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ㅡ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와 사회주의 애국주의는 대치되는가? (3회)
백철현 (전국노동자정치협회)
등록일 : 2024.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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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개악 저지! 윤석열 심판! 5.1 총궐기 세계노동절대회(2023.5.1)

 

4. 부르주아 사상 조류의 일환인 '탈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애국주의


이현숙은 “노정협은 ‘노동자의 운명과 민족의 운명은 하나’라고 주장한다. ‘민족주의에 대한 [극도의] 혼란’이다. 부르주아의 운명과 민족의 운명은 하나다. 노동자의 운명은 민족의 사멸과 하나다. 노동자의 운명은 민족의 사멸을 끝까지 완수하는 것이다. 세계 인민이 하나가 되는 공산주의 세계를 건설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과연 누가 극도로 혼란을 겪고 있는가? 아니면 혼란을 겪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는가? 노동자계급이 민족의 운명, 즉 1948년 단독정부(단정)·단선(단독정부) 이후 미제국주의가 지배하는 분단된 조국을 통일하는 사명을 가지는 것이 문제가 되는가? 오히려 노동자계급이 민주주의의 전위가 되어야 하듯이, 민족분단과 통일을 완수하기 위한 주도자가 되도록 고무하는 게 공산주의자들의 임무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부르주아는 자신의 계급적 한계로 인해 부르주아 민주주의조차도 배반하고, 외세 제국주의에 종속된 처지로 인해 분단된 민족의 통일이라는 사명을 수행할 수 없었고 오히려 제국주의를 일방 추종하면서 분단을 영속화 해왔다. 반면 이 땅의 노동자계급이야말로 자본에 착취당하고 제국주의에 의해 지배당하며 분단과 민주주의 파괴라는 이 사회의 역사적 질곡에 의해 고통 받고 해방으로 나아가는 길이 가로막혀 있기에 민족의 운명을 끝까지 완수할 수 있는 진보적 계급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계주의는 그들의 유해한, 골수까지 부르조아적인 견해를 국제주의인 것처럼 보이게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국제주의와 세계주의는 서로 어디까지나 적대하는 것이다. 세계주의는 민족성이 없는 것을 의미하고, 민족성의 외부에 서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문화라는 것이 생활의 현실적 기반 위에서 발생하고, 각각의 민족적 투쟁 속에서 발생하는 것인한, 세계주의는 반인민성을 의미한다. 세계주의란, 자유와 독립과 민족주권을 지향하는 여러 민족의 의지를 약하게 하려고 하는 부르조아·인텔리겐차의 발현형태이다. 프롤레타리아국제주의는 민족을 인정하는 것, 민족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에 기초를 두고 있고, 인종이나 민족의 동등한 권리는 원칙에 기초를 두고 있다....


공산당과 소비에트국가는 각 민족의 문화적, 진보적 유산의 깊은 존중이라는 정신으로 국민을 교육하고 있다. 소련에서는 형식은 민족적이고 내용은 사회주의적인 문화의 발전, 다민족사회주의 국가의 건설과 강화에서의 노력에 부응하며, 각 민족의 공헌이 높이 평가된다. 소련에서는 프롤레타리아국제주의의 사상이 철저히 구현되고 있다....
국제주의의 기초에 있는 것이 타민족의 존중이라고 한다면, 자기 민족을 사랑하고, 존중하지 않고서는 국제주의자로 될 수 없다라고 지다노프는 1948년 1월에 개최된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소비에트 음악가회의에서 기술하고 있다. 

 

민족의 독립과 민족의 자유를 위해 철저하게 투쟁하고 있는 것은 공산당에 지도되는 프롤레타리아뿐이다. 
“애국주의란 고립된 조국의 수백 년, 수천 년이라는 기간에 굳혀진, 가장 깊은 감정의 하나이다.”
라고 레닌은 말하고 있다. 착취적 사회라는 조건에서는 근로자의 애국주의는 조국에 대한 애정을 착취에 대한 증오에 결합하고, 착취자의 속박을 타파하기 위한 투쟁, 조국이 자유롭게 되고 독립하기 위한 투쟁, 조국이 그들에게 있어서 계모가 아니고, 그들을 정신적, 물질적으로 개화시키고 행복하고 자유로운 생활을 주도록 하기 위한 투쟁에 결합한다...
소비에트 애국주의는 국제주의, 여러 민족의 우호라는 강고한 토대에 기초를 두고 있다. 

 

스탈린은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다.

“소비에트 애국주의의 힘은 이 애국주의가 인종적, 혹은 민족적 편견에 기초를 두지 않고, 우리 소비에트조국에 대한 성실과 충성, 우리 나라 전민족의 근로자의 형제적 우호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점에 있다. 소비에트애국주의 속에는 여러 민족적 전통과 소련 전근로자의 공통의 생활상의 이해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소비에트애국주의는 우리 나라의 전민족·전민족체를 분리하기는커녕, 역으로 이것을 단일한 형제적 가정에 결합시킨다...동시에 소련의 여러 민족은 여러 외국과 민족의 권리와 독립을 존중하고 있고, 이웃 나라와 평화롭고 우호적으로 살아갈 용의가 있다는 사실을 항상 나타내 왔다.”

 

소비에트애국주의의 본질에 대한 스탈린의 규정은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의 보고에 들어가는 새로운 귀중한 보물이고, 프롤레타리아국제주의의 원칙, 근로자의 민족적 과제와 국제적 과제의 결합의 원칙을 규명하는 면에서의 새로운 전진이다.(아지쟌, 제2장 스탈린의 노작 《마르크스와 민족문제》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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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당시 실탄을 장착한 소련의 열병식. 이들은 열병식 후 곧바로 전선에 투입되었다.


“민족적 형식과 사회주의적 내용의 결합”은 사회주의를 추구하거나 사회주의 사회에서 공산주의자들의 중대한 정치적 과제이다. “공산당과 소비에트국가는 각 민족의 문화적, 진보적 유산의 깊은 존중이라는 정신으로 국민을 교육하”는데 열중했음에 반해 이현숙은 “민족의 생활·전통·문화”에는 “삼종지도”와 “남존여비, 군사부일체”, “사대주의” 같은 “봉건적 가부장적 민족성”과 “부르주아적인 것으로 황금만능주의, 출세주의, 한탕주의”가 있다며 이는 “결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와 하나가 될 수 없다”고 하고 있다. 이현숙은 민족주의를 반동적 민족주의만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저항적이고 진보적인 민족주의를 부정하는 논리를 그대로 가지고 와서 이제는 “민족의 생활·전통·문화”를 온통 반동적인 것으로 채색하여 “각 민족의 문화적, 진보적 유산의 깊은 존중이라는” 공산주의 정신을 부정하고 있다.

 

“저항적 민족주의”를 부정하고 민족일반을 척결해야 하는 악으로 보는 이현숙의 주장은 노동자국제주의를 협소하게 만들뿐만 아니라 민족을 적대적으로 보는 부르주아 세계주의에 포섭될 수 있다. 부르주아 세계주의는 다른 나라, 민족을 지배, 침략하면서도 이를 은폐하며 탈민족 세계주의, 사해동포주의, 세계시민주의를 유포하고 있는데, 이현숙은 여기에 복무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쩌다 민족주의에 냉담하게 된 것일까? 소비에트가 붕괴한 후, 미국의 단극적 패권이 추구되었다. 이 패권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추구했다. 미국은 각 나라의 문턱이 사라진 평평한 세상을 원했다. 자본은 생산기지와 시장의 확대를 위해 단일한 규칙에 기반한 세상을 원했다. 각 나라, 각지의 특수성은 사라지고 미국이 대변하는 보편성만이 유일한 규칙인양 인정됐다. 

 

곳곳의 특수성, 지역성은 점점 사라져갔다. 지역의 특수성을 담보해주던 민족주의도 위태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많은 지식인들이 민족주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임지현, 권혁범, 윤해동, 이영훈 등에서 보여지듯 좌우를 가리지 않았다. 결국 21세기 담론장에서 민족주의는 급기야 종적을 감추게 되었다. 탈민족주의 담론이 지식대중들에게 호소력을 가지게 된 데에는 민족주의가 자민족 이기주의라는 직관적 느낌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민족주의는 자민족 이기주의에 불과한 것일까? 이런 인상은 역사상 '민족'이 등장하게 된 배경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나온 판단이다. 민족주의가 집단이기주의라면 민족주의자로 자신을 희생시킨 수많은 사람들의 존재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민족주의는 도대체 무엇인가?

 

먼저 탈민족주의 담론은 한결같이 민족주의의 부정적 측면을 과장했다는 점을 밝혀두고 싶다. 정치철학자 나종석은 논문 '민족주의와 세계시민주의'(<헤겔연구> 26권, 2009)에서 유행하던 탈민족주의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다. "탈민족주의 담론은 민족주의 여러 형태들에 대한 인식을 추구하기 보다는 민족주의의 특정한 형태, 즉 인종적 민족주의나 억압적이고 공격적인 민족주의를 민족주의의 본래 모습으로 간주하는 경향을 보인다." 민족주의는 원래 공격적 본능에 충실하다는 주장은 여러 곳에서 들린다. 역사학자 박지향은 아예 이렇게 단언한다. "민족주의는 본래 배타적이고 폭력적인 이념이다." 사실일까? 정확하게는 민족주의의 특정 측면일뿐이다.(김창훈 칼럼니스트, 민족주의를 다시 생각한다, 프레시안, 2022.10.01.)

 

이들은 식민지에서 벗어나서 독립을 쟁취하려 한 아시아, 아프리카의 민족주의를 매우 과소평가한다...
실제로 역사 속의 민족주의는 대외적인 경쟁과 억압, 저항을 통해 나타나고 성장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외부적 억압에 저항해야 하는 민족이나 나라들에게는 아직도 큰 도덕적 정당성을 줄 수밖에 없다. 오늘날 제3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의 경우 특히 그렇다. 그러한 경쟁과 억압이 사라지지 않는 한 민족주의도 사라지기 어렵다...


위의 이야기로 근대주의적 해석이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그것은 유럽중심주의적인 이론으로 우리가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고 또 받아들일 수도 없는 이론이다. 그럼에도 이런 이론이 우리 사회에서 아무 저항 없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우리 지식인들이 서양이론에 대해 별로 고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양 이론을 보편이론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근대주의자들이 만들어낸 '상상의 공동체'니 '발명된 전통'이니 '사회공학'이니 하는 단어들이 지식인들의 상투어가 되어 있고 민족주의는 모든 악덕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민족주의는 한국사회의 문제아인가,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63> 민족주의의 근대주의적 해석 비판 ①, 프레시안, 2008.10.31.)


“민족문학이라는 표현이 국제사회에선 극우적 인상을 준다는 점 때문에”, “한국문학이 좀 더 넓고 보편적 지평에 서기 위해선 민족이라는 특수한 가치에서 벗어나야”(`민족문학작가회의` 명칭서 민족문학 빠질 듯, 동아일보, 2007. 1. 24.) 한다는 이유 때문에 한국의 <민족문학작가회의> 도 <한국작가회의>로 명칭을 바꿨다. <민족작가연합>이 민족성과 계급성을 강조하며 이러한 흐름에 맞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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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작가회의' 의 탈민족성, 탈계급성에 반발해 '민족작가연합'이 2018년 3월 10일 출범했다.

 

“반일 종족주의” 운운하는 극우 역사학자들을 비롯해 역사가들 내에서도, 한겨레신문 같은 언론에서도, 심지어 진보적인 지식인 내부에서도 저마다의 다양한 이유와 기치를 근거로 탈민족을 주장하고 있다. 

 

조선일보도 “70년대와 80년대 권위주의 정권에 맞선 민주화 투쟁과정에서 형성된 좌파와 민족주의의 20년 공존이 끝나가고 있다는 진단이 학계에서 연이어 나오고 있다. 이는 20세기 우리 역사에서 생겨난 수세적이고 저항적인 민족주의와의 결별이라는 점에서도 적지 않은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 다수 사회과학자들의 진단이다.”(<"좌파+민족주의 20년 동거 끝나" 한국 민족주의의 대전환<上> '좌파집권 10년' 국민실망… 영향력 상실 '反美親北'에 대한 대중호응 크게 줄어>, 이한우 기자, 2007.09.03.)라며 이러한 탈민족주의 흐름을 환영하고 있다.

 

“민족주의 여러 형태들에 대한 인식을 추구하기 보다는 민족주의의 특정한 형태, 즉 인종적 민족주의나 억압적이고 공격적인 민족주의를 민족주의의 본래 모습으로 간주하는” 탈민족주의자들과 이현숙은 논리적 출발을 공유한다. 애초의 의도와 다르게 정치적 결론도 같은 것으로 나타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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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뉴라이트 이영훈의 <반일 종족주의> 국내판과 일본어판 표지

  
이현숙은 “노동자의 운명은 민족의 사멸과 하나다. 노동자의 운명은 민족의 사멸을 끝까지 완수하는 것이다”라며 노동자 국제주의가 민족에 대해 적대적인 것이라고 사고하고 “유해한, 골수까지 부르조아적인 견해를 국제주의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민족 허무주의의 유포로 부르주아적인 세계주의를 유포하고 있다. 이는 맑스(레닌주의) 입장에도 정면 배치된다.

 

여러분은 동방 여러 민족 공산주의대학에서 했던 나의 연설(1925년)에 불만이다. 나는 그 연설에서 일국에서의 사회주의의 승리의 시기에 민족어가 사멸하고, 여러 민족이 융합하고, 민족어에 대신하여 하나의 공통어가 나타난다는 테제의 올바름을 부정했다.
여러분은 이와 같은 나의 언명이 사회주의의 목적인 여러 민족의 접근만이 아니라 그들의 융합이라는 레닌의 유명한 테제에 반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또한 여러분은 나의 언명이 세계규모에서의 사회주의의 승리 뒤에 민족적 차이와 민족어가 사멸되기 시작하고, 민족어가 하나의 공통어로 대체되기 시작한다는 레닌의 테제에도 반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여러분 그것은 전혀 올바르지 않다. 그것은 완전한 오해이다.
이미 위에서 언급했듯이 마르크스주의자에게는 <일국에서 사회주의의 승리>와 <세계적 규모에서의 사회주의의 승리>라는, 종류가 다른 현상을 혼동하는 일은 허용하지 않는다. 이들 종류가 다른 현상이 시간적(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으로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도 서로 다른 두 개의 전혀 다른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동방 여러 민족 공산주의 대학에서의 나의 연설을 인용해보자...

“사회주의의 시대에 모든 다른 민족어가 소멸하고 하나의 인류공통의 언어가 생긴다는 사람(카우츠키)이 있다. 나는 이 하나의 공통된 언어라는 이론을 믿지 않는다. 어쨌든 경험은 이 이론을 부정하고 있다. 지금까지 사실이 보여주었던 바에 의하면, 사회주의혁명은 언어의 수를 줄이지 않고 오히려 늘여왔다. 왜냐하면 사회주의혁명은 인류의 최하층까지 뒤흔들고 그들을 정치의 무대로 밀어내며, 이전에는 알려지고 있지 않던, 또는 거의 알려지고 있지 않던 일련의 새로운 여러 민족에게 새로운 생활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세계적 규모에서의 사회주의의 승리 이후 민족의 소멸과 융합에 대한 레닌의 규정으로 옮아가 보자. 

“사회주의의 목적은 인류의 소국가에로의 분산 및 모든 민족의 고립을 없애고, 여러 민족을 접근시키는 일에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 민족을 융합시키는 일에 있다 ㅡ피억압계급의 독재의 과도기를 통해서만 계급의 일소가 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피억압 민족의 완전한 해방, 즉 피억압 여러 민족의 해방·분리의 자유의 과도기를 통해서만 여러 민족의 불가피한 융합이 가능하다.”

 

다시 레닌의 별도의 규정을 인용해보자...

“여러 민족 및 여러 국가 사이에 민족적 및 국가적인 차이가 존재하는 한, ㅡㅡ그런데 이 차이는 세계적 규모에서의 프롤레타리아계급의 독재가 실현된 뒤에도 역시 매우 오랜 동안 유지되는 것이지만 모든 나라의 공산주의노동운동이 국제적 전술의 통일에 있어서 필요한 것은 다양성의 제거도 민족적 차이의 일소(이것은 현재에 있어서는 공상이다)도 아니고, 공산주의의 기본적 여러 원칙(소비에트 권력과 프롤레타리아계급독재)을 민족적 및 국가적 차이에 조응하여 적용하는 일이다....


이상의 인용으로부터 분명해졌듯이 레닌은 민족적 차이의 소멸과 여러 민족의 융합의 과정을 일국에서의 사회주의의 승리의 시기가 아니라, 오로지 세계적 규모에서의 프롤레타리아계급독재 실현 후의 시기, 즉 이미 세계사회주의 경제의 기초가 놓여진, 모든 나라에서의 사회주의의 승리의 시기에 귀속시키고 있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세계적 독재 시기의 제1단계가 민족 및 민족어의 소멸의 개시, 단일공통어형성의 개시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반대로 민족적 억압이 결정적으로 일소될 것인 이 제1단계는 그때까지 억압받고 있는 민족과 민족어의 성장과 개화의 단계, 민족적인 상호불신의 일소의 단계, 여러 민족간의 국제적 연대의 설정과 강화의 단계이다.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세계적 독재의 제2단계에서만, 세계자본주의경제에 대신하는 단일 세계사회주의경제가 형성되는 정도에 따라서, 공통어라는 것의 형성이 시작될 것이다. 왜냐하면 민족은 이 단계에서야 비로소 자신들의 민족어와 함께 하나의 공통된 국제어를 가질 필요ㅡ상호교류의 편의와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편의를 위해서ㅡ를 느끼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단계에서는 민족어와 공통국제어가 병행하여 존재할 것이다...
세계사회주의 경제체제가 충분히 강고하게 되고, 사회주의가 여러 민족의 생활에 완전히 파고들어서, 여러 민족이 실생활 면에서 민족어보다도 공통어 쪽이 좋다고 확신하게 되는,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세계적 독재 다음의 단계에서 민족적 차이와 민족어는 모든 민족에게 공통된 세계어로 물려주고 사멸하기 시작할 것이다.(스탈린, 제3장 민족문제와 레닌주의ㅡ동지 메시코프, 코봐리츄크 기타 사람들에의 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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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붉은광장'의 열병식

 

이처럼 레닌과 스탈린에게 민족어와 민족적 차이의 사멸은 전 세계적 범위에서의 공산주의 1단계도 아닌 2단계에 가서 가능할 것이라고 하고 있다. 스탈린은 이를 “민족장래의 대강의 양상”이라고 하고 있다. 전 세계 공산주의 2단계는 국제적 공산주의가 도래하고 나서 수백 년이 걸릴 수도 있는 문제다. 

 

그런데 국제공산주의 1단계도 아닌 2단계에 가서 그것도 완곡한 형태로 민족의 장래에 대해 말한 것과 다르게, 이현숙은 혁명 이전에 이미 민족 전반을 사멸시켜야 할 악으로 규정하고 있다.(참고로 북에서는 민족의 사멸에 대해 부정하고 민족과 민족문화가 더 풍부하게 발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민족 허무주의를 넘어서 민족적대주의다. 

 

이현숙이 비판한 “노동자의 운명과 민족의 운명은 하나”라는 노정협의 규정은 혁명 이전 분단사회인 이남에서의 노동자들의 정치적 사명에 대해 말한 것이다. 이현숙은 혁명 직후 프롤레타리아독재라는 노동자국가를 거부하고 국가의 소멸을 주장하는 무정부주의자들처럼, 오히려 그들보다 더 극단적으로 혁명 이전에 이미 노동자가 민족의 운명을 책임지지 말아야 할 것이며 도리어 민족의 소멸을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노사과연은 극단적 교조주의 인식으로 “노동자들에게 조국은 없다...배타적으로 사랑(편애)할 조국과 민족은 없다.”고 하고 있다. 노사과연은 식민지 나라 잃은 설움, 빼앗긴 나라 되찾겠다는 민중의 염원에 대해 “국가는 지배계급의 착취와 억압, 폭력의 도구다”라는 명제를 극단적 교조주의적으로 해석하여 ‘당신들이 빼앗기고 되찾겠다는 나라는 당신들의 것이 아니라 봉건 통치배들의 것이다. 이 나라가 당신들에게 해준 게 무엇이 있는가? 당신들이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고 그 나라에서 권리를 누려본 적이 없는데 무엇을 빼앗기고 무엇을 되찾는단 말인가?’라고 주장할 것이 틀림없다. 위의 주장에서 이와 다를 바 없는 인식들이 그대로 드러났다. 

 

위에서 예를 든 《공산당선언》 일본판 주에서는 “프롤레타리아적 국제연대는 프롤레타리아트 해방의 조건이며, 민족 주권의 승인에 기반한 국제협력과 평화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외정책이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원칙에 의하면 오늘날 미제와 서방 제국주의자들의 단극 제국주의 지배 체제의 고수에 맞서 반제자주 나라들의 단결을 지지, 옹호하는 것은 21세기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다.

 

각 나라들 간 주권을 존중하고 평화를 애호하며 제국주의 지배에 맞서 자결을 위해 싸우는 국제적 흐름에 대해 지지하는 것은 진보적인 태도다, 반면 트로츠키주의자들과 일부 트로츠키화된 교조주의자들이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이란, 베네수엘라 등지에서 반미자주를 내부 계급모순을 들어 반대하고 중국, 러시아를 제국주의로 간주하며 반미자주의 진보성을 부정하고 있다. 

 

애국주의는 식민지 민중의 진보적 열망이기도 하지만 사회주의에서도 진보적이다. 맑스와 엥겔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국민적 계급의 지위에 오르고 자기 자신을 국민으로서 구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는데, 이는 사회주의 애국주의이다. 

 

레닌은 사회주의 애국주의에 대해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우리 대러시아인 사회민주주의자도 이 사상적 조류에 대한 태도를 정해보자. 유럽의 최동부 지역과 아시아의 상당 부분에 걸쳐 있는 강대국 민족의 대표자인 우리가 민족 문제의 거대한 의의를 망각한다면 그것은 꼴사나운 일일 것이다. 특히, 정당하게도 ‘제(諸)민족의 뇌옥(牢獄)’이라고 불리어 온 나라에서, 그리고 자본주의가 바야흐로 이 유럽의 최동부 지역과 아시아에서 수많은 ‘새로운’ 크고 작은 민족들에게 생활과 자각을 일깨우고 있는 바로 이 시대에 말이다. 더군다나 차르 군주제가 수많은 민족 문제들을, 연합귀족평의회와 구치코프, 크레스토프니코프, 돌고루코프, 쿠틀러, 로디체프 일당들의 이익에 맞춰 ‘해결’하기 위해 수백만 대러시아인과 비러시아계 민족들을 징집하여 무장시키고 있는 이 시점에 말이다.

 

민족적 긍지의 감정은 우리 대러시아인 계급의식적 프롤레타리아에게 낯선 것인가? 확실히, 그렇지는 않다! 우리는 우리말과 우리나라를 사랑하며, 우리나라의 근로대중 (즉 우리나라 인구의 10분의 9)을 민주주의적·사회주의적 의식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우리의 아름다운 나라가 차르의 도살자들인 귀족과 자본가들의 손에서 학대와 억압과 능욕을 겪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은 우리에게 고통스런 일이다. 이러한 학대와 억압이 우리의 한 가운데서, 대러시아인 속에서 반항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 이 속에서 라디쉬체프와 데카브리스트와 70년대의 혁명적 라즈노친치를 배출한 것, 대러시아인 노동자계급 속에서 1905년에 힘찬 혁명적 대중정당을 만들어낸 것, 대러시아인 농민 속에서 민주주의를 향한 전환과 함께 성직자와 지주 타도 투쟁이 시작된 것에 우리는 긍지를 느낀다.(대러시아인의 민족적 긍지에 대하여, 1914년 12월)

 

레닌에게 “대러시아인의 민족적 긍지”는 사회주의 조국에 와서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레닌은 이처럼 혁명 이전에도 “우리말과 우리나라를 사랑하며” 대러시아인의 진보적, 민주적 역사에 대해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노동자에게 조국이 없”기 때문에 민족적 긍지의 관점은 버려야할 부르주아적 감정인가? 

 

1961년 4월 12일 인류 최초로 보스토크 1호을 타고 지구 궤도를 도는 우주 비행을 하였으며, 6번이나 우주 비행에 성공하였던 유리 가가린은 소비에트 애국주의의 상징적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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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 그는 소련 인민의 자긍심을 상징한다.


지금까지 살펴봤던 것처럼, 맑스와 엥겔스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반봉건 민주주의 투쟁, 민족통일을 위한 투쟁, 민족억압에 맞서는 투쟁, 노예제에 맞서는 투쟁으로 확장시키고, 레닌이 민족자결의 관점으로 공허한 국제주의와 싸우고 스탈린이 세계주의와 싸우는 것처럼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는 역사적 조건에 따라 부단히 확장되어야 한다. 

 

특히 사회 전반에 반북적대가 뿌리 내리고 이에 반비례하여 친미숭배가 맹목적으로 지배하며, 민족·동족관계가 적대적 국가 관계로 악화되어 분단 척결과 통일 추구는커녕 남북이 전쟁 일보직전의 상황까지 간 상황에서 제국주의를 축출하고 전쟁을 막고 민족 관계를 복원할 임무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중요하다 할 수 있다. 

 


 [보론]  제국주의자들의 위로부터의 국제적 계급투쟁에 복무하는 "좌파"


스티븐 고완스 아래 글은 제국주의의 (신)식민주의에 맞서 싸우는 아랍의 “민족주의자들”, 특히 민족주의 지도자들에 대해서 “잔인하고 살인적이거나 도덕적인 불명예와 논거로 비난하며 그 국가의 해방 목표가 가짜라고 간주”하는 일부의 “좌파”들의 인식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이들 일부의 “좌파”들의 관점은 “제국주의 전쟁을 찬성하는 데에 동원되고” 더 나아가 제국주의자들의 “위로부터의 국제적 계급투쟁에 복무”하게 된다고까지 하고 있다. 

 

리비아, 시리아, 이란, 베네수엘라 등과 그 나라의 지도자들에 대한 서방세계의(한국에도 횡행하는) 이른바 “좌파”, 심지어 맑스레닌주의를 자처하는 이들의 관점이 어떻게 하여 제국주의의 ‘진보적’ 벗들로 전락하게 되는지 알 수 있다. “공적 권력이 없는 사람들만이 억압과 착취에 맞선 계급투쟁에 가담하고 공적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억압의 대리인이라고” 간주하며 조선과 쿠바 같은 현실 사회주의 국가와 지도자들에 대해 부정적이고 악마화 하는 것은 일종의 (범)무정부주의의 일종이다. “아래로부터 사회주의”, “민주적 계획”, "사회화“를 운운하며 사회주의 국유화, 중앙집중 계획은 아래로부터 노동자 인민의 열망과 배치되는 현상으로 간주하는 사고는 레닌 시대의 노동자반대파부터 직접적인 무정부주의자들로부터 시작해서 오늘날까지도 유행하는 무정부주의적인 사조가 되고 있다. 

 

말로는 정치권력 장악을 부정하지 않고 무정부주의를 비판하는 이들의 사고조차 잠식하여 지배하는 이러한 인식을 보면 무정부주의가 오늘날까지도 얼마나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미국이 재식민지화하려는 구 식민지 지도자들과 관련해 “잔혹한 정권”, “야만적 독재자”, “도덕적 수치”에 대한 도덕적 훼손과 현란한 언사에 대해 엄청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좌파들은 전쟁을 찬성하는 데에 동원되고 (번역자: 제국주의자들에 의한) 위로부터의 국제적 계급투쟁에 복무한다.

 

좌파 협력자들은 도덕적으로 지지받을 수 있는 영역을 가지고는 철저히 무기력하게 인식하고 있다. 해방의 목표를 추구하는 모든 국가는 잔인하고 살인적이거나 도덕적인 불명예와 논거로 비난하며 그 국가의 해방 목표가 가짜라고 간주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에 따라 공적 권력이 없는 사람들만이 억압과 착취에 맞선 계급투쟁에 가담하고 공적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억압의 대리인이라고 여긴다.

 

이라크와 리비아의 아랍 민족주의자들은 식민지주의가 그들에게 가했던 불이익으로부터 자국민을 해방시키고 서구의 지속적인 경제적 착취를 종식시키기 위해 국제적인 규모로 계급 전쟁을 벌였다. 그들의 투쟁은 한동안 성공적이었지만, 미국과 동맹국들이 악마화, 포위 공격과 전쟁을 통해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억눌렀기 때문에 결국 실패로 끝났다. 워싱턴의 승리는 착취자의 승리였다.

 

시리아에서 계속되는 아랍 민족주의자들의 계급투쟁을 분쇄하기 위해 워싱턴과 그들의 신식민지 동맹국들과 아랍의 총독들, 인종차별주의(apartheid) 이스라엘 그리고 좌파 협력자들(Leftist collaborators)이 하나로 뭉쳤는데도 불구하고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동시에 이란의 이슬람 공화국은 보다 큰 이슬람 세계를 해방의 대상으로 삼고 서구의 재식민지화 시도에 맞서 자신들의 계급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이란과 미국 간의 투쟁은 미국의 금융, 산업, 상업 및 석유 화학의 이해관계 속에 착취를 계속하기 위해 아직 이슬람 세계에 남아 있는 이란을 개방시키려 하는 워싱턴과의 거대한 계급투쟁이다. 그리고 테헤란은 미국 기업 주주에 대해 이슬람 세계에서 살고 일하는 사람들의 향상을 우선시하는 “저항” 경제를 건설하기 위한 계획을 주도하고 있다. 이 투쟁은 시리아가 중심이 되는 계급투쟁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시리아에 대한 워싱턴의 확대된 전쟁은 아래로부터의 해방투쟁에 대한 위로부터의 확대된 계급전쟁이다. 워싱턴이 치르는 전쟁은 시리아의 아랍 민족주의자들을 악마화하려는 정보전에만 그치지 않고 포위 공세로부터 대리전쟁과 직접적인 군사 개입까지 다방면에 걸친 공격수단에 의존하고 있다.(스티븐 고완스Stephen Gowans, 크루즈 미사일 공격: 시리아에 대한 워싱턴의 장기 계급전쟁의 새로운 단계, 2017년 4월 8일)
 

천안문 광장의 오성홍기 게양식.png.jpg
천안문 광장의 '오성홍기' 게양식. 이 광경을 지켜보기 위해   새벽부터 많은 시민들이 집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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