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철현 (전국노동자정치협회)
등록일 : 2024.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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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시 중심의 거대한 2차 대전 승리 기념상.

 

* 이 글은 원래  6월 1일 [현대사상연구소]의 <노동자국제주의>로 열리는 세미나의 첫 번째 발표문인데  나중에 애초에 발표된 글을 필자가 수정·보완했다. 그 중에서 특히 부르주아적 탈민족(주의) 담론에 대한 비판이 추가되었다.  앞으로 3회에 걸쳐서 본지에 연재한다ㅡ편집자 주

 

         <제목 차례>
1.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성립    
2. 노동자의 국제적 단결의 명제로부터 끌어낸 잘못된 정치적 결론    
3. 국제주의의 협소한 퇴보인가? 혁명적 확장인가?    
4. 부르주아 사상 조류의 일환인 탈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애국주의    
5. [보론]     

 


1.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성립


“의인동맹”이 내건 “모든 사람은 형제이다!”다는 구호는 맑스·엥겔스의 적극적 결합으로 최초의 프롤레타리아 정당이라 할 수 있는 <공산주의자동맹>으로 발전하면서 이 구호 대신에 “만국의 노동자는 단결하라”는 구호로 발전하였다. 《공산당선언》에서 표명된 “노동자에게는 조국이 없다!”,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는 구호는 오늘날까지 전 세계 노동자계급의 국제주의 원칙을 상징하는 전투적 구호로 남아 있다. 지금도 매 해 노동절에는(노동절에만!) 이 전 세계 노동자의 국제적 단결의 목소리가 전 세계로 울려 퍼지고 있다. 

 

선언이 쓰이기 시작하고 발표된 시점인 1847년 11월에서 1848년 2월의 시기에는 여전히 봉건체제에 맞서 싸우는 투쟁이 한참 진행되고 있었으나 영국, 프랑스 그 뒤를 이어 독일 등에서는 부르주아지가 이미 권력을 잡거나 시도 중에 있었다.

 

18세기에 이미 산업혁명을 완수하고 자본주의 발전을 계속했던 영국에서는 입헌군주제 형태로 봉건체제와 타협을 하면서 부르주아지가 권력을 장악하였다. 영국에서는 이에 따라 노동자계급이 성장하면서 10시간 노동법 제정을 위한 투쟁과 차티스트 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지면서 계급투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독일에서는 1844년 6월 프로이센령 실레지엔에서 직포공들이 야만적 착취와 임금인하에 맞서  봉기를 일으켰으나 군대를 동원한 지배계급의 공격으로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해 11명이 살해되고 24명이 중경상을 입고 150명이 체포되기도 하였다.

 

이미 1789년에 부르주아 대혁명이 일어났다가 다시 지롱드당의 테르미도르 반동과 나폴레옹의 권력 장악에 이어 1830년 7월 왕정으로 복귀한 프랑스에서는 선언 발표 시점인 1848년 2월에는 프랑스 부르주아가 혁명으로 다시 권력을 장악했다. 그러나 이때 프랑스 부르주아지는 1789년 대혁명 이후 로베스피에르, 생쥐스트 등이 지도자였던 자꼬뱅의 급진 부르주아가 아니라 반동적 부르주아였다. 2월 혁명에 앞장섰던 노동자계급은 부르주아지에게 배신을 당하고 권리를 박탈당하자 4개월 뒤인 6월에 봉기에 나섰으나 부르주아 권력은 3천 명 노동자들을 학살하고 수천 명을 투옥하는 것으로 잔인하게 보복 대응을 하였다. 

 

비록 독일을 예로 들었지만 공산당선언에서는 이를 예언이라도 한 것처럼, “공산당은 부르주아지가 혁명적으로 행동할 때에는 부르주아지과 공동으로” 싸우지만, “그러나 공산당은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의 적대적인 대립에 대한 가장 명료한 의식을 노동자에게 주입시키려고 잠시도 태만히 하지 않는다. 이런 것은 부르주아지의 지배와 함께 초래될 사회적 및 정치적 제조건을 독일의 노동자가 바로 그대로 무기로써 부르주아에 대항하여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며 권력을 잡게 될 부르주아지에 맞서 독자적으로 싸울 것을 주문하였다. 

 

그 전에 노동자 투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프랑스 6월 봉기는 현대 사회 최초의 자본가 계급 대 노동자계급의 전면적인 계급전쟁이라고 할 수 있을 투쟁으로 1871년 파리꼬뮌의 전초전이었다.

 

이후 1850년대 말 1860년대 초에는 발전한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세계 최초의 공황(1857년)이 발생하여 영국,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는 파업투쟁이 첨예하게 전개되었고 노동조합이 이때를 전후로 우후죽순 생겨났다. 이와 함께 여전히 활발한 공화제를 쟁취하기 위한 반봉건 민주주의 투쟁과 함께 독일, 이탈리아에서의 민족통일을 위한 투쟁, 폴란드와 아일랜드에서는 민족억압에 맞서는 투쟁, 미국에서는 남북전쟁의 와중에 노예제에 맞서 싸우는 투쟁이 복합적으로 전개되었다. 맑스와 엥겔스에게 국제주의는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함께 국제적으로 전개되는 반봉건 민주주의 투쟁과 진보적인 민족통일운동, 민족억압, 노예제에 맞서 싸우는 투쟁에 적극 결합하는 것으로 풍부해지고 확장되게 되었다. 

 

이처럼 고양되는 노동자계급과 인민의 투쟁, 민족적 투쟁을 하나로 결합하여 중앙집중적으로 지도할 필요성을 느꼈던 맑스와 엥겔스는 국제적인 수준의 프롤레타리아당 창건에 박차를 가했다. 마침내 1864년 9월 28일 런던의 세인트 마틴 홀에서 ‘국제노동자협회'(International Working Men's Association)’, 즉 1차 국제인터내셔널이 창립되어 선언에서 표명되었던 노동자의 국제적 단결의 사상이 실현되었다. 

 

국제노동자협회 전문에 실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계급 자신에 의해 이룩되어야만 한다.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위한 투쟁은 계급특권과 독점을 위한 투쟁이 아니라 평등의 권리·의무와 모든 지배계급의 폐지를 위한 투쟁이다...
지금까지 이 큰 목적을 지향하는 노력들은 모두 각국의 다양한 노동부문 사이에 연대가 없었고, 또 여러 나라의 노동자계급 사이에 형제적 우애의 연대가 없었기 때문에 실패로 돌아갔다. 
노동의 해방은 국지적 문제도, 하나의 민족적 문제도 아니며, 근대사회가 존재하는 모든 나라들을 포괄하며, 가장 선진적인 나라들의 실천적 및 이론적 협력이 있어야 해결될 사회문제다.(W.Z. 포스터, 세계 사회주의 운동사,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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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와 엥겔스

 

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단결된 노동자들의 국제적 수준의 투쟁으로만 성취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투 구호에 맞서는 부르주아의 구호는 “분열하여 통치한다”이다. 부르주아가 이 구호를 공공연하게 내걸지는 않지만 지금까지도 통치전략으로 삼고 있다. 자본가들은 국가 내부 노동자계급 내부의 분열 야기는 물론이고 국가 간, 민족 간 대립과 분열을 야기해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맑스가 ‘선언’에서 내건 “노동자에게 조국이 없다”는 명제는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을 그들로부터 빼앗을 수는 없다”는 그 다음 문장에 분명하게 표현되고 있다. 국가는 “국민국가”이고 그 국가에 속한 노동자계급과 인민들은 “국민”으로 표현되고, 심지어 우리에게도 한 때 “국민의 정부”를 표명하는 권력이 있었다. 그러나 부르주아의 국민선언에도 불구하고 노동자계급과 인민들은 기업과 토지 등 생산수단 소유권으로부터 철저하게 배제 당했으며, 재산소유로부터 배제당하고 가난한 생활을 전전했으며, 보통선거권의 도입 이전에는 말할 것도 없고 보통선거권의 도입 이후에도 선거 시기를 끝나면 정치적 권리로부터 철저하게 배제 당했다. 생산수단의 소유자들, 부자들, 통치배들과 그 무리들을 제외하면 국민들은 실제로는 “비국민”으로 살고 있다. 그리고 자본가들은 조국의 이익, 국가의 이익(애국주의, 국가주의)을 내세워 노동자들에 대한 억압과 착취를 정당화 하고, 다른 나라, 민족 간 대립과 경쟁을 부추기고 민족억압을 정당화 했다. 제국주의 시대, 식민지, 반식민지를 차지하는 위한 제국주의 국가, 제국주의 독점자본 간 대립과 전쟁, 파괴와 학살이 자행되는 시대에는 “노동자에게 조국이 없다”,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을 그들로부터 빼앗을 수는 없다”는 명제는 더 선명하게 진리의 등불로 빛나고 있다. 

 

전 세계 노동자들은 국경과 종교, 인종, 성별을 넘어 하나로 단결해야 하는데, 그 단결의 조건을 규정짓는 것은 이런 분열적·대립적·분리적 요소들이 실존하지만 이를 뛰어넘는 하나의 계급적 소속이자 착취 받는 노동자의 공통처지이다. 그리고 전 세계 노동자들이 단결해야 하는 이유는 이뿐만 아니라 당위적, 운동적 의미가 있다. 자본의 국제화는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단결의 필요성을 마련하기도 한다. 분열되어서는 부르주아지, 제국주의자들에 맞선 투쟁해서 승리할 수 없다. 나라별로, 나라 내에서 수없이 많은 분열적 요소들, 심리적, 물리적 분열적 책동들에 맞서 국내외적으로 공고하게 단결해야 한다.

 

2.  노동자의 국제적 단결의 명제로부터 끌어낸 잘못된 정치적 결론


그런데 이러한 국제주의 명제로부터 잘못된 결론 심지어 심각한 정치적 결론을 끌어내는 경우가 다반사다. 국경과 종교, 인종, 성별을 넘어 하나로 단결해야 한다는 명제가 주어진 국가 소속이 없거나 종교와 인종 자체가 없다거나 자연적 성별이 애초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나아간다면 심각하게 사태를 곡해하는 것이다. 

 

노동자국제주의는 국가단위의 운동을 부정하거나 국제혁명을 내세워 일국 단위에서의 혁명을 건너 띠고 비약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맑스·엥겔스는 선언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우선 정치적 지배를 획득하고 국민적 계급의 지위에 오르고 자기 자신을 국민으로서 구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에서, 부르주아적 의미는 아니지만, 그 자체가 국민인 것이다.”라고 일국 차원의 권력 장악의 필요성을 암시하는 주장을 했다. 여기서 부르주아적 의미의 국민은 국가 내부 계급모순을 은폐하는 의미에서의 국민이지만, 프롤레타리아가 정치권력을 획득한 이후로 온전하게 국민적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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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꼼뮨

 

그러나 선언의 바탕이 된 엥겔스는 공산주의 원리에서는 “이 혁명은 어떤 한 나라에서만 일어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열아홉 번째 질문에서 “공산주의 혁명은 결코 일국적인 혁명이 아니라 모든 혁명국들에서, 즉 적어도 영국, 아메리카, 프랑스, 독일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혁명이게 될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선언에서도 “적어도 문명 제국이 공동으로 행동하는 것이 프롤레타리아트 해방의 일차 조건의 하나다”라고 하여 여전히 원리에서 제기한 최소 유럽 차원의 공동혁명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일본 오오쓰키판(대월大月서점판) , 한국 범우사 서석연 옮김) 《공산당선언》에서는 국제혁명에 대해서 “일국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승리할 가능성”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주를 달고 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프롤레타리아혁명은 발전된 자본주의 나라 즉 영국·미국·프랑스·독일에서 동시에 일어날 것이며, 한 나라만으로는 이 혁명을 성공시킬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문명국들의 공동 행동이 프롤레타리아트 해방의 조건이라는 것은 이 생각을 말로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19세기 즉 제국주의시대 이전에는 옳았다. 레닌은 제국주의시대에는 자본주의의 경제적 및 정치적 발전이 불균등하게 진행된다는 사실에 기초하여,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견해를 수정하였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몇몇 나라에서 혹은 단 한나라에서도 사회주의혁명이 승리할 수 있다는 것, 역으로 모든 나라 또는 대다수의 나라에서 사회주의의 동시적 승리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레닌의 결론이 정당함은 그후 역사적 발전에 의해 증명되었다.

 

이 주장의 직접적인 근거는 다음의 레닌 글에 있다.

 

세계합중국(유럽만의 합중국이 아니라)은-공산주의의 완전한 승리가 민주주의 국가를 포함하여 모든 국가를 최종적으로 소멸시킬 때까지는-우리가 사회주의와 연결시키는 국가형태, 즉 민족들의 연합과 자유의 국가 형태다. 그러나 독립된 슬로건으로서는 세계합중국 슬로건은 올바른 슬로건이라고 하기 힘든데, 첫째는 그것이 사회주의와 합치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일국에서의 사회주의의 승리가 불가능하다는 의미로 잘못 해석될 수 있으며, 또한 그러한 일국과 타국들과의 관계에 대한 오해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정치적 발전의 불균등성은 자본주의의 절대적 법칙이다. 이로부터 사회주의의 승리는, 처음에는 몇 개의 자본주의 국가에서, 심지어 하나의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 나라의 승리한 프롤레타리아트는 자본가들을 수탈하고 그들 자신의 사회주의적 생산을 조직하고 나서는 세계의 나머지-즉 자본주의 세계-에 대항하여 떨쳐 일어나 타국의 피억압 계급을 자신의 대의로 끌어들이고, 그 나라들에서 자본가들에 대항하는 봉기를 선동하며, 필요한 경우에는 착취 계급과 그들의 국가에 대한 무력 사용도 불사할 것이다.(레닌, “유럽합중국 슬로건에 대하여”, 양효식 옮김, 아고라출판사)

 

이처럼 레닌은 “유럽합중국 슬로건”이 “일국에서의 사회주의의 승리가 불가능하다는 의미로 잘못 해석될 수 있”다고 분명하게 못 박았다. 제국주의 발전의 불균등성으로 생겨난 제국주의의 약한 고리를 끊고 “하나의 자본주의 국가”, 즉 러시아에서 혁명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면서 실제 혁명을 성공시켰다. 레닌은 또한 “그 나라의 승리한 프롤레타리아트는 자본가들을 수탈하고 그들 자신의 사회주의적 생산을 조직하고 나서는”이라며, 일국에서 사회주의 생산을 조직하고 난 뒤에, “세계의 나머지-즉 자본주의 세계-에 대항”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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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위 글의 번역자인 양효식은 레닌의 위 글이 당시 유럽을 염두에 둔 것이지 러시아를 염두에 둔 글은 아니라며 트로츠키주의적 “국제주의”를 완강하게 고수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 이 논쟁은 레닌 사후 1920년대 중반 소련 국제혁명과 일국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할 가능성의 문제를 둘러싸고 볼셰비키당 내부를 심각한 논란과 분열을 낳았다. 

 

제국주의 모순의 약한 고리를 뚫고 러시아에서 혁명이 성공했다. 그러나 고대하던 유럽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 당시 이 혁명은 독일에서의 혁명이었다. 그러나 독일혁명이 패배했다. 그렇다면 고립된 러시아 혁명 권력은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사회주의는 오직 국제적 수준에서만 승리할 수 있으니 러시아 혁명을 독일로 수출할 것인가? 독일혁명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에서 사회주의를 성공적으로 건설할 것인가? 스탈린은 현실적인 사회주의 지도자였다. 트로츠키를 위시로 한 지노비에프, 카메네프 등은 반대파와 신반대파를 형성하여 일국에서 사회주의 건설의 문제를 국제주의 원칙, 정신의 문제로 둔갑시켜 버렸다. 

 

이는 오늘날까지도 스탈린을 국제주의를 버린 일국사회주의자, 자력갱생을 기치로 사회주의 건설을 하고 있는 북(조선)을 “스탈린주의에서 기원하는 ‘민족주의의 극단화’”(윤소영)라고, ‘김일성주의’를 “스탈린주의의 동양적 경향의 끔찍한 과잉”(로버트 C. 터커, 브루스 커밍스, 『한국전쟁의 기원 2-Ⅰ』 9장 북한의 체제), “북한은 스탈린주의의 변종”(오세철)이라고 격렬하게 비난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역사상 최초로 자본주의는 진정한 세계 체제를 창출했고, 그 체제에서 우리의 삶은 모두 공통의 역사와 공통의 운명으로 얽혀 있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 그 부가 가난한 나라로 “흘러 넘칠 것”이라는 온갖 미사여구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체제에서 세계적 불평등은 심화했다.
세계 자본주의의 이런 현실은 일국사회주의 문제를 첨예하게 부각시킨다.
지난 세기의 쓰디쓴 경험에서 거듭거듭 드러났듯이, 아주 온건하고 전혀 사회주의적이지 않은 대중 운동들조차 세계 자본가 계급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힌다...
쿠바는 수십 년째 미국에 경제 봉쇄를 당하고 있다. 칠레에서 미국은 개량주의적 좌파 정부를 뒤엎는 피비린내 나는 군사 쿠데타를 지원했다...
오직 한 가지 길만이 러시아 혁명을 구할 수 있었다. 사회주의 혁명이 다른 나라들로 확산돼야 했던 것이다...
이렇게 러시아 혁명이 쇠퇴하는 과정에서 스탈린이 ‘일국사회주의’를 들고 나왔다. 그것은 승리가 아니라 패배의 신호였다.
‘일국사회주의’가 실제로 뜻한 것은 착취와 반혁명을 공고히 하는 완전히 반민주적인 체제였다.(콜린, “일국사회주의는 가능한가?”, <노동자연대>, 2005-01-05)

 

이것이 “국제주의”를 모토로 내걸고 활동하고 있는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인식이다. 이들은 여전히 맑스·엥겔스의 초기의 이념, 세계동시 혁명을 고수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자본의 세계화, 국제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본은 국가단위를 중심으로, 국가를 매개로, 국가의 힘을 바탕으로 활동하고 있고 -노동자연대와 국제사회주의자들은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에 따라 국가 내부에서 투쟁이 벌어지고 있고, 국가 내부의 계급모순이 첨예해지고 있으며, 국가 내부에서 권력을 잡아야 하며, 그것이 국제적인 혁명으로 나아갈 교두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쿠바나 북(조선)처럼 고립된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경제봉쇄를 당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주의를 온전하게 건설할 수 없으며 이는 결국 소련과 마찬가지로 “착취와 반혁명을 공고히 하는 완전히 반민주적인 체제”로 타락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현존하는 사회주의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혁명적 전망을 흐리게 하고 패배주의에 빠지게 한다. 더욱이 이러한 인식은 일국에서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을 반대하는 관념뿐만 아니라 실제 제국주의와 싸우며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나라들을 “국가자본주의”라 규정하고 이 나라에서 제국주의를 등에 업고 반혁명 세력들을 민주주의의 투사들로 규정하고 지지하는 심각한 제국주의의 지지자들로 타락하게 만들고 있다.(이에 대해서는 “쿠바 반정부 시위를 지지하라 —미국 제국주의를 경계하면서도, 소피 스콰이어, 번역 김준효, 노동자연대, 377호(온라인판), 2021-07-13), “우리는 쿠바 사회주의 권력의 굳센 벗들이다 _ 쿠바 반혁명 시위에 대한 제국주의 벗들의 논평을 규탄한다”, 2021년 7월 15일 전국노동자정치협회, “노정협 반박 쿠바 반정부 시위는 반혁명적인가?”와 이를 다시 비판하는 “쿠바 반혁명 시위를 지지하는 제국주의의 국내 ‘진보적’ 벗들의 실체를 보라!, 전국노동자정치협회, 2021년 7월 21일) 논쟁 글들을 보기 바란다.)

 

이들은 “국제사회주의인가?, 일국사회주의인가?”, “국제혁명의 강령인가? 일국사회주의의 강령인가?” 이처럼 사물을 일도양단하여 변증법적으로, 통일적으로 사고하지 못하고 있다. 제국주의 모순이 약한 고리를 통해 돌파되고 이것이 제국주의 체제 전반의 위기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오직 국제적 수준의 혁명만 기대하고 있다. “오직 한 가지” 구원의 길인 “사회주의 혁명이 다른 나라들로 확산”되지 않으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필연적으로 “일국사회주의”로 타락하고 급기야 “국가자본주의”로 반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으니 일국에서 아무리 모순이 성숙해도 총을 들지 말아야 하는가? 일국에서 혁명이 위기에 빠지는 한이 있더라도 국제적으로 혁명을 수출해야 하는가?
 
트로츠키와 트로츠키주의로 타락한 신반대파들은 일국에서 사회주의 건설의 가능성, 확신, 실행의 문제를 국제주의 원칙의 문제와 국제혁명의 전망과 뒤섞으면서 심각한 혼돈에 빠지고 급기야는 반당세력, 반쏘 제국주의 분자들로 극심하게 타락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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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츠키

 

스탈린은 유럽 혁명이 없어도, 당장 가망 없는 유럽혁명에 기대지 않고도 일국에서 사회주의 건설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제시하고 1930년대에 이를 전 세계 노동자계급과 심지어 소련사회주의 건설의 실패를 오매불망 고대하던 세계 부르주아 눈앞에서 보여주었다. 그러나 스탈린은 이 사회주의의 일국에서 건설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의 간섭과 포위가 계속 있을 것이기에 제국주의를 철폐하고 국제혁명의 승리로 사회주의가 궁극적으로 승리할 수 있게 될 것이라 봤다.

 

스탈린은 혁명의 “민족적” 임무와 국제적 임무와의 통일을 추구하면서 일국에서 사회주의의 성공적 건설은 국제혁명에 해가 되기는커녕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와 피억압 민족들에게 승리의 신념, 확신, 전망을 심어줄 것이며, 이 승리가 국제적 지원과 지지로 나타나면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도 꽃피게 될 것이라 봤다.

 

스탈린은 일국에서 사회주의 건설의 가능성, 승리 추구를 국제주의와 대립시키는 이들에 대해 “그들은 실제 혁명가가 아니라 요란스러운 공담을 늘어놓는 혁명가, 영화 영상 속에 나오는 혁명가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제는 이해할 때가 왔다”고 조소하였다.

 

스탈린의 이러한 입장과 사상은 사회주의 건설의 “자력갱생론”으로 발전하였다. 정치적 자주성, 군사적 자주성, 경제적 자주성은 제국주의 포위 속에서 사회주의 건설을 하는 나라들의 기본원칙이 되었다. 게다가 사회주의 내 자주성의 상실은 사회주의 분업화를 미명으로 사회주의 나라의 공업화와 경제적 자주성을 약화시키고 대국주의로 사회주의 나라 간 우애와 평등 원칙을 약화시켰으며 심지어 사회주의권의 도미노적 해체까지 이르게 하는 중대한 원인이 되었다.

 

“자력갱생론”, 즉 공산주의 사상혁명을 중심으로 기술혁명과 문화혁명을 내세워 남의 힘에 의존하지 말고 오직 사회주의 국가 내부의 자원과 예비를 총동원하고 인민대중의 무궁무진한 힘과 노력에 의거하여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것은 사회주의의 특수한 원칙일 뿐만 아니라 제국주의 포위 속에서 사회주의 건설을 하는 나라들의 보편적인 원칙이기도 하다. 

 

북에 대해 민족주의 고립·폐쇄주의 운운하는 것은 제국주의의 군사, 정치적 적대주의와 경제적 포위 말살책인 제재에 맞서 투쟁하는 사회주의의 처지와 현실주의를 외면하고 제국주의 적대시 정책에 맞서 싸워야 하는 제국주의, 자본주의 나라들 내부의 노동자국제주의의 임무를 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의 자력갱생론은 국제연대를 배제하거나 반하는 것인가?

 

북에서 국제주의 원칙은 일제에 맞선 무장투쟁 시기에 중국에서 근거지를 두고 활동하면서 중국 공산주의자들과 인민들과 맺은 조중친선의 역사와 일제가 소련을 배후에서 공격하려고 할 때 “소련을 무장으로 옹호하자!”는 구호를 내걸고 침공 기도를 막아선 것으로 실현되었다. 

 

이후 북의 국제연대는 베트남 민족해방 전쟁의 지원과 쿠바와의 전통적인 사회주의 국제연대, 칠레 아옌데 정부 사수, 아랍권의 저항적 민족주의 세력들과의 연대,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지원과 국제연대, 팔레스타인의 민족해방투쟁 지지, 비동맹 국가들과의 반제 자주성을 원칙으로 하는 블럭불가담운동, 소련 해체 이후에도 푸틴의 러시아와의 전략적 관계의 형성과 현재 다극화 시대에 있어서 반미자주진영과의 국제연대의 사례들이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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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와 사회주의 애국주의는 대치되는가? (1회)

2024.06.07

뉴라이트 정치세력의 형성과 몰락ㅡ 한국과 미국의 신구 보수주의 비교 ⓹

2024.05.29

좌파에서 시작한 뉴라이트, 전 분야로 확산ㅡ 한국과 미국의 신구 보수주의 비교 ⓸

2024.05.15

“임금차등 폐지·임시직 정규직 전환” 쟁취-UAW로부터 배운다

급속하게 증가하는 촉탁을 막지 못하면 현대차지부 미래 없다!

2024.05.02

[22대 총선평가] ‘조국 열풍’으로 본 한국의 정치 지형 ②

ㅡ 좌우파 간 극심한 분열 양상 보여준 22대 총선

2024.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