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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벼랑 끝 동지의 목숨 건 투쟁을 외면하는 진보정당들
민주노총 건물 앞 천막 농성장에서 함계남 동지가 단식 19일 만에 저혈당 쇼크로 119 구급차에 실려 가고, 남편 양규서 동지는 외줄 밧줄에 매달려 19일째(9월 24일 현재) 고공농성을 벌이는 극한의 상황이 펼쳐지는데도 진보정치권은 기묘할 정도로 조용하다.
웬만한 사회적 이슈나 현장 투쟁이 벌어질 때마다 지지 방문과 성명 발표로 언론에 얼굴을 내밀며 존재감을 드러내던 진보정당들이, 정작 노동운동의 도덕성이 뿌리째 흔들리는 이번 사건 앞에서는 하나같이 입을 다물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의 입을 가로막고 있는지 궁금하다.
ㅡ 진보정당들의 말 못할 사정
알고 보면 이 집단적 침묵에는 진보정당마다 각자의 ‘사정’이 존재한다.
우선 진보당의 침묵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현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과 주요 집행 간부들이 진보당과 같은 자파(NL) 세력이기 때문이다. 상급노조와 지부의 직장 내 괴롭힘 및 관료적 폭력이 사태의 발단인 상황에서, 자파가 주도하는 민주노총 집행부에 부담을 줄 수 있는 사안에 대해 진보당이 목소리를 낼 리는 만무하다.
정의당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비록 권영국 당 대표가 등장하면서부터 당의 분위기를 쇄신하고 ‘현장 중심 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 각종 노동 사건에 개입하며 분주히 움직이고는 있지만, 민주노총의 눈치를 보는 유약한 한계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과거 노동자민중과 동떨어진 '시민정당'의 한계를 벗어던지고, 기층 대중의 아픔을 함께하는 정당으로 거듭나겠노라 선언했던 정의당이었으나, 대형 산별노조의 관료적 폭력 앞에서는 여전히 말을 아끼며 몸을 사리고 있음을 이번 사건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ㅡ 당원이 죽어가는데 남의 집 불구경하는 노동당
그러나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은 바로 노동당의 태도다. 양규서·함계남 두 투쟁 당사자는 다름 아닌 현직 노동당의 당원들이다. 자당의 당원들이 억울한 직장 내 괴롭힘에 맞서 생명을 걸고 단식과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음에도, 당 대표가 농성장을 찾아 격려하거나 상급노조의 무책임함을 규탄하는 흔한 성명서 한 장 내지 않는다. 마치 남의 집 불 구경하듯 방관하는 노동당 지도부의 모습은 공당으로서 도저히 납득하기 힘들다.
하지만 사건의 전말을 들여다보면, 이 납득할 수 없는 침묵 뒤에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사건 초기 피해자인 양규서 동지에 대한 징계를 추진하며 사태를 파국으로 몰아넣는 데 관여했던 핵심 당사자들이 바로 현 노동당의 지도부이자 주류를 장악하고 있는 세력(구 사회변혁노동자당 계열)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사건의 경과를 복기해 보면 수수께끼를 가리고 있던 장막이 선명하게 걷힌다. 당초 완만하게 마무리되어 가던 ‘함계남 씨 사건’은 당시 공공운수노조 사무처를 장악하고 있던 일부 상근자들이 주도한 집요한 징계 건의로 인해 재발하고 악화되었다(참고자료: “양규서-함계남 사건의 전말(3회) ㅡ 합의와 재발”, 울산함성). 이들의 관료적이고 정파적인 징계 추진은 사태를 돌이킬 수 없는 벼랑 끝으로 내몰았으며, 노조 내 관료주의와 방관이 팽배한 악순환 속에서 방영환 열사의 비극적 분신까지 이어지는 등 공공운수노조 내부의 자정능력이 심각하게 훼손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당시 공공운수노조 사무처에서 사태를 파국으로 몰아넣었던 바로 그 집단은 현재 노동당의 당권을 틀어쥐고 있는 주류(구 사회변혁노동자당 계열)와 깊은 관련이 있다. 자신들이 상급노조 사무처에서 저질렀던 과거의 관료적 오판과 괴롭힘의 진상이 드러날 것이 뻔한 상황에서, 현 노동당 지도부가 자당 당원들의 비극을 애써 외면하는 것은 분명 ‘이유’가 된다.
현재 공공운수노조 엄길용 집행부가 사건 해결에 이토록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배경에도, 노조 안팎에 걸쳐 있는 이들 세력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노조 집행부의 뒤에 숨어 “이미 관계기관에서 판단이 끝났다”, “조직 규정상 권한이 없다”는 등의 핑계를 내세워 사건의 진상규명과 복직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결국 문제의 뿌리 깊은 곳에는 노동운동을 병들게 하는 관료주의와 정파주의(분파주의)가 똬리를 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맺으며: 정파주의에 갇힌 노동당, ‘0.09%’ 미약 정당의 신세를 벗어날 수 없다
자신들이 저지른 정파적 실책을 덮기 위해 자당 당원의 목숨 건 투쟁을 외면하고, 상급노조의 관료적 폭력에 묵인·동조하는 노동당 지도부의 행태는 진보정치의 도덕적 파산을 자인하는 꼴이다. 동지의 고통과 생명보다도 정파의 안위와 조직 보신이 우선인 정당을 과연 어느 노동자와 민중이 신뢰할 수 있겠는가.
노동당은 지난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 비례대표 투표에서 불과 0.09%(27,252표)라는 참담한 득표율을 기록했다. 사실상 존재감이 소멸한 '있으나 마나 한 왜소 정당'으로 전락한 상태다.
노동당 지도부가 공당으로서의 최소한의 도덕성과 위상을 회복하지 못한 채, 지금처럼 정파주의의 늪에 빠져 자당 당원의 피눈물을 외면한다면, 노동당은 영원히 대중과 노동자계급으로부터 외면당하는 '0.1% 미만 정당'의 신세를 결코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노동당 지도부는 지금이라도 정파적 오만을 내려놓고, 당원 양규서·함계남 동지의 투쟁 앞에 겸허히 사죄하고 사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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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길성 (노동운동가)
2026.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