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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최근 SNS에 공유된 비전향 장기수 김영승 선생의 글을 기초로 재구성한 것이다.
비전향 장기수 김영승 선생이 1월 23일 SNS에 올린 글은 1970년대 교정시설에서 벌어진 고문의 방식과 감방의 일상을 세밀하게 복원한다. 그것은 한 사람의 기억이자, 동시대 수형자들이 공유한 현실의 조각들이다. 아래 사건을 따라가면 좁은 감방의 공기와 지하실의 축축한 냄새, 곤봉이 바닥을 치는 탁한 소리까지 또렷해진다.
선생이 2026년 1월 21일 서울 교대역 인근 법률센터에서 장경욱 변호사를 만나 재심 가능성을 논의했다는 짧은 근황은, 오래된 상처가 여전히 현재형임을 입증한다. 아래 기록은 그가 남긴 구체 묘사에 기반해 고문 과정과 감방 상황을 집중적으로 정리한 보도 서술이다.
1. 맥락과 시간의 흐름
시간은 남원고등군법의 사형 선고에서 시작해, 대구 감옥 미결사에서 무기징역으로 확정되는 첫 전환점으로 움직인다. 이후 김천·안동·대전을 거쳐 1973년 9월 15일 광주특별사로 이감된다. 그곳에는 비전향 장기수 64명이 모여 있었다. 같은 해 11월 14일, 간부의 일방적 통보가 내려온다. “운동, 면회, 서신 수발, 진찰, 독서, 짠밥 등” 일체를 중지하라는 명령. 소지품을 싸놓고 “몸만 나올 준비”를 지시하는 말은, 어디로 끌려갈지 모르는 불안을 조성하는 통제 기술이었다.
그 직후 감방의 밀도가 급격히 높아진다. “북풍바라지 0.75평”이라는 표현은 폭이 아닌 압박의 단위다. 그 좁은 공간에 12명, 13명이 몰려 앉아 정좌를 강요당한다. “시찰구만 바라보고 앉아서 옆 사람과 이야기하거나 서 있거나 뒤돌아보거나 해서는 안 된다.” 행동은 금지되고, 침묵은 강제되며, 시선은 통제된다. 감방의 규율은 사람을 물건처럼 맞춰 넣는 작업이었다.
2. 감방의 하루: 소리, 냄새, 자세
감방의 일상은 소거된 활동과 강화된 통제로 이루어졌다. 면회·서신·독서의 중지는 외부와의 연결을 끊는 조치였고, 대화 금지는 내부 연대를 무력화하는 장치였다. 0.75평 공간에 12~13명은 신체의 기본적 자유—자세 바꾸기, 잠시 일어나기, 옆 사람을 보는 행위마저—죄로 바뀌게 만들었다.
- 공간과 밀도
“0.75평”은 대략 성인 한 사람이 다리를 펼 수 없는 정도의 바닥면적이다. 그곳에 12~13명이 들어앉으면, 무릎은 무릎에, 어깨는 어깨에 닿아 연속된 몸의 띠를 만든다. 바닥은 딱딱하고 차갑다. 다리 저림이 지속되고, 혈류가 막히면서 어깨·허리 통증이 만성화된다.
“시찰구만 바라보라”는 지시는 눈길의 자유까지 빼앗는다. 정좌 자세의 지속은 신체적 고통뿐 아니라 심리적 소진을 불러왔다. 옆 사람과의 작은 속삭임조차 제지됐다. 대화 금지는 감방 내 비공식 질서를 끊어, 서로를 지탱할 최소한의 언어적 연결을 잘라내는 효과를 냈다.
- 소리의 풍경
하루 종일 이어지는 “방망이로 때려패는 소리”는 감방에 울려 퍼지는 규율의 언어였다. “아이고 죽겠네”라는 비명은 공포의 공용어가 된다.
복도를 행진하는 발걸음, 자물쇠가 “자그닥” 열리는 금속성 마찰의 음색, 곤봉이 살과 뼈에 부딪히는 무둔한 타격음이 하루를 구획했다.
좁은 공간의 체취와 상처에서 번지는 피 냄새, 눅눅한 공기, 환기 부족으로 공기는 점점 무거워진다. 지하실로 끌려간 뒤 돌아온 이들의 몸에서는 물고문의 냄새—젖은 천, 낡은 로프의 마모 냄새—가 배어 있다.
- 감시와 소문
감방의 열려 있는 “공기구멍”은 역으로 정보의 통로였다. 화장실의 틈새로 운동장에 나온 동지들의 얼굴을 확인하고, “전향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큰소리로 알려 연대의 작은 끈을 이어갔다.
반대로 “전향했다”는 허위 선전도 속도감 있게 확산됐다. 감시와 소문은 서로 뒤엉켜 심리적 압박을 극대화한다.
3 . 폭력의 기술: 도구, 절차, 대사
김영승 선생의 회고에서 폭력은 즉흥이 아니라 기술로 묘사된다. 곤봉, 포승줄, 수정(수갑), 로프, 물, 수건, 지하실 고문틀—이들은 일상적 사물이 아니라 절차의 구성 요소였다.
- 곤봉과 집단 구타
“정무종, 원삼실, 노상기, 이준원, 서원배 등”으로 지목된 폭력가담자들이 “살인폭력깡패”로 규정된다. 어깨의 “떡봉” 마크, 허리의 수정(수갑), 곤봉, 포승줄, “사방키”를 쥐고 흡연하며 인상을 쓰고 감방을 순회한다. 의도적으로 위압적인 표상을 구축한다.
감방문을 열며 “왜 옆사람과 말하느냐, 왜 고개를 숙이고 있느냐” 등 사소한 행동을 죄로 만들고, 곤봉으로 “사정없이 패는” 즉각적 폭력을 행사. 복도에 엎드려놓고 집중 구타를 가하는 방식도 반복된다.
소리는 공포의 확산 장치다. 감방 전체로 타격음과 비명이 퍼져, 각 방을 일종의 “증거로 채워진 청취 공간”으로 만든다.
- 결박과 견인
“빤스만 차고 팔을 뒤로 수정을 채우고 포승으로 묶어, 한 줄은 뒤 철장에, 다른 한 줄은 앞 창문에 묶어 앞뿌리만 닿게” 하는 자세는, 어깨 관절에 직접 하중을 걸어 탈골 직전의 통증을 유발한다.
“줄을 잡아당기면 양 어깨가 부러질 것 같아”라는 표현은 신체적 파괴의 임계점을 정확하게 짚는다. 입을 찢은 옷으로 막아 비명을 소거하는 것은 “증거의 삭제”—목격과 기록을 방지하는 기술이다.
2시간에 걸친 고문은 시간의 압박을 더한다. 질문은 단출하다. “전향할래, 안 할래. 교무과장 면회할래, 안 할래.” 폭력의 목적을 명시하는 대사다.
-지하실 고문: 로프, 매달기, 수치심
“빨가 벗겨 놓고 양손을 노프로 묶어 천정에 매달아놓고 노프로 물을 묻혀 사정없이 때려팬다.” 물로 적신 로프는 마찰과 피부 손상을 극대화한다. “등짝이 껍질이 벗겨질 정도”라는 표현은 외피가 벗겨지는 정도의 반복 타격을 뜻한다.
“대꼬쟁이로 항문을 쿡쿡 쑤셔댄다.” 이는 성적 수치심과 극심한 신체 고통을 중첩시키는 방식이다. 피가 났고, 선생은 이후 치질로 장기 고통을 겪었다. 고문은 행위 후에도 남는 상흔을 통해 시간을 점유한다.
- 물고문: 호흡의 박탈과 생리적 공포
“공장에서 물고문틀을 만들어왔다.” 한 사람의 자리에 목이 들어갈 정도의 틈을 마련해, 들어누우면 판자 밑으로 수갑을 채우고 로프로 “몸 전체를 감아놓고” 고정한다.
“한 놈은 배 위에 올라타고” 체중을 가해 호흡을 억제한다. 얼굴 전체를 수건으로 덮고, “10리터짜리 주전자”의 물을 코 위에만 “살살 부운다.” 살살이라는 표현과 대용량의 물은 역설이다—지속적이고 거대한 압박 속의 미세한 조절이 더 고통스럽다.
“숨이 차서 죽어가면 수건을 살짝 들어올려준다. 딱 한 번 숨을 쉬면 다시 덮고 물을 붓는다. 주전자 물이 다 떨어질 때까지.” 생존 본능을 자극해 한 번의 숨을 허락한 뒤, 다시 질식의 공포로 밀어 넣는 “간헐적 허용-재박탈”의 리듬이다.
“이렇게 물고문에 전향자가 많이 났다.” 물고문은 흔적의 최소화(타박상 대신 호흡 박탈)와 심리적 붕괴를 겨냥한 선택이었다.
4. 심리전과 정보전: 허위, 감시, 분열
폭력은 신체에만 머물지 않는다. 감방과 복도, 화장실의 공기구멍은 정보의 회로였고, 그 회로를 통해 허위와 진실이 교차했다.
- 허위 전향 선전
“깡패 정무종은 김영승 전향했다고 사방 동지들에게 허위 선전했다.” 허위 정보는 연대를 약화시키는 가장 빠른 칼이다. 의심이 스며들면 서로의 말보다 감시자의 말이, 두려움의 억측이 사실처럼 굳어진다.
“전향한 차양진을 같은 방에 들여 보내 매일 동태를 감시해 교무과에 보고했다.” 전향자를 감시 도구로 활용하는 방식은 수형자 공동체를 내부에서 분열시키는 장치였다.
그럼에도 “복도에서 큰소리로 ‘김영승은 전향 안 했다’고 말했다”는 증언은 감시 구조의 빈틈을 통해 연대의 신호를 보내는 저항의 기술이었다.
- 명령의 언어
“오늘은 내가 졌다”—가해자(고문자)의 말은 승패의 사적 게임처럼 고문을 전시한다. 폭력은 개인의 성취로 타자화되고, 피해자의 고통은 가해자의 일기장에 분류된다. 이 왜곡된 게임화는 폭력 실행자들의 심리적 합리화 장치로 작동한다.
5. 법적 상황과 감방을 넘어선 시간
폭력의 정점은 법정과 행정으로 이어진다. 반공법 9조 1항을 적용한 합의부 재판에서 징역 2년이 추가 선고됐다. “감옥에서 범죄를 범하면 무기·사형까지 언도할 수 있다”는 조항의 무게는 법정이라는 외피로 폭력의 연장을 덧칠했다.
동료들의 반대 증언은 채택되지 않았고, 고발자들의 조작 진술만 받아들여졌다는 서술은 적법절차의 붕괴를 시사한다. 경제적 사정으로 상고하지 못한 채 형이 확정되고, 만기를 앞둔 1975년에는 “비전향”을 이유로 감호처분이 내려져 청주감호소에서 13년 4개월을 더 살았다. 감호소에서의 폭행—갈비뼈 골절, 구두발로 목을 밟아 숨을 못 쉬게 하는 행위—는 '교화'라는 이름 아래 이루어진 폭력의 연속선이다.
김영승 선생의 글에는 국제적 파급의 흔적도 남아 있다. 광주의 고문 실태가 일본 아사히신문에 대서특필되면서 세계가 알게 됐다는 대목은, 당시 사건이 국경 밖의 언론을 통해 공론화됐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보도의 확산이 즉각적인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에서, 기록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다시 드러난다.
이 기록의 가장 중요한 층은 신체의 기억이다. 어깨 관절의 비틀림, 피부가 벗겨질 정도의 타격, 항문을 향한 가혹 행위, 물고문으로 숨이 끊어질 듯한 리듬, 갈비뼈 골절로 숨 쉬기가 어려워 자살을 고민한 순간들ㅡ 이들은 시간의 미세한 단면을 저장한다.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결론은 승리의 표어가 아니라 생존의 문장이다. 살아남기 위해 언어가 필요했고, 언어가 기록을 만들었다.
감방의 풍경은 수치와 압박의 물질성으로 기억된다. 0.75평의 수치, 12~13명의 밀도, 문을 여는 “자그닥” 소리, 곤봉의 무둔한 타격음, 젖은 로프의 피부 마찰, 수건을 들었다 내리는 가혹한 호흡의 리듬. 이 물질성은 폭력이 “보이지 않는 규칙”이 아니라 손에 잡히는 도구와 절차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6. 남은 과제
현재 김영승 선생은 장경욱 변호사와 재심 가능성을 논의 중이다. “서류가 다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은, 기억을 법적 사실로 전환하기 위한 관문을 예고한다.
김영승 선생의 글은 한 시대의 어둠을 구체적 디테일로 복원한다. 감방의 공기, 곤봉의 소리, 물고문의 리듬은 잊어버리기 어려운 언어다. 그 언어는 과거를 고발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기록을 모으고, 사실을 확인하고, 고통에 응답하는 일ㅡ 그 평범한 과정이 정의로 향하는 가장 정확한 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억이 법과 제도로 건너가는 다리를 놓는 일이다. 그리고 그 다리는, 이렇게 시작된 한 사람의 증언 위에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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