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김장민(정치경제학연구소 프닉스)
등록일 : 2025.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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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1월 23일 김구 주석과 김규식 부주석 등 임시정부 요인 15명이 개인자격으로 환영객도 없는 김포공항을 통해 환국했다.

(사진 출처 : 우리역사 넷) 

 

송진우, 김성수, 장택상 등은 여운형의 조선인민공화국을 거부하고 1945년 9월 1일 대한민국임시정부 환국환영회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9월 8일 한국민주당 발기인 1,000여 명의 이름으로 조선인민공화국 타도 성명서를 발표했으며, 9월 16일 한국민주당을 창당했다. 이승만은 10월 23일 정당 대표들을 망라한 ‘독립촉성중앙협의회’를 발족하고 11월 7일 조선인민공화국 중앙인민위원회 주석 취임을 거절하였다.


미국 국무부장관 직무대행은 1945년 6월 8일 기자회견을 열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선거에 의해 구성된 바 없으며, 조선에 대해 전혀 행정권을 행사하지 않으므로 국민의 대표 혹은 통치당국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발표했다(1945년 6월 28일 프랑스 외무부 아메리카국 공문 제212호). 연합군 최고사령부 및 주중 미군과 전략사무국(Office of Strategic Services, OSS)도 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인한다는 내용을 김구에게 통보했으며, 이는 미군정의 입장으로 확립됐다. 


임시정부 산하 광복군 6명은 미군 제5공군 사령부와 함께 독수리작전이라는 국내진공작전을 하기로 하고 쿤밍에 사령부를 설치했다. 이들은 일본의 항복을 예상하고 1945년 8월 14일 C-47 수송기를 타고 조선 상공에 진입했으나 일본이 미군의 항공모함을 공격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중국으로 돌아갔다.


1945년 8월 18일 이범석이 이끌고 김준엽, 장준하 등이 참가한 4명의 광복군정진대와 번즈 대령이 이끄는 18명의 OSS 대원 등 22명이 C-47 수송기를 타고 여의도 비행장에 착륙했다. 하지만 일본의 재조선군 총사령관인 고즈키 요시오(上月良夫) 중장이 그의 참모장 이하라(井原) 소장과 19사단장과 참모들까지 대동해서 나타나 “미군의 통지가 없었으니 돌아가라.”고 최후통첩을 하고 전투태세를 취했다. 결국 쿤밍의 사령부의 지시에 따라 이들은 여의도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중국으로 돌아갔다. 


미군이 1945년 9월 8일 인천을 통해 상륙했다. 10월 10일 미군정은 조선인민공화국과 임시정부에 대해 “남조선에는 미군정만 있을 뿐 다른 정부는 존재할 수 없으므로 정부를 참칭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1945년 11월 23일 김구 주석과 김규식 부주석 등 임시정부 요인 15명이 개인자격으로 환영객도 없는 김포공항을 통해 환국했다. 12월 12일 하지 장군은 방송을 통하여 조선인민공화국이 정부행세를 하는 것은 불법이므로 이를 단속할 것을 경고하고 인공 측 인사들을 체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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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9월 3일 ‘대한민국임시정부 특파사무국’ 명의로 서울에 뿌려진 전단. 대한민국임시정부 특파사무국은 해방 후 계동에 사무소를 설치한 후 임시정부 인사들의 환국준비 활동을 하다 11월 24일 해체됐다.  (사진=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공)   출처 :  뉴시스 


1945년 10월 말부터 신탁통치에 반대하던 좌익이 1946년 1월 3일부터 갑자기 신탁을 지지함에 따라서 좌우익의 분열이 심화됐다. 1월 4일 김구의 임시정부는 신탁통치에 반대하면서 자신을 중심으로 국내외 각계각층 대표를 소집하여 비상정치회의를 개최하는 당면 비상대책을 발표했다. 김구 측은 일단 과도정권을 수립한 뒤에 다시 국민대표대회를 소집하여 헌법을 제정, 정식정부를 수립하고자 했다.


비상정치회의 협상 과정에서 한국민주당·국민당·인민당·공산당 등 4당 대표들은 1월 7일 “신탁제도는 장래 수립될 우리 정부로 하여금 자주독립의 정신에 기(基)하여 해결해야 한다.”는 모호한 입장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공산당 계열이 신탁을 계속 찬성하자, 임시정부는 조선공산당·인민당과 독립동맹을 제외하고 이승만의 독립촉성중앙협의회를 비상정치회의에 합류시켜 2월 1일 ‘비상국민회의’로 확대했다.

 

비상국민회의는 이승만과 김구를 의장으로 추대하였다. 비상국민회의는 2월 1일 임시정부 측의 주도하에 대회를 열어 대한민국임시헌장을 기본안으로 제헌헌법을 논의하고 38도선 즉시 철폐안을 가결했다. 이승만이 미군정과 협상하여 비상국민회의 최고정무위원회는 1946년 2월 14일 미군정사령관의 자문기관인 ‘남조선대한국민대표 민주의원’으로 개편됐다.


조선공산당 탄압 이후 좌익이 1946년 1월 19일 민전의 발기인 대회를 열고 2월 19일 출범시키자, 우익은 2월 1일 비상국민회의를 창설하고 미군정이 이를 14일 민주의원으로 개편한 것이다. 즉 미군정과 이승만은 민전의 본 조직 출범 전에 우익단체를 입법자문기구로 전환하여 민전에 대응한 것이다. 민주의원은 의장 이승만. 부의장 김구, 김규식이 선출되었다. 하지만 이승만이 신탁통치안에 반발하여 의장직을 사퇴하자, 김규식이 의장직을 대리했다. 


이후 이승만은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하고, 김규식 등은 좌우합작운동을 추진함으로써 민주의원은 사실상 기능이 정지되었다. 미군정은 우익단체로 전락한 민주의원 대신 좌우합작을 통해 온건좌파까지 포함되는 입법자문기구를 설치하고자 했다. 1946년 8월 24일 군정법령 118호로 남조선과도입법의원 창설령이 공포되었다. 민전 등 좌익은 남한 단독정부의 수순이라며 반대했다. 김구도 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입법의원에 부정적이었지만 한독당 일부는 이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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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12월 12일 정오, 중앙청 제1회의실에서 개최된 남조선과도입법의원 개원식에서 김규식(金奎植) 의장이 개회사를 낭독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미군정장관 대리 헬믹 대장, 미소공동위원회 미국 측 수석대표 브라운 소장, 김규식 의장, 주한미군사령관 하지 중장, 마지막은 미상. 단상 앞쪽은 전규홍(全奎弘) 과도입법의원 사무총장 [사진=미국국립문서기록청] (출처: 정창현, “광복 75주년 ⑮ 남과 북, 해방 이듬해 첫 입법기관 선거” 뉴시스, 2020 4 12). 출처 : 자유일보


입법의원은 주한미군사령관 하지가 임명하는 관선의원 45명과 선거를 통해 선출된 민선의원 45명으로 구성됐다. 전국적인 선거가 진행됐으나 좌익의 거부, 간접선거나 대리투표 등으로 제대로 선거가 치러지지 못했다. 선거연기와 재선거를 거쳐 1946년 12월 12일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이 57명의 의원이 참석한 가운데 개원하였다. 민선은 대부분 우익이었고 관선은 좌익들은 사임했으며 김규식 등 일부 중도진영을 포함했다.


의장은 김규식, 부의장은 최동오와 윤기섭이 맡았다. 법률안이 입법의원에서 심의를 거쳐 통과되고, 군정장관의 인준과 서명을 거쳐야한다는 점에서 입법의원의 활동은 정상적인 국회의 위상과는 차이가 있었다.


제헌국회 때까지 입법의원에서 통과시킨 주요 법령으로는 「국립서울대학교설립에 관한 제102호법령」, 「민족반역자·부일협력자·간상배에 대한 특별법」, 「사찰령 폐지에 관한 법령」, 「공창제도 등 폐지령」, 「미곡수집령」 등이 있었다. 해방정국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 중 하나였던 토지개혁법안은 입법의원에서 논의되었으나 입법의원 내 정치세력들 간의 입장 차이 때문에 통과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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