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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양
2025년 10월 한미 관세협상이 타결되기 직전 한국 재벌 총수들은 앞다투어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삼성, SK, 현대차, LG, 한화 등 주요 그룹 총수들이 플로리다에서 트럼프와 골프 회동을 가지면서, 얼마 후에 있을 한미 간의 총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 합의를 측면에서 지원했다. 이 중 1,500억 달러는 조선업 협력, 즉 '마스가(MASGA,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에 투입될 예정이다.
하지만 마스가의 화려한 외피 뒤에는 냉엄한 현실이 숨어 있다. 이 프로젝트의 본질은 미 해군력의 재건이며, 무너져가는 미국 패권을 지키려는 미 제국주의의 마지막 안간힘이다.
1. 마스가: 무너지는 패권국가의 마지막 안간힘
미국 조선업의 몰락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미 해군은 연간 2척의 버지니아급 잠수함과 1척의 컬럼비아급 전략 잠수함을 건조할 계획이었으나, 2023년 기준 단 한 척도 예정대로 인도하지 못했다. 미 의회조사국(CRS)은 미국 조선소들이 숙련 노동력 부족, 공급망 붕괴, 기술력 저하로 인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고 경고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기술력 격차다. 최근 미 해군이 최신 항공모함에 도입했던 전자기 캐터펄트(EMALS) 시스템의 잦은 고장으로 인해서 다시 구식 증기식 캐터펄트로의 회귀를 모색하고 있다는 보도는 미국 군사기술의 퇴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소프트웨어로 제어되는 전자기 캐터펄트는 증기식보다 재설정 시간이 짧고, 힘 조절도 정밀해서 다양한 중량의 함재기 이륙에 적합하다.
경쟁국인 중국은 연간 230척 이상의 함정을 건조하여 미국(연간 10척 미만)을 압도하고, 기술력에서도 빠르게 격차를 좁히고 있다. 중국은 9월 22일 젠-15T, 젠-35, 공중경보기-600 세 기종의 함재기가 자국 항공모함인 푸젠함에서 캐터펄트 이륙과 착함 훈련을 성공적으로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관련 기사: “젠-15T가 푸젠함에서 어떻게 사출(弹射)될까? 대량의 세부사항 공개”, http://www.ulham.net/science/39922)
이러한 절박한 상황에서 미국이 찾은 해법이 바로 한국과 일본의 조선 기술을 활용한 해군력의 재건이다. 이렇게 볼 때 마스가는 단순한 경제 협력이 결코 아니다. 쇠락하는 제국이 동맹국의 자원을 총동원해 자신의 군사력을 재건하려는 전략적 프로젝트이며, 여기서 미국 “조선업 부흥”의 1차 목표는 함대 확장 계획이 원활히 추진되도록 하는 데 있다.
그런데 한국 재벌들은 이런 미국이라는 기울어져 가는 배에 올라타 뭔가 건질 것이 없을까 탐욕스러운 눈초리로 두리번거리고 있다. 과연 이들이 먹을만한 떡고물이 남아 있을까?
2. 도처에 널린 리스크: 법적·정치적 장애물
재벌들이 기대하는 이윤은 그들의 역할이 이미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미국이 한국 조선사들에게 맡기고자 하는 역할은 주로 제작과 선박 수리(MRO) 부분이다. 함정의 핵심 설계와 시스템 통합은 미국 기업이 주도하고, 공정 전반의 품질 검수 및 관리는 일본 등 전략적 동맹국이 맡는 구조가 예상된다. 즉, 한국은 고부가가치 영역인 설계나 핵심 시스템 통합이 아닌, 이윤이 상대적으로 낮은 중간 제조 및 노동 집약적인 수리 부분을 일부 담당하는 '하청' 역할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미 해군의 요구는 까다롭기로 악명 높다. 군수품의 품질 기준(MIL-SPEC)은 매우 엄격하며, 납기 일정과 보안 요건이 상상을 초월한다. 미국 기업들조차 그 입맛을 맞추기가 어렵다고 불평할 정도인데, 언어와 문화가 다른 한국 기업들이 이를 충족시키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사실상, 마스가 프로젝트는 수많은 리스크로 둘러싸여 있다.
첫째, 법적 장벽이다. 외국 회사가 미국 내에서 해군 함정이나 선박을 제조 혹은 수리하기 위해서는 '존스법(Jones Act)' 등 관련 법의 개정이 필요하다. 존스법은 미국 항구 간 운송은 미국에서 건조되고, 미국인이 소유하며, 미국 국적 선원이 운항하는 선박만 가능하도록 규정한 보호주의 법안이다. 이 법은 1920년 제정된 이래 미국 조선업과 해운업을 보호해왔으며, 수많은 이해관계자의 밥줄이 걸려 있다.
한국 조선사들이 미국 시장에 진출하려면 이 법의 예외 조항을 만들거나 개정이 필요한데, 여기서 경쟁사나 자신들의 일자리 위협을 경계하는 미국 조선업계와 노동조합의 거센 견제와 로비가 예상된다. 미국 최대 노조 연합체인 AFL-CIO는 이미 외국 기업의 미국 조선업 진출에 대해서 강한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중앙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MASGA 프로젝트를 지원하기 위해 미국 의회는 <해군 전비 확보법>, <상선 동맹 파트너법>, <미국 선박법> 등 세 가지 관련 법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한국, 일본 등 동맹국에 대한 제한을 완화하는 <상선 동맹 파트너법>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법안은 아직 실질적인 심의에 들어가지 않았다. 미국 의회 내에서도 "노조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서울대학교 이신형 교수는 "미국 정계는 노조 입장을 고려해야 하므로 관련 법안 추진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직언했다.
둘째, 정치적 불확실성이다. 트럼프 정부하에서 민주당과 공화당, 상·하원 간의 정쟁이 첨예하게 격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법안 개정은 정치적 볼모가 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은 트럼프의 모든 정책에 반대하는 것을 당론으로 삼고 있으며, 공화당 내에서도 보호무역주의 강경파와 자유무역 옹호파 간의 갈등이 존재한다. 미국 주요 언론에서도 "외국 기업에 시장을 내주는 것이 미국경제와 안보에 바람직한가"를 두고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재벌들은 뜻하지 않게 수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마냥 기다리면서, 앉아서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이미 투자한 자금은 묶이고, 인력은 대기 상태에 있으면서 국내 사업은 방치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수 있다.
셋째, 공급망과 인력 부족 문제가 심각하다. 미국 의회 예산국에 따르면 미국 조선 노동자의 고령화가 심각하고, 젊은 기술 노동자 수가 부족하며, 교육 기간은 길다. 부품 공급은 소수 하청업체에 크게 의존해 공급망이 매우 취약한데, 지난 수십 년간 쇠퇴하면서 미국 조선업은 부품 공급사, 설계 인력, 숙련공 등 산업 생태계 전체가 무너진 상태다.
결국 미국에 투자한 한국 조선사들이 납기를 맞추고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한국의 조선업 산업체인(부품사, 연구인력, 숙련공) 상당수를 함께 이전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미국 현지 조선소 설립을 위해서 핵심 인력 파견과 협력사 동반 진출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3. 산업 공동화의 악몽: 한국 조선업은 껍데기만 남는다
한국의 조선업 산업체인을 미국으로 이전하면 국내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당연히 한국의 조선업이 공동화되고 껍데기만 남게 된다.
한국 경제 전반에서 이미 그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2024년 말 기준 미국 생산법인의 자산 규모는 삼성이 43조원, SK가 40조원, LG가 38조원, 현대차는 28조원을 기록하여 미국은 이미 한국 기업의 최대 해외 생산기지가 되었다. 그 대신 한국 대기업 10곳 중 7곳이 2025년 국내 투자 계획이 없거나 미정이라고 답했다. 투자 계획이 있는 기업 중 59%는 올해와 비슷한 수준이고, 28.2%는 감소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이는 재벌들이 국내 투자에는 인색한 반면, 불확실한 미국 프로젝트에는 천문학적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 때문에 특히 1·2차 협력 중소업체의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철강·알루미늄 관련 중소기업은 8월 기준 전월 대비 92곳이 폐업했으며, 철강 50% 관세는 여전히 유지되어 중소 부품업계의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다. 대기업들이 미국에 투자를 집중하는 동안, 이들과 거래하던 국내 중소기업들은 일감이 줄어들고 자금난에 시달리며 하나둘씩 문을 닫고 있는 것이다.

조선업의 경우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할 수밖에 없다. 조선업은 철강, 기계, 전자, 화학 등 수많은 산업과 연결된 종합 산업이다. 한 척의 선박을 건조하기 위해서는 수천 개의 부품과 수백 개의 협력사가 필요하다. 만약 주요 조선사들이 미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기고 핵심 인력과 협력사들을 데려간다면, 국내에 남은 조선업 생태계는 급속히 붕괴될 것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숙련공의 유출이다. 조선업의 경쟁력은 수십 년간 축적된 숙련 기술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용접, 배관, 도장 등 각 분야의 숙련공들은 하루아침에 양성될 수 없다. 이들이 미국으로 떠나거나, 국내 대우가 열악해 다른 업종으로 이동하면 한국의 조선소는 기술 전승이 끊기고 경쟁력을 상실하게 된다. 이 같은 현상은 2000년대 초 일본 조선업이 몰락할 때 이미 경험했던 현상이다.
도대체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한국 재벌들은 어떤 해법이 있나? 이런 고민을 그들에게 기대하는 것 자체가 애초부터 무리이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직 단기적 이익과 미국 시장 진출뿐이기 때문이다.
4. ‘토사구팽’의 운명: 임무가 끝나면 버려진다
한국 조선사들이 미국과의 마스가 협력에서 탐을 내는 것이 따로 있다. 미국의 민간 선박 건조 및 수리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다. 미국은 존스법 등으로 인해 민간 조선 시장이 사실상 폐쇄되어 있다. 한국 기업들은 이번 기회를 통해 이 시장의 문을 열 수 있으리라는 일말의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이는 애초 미국 정부가 바라던 '마스가'의 본래 취지인 '해군력 재건'과는 어긋난다. 미국 정부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국의 해양 산업을 부활시키는 것이지, 한국 기업에게 자국 민간 시장의 이권을 넘겨주는 것이 아니다. 이 때문에 한국 조선사들이 민간 시장 진출을 시도하면, 수많은 유무형의 견제에 부딪치고 좌절을 맛보게 되는 것은 필연이다.
존스법의 벽은 여전히 높고, 미국 조선업계와 노조의 반발은 거셀 것이며, 정치권의 보호주의 압력도 만만치 않다. 미국 외교관계위원회 산업정책 전문가 윌리엄 헤나건은 미국에 약 150개 조선소가 있으며, 모든 조선소가 이미 최대 가동 중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한국 조선사가 미국에 진출해 대형 군함이나 민간 선박을 건조·수리하게 되면 기존 미국 조선소와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실제로 2023~2024년 MASGA 프로젝트 관련 의회 청문회에서도, 노조와 현지 조선업계 대표들이 "한국·일본 기업 진출은 미국의 산업 생태계를 약화시킨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실제로 과거 한국 기업들의 지금까지 미국 진출 사례를 보면, 초기의 화려한 약속과는 달리 실제 성과는 미미한 경우가 많다. 최근에도 LG의 배터리 공장, 삼성의 반도체 공장 등 주요 기업들이 수조 원대의 투자를 단행했으나, 미국 내에서는 제조업 숙련 인력을 구하기가 어렵고, 높은 연봉과 강성 노조의 파업이 일상화되어 있어 생산과 운영에 지속적인 어려움이 발생하고 있다.
예컨대 현대자동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의 경우, 2025년 들어 극단적인 지역 노조의 영향으로 투자 환경이 불안정해졌다. 얼마 전에는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의 한국인 구금 사태로 LG에너지솔루션의 미국 내 4개 공장 건설이 사실상 중단된 사태가 발생해 국내외 언론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에서는 300여 명의 한국인이 구금되어 현대차그룹의 배터리 공급에도 직접적인 차질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만만치 않다. 연간 50GWh급 배터리 생산시설의 하루 생산 중단 시 손실액은 약 400만 달러(55억 원)에 달하고, 30GWh 규모 공장도 하루 33억 원의 손실이 발생하는 등 경제적 타격이 상당하였다.
조선업의 경우 이런 문제는 더욱 복잡할 수밖에 없다. 선박 건조는 긴 공정 기간과 막대한 초기 투자가 필요하며, 발주처의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국 선주들이 검증되지 않은 한국 조선사의 미국 현지 공장에 선박 건조를 맡길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한국 조선사의 임무는 마스가 관련한 '협정' 사항에 이미 명시적으로 정해져 있다. 즉 미국 현지 조선소 설립 및 운영, 미국 조선 인력 교육, 조선 기술 및 노하우 이전, 부품 공급망 구축 지원, 미국 조선업 생태계 재건 협력 등이다. 이는 명백히 한국 기업들을 미국 조선업 재건의 '도구'로 활용하겠다는 의도이며 그 이상 탐내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그 임무가 완료되면 어떻게 될까? 한국 기업의 사명은 끝나는 것이며, 그 후 토사구팽의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미국이 원하는 기술을 습득하고, 숙련공을 양성하고, 공급망을 재건하고 나면, 한국 기업들은 더 이상 미국에는 이용 가치가 없게 된다.
이런 상황이 오면 한국 재벌들은 도대체 어떻게 하려는 것일까? 이미 숙련공은 떠나가고, 부품사들과 협력사들이 무너져 한국 내 기반까지 흔들린 상황에서, 그들은 빈껍데기만 남은 국내 조선 현장으로 돌아와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렇듯, 한국 재벌들의 마스가 협력 참여는 단기적인 기회 포착이라는 미끼 뒤에, 국가 산업 기반의 붕괴라는 치명적인 독을 숨기고 있다. 그들은 미국의 전략적 필요에 따라 동원되고 있으며, 그 대가로 얻는 것은 불확실한 이윤과 명백한 토사구팽의 위험뿐이다.
조선산업은 본래 경제 건설과 국방 안보에 직결되는 전략 산업이다. 이는 산업 체인이 길고 통합도가 높으며, 한 국가의 과학기술 수준과 종합 국력을 반영하기에 결코 포기할 수 없다. 그럼에도 단기적인 이익과 생존을 위해서 국가 산업의 미래를 담보로 잡은 한국 재벌들의 무책임한 행태는 역사적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재벌들이 국내 산업 생태계를 더 이상 파괴하지 못하도록, 민주노총과 진보정당이 모두 일어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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