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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양

지난 12월 11일, 이재명 정부는 반도체 및 인공지능(AI) 산업 육성을 명분으로 지주회사 규제 완화 및 금산분리 원칙을 허물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했다. 이러한 조치는 단순한 경제정책의 변화를 넘어, 한국 사회의 근간을 뒤흔들고 재벌의 무소불위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려는 반(反)개혁적 망동이다.
1. 1·2차 세계대전의 교훈: 재벌과 파시즘의 결합
20세기 인류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통해 값비싼 교훈을 얻었다. 독일 나치세력의 득세와 일본 군국주의의 배경에는 사실상 '재벌'이 존재했다. 독일에서는 IG파르벤, 크루프, 지멘스 등 거대 독점자본이 히틀러의 나치당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고, 전쟁 수행을 위한 물적 기반을 제공했다. 일본에서는 미쓰비시, 미쓰이, 스미토모, 야스다 등 4대 재벌(財閥, 자이바쓰)이 군국주의 침략전쟁의 경제적 토대가 되었다.
이들 재벌은 단순히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집단이 아니었다. 그들은 막대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정치권력과 결탁했고, 언론을 장악했으며, 사회 전반에 걸쳐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다. 특히 산업자본과 금융업자본의 결합은 이들의 지배력을 극대화시켰다. 독일의 IG파르벤은 자체 은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했고, 일본의 4대 재벌은 각각 자신들의 은행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러한 '산업자본+금융업자본'의 결합은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가속화했고, 결국 파시즘과 군국주의의 물적 토대가 되었다.
이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은 경제 민주화 개혁을 실시해 재벌체제를 해체했다. 독일에서는 IG파르벤이 바이엘, 바스프, 헥스트 등으로 분할되었고, 크루프 가문은 경영권을 상실했다. 일본에서는 연합군 점령 당국이 재벌 해체를 단행했고, 독점금지법을 제정했다. 미국에서도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글래스-스티걸법을 제정해 은행과 증권업을 분리했다.
이후에도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은 소수 독점자본에게 지나친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해서 '금산분리 원칙'을 수립했다. 금산분리는 산업자본이 금융기관을 사금고처럼 이용하거나 지배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한 규제다. 이는 단순한 경제정책이 아니라, 파시즘과 전쟁의 참화를 겪은 인류가 얻은 역사적 교훈의 제도화였다.
2. 한국 재벌체제의 특수성: 해체되지 않고 날로 강화되는 ‘재벌’
한국은 산업화를 이룬 나라 중에서 재벌체제가 해체되지 않고 여전히 강력한 드문 사례에 속한다. 1960~70년대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은 수출주도 산업화 전략을 추진하면서 소수의 대기업에 특혜를 집중했다. 정부는 은행을 국유화하고, 정책금융을 통해 선별된 기업들에게 저리로 자금을 공급했다. 이 과정에서 삼성, 현대, LG, SK 등 오늘날의 거대 재벌들이 형성되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재벌체제는 해체되지 않았다. 오히려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상위 재벌에 경제력이 더욱 집중되었다. 삼성·SK·현대자동차·LG·롯데 등 상위 5대 그룹의 매출액은 1,025조 원으로 지난해 한국경제 생산의 약 40%에 달했다. 재계 1위인 삼성그룹의 매출액만 해도 GDP의 20%를 넘는다. 현대자동차그룹은 279조 8천억 원(11.0%), SK그룹은 205조 9천억 원(8.1%)을 기록하며 뒤를 이었다.
한국 재벌은 이미 상위 4개 재벌에 경제력이 고도로 집중화한 '재벌과두체제' 단계에 들어서 있다.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이 상징하듯이, 이들은 이러한 거대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삼성은 검찰과 언론을 장악하고, 정치권에 로비를 하며, 사법부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도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이것이 한국 재벌의 현실이다.
그런데 이 재벌체제가 약화되기는커녕, 반도체와 인공지능 육성을 빌미로 더욱 강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지난 12월 11일 반도체 산업 투자를 위해 지주회사·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했다. 기획재정부는 이날 업무보고에서 국가첨단전략산업법에 반도체 업종 특례 규정을 마련해 일반 지주회사의 증손회사 의무지분율을 50%로 완화하고, 이 증손회사에 금융리스업을 허용하는 규제완화안을 보고했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일반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자회사(=지주회사의 증손회사)의 지분을 100% 보유하도록 한 규정을 두고 있다. 이 규정은 지주회사가 문어발식 확장을 하거나 총수가 적은 지분으로 과도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다. 또한 현행 공정거래법(18조)은 "일반 지주회사가 국내 금융업 또는 보험업 회사의 주식을 소유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재벌 대기업이 경제력 집중 및 지배력 확대 등을 위해 금융사를 활용하는 걸 막자는 취지다.
그런데 정부는 이 두 가지 규제를 모두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일반 지주회사의 증손회사 의무지분율을 50%로 완화하고, 이 증손회사에 금융리스업을 허용하는 것이다. 즉 지주회사(재벌그룹) 체계 내에 금융회사를 설립하는 길을 터주는 것이다. 이날 정부 발표는 공정거래법의 정책 목표인 '경제력 집중 억제'를 위한 두 기둥인 지주회사 규율 체계와 금산분리 원칙을 모두 건드리는 것이다.
정부는 그 명분으로 "첨단산업 투자 활성화"를 내세웠으나, 실제는 'SK그룹 맞춤형 특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재 일반지주회사 체제이면서 반도체 기업을 소유한 그룹이 SK밖에 없기 때문이다. 법 개정이 이뤄지면 지주회사인 SK주식회사의 손자회사인 SK하이닉스 산하에 금융리스회사를 설립한 뒤 여기에 국민성장펀드 등의 투자를 받아 반도체 공장을 짓고 이를 SK하이닉스에 빌려주는 구조가 가능하게 된다.
실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16일 이재명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원래 올해부터 2028년까지 128조 원(그룹 전체)의 국내 투자를 계획했지만,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만으로도 앞으로 600조 원 정도의 투자가 이어질 것" 이라고 했다(한겨레, "재계, AI투자 명분 금융업 요구…총수 지배력 지킨채 돈조달 노려", 2025.11.20.) 그리고 이를 위해 금산분리 규제 완화를 요구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국민의힘 쪽에 전달한 입법 건의안에서 생산적 금융 활성화 방안의 첫머리에 '지주회사 금산분리 규제 완화'를 담았다.
3. 민주당과 국민의힘: 재벌의 좌우 대변자
이는 단순히 '독점' 강화라는 일반적 차원의 문제를 뛰어넘어, 우려했던 '산업자본+금융업자본'의 결합을 촉진시켜 한국 재벌체제에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다. 전성인 전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겨레 칼럼에서 이번 정책이 "말이 안 되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한겨레, "SK 사태와 주병기 공정위원장의 선택 [전성인 칼럼]", 2025.12.24) 전 교수는 "금산분리 규제의 목적은 독점의 폐해 방지만이 아니다. '금융기관의 사금고화 방지'도 있다. 이번 정책은 금융기관을 사금고화한다. 그래서 금산분리 규제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왜 사금고화가 발생할까? 전 교수는 "SK하이닉스가 투자할 돈이 없단다. 응당 가진 것을 팔아서 돈을 마련하든지, 빚을 내든지, 증자를 해야 한다. 그런데 가진 것 팔기는 싫고, 빚은 겁나고, 증자를 하려니 내 돈 들어가거나 아니면 지분 희석되는 것이 싫다. 그래서 내가 투자 결정을 하고 내가 지배권을 행사하지만 돈은 국민들이 내라는 것이다. 이것이 SK의 핵심 요구이다"라고 설명했다. 전 교수는 "리스회사의 업무를 필요 최소한으로 허용하겠다는 구윤철 장관의 말은 '딱 재벌의 사금고화 역할을 하는 데까지만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결국 민주당이든 국민의힘이든 이들은 왼쪽과 오른쪽에서 재벌의 이익을 대변하는 친재벌 정치세력임을 다시 한번 입증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대한상공회의소의 입법 건의안을 받아들여 금산분리 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있고, 민주당의 이재명 대통령은 "금산분리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라는 거짓말로 이를 정당화하고 있다.
이는 한국 정치의 본질을 보여준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표면적으로는 자유주의와 보수로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재벌의 이익이라는 핵심 문제에서는 완전히 일치한다. 그들은 모두 재벌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세력일 뿐이다.
한국 재벌체제는 지금 우리 사회의 심각한 비정규직 문제와 하청노동자 수탈의 진정한 원흉이다. 재벌은 자신들의 이윤 극대화를 위해 정규직 고용을 회피하고, 하청 구조를 통해 위험과 책임을 전가하며, 노동조합의 결성과 활동을 조직적으로 방해해왔다. 삼성전자의 협력업체 노동자들은 원청 노동자의 절반도 안 되는 임금을 받으며 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한다. 현대자동차의 사내하청 노동자와 그룹사인 현대제철, 현대위아 노동자들은 여전히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다. 쿠팡 물류센터에서는 노동자들이 과로사하고, 김범석 회장은 "그가 열심히 일했다는 기록이 남지 않도록 확실히 하라"고 지시했다.
이 모든 것이 재벌체제의 산물이다. 재벌은 경제력을 집중시키고, 하청 구조를 통해 노동자를 수탈하며,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있다. 그리고 막대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정치권을 장악하고, 언론을 통제하며, 사법부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것이 한국 재벌체제의 현실이다.
이처럼 재벌체제와 한국 노동자계급이 화해할 수 없는 것처럼, 민주당과 노동자계급의 적대성 또한 화해할 수 없다. 민주당은 '진보' 정당을 자처하지만, 재벌의 이익을 대변하는 한 진정한 진보 정당이 될 수 없다. 노동자계급의 이익과 재벌의 이익은 근본적으로 대립하며, 후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민주당과 노동자계급의 이익 역시 근본적으로 대립하지 않을 수 없다.
4. 결론: 금산분리 완화가 아닌, 본격적 재벌 개혁에 나설 때
이번 금산분리 완화 조치는 민주당 정부가 재벌의 하수임을 자처하며, 노동자계급과의 적대성을 더욱 심화시킬 것임을 예고한다. '산업자본+금융자본'의 결합은 재벌의 지배력을 극대화시키고, 노동자에 대한 수탈을 강화할 것이다. 재벌은 자체 금융회사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더 많은 노동자를 착취하고 비정규직을 만들어 낼 것이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는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산업 육성을 이번 규제 완화의 명분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진정한 첨단 산업의 육성은 소수 독점 자본의 배를 불려주는 방식으로는 결코 달성될 수 없다. 혁신은 거대한 재벌의 수직 계열화 속에서 질식당하며, 창의적인 중소기업들은 재벌의 횡포와 기술 탈취에 좌절하고 있다.
진정한 반도체 및 AI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이재명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 부문과 복지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해야 한다. 첨단 산업의 핵심은 결국 인간 자본이다. 노동자들이 고용불안과 생계 걱정 없이 혁신적인 연구와 개발에 매진할 수 있도록 공교육 시스템을 강화하고, 전 생애에 걸친 직업 훈련과 안정적인 사회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재벌에게 특혜를 줄 1조 원이 있다면, 그 돈을 미래 인재 양성과 노동자 복지에 투자하는 것이 훨씬 더 전략적이고 실용적인 길이다.
이재명 정부는 당장 금산분리 완화 정책을 철회하고,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해소하며, 노동자계급의 권익을 옹호하는 본연의 개혁 노선으로 복귀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재벌 공화국에 날개를 달아주는 행위는 민주주의와 경제 정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반역사적 행위임을 명심해야 한다. 노동자 민중은 재벌의 폭주를 막고, 진정한 경제 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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