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
오피니언
-
전국노동
-
오피니언
-
전국노동
-
지역소식
-
전국노동
-
전국노동
들어가며: 노동·진보진영의 침묵이 양·함 사태 수습을 늦춘다
지금 우리 시대 노동운동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비극적인 장면이 전개되고 있다. 한 쌍의 노동운동가 부부가 자신들의 목숨을 건 배수진을 치고 싸우고 있다. 한 사람은 바닥 천막에서 생명을 깎아 먹는 12일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고, 또 한 사람은 30미터 공중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한 줄의 밧줄에 매달린 채 9일째 고공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절박한 부르짖음을 마주하는 진보진영의 반응은 놀랄 만큼 싸늘하다. 오직 지독한 '침묵'뿐이다.
사건의 진상은 이미 세상에 명백히 드러났다. 비극의 시작은 함계남 동지에 대한 노조 내부의 '직장 내 괴롭힘'이었고, 이를 정당하게 문제 삼고 항의한 두 사람에게 돌아온 것은 가혹한 징계와 해고였다. 더욱 분노스러운 것은, 함계남 동지를 고용했던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부가 근로기준법을 회피하기 위해 '5인 미만 사업장 쪼개기'라는 자본가들의 저급한 편법을 그대로 악용했다는 사실이다.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겠다던 노동조합이 안으로는 집단적 괴롭힘을 자행하고, 밖으로는 법의 사각지대 뒤로 숨어 부당해고의 책임을 피하려고 한 것이다. 정상적인 운동 단체라면 당장 전 조합원 앞에 석고대죄하고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복직에 나서야 할 일이다. 그러나 그 많고 많은 진보정당, 시민사회단체, 노동운동 조직 중 그 누구도 민주노총과 공공운수노조의 이 묵과할 수 없는 도덕적 파산에 대해 따끔한 한마디 비판의 목소리도 내지 않고 있다. 이 침묵은 과연 누구를 위한 침묵인가?
ㅡ 침묵이라는 방관, 그것은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다
진보진영이 이토록 철저하게 입을 다물고 있는 이유는 아마도 저마다 다를 것이다.
첫째는 사안의 엄중함을 깨닫지 못하는 무지의 방관이다. 활동가 부부가 생명을 내걸고 사투를 벌이고 있음에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수많은 투쟁 중 하나겠지", "시간이 지나면 노조 내부 절차에 따라 알아서 해결되겠지"라며 한가하게 3자적 관망으로 일관하는 부류이다.
둘째는 정파적 셈법과 조직적 이해관계에서 생긴 방관이다. 사태의 진상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민주노총이나 공공운수노조라는 거대 조직과의 관계가 틀어질까 봐 두려워서, 또 정파 간의 복잡한 얽히고설킨 이해득실을 계산하느라 입 다무는 길을 택한 이들이다. 동지의 생명과 운동의 도덕성보다 자신의 조직적 입지와 정파적 관계를 우선시하는 전형적인 관료주의적 침묵이다.
셋째는 가장 뼈아픈 원인으로, 진보진영 전반에 깔린 무감각과 타성의 방관이다. 지난 세월 우리는 너무나 많은 억울한 노동자들의 눈물을 보아왔고, 심지어 정권과 자본의 탄압에 맞서 스스로 몸을 불사르는 열사들의 비극을 반복해서 겪었다. 타인의 비극과 희생에 너무 무뎌진 나머지, 이제는 동지가 30미터 고공에 줄 하나로 매달려 있어도, 2주 동안 음식을 끊고 스러져 가도 눈 하나 꿈쩍이지 않는 마비된 감수성을 갖게 된 것이다.
ㅡ 이것은 절대 단순한 내부 비리가 아니다!
그러나 침묵하는 모든 이들은 치명적인 착각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결코 어느 산별 노조 하부 지부에서 발생한 단순한 '개인적 억울함'이나 '지부 내 잡음'이 아니다. 노동운동과 진보진영 전체의 주력군이자 중심축인 민주노총이라는 총사령부의 도덕적 정당성이 근본에서부터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사건 발생 후 2주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언론 보도와 현장 녹음 파일의 공개를 통해 우리 내부의 민낯과 치부는 이미 만천하에 드러났다. 자본과 정권을 향해서 '근로기준법 준수'와 '직장 내 괴롭힘 근절'을 외치던 민주노총이 정작 내부 피해자에게는 법을 악용하고 위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을 온 세상이 알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스스로 뼈를 깎는 자정과 개혁에 나서지 않는다면, 그리고 우리 진보진영이 강제로라도 민주노총이 자정의 길로 나가도록 떠밀지 못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민주노총을 포함한 전체 진보진영은 자신의 존재 이유이자 가장 강력한 무기인 ‘도덕성’에 회복 불능의 치명상을 입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진보진영이 가진 힘은 재력이나 공권력이 아닌, 오직 도덕적 정당성과 대중의 신뢰에서 나온다. 도덕성을 상실한 노동운동은 더 이상 노동자를 대변할 수 없으며, 사회적 고립과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진보진영이 보여주는 침묵은 중립이 아니며, 사태를 수습하는 길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진보진영 전체가 다 함께 공멸해 가는 '동반 자살'의 길이다. 지금 양규서·함계남 두 동지만 목숨을 건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 또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으며, 물러서서도 안 되는 싸움의 한가운데 서 있다.
맺으며: 노동·진보진영은 지금 ‘내부 비판’의 칼을 들 때다
일본 노동계 한 인사는 이 사건을 보면서 한국 노동운동을 향해 뼈아픈 한마디를 남겼다. "과거 일본 노동운동이 무너진 진짜 이유는 자본가나 정권의 가혹한 탄압 때문이 아니었다. 내부의 비리와 부조리가 발생했을 때 이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자정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노동운동이 정확히 그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 같다."
스스로에게 엄격하지 못하고 내부의 허물을 덮기에 급급하며, 동지의 고통에 눈 감았던 일본 노동운동의 비극이 지금 2026년 대한민국 노동운동의 한복판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민주노총이 ‘권한 없다’는 핑계 뒤에 숨고, 진보진영이 침묵으로 동조하는 사이에 한국 노동운동의 도덕적 토대가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리고 있다.
지금은 팔짱을 끼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방관하고 있을 때가 결코 아니다. 민주노총과 공공운수노조는 당장 헛된 계산을 멈추고, 산재 인정 및 5인 미만 꼼수 고용으로 인한 피해자의 즉각적인 복직, 그리고 공정한 진상조사위 구성과 민·형사상 면책 조치에 나서야 한다.
진보진영의 모든 단체와 활동가들은 이제 비겁한 침묵을 깨고 즉각 투쟁에 동참해야 한다.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내 살을 도려내는 한이 있더라도 자정의 목소리를 내는 것만이 양규서·함계남 두 동지의 생명을 구하고, 나아가 우리 모두의 노동운동을 지켜내는 유일한 길이다.
[울산함성 무료구독 신청] https://t.me/+ji13hLs-vL83ZTBl
'금속노조'마저 왜 이러나… 민주노총에 만연한 관료주의와 특권의식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
ㅡ 9년 피땀으로 비정규직 권익 지켜낸 아사히지회에 칼 내민 금속노조 구미지부
안길성 (노동운동가)
2026.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