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장민 ( 정치경제학연구소 프닉스)
등록일 : 2024.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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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선거에 대한 입장 

 

첫째, 부르주아민주주의가 보장되지 못했던 시절에도 마르크스는 보통선거권을 요구하는 등 노동자민중의 선거참여를 중시하였고 의회를 정치투쟁의 공간으로 평가했다. 


1789년 대혁명 직후 국민의회, 영국의 차티스트 운동에서 보듯이 선거참여는 노동자민중의 일관된 요구였다. 1830년 혁명 1848년 혁명은 선거권 확대 요구로 촉발된 혁명이다. 『공산당 선언』은 보통선거를 전투적인 프롤레타리아트의 최우선의 임무 중의 하나로 선언하였다. 역시「독일에서의 공산당의 요구」는 만 21세 이상의 모든 독일인에게 선거권을 부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공산주의자동맹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은 보통선거가 일반화되지 않아 선거참여가 반드시 전제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자동맹은 선거권확대운동을 중시하였다. 


1855년 5월 신오데르신문을 통해 마르크스는 “보통선거권은 민중계급의 헌장이며 그들의 사회적 요구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정치권력의 획득을 뜻한다.”고 밝혔다. 마르크스가 프랑스 노동자당 강령에서 보통선거제를 “기만의 수단에서 해방의 도구로 변형되었다”라고 규정하고, 엥겔스가 독일사민당과 독일 노동자들의 중대한 공헌 가운데 하나를 “보통선거제를 이용하는 방법을 만국의 노동자들에게 보여준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1870년 이후에는 독일의 노동자 정당의 선거참여와 의회진입이 주목을 받았다. 당시 베벨과 리프크네히트는 보통선거에 의해 독일 의회에 진출하였는데, 엥겔스에 따르면 이 두 의원의 전쟁 반대 선전이 출판물과 집회를 통한 수년간의 선전보다 더 강력한 영향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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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보통선거가 도입되고 의회의 지배 등 부르주아민주주의가 발전하면 선거와 의회를 통한 노동자민중의 평화적인 집권이 가능하다고 봤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인민의 대의기관이 전권을 한 손에 장악하고 있고, 인민다수의 지지가 있을 경우 원하는 모든 일을 합헌적으로 행할 수 있는 프랑스, 미국, 영국의 경우, 낡은 사회가 새로운 사회로 평화적으로 이행하는 것을 가정할 수 있다(engels, 1989d). 엥겔스는 1890년 총선에서 독일사민당이 득표율로 제1당이 되는 것을 목격하면서 선거혁명을 기대했다. 


다만 엥겔스에 따르면 혁명이 평화적으로 시작되었더라도 반동계급의 반발이 폭력으로 나타난다면 반혁명을 진압하기 위한 무장혁명이 불가피하다(Marx, 1960b). 1878년 가을 마르크스는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는 문제에 관한, 사회민주주의자들의 견해에 대해 제국의회에서 내무장관이 언급한 것과 관련하여 평화적인 혁명의 가능성과 그 이후 혁명적 무력의 필요성을 지적하였다(루벨, 1990:190). 프랑스에서 1848년 2월 혁명 직후 선거에서 반동세력이 다수가 됐으며, 1917년 러시아 혁명 직후 제헌의회에서도 같은 현상이 반복됐다. 마르크스의 지적처럼 혁명직후 부르주아 선거제도를 먼저 사회단체 후보 추천제도와 직능선거구와 같은 노동자민중 중심의 선거제도로 전환해야 한다.


반면 라쌀은 지배계급과 타협을 통해 보통선거 도입에 의한 평화적 혁명만 주장하면서 반동에 대한 무력 사용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프랑스혁명 시기에 도입된 보통선거가 라쌀이 활동하던 시기에 나폴레옹3세에 의해 다시 도입되었는데 1864년 비밀만남에서 라쌀은 비스마르크에게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보통선거를 즉시 실시할 것을 요구했다. 비스마르크는 라쌀의 제안을 수용하여 남성보통선거를 도입했다. 


ㅡ 레닌과 스탈린 및 그람시의 선거에 대한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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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에트에서 연설하는 레닌

 

레닌은 의회가 차르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러시아와 반대로 의회 지배가 정착되고 있는 서유럽에서 선거의 의미를 구분했다. 레닌의 주장에 따르면 사회주의혁명을 달성하려면 평화적 방법이나 무력의 방법, 합법이나 불법의 방법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하고, 다만 사회주의정당이 정세의 필요에 따라 이러한 전략적 수정을 신속하게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사회주의로 가는 평화적 길은 사회주의 세력이 궁극적으로 혁명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사회주의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과도적으로 부르주아국가기구를 활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스탈린이 지도하는 코민테른에서 더욱 구체화되었다. 1935년 제7차 코민테른 회의 이래 소련과 유럽의 공산당은 점진적인 혁명을 추구하거나 의회를 활용하는 합법주의 전략을 채택하였으며 여러 민주주의 정당들과 인민전선을 통해 연대하는 것을 자신들의 전략으로 수용하였다.


그람시는 기동전과 진지전의 변증법적 혁명이론에서 정당, 혁명적 지식인, 중간계급에 대한 포섭을 강조했다. 기동전이 주로 적용되는 러시아혁명과 진지전이 주로 적용되는 서유럽을 비교했다. 부르주아민주주의가 정착되고 자본주의 전면적인 구조적 지배가 고착화된 서유럽에서는 정당을 중심으로 합법투쟁과 이데올로기 투쟁의 비중이 높다. 


ㅡ 흐루쇼프와 유로코뮤니즘

 

1956년 소련공산당 제20차 당대회에서 흐루시초프는 비공개 연설을 통해 스탈린주의를 비판하면서 미소평화공존, 사회주의로의 평화적 이행, 국가기구 활용 등 수정주의 노선을 주장하였다. 이후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유럽의 공산당들에게 소비에트 모델 대신 '사회주의로 가는 평화적 길'과 '국가적 길'을 모색할 것을 권고하였다(Boggs & Plotke, 1980: 8). ‘국가적 길’은 서구의 공산주의자들에게 소련 공산당을 지지하는 동시에 의회제를 통한 평화적인 사회주의를 추구하도록 허용하였다(도널드 서순 2014, 527-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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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루시초프와 케네디의 만남

 

흐루시초프가 수정주의 노선을 발표한 직후 1957년 모스크바에서 열렸던 ‘세계 공산당·노동자당 회의(International Meeting  of Communist and Workers’ Parties)’는 ‘모스크바 선언’을 통해 민주화된 자본주의 국가에서 의회를 통한 점진적인 사회주의혁명을 내용으로 하는 ‘사회주의로 향하는 새로운 길에 대한 가능성’을 채택했다(Spencer 1979). 1969년 모스크바에서 다시 열린 세계 공산당·노동자당 회의는 자본주의 국가 내에서 활동하는 공산당들이 진보적 민주주의(advanced democracy)를 실현할 것을 강조하였다.


유로코뮤니즘은 이탈리아와 프랑스 및 스페인의 공산당에 의해 주도되었다. 나머지 공산당들은 내분에 빠졌거나 선거에서 이렇다 할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였기 때문에 선거와 의회를 활용하고자 하는 유로코뮤니즘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였으며, 유로코뮤니즘 안에서도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지 못하였다.


소련공산당 제20차 당대회 직후 1956년 이탈리아공산당은 제8차 당대회를 열고 팔미로 톨리아티(Palmiro Togliatti) 공산당 서기장의 제안에 따라 ‘사회주의로 가는 이탈리아 경로(Italian path to socialism)’를 채택하였다. 이는 1951년 영국 공산당 당대회가 채택한 ‘사회주의로 가는 영국 경로(British path to socialism)’와 유사하였다(Turrero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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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미로 톨리아티


스페인공산당 역시 진보적 민주주의를 수용하였는데, 에르네스트 만델은 1974년 ‘스페인의 내일(Morrow on Spain)’에서 프랑코의 군사독재 아래에 있는 스페인공산당이 의회민주주의, 진보적 민주주의(advanced democracy), 사회주의라는 단계적 혁명론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Mandel 1974).


1968년 프랑스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진보적 민주주의(advanced democracy)를 위하여, 사회주의 프랑스를 위하여'라는 '샹피니강령(champigny manifesto)'을 채택하였고 1971년 19차 당대회는 “진보적 민주주의를 선거를 통해 평화적으로 사회주의를 향해 나아가는 이행기”로 규정하였다(Adereth 1984, 200). 


1977년 유로코뮤니스트들의 마드리드 회동 이후 서유럽 공산당들이 선거에서 순차적으로 패배하여 집권의 가능성이 멀어지고 미소 간의 긴장완화, 즉 데땅트가 종식되자 유로코뮤니즘의 토대가 와해되었다. 프랑스 공산당은 선거에 패배하면서 사회민주주의 정당과의 연립정부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었고 공산주의 독자노선으로 회귀하였다. 스페인공산당은 총선에서 사회당에 비해 열세로 전락하였고 내분에 휩싸였다. 이탈리아공산당은 여전히 연립정부에 참가하였으나 실질적인 이익을 얻지 못하고 책임만 지는 꼴이 되었다. 


더구나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미소 간 긴장완화는 종식되었고 미소 간에서 균형을 취하려던 유로코뮤니즘은 자체 분열로 인해 더욱 퇴색되었다. 프랑스공산당은 소련의 침공을 두둔하였고 스페인 공산당은 분열되었지만 역시 소련의 입장을 지지하였다. 이탈리아의 베를링게르가 1984년에 죽자, 유로코뮤니즘은 종말을 고하였고 다만 훗날 고르바조프(Mikhail Gorbachev)에게 영향을 미쳤다(Pons. 2010: 58-65). 현재까지 공산당이 사민주의와 선거연합을 하는 문제는 유연한 전술의 문제로서 상황에 따라 다르다. 


ㅡ 마무리

 

부르주아민주주의가 발전한 나라에서 선거는 대중투쟁과 최소한 동급의 변혁수단이다. 이점이 러시아 차르나 군부독재시대와 다르다. 다만 대중투쟁은 항상 필요한 상수이나 선거참여와 참여방식은 유연한 전술이 요구된다. 특히 오늘날 우리는 여론정치가 대의제와 보통선거 및 의회정치와 결합한 대중민주주의 시대에서 살고 있다. 노동자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정당은 대부분 대중정당이며 의회 내 제도정당이다. 제도정당뿐만 아니라 제도로서 노동조합도 변혁의 주체로서 인정된다. 


오늘날 노동조합들 역시 분산된 것이 아니라 총연맹 형태로 국가적 차원에서 혹은 국제적 차원에서 활동하고 있다. 노조는 총자본 즉 국가와 협상을 위해 투쟁한다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개량주의 조직이지만 각 나라와 역사적 사회적 조건에 따라 혁명적인 조직으로 전환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부르주아민주주의가 발전한 나라에서 총연맹과 노동자민중의 정당은 다양한 형태로 연대하여 선거에 참여하면서 권력에 접근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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