이 만연해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ㅡ 9년 투쟁으로 민주노조 가치 지킨 아사히지회, 그들에게 내밀어진 '지부장 임금 보전' 징계안

 

징계 대상에 오른 금속노조 구미지부 아사히글라스지회(지회장 오수일)가 어떤 곳인가. 2015년 비정규직 노조를 설립했다는 이유만으로 문자 한 통에 길거리로 쫓겨났던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김 판매, 후원주점, CMS 후원 등으로 연대기금을 모으며 매달 97만 원 남짓한 생계비로 9년 2개월을 버텼다. 소성리 사드 반대 현장에서, 박근혜 퇴진 광장에서, 김용균 투쟁과 거통고 조선하청 투쟁 현장까지 가장 낮고 위험한 투쟁의 최전선마다 뜨겁게 연대했던 민주노조의 상징과도 같은 조직이다. 2024년 마침내 정규직 복직 판결을 이끌어내며 금속노조 대의원대회에서 '노동해방상'까지 받았다.

 

그런 모범 지회가 지금 금속노조 징계위원회에 올려졌다. 사유는 황당하게도 '지부 임원의 임금보전을 위한 기금을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금속노조 사무처 출신인 구미지부장이 당선된 후, 자신이 사무처 시절 받던 임금(연 6,240만 원)에 맞춰 달라고 요구했고, 지부는 대의원대회를 통해 조합원 1인당 매월 2,000원의 '재정자립기금'을 통과시켰다. 이미 노조 중앙과 지부 지원금을 합쳐 연 5,280만 원의 활동비를 받는 지부장이, 자신의 임금 차액을 채우기 위해 지부 조합원들에게 부담을 지운 것이다.

 

비정규직에서 겨우 복직해 연봉 4,000만 원 남짓을 받는 아사히지회 조합원들에게 자신보다 훨씬 많은 임금을 받는 지부장의 개인 임금을 보전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과연 민주노조의 정신인가. 아사히지회가 이를 거부하자 구미지부는 "징계 감당할 수 있겠냐"는 모욕적인 언사와 함께 징계 절차를 밟았다. 상급조직이 하부 조직의 고혈을 짜내 간부의 기득권을 챙기고, 이에 반발하면 '대의원대회 의결'이라는 조직 논리로 징계의 칼날을 휘두르는 전형적인 관료주의적 폭주다.

 

ㅡ 상급조직은 현장에 복무하기 위해 존재한다… 주객전도된 '그들만의 복지’

 

상급 노조 조직과 사무처는 현장 노동자들의 피땀 어린 조합비로 운영된다. 따라서 상급조직의 존재 이유는 현장의 노동권을 지키고 지원하는 데 있지, 활동가와 간부들의 '편안하고 좋은 직장'을 만들어주는 데 있지 않다. 그러나 지금 민주노총 산하 상급조직들의 모습은 주객이 완전히 전도되어 있다.

 

공공운수노조 사무처분회가 2023년 9월 1일 개최한 임시조합원총회 회의록을 보면 이 같은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당해 연도 임단협 요구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사무처분회는 중식대 월 18만 원 신설안을 통과시키는 한편,  단협 조항으로 '반려동물 휴가 신설' 간병휴가 사용 확대 등을 요구안으로  신설하기 위한 의견 수렴 및 재논의를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공공운수노조 사무처분회 2023년 임단협 요구안.jpg
공공운수노조 사무처분회 2023년 임단협 요구 논의안

 

물론 노동조합 상근자 역시 노동자로서 복지와 권리를 향유할 자격이 있다. 하지만 반드시 고려할 것은 자신들이 복무해야 할 현장 조합원과의 형평성이다. 그리고 충격적인 것은 이 회의가 열린 진짜 목적과 배경이다. 해당 총회의 핵심 안건 중 하나는 당시 상급 노조의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호소하며 싸우던 양규서 동지(그는 사무처분회의 조합원이기도 했다)에 대해 공공운수노조 측에 징계를 요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로 인해 1차 마무리되는 듯했던 양-함 사건이 다시 재발되고, 끝내 방영환 동지의 분신과 지금 민주노총 본부 앞에서 벌어지는 이들 부부의 단식과 밧줄 고공농성으로 이어지게 만든 비극의 불씨를 제공했다.

 

자신들은 상급노조 사무처라는 안락한 담장 안에서 '반려동물 휴가' 같은 세심한 복지 혜택까지 챙겨 논의하면서, 정작 산하 의료연대본부 서울지부에서 일어나는 연 728시간에 달하는 살인적인 초과 노동과 골절 부상에 시달리다 휴가를 요청했던 함계남 동지에게 사직을 종용하고 '조합원 제명'이라는 칼을 휘두르는 행태를 방관하거나 조장했다. 

 

이렇듯 동지의 생명과 기본적인 병가 신청에는 일말의 동정심이나 노동자적 원칙조차 보여주지 않은 채, 자신들의 기득권과 복지, 조직 내 권력에만 집착하는 상급조직의 모습은 노동운동이 얼마나 심각하게 병들어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ㅡ 민주노총 전반에 만연한 관료주의… 초심으로 돌아가 현장에 복무하라

 

투쟁하는 약자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야 할 노동조합이, 조직 내부의 거대 관료기구로 변질되어 하부 조직과 노동자들을 압박하는 도구로 쓰이고 있다.

 

30미터 고공과 지상 천막에서 목숨을 걸고 단식농성을 벌이는 두 동지의 절규를 "법적으로 종결된 사안"이라며 침묵·관망하는 공공운수노조 지도부나, 자신보다 가난한 현장 노동자들에게 지부장 임금 보전 기금을 강요하고 징계하겠다는 금속노조 구미지부의 행태는 결국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비극이다. 그것은 바로 '투쟁 정신 상실'과 '관료주의의 만연'이다.

 

노동운동은 동지의 희생과 현장 노동자들의 헌신 위에서만 그 도덕적·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대의원대회 의결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을 앞세워 자정과 자성에 귀를 닫는다면, 그것은 노동조합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가해자이자 기득권 집단일 뿐이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공공운수노조는 지금 당장 현장 위에 군림하려는 관료주의적 폭주를 멈춰야 한다. 당장 진행 중인 부당한 징계와 관행화된 억압을 철회하고, 가장 낮고 힘겨운 현장 노동자들에게 복무하던 초심으로 돌아가라. 노동자의 피와 땀으로 세워진 민주노총이 스스로의 도덕성을 팽개치고 현장을 외면한다면, 120만 조합원과 민주시민으로부터 더욱 외면받는 고립을 자초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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