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안길성 (노동운동가)
등록일 :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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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매일노동뉴스)

 

들어가며 ㅡㅡ

 

민주노총 양경수 집행부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 참여의 조건으로 ‘합의제 운용, 산별 참여 보장, 명칭 변경’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검토할 수 있다’면서도 우선적인 ‘선(先)참여’를 요구하며 공을 노동계로 넘겼다. 언뜻 보면 명분과 조건의 팽팽한 밀당처럼 보이지만, 여기서 핵심 질문은 따로 있다. 과연 한국의 재벌체제 하에서 경사노위가 ‘진정한 합의제 기구’로 전환되어 북유럽 방식의 사회적 대화기구로 기능하는 것이 구조적으로 가능한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의 재벌체제가 변하지 않는 한 이는 불가능하다. '합의제'라는 조건의 본질을 파헤쳐 보면, 그것이 자본과 정권의 핵심 이익과 정면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음을 금세 알 수 있다.

 

1. 거부권을 '절대' 허용할 수 없는 정권

 

경사노위의 의사결정 규칙이 기존의 다수결(3분의 2 의결정족수)에서 '합의제'로 전환된다는 것은 노동측에 '일방적 추진에 대한 거부권(Veto Power)'을 부여한다는 뜻이다. 즉, 노동계가 동의하지 않는 노동정책은 경사노위의 이름으로 단 하나도 통과시킬 수 없게 된다.

 

그러나 현재 이재명 정부와 재벌 대기업이 국가적 사운을 걸고 추진하는 핵심 아젠다(의제)를 들여다보면, 이 구조적 불가능성은 명확해진다. 정부가 사활을 걸고 있는 '3대 메가프로젝트'(반도체, 피지컬 AI, AI 데이터센터)와 이를 뒷받침할 '메가특구특별법'은 본질적으로 노동권의 대폭적인 후퇴를 전제로 설계되어 있다.

 

메가특구법의 핵심 내용은 주 52시간 상한제 예외 적용(화이트칼라 이그젬션), 기간제 노동자 사용기간 2년 연장, 파견 업종의 대대적 확대 등이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스스로도 이를 "기업에는 300여 개의 특혜를 집중해 주면서 노동 정책은 거꾸로 후퇴시키는 법안"이라 규정한 바 있다.

 

만약 경사노위가 진정한 합의제로 운용된다면, 민주노총은 이 법안들에 당연히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고 법안 추진은 동력을 잃게 된다. 그러나 연내 제정을 목표로 속도전을 펼치는 정부와 재벌이 이 프로젝트를 포기할 리 만무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합리적 주장을 받아들일 준비와 역량이 있다"며 사회적 대화를 당부하는 듯하지만, 삼성전자 파업을 앞두고 "투자자는 세후 순이익에서 배당을 받는데 노동자가 어떻게 세금 내기 전에 돈을 가져가느냐"며 노조를 직접 겨냥해 비판했다. 이는 정권의 철학이 기본적으로 재벌의 이해관계에 굳건히 뿌리내리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따라서 노동측에 거부권을 주는 '합의제'는 자본과 정권에게 처음부터 선택지에 없는 것이다.

 

2. 지지부진한 협의의 운명: 경사노위의 태생적 굴레

 

합의제 전환이 무산된 상태에서의 경사노위는 '표결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논의만 반복하는 협의기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이는 경사노위가 지닌 법적·구조적 한계 때문이다.

 

본래 경사노위는 법적으로 대통령 자문기구이자 '협의기구'다. 과거 2019년 탄력근로제 확대 논란 당시에도 전문가들은 "경사노위는 협의기구인 한 합의제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실제 운영은 '3분의 2 참석, 3분의 2 찬성'이라는 의결정족수를 기반으로 작동해 왔다.

 

이 3분의 2 구조는 노동계의 거부권을 전혀 보장하지 못한다. 정부위원과 사용자위원이 손을 잡으면 노동계의 반대를 뚫고 안건을 강행 처리할 수 있다. 설령 노동계가 보이콧하여 의결정족수 미달로 회의를 무산시키더라도, 정권은 이를 '노동계의 발목잡기로 인한 합의 불발'로 프레임화하여 정부안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명분으로 삼는다. 민주노총이 "마감 시한을 정해놓고 합의가 안 되면 정부안대로 밀어붙이는 요식행위"라며 사회적 대화를 비판해 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합의제가 관철되지 않는 경사노위에 진입하는 것은 ‘지지부진한 협의 → 파행 및 결렬 → 정부의 일방적 정책 추진’이라는 익숙한 잔혹사를 반복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민주노총이 1999년 탈퇴 이후 27년간 복귀하지 않은 본질적 이유도 이 구조적 굴레에 있다.

 

3. 재벌체제의 '분할 통치'와 계급적 분열

 

경사노위의 합의제 운용을 어렵게 만드는 또 다른 축은 한국 재벌체제 특유의 노동 분할 전략이다.

 

케임브리지 대학교(Cambridge University Press)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대기업(재벌)은 노조의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과 기업 복지 요구를 적극 수용함으로써, 노조가 국가 차원의 보편적 사회복지 확대를 요구할 실질적 유인을 제거해 왔다. 이러한 ‘기업별 노조주의’의 고착화는 산별 연대주의를 약화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고 있다.

 

이 같은 구조 속에서 일부 산별노조는 이미 경사노위 산하 업종별 협의체에 개별적으로 발을 담그고 있다. 금속노조가 지난 7월 조선업 노사정 협의체에 참여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총연맹 차원의 원칙적 투쟁 노선과 산별 차원의 실리적 이해관계가 충돌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만약 경사노위가 합의제로 운영된다 하더라도,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산별 조직은 자사 현안 해결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고, 비정규직·하청·플랫폼 노동자의 요구는 뒷전으로 밀리기 쉽다.

 

더욱이 한국노총이 경사노위에 공고히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은 민주노총의 협상력을 지속적으로 약화시킨다. 정부와 사용자는 한국노총을 통해 '노동계 대표성'이라는 알리바이를 확보할 수 있으므로, 민주노총이 불참하거나 합의를 거부하더라도 이를 "노동계 전체의 반대"가 아닌 "민주노총의 과격한 불참"으로 손쉽게 고립시킬 수 있다.

 

ㅡ 맺으며: 어떻게 '대화 거부' 프레임을 벗어날 수 있나?

 

결국 한국의 재벌체제 하에서 경사노위의 진정한 합의제 전환은 불가능하다. 자본-정권의 핵심 이익과 정면 충돌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민주노총이 무조건 참여를 거부하는 것은 "민주노총은 대화를 거부한다"는 프레임을 자초할 수 있다. 이 프레임을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참여'가 아니라 '의제'로 승부해야 한다. "메가특구법 노동특례 철회 없이는 어떤 사회적 대화도 없다"는 원칙을 분명히 하면, 논쟁의 초점은 '참여 여부'에서 '노동개악 저지'로 이동한다. 민주노총이 대화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노동개악을 강행하기 때문에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구도가 형성된다.

 

둘째, 경사노위를 '투쟁의 장'으로 활용해야 한다. 만약 참여하더라도 교섭과 투쟁을 분리하지 않는다. 경사노위 테이블에서 정부와 자본이 노동측 요구를 거부하면, 그것이 곧 "사회적 대화는 형식에 불과하다"는 증거가 된다. 이 증거를 바탕으로 현장 투쟁의 명분을 축적할 수 있다.

 

셋째, 현장 조직화를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자. 경사노위 참여를 둘러싼 논쟁에 조직의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동안, 정부와 자본은 노동개악을 밀어붙이고 있다. 메가특구법 저지 투쟁, 현장 조합원 조직, 총파업 준비가 시급하다. 투쟁이 우선이고, 참여는 그 다음이다.

 

넷째, '대화 거부'가 아니라 '조건 없는 대화 거부'임을 분명히 하라. 민주노총은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조건에서의 대화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 점을 대중적으로 설명하면, "대화 거부" 프레임은 오히려 정부에게 되돌아간다.

 

결국, 경사노위 합의제 전환은 불가능하지만, 그 불가능성을 확인하는 과정 자체가 투쟁의 자원이 될 수 있다. 정부와 자본이 노동측 요구를 거부하는 모습을 폭로하고, 그에 기반해 현장 투쟁을 조직하는 것, 이것이 '대화 거부' 프레임을 벗어나면서도 노동자계급의 독립성을 지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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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합의제'로 경사노위는 전환될 수 있을까? 

안길성 (노동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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