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ㅡ 윤석열 탄핵국면과 진보진영의 몇 가지 과제 (1)
안길성 (노동운동가)
등록일 : 2025.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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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에 대한 구속영장 집행을  응원하기 위해 한남동에 집결한 시민들(2025.01.06)

 

우선, 수구보수세력 즉 윤석열 파시즘 세력의 도발과 반격으로부터 온다. 이들은 지난 12.3 친위쿠데타를 기도했지만 시민의 격렬한 저항과 자신들의 미숙한 계획으로 인해서 실패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1차 실패로 그들이 완전히 좌절한 것은 아니며, 최대한 버티면서 시간 끌기를 통해 국면의 전환과 권토중래를 꾀하고 있다. 


명백한 쿠데타 기도에도 불구하고 윤석열과 수구보수세력은 순순히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기는커녕, 대통령의 ‘정당한 통치행위’라며 정면 대응을 불사하고 있다. 이는 다소간 상식을 초월한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통치세력이 윤석열을 ‘버린 돌(사석)’로 삼아 정국을 조기 수습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워낙 불법 쿠데타의 증거가 명백한데다, 더 이상 시간을 끌면 심각한 헌정 파괴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들은 지금 정국 불안 및 헌정질서의 총체적 마비, 치솟는 환율 등 경제 파국과  국제적 이미지 훼손이라는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정국을 ‘혼돈 국면’으로 유도하고 있다. 


그 의도는 무엇일까? 진정 저들은 최후의 ‘파국’까지 각오하면서 일전불사를 결심하고 있는 것일까?


결론적으로 수구보수세력은 아직까진 그런 파국까지 원하는 정도는 아니며, 그러기에는 자신들이 감내해야 할 손실이 너무 크다. 


첫째, 한국의 독점자본(재벌)의 입장에서 볼 때 윤석열이 이번 쿠데타를 통해서  수립하려는 파시즘 체제는, 만약 무난히 성공할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바랄 나위 없을 만큼 이상적이다.  반노동자적 정책과 한층 강화된 착취·수탈을 통해 다가오는 한국 자본주의의 전반적 위기에 대한 탈출구의 마련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그것이 실패한 마당에서, 다시 베네수엘라나 미얀마처럼 장기적인 혼란을 초래하는 무리수까지 두어가며 지금 국면을 ‘파국’으로 이끌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같은 상황은 삼성, 현대차, LG, SK 등 이미 굴지의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한 한국 재벌의 위상에 걸맞지 않을 뿐더러, 만약 이 같은 상황이 현실화되면 이로부터 입게 될 손실은 자신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차고 치명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오늘날 한국의 독점자본(재벌)은 제3세계 개도국과 같은 정치 혼란을 감내하기에는 너무 발전하고 성장하였다. 이들이 지금 바라는 최선책은 ‘보수대연합’을 통해 다가올 총체적 경제위기에서 현 재벌체제에 대한 정치적 보호막을 강화해 주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수구보수세력보다 상대적으로 온건한 민주당의 이재명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용납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다. 과거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권 때와 마찬가지로 약간의 불편을 참으면 된다.


둘째, 미국의 세계정책에 비추어 보면, 한국에 강한 친미 정권이 들어서 2023년 8월 캠프데이비드 협정을 통해 출범한 미·일·한 군사동맹 체계를 보존하고 한층 강화시켜 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러한 바램에 비추어 볼 때 이재명과 같은 개성이 강하고 일정 정도 카리스마적 지도력을 가진 야당 지도자가 들어서는 것은 확실히 부담스럽기는 하다. 특히 대 중·러 관계와 대 브릭스 관계에서 계속해서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즉 과거에 비해 미국과 집단 서방의 영향력이 크게 약화 된 지금처럼 취약하고 ‘예민한’ 시기에 미국은 사소한 변화라도 부담을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국처럼 자본주의 발전 수준이 일정 정도 올라와 있고, 그간 수많은 제3세계 국가 중 산업화 및 정치 민주화를 실현한 친미 국가의 모범적인 사례로 선전해온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일반 후진국처럼 쿠데타와 장기적인 정국 혼란의 모습을 내비치거나 심지어는 과거 군사독재 시대로 되돌아가고, 현격한 정치·경제적 파국이 발생하는 것은 미국에는 득보다는 실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전체 자본주의 진영이나 미국의 동맹체계에 있어 한국이 차지하는 위상에 비추어 볼 때도 그러하다. 


또한 만약 미국이 끝까지 지지했는데도 불구하고 이 같은 쿠데타 기도 혹은 파시즘 체제의 성립이 실패했을 경우, 미국은 그야말로 한반도에서 미군 주둔조차도 위태롭게 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따라서 미국으로선 그 같은 모험을 감행할 이유가 없다. 그보다는 최소한 과거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 수준의 ‘외교적 균형’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재명 정권을 용납하는 것이 차선책이 될 수 있다. 역대 민주당 정권이 추구해온 이 정도의 ‘균형 외교’는 한미동맹의 굳건한 전제 위에서 얼마간 중·러와의 관계를 원만하게 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셋째, 가장 결정적인 것은 광범위한 민중이 이미 ‘궐기’했다는 사실이다. 역사의 주인공은 인민대중이다. 4.19 혁명과 5.18 광주민중항쟁, 그리고 6월 항쟁 등 여러 차례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단련된 한국 민중은 이제는 구시대적인 쿠데타를 용납할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 정치적으로 성숙해 있고 상당한 교육수준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접하자마자 즉시 국회의사당 주변으로 집결하여, 총검을 든 경찰과 계엄군에 몸으로 맞서면서 야당 국회의원들이 국회에 진입하는 것을 도왔다. 


이러한 그들이 이미 윤석열의 친위쿠데타를 계기로 광장으로 본격 진출해 있는 만큼, 그들과 정면으로 맞서는 것은 자칫 ‘민중혁명’의 폭발을 야기할 수 있고 한국사회의 진짜 변혁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수구보수세력은 자신들의 친위쿠데타 시도가 1차 무산된 것을 객관적으로 인정하면서 현 상황에 일정 순응하는 수밖에 없다. 성난 대중들을 달래면서 향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회 분위기가 바뀌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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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눈발 속에서도  윤석열 체포를 요구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2025.01.06)


이렇게 볼 때 현재로선 수구보수세력이 사실상 기대할 수 있는 최대치는, 정국과 경제 파국을 볼모 삼아 야당의 공세를 누그러트리고, 자신의 기존 진지를 보존하면서 질서 있는 퇴각을 통해 ‘권토중래’를 꾀하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국회 몫 재판관 임명에 대한 거부권(대통령 재의권 요구) 행사, 내란 특검과 김건희 특검에 대한 거부권 행사 등을 통해 최대한도로 정치 일정을 지연시키고, 이재명의 ‘공직선거위반’ 관련한 지난해 11월 15일 1심 재판에 이어 2심과 3심(각각 3개월씩 총 6개월, 즉 내년 5월까지 종결 예정) 재판 결과가 나오길 기다려 그를 낙마시키고, ‘내각제 개헌’ 논의로 야당 진영을 분열시켜 조기 대선이 치러질 경우 어부지리 내지는 보수진영의 재결집을 통한 정치적 재기를 노리는 전략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모든 노력이 여의치 않아 설령 이재명이 당선된다고 할지라도, 그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난 문재인 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민주당이 지닌 태생적 한계(재벌의 좌익 정당, 한미동맹 인정)에 기대어 다가오는 경제 파국 국면을 계기로 민주당에 책임을 전가하고, 지난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폭등으로 민심을 상실한 것과 마찬가지로 민심 이반을 틈타 내년 지자제와 차기 대선에서의 재기를 꿈꿀 것이다.

 

ㅡ '민주당식' 방식과 '진보·변혁적' 방식

 

현 정세에 있어 또 다른 위험은 민주당 및 진보 진영 내에서 그들을 추종하는 세력으로부터 온다. 그리고 이 위험은 앞서 수구보수세력으로부터 오는 위험보다도 더 심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수구보수세력이 정국의 주도권을 이미 상실하고 방어적 태세로 전환한 상황에서, 지금 이 측면에서의 위험이 주요한 것이 되고 있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그 점은 더욱 뚜렷해질 것이다. 만약 이 위험을 방치할 경우 또다시 과거의 역사가 되풀이되고, 그럴수록 대중뿐만 아니라 활동가들조차도 더욱 깊은 패배감과 무력감으로 빠져들 수 있다.


지금 노동자계급과 민중이 타도해야 할 적은 수구보수세력으로 명확하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는 윤석열 정권이며, 따라서 문제는 이러한 적과 어떻게 싸울 것인가에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방식이 존재하는데, 즉 민주당식 방식과 변혁적 방식이다. 윤석열이 기도한 쿠데타에 대한 처리와, 윤석열이 집권 이후 날로 심화된 한국사회 위기 및 현재의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에 있어 두 개의 노선이 분명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민주당식 방식에 대해서 알아보자. 그것은 개량적이고 타협적이며, 재벌체제와 한미동맹을 근본적으로 개혁하거나 폐기하는 것 없이 그 틀 내에서 사소한 개량만을 추구한다. 예컨대 민주당식 방식은 검찰·경찰·군대(방첩사/정보사) 등 현 국가권력의 개조에 대해, 민중의 저항을 억누르기 위한 목적으로 그 기본 틀을 보존하려 하며 민주적 통제를 거부한다. 심지어는 시대에 뒤떨어진 국가보안법조차도 민주당은 폐지할 생각이 전혀 없다. 또한 한국 정치 지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선거법 개정에 소극적이고, 지금처럼 수구보수세력과 ‘적대적 공생’을 계속하면서 혁신 진보세력의 등장을 막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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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탄핵소추안에 표결하는 국회의원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들 문제에 대해 변혁적 방식은  근본적인 개혁을 주장한다. 즉 재벌을 해체하고 그 주력 기업을 공기업화하며, 한반도 긴장 고조의 주범인 한미동맹을 해체하고 군작전권을 돌려받을 것을 요구한다. 검찰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여 기소와 공소유지에만 충실케 함으로써 '정치검찰'을 해체시키고, 경찰에 대해선 ‘자치경찰제’를 강화하고 시민자치경찰위원회를 통해 강화된 경찰권력을 시민의 통제하에  둘 것을 주장한다. 또  공안사건을 조작하고 수구세력에게 쿠데타의 빌미만 제공하는 국가보안법을 즉각 폐지하고, 노동자와 기층 대중의 이해를 진정으로 대변하는 정치세력이 성장할 수 있게끔 승자독식의 현행 선거법을 개정하여 비례대표제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본다.


현재 탄핵 국면과 관련하여서도 두 가지 방식 간의 차이는 명확하다. 양자는 모두 윤석열을 조기 퇴진시키기 위해서는 대중동원이 필요하다는데 동의한다. 하지만 민주당식 방식은 당대표인 이재명이 사법위기에 몰릴 때만 제한적으로 대중의 힘을 빌리고자 한다. 나머지 대부분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국회와 제도권 내에 머물면서 국민의힘과의 정치적 거래를 통해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코자 한다. '국정협의체' 제안이 그것인데, 이는 사실상 국민의힘을 국정 파트너로 인정한다는 뜻이며, 애초 민주당이 주장했던 내란 동조 혐의로 국민의힘을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과는 배치된다. 


이에 비해 변혁적 방식은 역사의 주인공은 민중이라는 인식하에서, 윤석열 정권을 조기에 종식시키는 것은  민중의 힘에 의존할 때라야 가능하다고 본다. 이를 위해 최대한 군중을 광장으로 동원하여 버티는 윤석열과 그 잔당들을 압박하고 있다. 더 나아가 민주노총, 전농 등 기층민중들을 윤석열 퇴진 투쟁에 동참시키고, 그들의 생존권 요구를  정치적 요구에 결합시킴으로써 현 정세의 동력을 보충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사회대개혁을 완수하고자 한다.


현재 윤석열의 쿠데타 기도로 대중이 이미 광장으로 진출한 상황에서도, 민주당식 방식은 윤석열 개인에 대한 처벌 정도에만 머무르고, 근본적인 사회대개혁을 수행할 생각이 전혀 없다. “윤석열 탄핵을 조속히 마무리하고,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가자”라는 것이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요즘 집회 때면 단골로 외치는 구호이다. 윤석열 정권에 대한 분노를 가급적 헌법재판소의 탄핵 일정에만 맞추고 이곳으로 수렴하려 한다. ‘국정협의체’ 제안에서 보듯 내란 동조세력인 국민의힘을 이미 정치적 파트너로 인정하면서, 기존과 같이 ‘양당 체제’를 유지할 생각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한덕수가 지난해 12월 22일 ‘양곡법 개정안’ 등 국회를 통과한 6개의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을 때도, ‘그 정도는 봐줄 수 있다’며 민생 문제는 별반 개의치 않는다는 태도를 보였다.  헌재의 탄핵 결정이 가급적 빨리 내려지도록 하여 이재명의 사법리스크를 회피하고, 조기 대선을 통해서 차기 정권을 장악하는데 만 온 정신이 팔려있다. 


지난해 두 번씩이나 윤석열의 거부권 행사로 입법이 좌절된 노조법 2·3조 개정에 대해, 민주당은 지금 전혀 관심이 없다. 그 대신 재벌의 ‘반도체법’과 ‘지역균형투자촉진 특별법안’ 요구에 대해선 우원식 국회의장이 국회에서 그들 대표를 회동하는 등 경제안정이란 미명 속에 최대한 수용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장실에서 열린 경제단체 비상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png
우원식 국회의장이  12월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장실에서 열린 경제단체 비상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변혁적 방식은 민주당식 방식으로는 이번 사태는 물론이고 한국 사회의 근본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고 본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철저하게 내란음모를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여 나라의 기강을 다시 세워야 하며, 공범인 국민의힘을 해체하고 근본적인 사회대개혁으로까지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매주 전국적인 대중집회를 개최하고 있다.


 결국 어떠한 방식이 주도하느냐에 따라 이번 ‘제2 촛불항쟁’ 역시 그 향방이 결정된다. 만약 민주당식 방식이 주도하게 되면 이번 제2의 촛불항쟁 역시 박근혜를 탄핵했던 지난 1차 때와 마찬가지로 단순한 정권교체로만 끝나고, 민중의 항쟁은 유산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변혁적 방식으로 나아가면 1차 때의 한계를 넘어서 한국사회대개혁으로 나아갈 수 있다.


따라서 지금 정세의 관건은 윤석열 퇴진투쟁을 함께 벌이고 있는 반정부세력 내에서 어느 쪽이 주도권을 장악하느냐의 문제이다. 한국 진보 변혁진영은 이번 국면에서 최대한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족적을 남기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ㅡ 현시기 중심 과제는 ‘반제, 반윤, 정규직-비정규직 연대전선’의 구축이다

 

수구보수세력의 반동 기도와 권토중래를 확실히 제어하기 위해서,  그리고 자유주의세력에 의한 제2 촛불항쟁의 좌절을 최대한 저지하기 위해서, 진보 변혁세력은 민주당과의 본격적인 윤석열 퇴진투쟁의 주도권 경쟁에 나서야만 한다. 지금 자유주의세력인 민주당으로부터 주도권을 쟁취하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핵심과제가 되고 있다. 


이 주도권 경쟁은 향후 본격 전개될 한국경제와 사회 전반의 위기 상황에 비추어, 최소한 중장기적인 전망 속에서 지속적으로 추진될 수밖에 없다. 이번 위기는 일거에 ‘파국’이 오기보다는 경제·정치 및 사회 전반이 시간이 갈수록 나락으로 빠져들고, 정국 불안이 찾아오는 주기가 훨씬 짧아지는 방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예컨대 현 국면은 윤석열 쿠데타 저지와 탄핵 추진에 이어서, 조기 대선 및 경제난국 타개를 위한 사회적 논쟁, 그리고 2026년 지방선거로 이어지는 일련의 정치 일정 속에서 수시로 위기가 폭발하고 진동과 여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최종적으로 예정된 파국을 향해 치닫는 양상이 될 것이다. 그간 한국 재벌체제(후기국가독점자본주의)가 축적한 자본 수준에 비추어 볼 때  파국을 일정 정도 지연시킬 수는 있다. 또 한국의 중산층이 그간 얼마간 모아 둔 ‘저축’과 기타 자산 때문에 곧바로 기아와 빈곤이 찾아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국경제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현시점에서 진보 변혁진영의 주도권 획득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다름 아닌 ‘내부 분열’이다. 지난해 12월 11일 1500여개 사회단체가 참여한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 정식 출범하여 광장에서 대중을 이끌고 있다.  이 '비상행동'은 현재 반윤석열 투쟁을 벌이고 있는 사회단체 대부분을 포괄하고 있는데, 진보당·정의당·노동당 등 진보정당뿐만 아니라 민주노총·전농·전빈련 등 기층 대중조직 또한 참여한다. 하지만 진보진영은 민주당과 그들을 추종하는 일부 시민단체를 제어하지 못한 채 오히려 그들에게 끌려다니는 형편이다. 여기에는 진보당과 다른 좌파 정당 간의 대립 갈등 등 한국 진보 변혁진영 내의 분열이 큰 몫을 차지한다. 만약 이러한 분열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결국 민주당으로부터 광장 대중에 대한 지도권을 탈취하는 일은 요원한 일일수밖에 없다.


따라서 진보 변혁진영이 민주당으로부터 현 정국의 헤게모니를 탈취하기 위한 조건은 먼저 우리 내부의 분열을 극복하는 것이다. 즉 민주당으로부터 정국 주도권을 탈취하기 위해서라도 지금의 낡은 '엔엘:피디' 구도를 해체시켜야 하며, 그간 변화된 국내외적 정세를 감안한 새로운  전선 재구축이 필요하다. 


지금의 '엔엘:피디' 구도는 사실상 80년대 당시 한국사회의 성격을 둘러싼 논쟁에서 계급모순이 우선인가 민족모순이 우선인가를 중심으로 설정되었다. 그 때문에 최근 현대제국주의 모순의 첨예한 발전에 따른 국제정세의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또 지금의 '엔엘:피디' 구도는 1990년대 이후 특히 2000년대 접어들어 한국사회 전반의 주요모순으로 등장한 비정규직문제, 원-하청 노동자문제를 전면적으로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를 갖는다. 엔엘이든 피디든 한국의 비정규직문제를 ‘신자유주의’ 일반의 문제로만 바라보면서, 한국사회 본질로부터 파생되는 그 특수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  '엔엘:피디' 구도에 대한 좀더 상세한 비판은 이하 참조: “진보진영, 2024총선 투쟁 어떻게 할까? (중) ㅡ 먼저 내부 ‘진영 구도’를 바꿔야 한다”  http://www.ulham.net/project/12871.
  
결론적으로, 지금의 엔엘:피디 구도는 21세기에 진입한 오늘날의 변화된 국내외 정세와 한국사회 계급투쟁 상황을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 이런 구도를 계속해서 견지할 경우 한국의 진보 변혁운동은 이론과 실천의 심각한 괴리가 생겨날 수밖에 없으며, 이에 따라 이론은 실천에 대한 '나침반' 기능을 상실하고 변혁적 이론의 지도를 받지 못하는 실천 또한 개량주의 틀에 갇힐 수밖에 없다. 


그 대안으로, 한국의 진보 변혁진영은 낡은 엔엘:피디 구도를 폐기하고 변화된 국내외 정세에 조응하여 내부 진영구도를 ‘변혁 대 개량’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 구체화로서 ‘반제, 반윤(반재벌), 정규직-비정규직 연대’를 중심으로하여 지금의 엔엘:피디 구도를 재편해야 한다. 즉 지금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이들 세 가지 임무를 아우르는 새로운 전선의 구축이다. 현 ‘탄핵 국면’을 한국 변혁운동 발전에 복무케 하는 길은 다름 아닌 이 같은 새로운 전선 구축에 이바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전선이 구축되는 만큼 진보 변혁진영의 새로운 단결은 가능할 것이며, 현 국면에 대한 변혁적 족적을 그만큼 선명하게 새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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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윤석열 체포를 위해 한남동에 집결하고 있다


새로운 전선 재편과 관련한 위 3가지 과제는 정세의 변화에 조응하여 주체의 강조점은 달라질 수 있다. 즉 ‘반제, 반윤, 정규직-비정규직 연대’ 전선의 구축이라는 기본 원칙을 굳건하게 사수하되, 정세에 조응하고 연대활동의 필요성에 따라 선전·선동의 강조점을 달리하면서 유연성을 발휘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컨대 ‘반제, 반윤, 정규직-비정규직 연대’의 3대 과제 중 국내적으로 친위쿠데타가 출현한 비상상황을 감안하여 ‘반제’에 대한 강조를 상대적으로 축소하는 대신 ‘반윤’을 돌출적 위치에 놓을 수 있다. 그럴 경우 반제 문제와 관련하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나토와 러시아 중 어느 쪽이 제국주의 세력이며, 이번 전쟁에서 더 큰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관한 기존의 논쟁은 더 이상 쟁점화하지 않고, ‘제국주의 반대, 평화 수호’를 분명히 하는 정도로도 족하다. 같은 이유에서 ‘다극화’의 성격과 관련한 문제 또한 연구과제로 남기며, 현실사회주의에 대한 판단 역시 현 정국에서 굳이 쟁점화할 필요는 없다. 


그 대신 반윤 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윤석열 퇴진이 성사될 경우에는 그것을 ‘반독점(반재벌)’ 투쟁으로 상승시킬 것이 요구된다. 그 근거는 비상계엄 포고령이 말해주듯이 윤석열의 이번 쿠데타는 위기에 처한 한국의 재벌체제를 구하기 위한 목적이 배경에 있었다. 윤석열은 파업과 집회 시위를 금지시켜 지난 80년대의 엄혹한 노동탄압 상황을 재현하려 하였다. 또 현 정세의 주요한 위험이 자유주의세력인 민주당으로부터 온다는 점에서 볼 때도 반독점 투쟁의 발전은 중요하다. 민주당은 사실상 친재벌 세력이며, 진보 변혁진영이 재벌개혁을 주장할수록 양자 간의 차이는 더욱 분명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이렇듯 주체의 실천적 요구에 조응하면서 현 전선의 재편 임무를 유연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기존 엔엘:피디 구도는 수십년의 세월을 걸쳐 구축된 것이기에 한꺼번에 전환하는 것은 어려우며, 위 3가지 과제를 처음부터 완전히 같이할 수 있는 대상을 찾기가 쉽지 않다. 어차피 새로운 전선 재편은 한 시기를 아우르는 비교적 긴 과정을 통해 완수해야 할 변혁적 임무이기에, 정세에 조응하여 최대한 연대의 대상을 넓히고 유연성을 발휘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현 국면에 조응한 전술적 조정에 따르면,  트로츠키파 등 국제주의 세력과 반윤석열 투쟁을 중심으로 연대 전선을 구축하는 것이 가능하다. 다른 한편, 노동당-정의당-녹색당이 추진하고 있는 공동보조에 대해서도 다소 개방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다. 또 이 같은 폭넓은 연합전선의 구축을 통해서 진보당이 민주당 쪽에 경도되는 것에 대한 경고를 보내고, 진보 변혁진영으로 하루빨리 복귀하게끔 압력을 가할 수 있다.


‘정규직-비정규직, 원-하청 연대’와 관련해선 여전히 이들 3대 과제의 중심에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 ‘정규직-비정규직, 원-하청 연대’는 한국의 사회변혁 전체 과정을 통해서 관통하며, 따라서 일상적으로 수행해야 할 임무이다. 이에 비해 다른 두 가지 임무 즉 ‘반제’와 ‘반윤’은 당면한 국내외 정세의 변화에 따라 그 강조점이 달라질 수 있다. 이 때문에 ‘반제’와 ‘반윤’은 기본적으로 앞의 ‘정규직-비정규직, 원-하청 연대’ 전선을 확대하는데 복무하고 그것을 보충하는 역할을 한다.  그동안 현장에서 ‘정규직-비정규직, 원-하청 연대’ 전선 구축을 위해 헌신해 온 동지들은, 이제 새롭게 변화된 국내외 정세 속에서 ‘반제, 반윤’과 관련한 임무를  추가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규직-비정규직, 원-하청 연대’ 문제에 있어 요즘 주목해야 할 한 가지 현상은 ‘자회사 문제’의 부상이다. 이는 최근 대법원에서 사내하청에 대한 불법 판정이 내려지고 있는 사정과 관련이 있다. ‘자회사’는 이 같은 ‘불법파견’의 멍에에서 벗어나기 위한 원청 자본의 꼼수일 뿐 아니라, 앞으로 4차 산업혁명의 진척에 따라 필연적으로 찾아올 대규모 구조조정을 위한 재벌의 사전포석이기도 하다. 이번 윤석열의 친위쿠데타 실패로 인해서 한국경제는 ‘파쇼적 재편’의 기회를 일단 상실하였다. 이에 따라 재벌체제의 위기는 심화할 것이고, 대규모 구조조정 역시 앞당겨질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자회사 문제를 비롯해서 비정규직 문제, 원-하청 문제가 조만간 전면화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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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아차 노조 재정난’이 드러낸 대공장 노조운동의 현주소

안길성 (노동운동가)

2026.01.27

오피니언

[논평] ‘성과급’ 둘러싼 현대차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진짜 사장' 찾기

ㅡ 노조법 개정의 문턱에서 터져 나온 현대차  하청 노동자들의 외침

안길성 (노동운동가)

2025.12.16

오피니언

조기 대선 국면에 대비해 ‘독자후보’ 세우는 작업에 착수하자

ㅡ 윤석열 탄핵국면과 진보진영의 몇 가지 과제 (2)

안길성 (노동운동가)

2025.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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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지금 정세의 ‘위험’은 어디에서 오는가?

ㅡ 윤석열 탄핵국면과 진보진영의 몇 가지 과제 (1)

안길성 (노동운동가)

2025.01.08

오피니언

'노동전선' 등 좌파는 전체 진보진영과의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ㅡ 홍승용 선생의 글을 보고

안길성 (노동운동가)

2024.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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