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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 덮고 결과 탓하는 관료주의적 오만… 피해자를 가해자로 몰아가는 ‘조직 보신주의’의 극치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의료연대본부 서울지부가 뒤늦게 5쪽짜리 입장서를 내놓았다. 민주노총 건물 앞 천막농성장에서 함계남 조합원이 단식 19일 만에 혈당수치 46mg/dL (정상인은 70~99)이라는 위독한 상태로 119구급차에 실려 가던 바로 그날이었다. 그러나 긴 침묵 끝에 내놓은 해명글은 피해자에 대한 사과나 반성은 커녕, 사건의 본질을 왜곡하고 조합원들과 시민사회의 여론을 호도하는 치졸하고 구차한 변명으로 가득 차 있다.
동지의 생명이 위태로운 극한 상황 앞에서도 '기밀 유출'이라는 법리적 껍데기만 쥐고 자신들의 관료적 폭력을 정당화하려는 상급노조의 태도는, 한국 노동운동이 얼마나 심각한 자정능력 마비 상태에 빠져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줄 뿐이다.
1. 원인과 결과의 본말전도: 피해자의 ‘법적 권리구제’를 ‘반조직 행위’로 모는 궤변
의료연대 서울지부는 함계남 조합원에 대한 징계해고의 핵심 정당성으로 ‘3년에 걸친 조직 기밀자료의 광범위한 외부 유출’을 최우선으로 내세운다. 회의록과 조직화 현황 등을 외부로 유출해 조직을 위험에 빠뜨렸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지부 측 스스로가 입장서에 명시했듯, 문제 삼은 자료 제출 시점은 모두 2023년 7월 이후이다. 사건의 발단은 2020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2020년 이후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양규서·함계남 두 동지는 조직 내부에서 원만한 해결을 이루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그러나 상급조직과 지부는 이들의 호소를 모조리 묵살했다.
3년 이상의 집단 괴롭힘과 과중한 노동 속에서 함계남 동지는 심신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극심한 '번아웃' 상태에 빠졌고, 남편 양규서 동지는 태풍과 폭풍우가 몰아치는 공공운수노조 옥상에 올라가 46일간 고공농성을 벌여야 했다. 이러한 벼랑 끝 상황에서 함계남 동지가 법에 호소하며 자신의 시간외수당 미지급과 노동청 진정을 입증하기 위해 제출한 근거 자료들을 두고, 서울지부는 마치 그것이 사태의 발단인 양 사실을 호도하고 있다.
특히 법원에서 공식 채택된 증거 자료는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 사법 체계의 상식이다. 위법하거나 문제가 있는 자료라면 재판부가 이를 증거로 채택할리 없으며, 피해자가 자신의 억울함을 입증하기 위해 자료를 제출하는 행위는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정당한 방어권 행사다.
지부의 조직적 괴롭힘과 방관이 피해자를 사법적 대응으로 내몰았음에도, 법적으로 보장된 당연한 방어권 행사이자 재판부가 정당하게 채택한 증거 자료 제출만을 떼어내 '반조직적 기밀 유출'로 덧씌우는 것은 전형적인 본말전도이자 가해자의 책임 회피다.
2. 핵심 사안에 대한 의도적 침묵: ‘직장 내 괴롭힘’과 ‘사직 압박’은 어디로 갔는가
서울지부 입장문의 가장 충격적인 대목은 사건을 이 지경까지 몰고 온 핵심 원인에 대한 ‘완전한 침묵’이다. 지부 측은 "괴롭힘 관련 진정·고소는 이미 관계기관에서 각각 판단이 내려졌고, 징계는 자료 유출이라는 별도의 중대한 사유로 이루어졌다"며 단 한 문장으로 사안에 선을 그어버린다.
이미 공개된 녹취록 등을 통해 지부 내부에서 벌어진 집단적 폭언, 부당한 초과근무 강요, 사직 종용, 그리고 남편을 향한 무리한 징계와 고발 등의 진상이 명명백백히 드러났다. 그럼에도 노동조합 조직이 자체적인 진상조사나 성찰은 단 한 줄도 적지 않은 채, 오직 사법기관의 처분 결과와 '규정 위반'이라는 프레임 뒤로 숨는 까닭은 무엇인가?
노동자의 권리를 지켜야 할 노동조합이 사측이나 할 법한 "법적으로 끝난 이야기"라는 냉소적 태도로 자성조차 거부하는 모습은 참으로 뻔뻔스럽다.
3. '5인 미만 사업장' 논란과 피해자를 향한 치졸한 언어적 공격
지부 측은 입장문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을 이유로 부당해고 구제를 회피한 적이 없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검찰의 불기소 처분 판단 근거 중 하나로 해당 조항이 언급되었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노동권의 사각지대인 '5인 미만 사업장' 법리를 완화하고 근로기준법을 전면 적용하라고 투쟁해 온 산별노조 상급조직이, 정작 내부 소송 과정에서는 '5인 미만' 관련 법리를 방어막으로 활용하거나 방조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도덕적 원칙을 팽개친 행위다.
더욱이 목숨을 걸고 고공농성과 단식투쟁을 벌이는 두 동지를 향해 "절박한 투쟁의 언어를 도용한다", "조직을 위험에 빠뜨렸다"고 맹비난하며 자괴감을 느낀다고 표현한 대목은 관료주의적 오만의 극치를 보여준다. 벼랑 끝에 내몰린 조합원이 피눈물을 흘리며 택한 마지막 투쟁 방식마저 '언어 도용'이라며 비하하는 노조 간부들에게 동지에 대한 최소한의 공감 능력이나 부끄러움이 남아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맺으며: 피해주장에 대한 겸허한 성찰 없이는 어떤 해명도 설 자리가 없다
의료연대 서울지부의 이번 입장문은 '조직 기밀'과 '행정 조치'라는 명분을 내세워 자신들의 폭력과 책임을 은폐하려는 조직 보신주의 문서에 불과하다.
조합원이 저혈당 쇼크로 응급실에 실려 가는 와중에도 관료적 핑계와 사법적 건수로만 접근하는 노조의 모습은 조합원들과 시민사회에 깊은 경종을 울리고 있다.
원인 제공자인 지부가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집단 괴롭힘에 대해 성찰하지 않는 한, 아무리 화려한 법리적 변명을 늘어놓아도 그것은 노동운동의 타락을 증명하는 반면교사가 될 뿐이다. 의료연대 서울지부와 공공운수노조 지도부는 지금이라도 구차한 변명을 거두고 진정성 있는 반성과 사태 해결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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