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정호 (울산함성 편집위원)
등록일 : 2025.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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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13일, 백악관에서 발표된 한미 정상회담 공동 설명서는 한국 외교사에 치욕적인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화려한 수사와 '전략적 파트너십'이라는 미명 하에, 한국은 무려 3,5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490조 원이라는 천문학적 현금을 미국에 쏟아붓기로 약속했다. 그 대가로 한국이 받은 것은 무엇인가? 구체적 이행 시기도, 법적 구속력도 없는 추상적인 '약속'과 '의향' 표명뿐이다.

 

이는 협상이 아니라 일방적 굴복이며, 무역협정이 아니라 현대판 조공 외교다. 한국 정부는 민중의 혈세로 미국에 막대한 현금을 바치면서, 정작 한국 경제와 산업을 보호할 실질적 보장은 전혀 확보하지 못했다. 이 협정의 실체를 낱낱이 해부해보자.

 

1. 한국이 내놓은 구체적 '현금', 미국이 제공한 추상적 '약속'

 

 공동 설명서에 명시된 한국의 재정 약속은 놀라울 정도로 구체적이고 방대하다. 전략무역투자 부문에만 3,500억 달러가 투입된다. 이 중 조선 부문에 1,500억 달러가 승인된 투자로 확정되었고, 추가로 2,000억 달러가 전략투자양해각서를 통해 약속되었다. 투자 분야는 조선, 에너지, 반도체, 제약, 중요 광물, 인공지능과 양자컴퓨팅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방위비와 군사 구매 부문에서는 605억 달러가 책정되었다. 2030년까지 미군 장비 구매에 250억 달러를 지출하고, 주한미군에 대한 종합적 지원으로 330억 달러를 제공하기로 했다. 여기에 국방비를 현재 GDP의 약 2.8%에서 3.5%로 확대하는 계획까지 포함되어 있다. 민간 부문에서도 대한항공이 보잉 항공기 103대를 360억 달러에 구매하기로 약속했다.

 

이를 모두 합치면 약 4,465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625조 원에 달한다. 이는 한국 정부의 2025년 총예산 677조 원의 92%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 모든 금액이 구체적인 숫자와 시한을 동반하고 있다는 점이다. "1,500억 달러", "2030년까지", "330억 달러"처럼 모호함의 여지가 없는 명확한 현금 약속이다.

 

반면 미국이 한국에 제공한 것은 무엇인가?  공동 설명서를 면밀히 분석하면 실망스러운 진실이 드러난다. 관세 관련해서는 "미국은 15% 이하의 관세율을 적용할 계획이다", "미국은 조건을 제공할 의향이 있다", "미국은 관세를 제거할 의향이 있다"는 식의 표현만 나열되어 있다. 핵 관련해서도 "미국은 한국의 민간 우라늄 농축을 지지한다", "미국은 핵추진 공격잠수함 건조를 승인했다", "미국은 긴밀히 협력할 것이다"라는 문구가 전부다. 안보 분야에서는 "미국은 확장 억지력 제공을 재확인했다", "미국은 방위 의지를 강조했다"는 말만 되풀이된다.

 

'의향', '계획', '지지', '재확인', '협력'이라는 단어들은 법적 구속력이 전혀 없는 외교적 수사에 불과하다. 구체적인 이행 시기도, 위반 시 제재 조항도, 검증 메커니즘도 없다. 미국은 언제든지 "상황이 변했다", "의회 승인이 필요하다"는 핑계로 약속을 번복할 수 있다.

 

2. ‘15% 관세’라는 굴욕적 함정

 

 공동 설명서는 한국이 얻은 '성과'로 15% 관세율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는 성과가 아니라 굴욕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이나 최혜국 관세율과 15% 중 높은 것을 적용한다’는 조항은, 기존 관세가 10%였다면 오히려 15%로 인상된다는 의미다. 자동차, 자동차 부품, 목재 등 한국의 주요 수출품이 직격탄을 맞게 된다.

 

반도체 관세의 경우는 더욱 교묘하다. "향후 협정에서 제공될 수 있는 조건보다 불리하지 않은 조건"이라는 문구는 언뜻 한국에 유리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다. 이것은 미국이 대만 등 경쟁국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면, 한국에도 그와 동등한 수준의 높은 관세를 매기겠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트럼프가 대만을 압박하기 위해 25%의 관세를 부과하면, 한국도 25%를 받는다. 이것은 최혜국 대우가 아니라 '동등하게 나쁜 대우'를 보장하는 것이다. 미국의 패권적이고 난폭한 외교 전략을 그대로 드러내는 조항이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와 언론은 이를 마치 '대만보다 불리하지 않은 수준의 협정'을 얻어낸 외교적 성과인 것처럼 미화하고 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생명줄을 미국이 경쟁국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좌우되도록 맡긴 것이다. 이것이 과연 대한민국의 국익을 지킨 협상인가?

 

외환시장 안정성 조항은 이 협정의 불평등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한국이 한 해에 총 200억 달러를 초과하는 자금을 지원할 필요가 없다"는 상한선은 안전장치처럼 보이지만,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모호한 표현은 한국이 외환시장 불안을 감수하면서도 달러를 조달해야 한다는 의미다. "성실하게 고려"한다는 것은 미국이 한국의 요청을 거부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은 2000억 달러를 약속하면서도, 그 돈을 지불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외환시장 혼란에 대한 실질적 보호장치조차 확보하지 못했다.

 

3.  "동맹의 현대화"란 이름의 일방적 부담

 

 공동 설명서는 한국의 방위비 증액을 "동맹의 현대화"로 포장하지만, 실상은 미국 방산업체에 대한 일방적 지원이다. 미군 장비 구매에 250억 달러를 지출하기로 했지만, 구매 품목은 명시되지 않았고 가격 결정권은 미국이 쥐고 있으며 기술 이전에 대한 언급도 없다. 이는 한국 방산업체가 아닌 록히드마틴, 레이시온 같은 미국 기업에 대한 직접 지원이다.

 

주한미군 지원 330억 달러는 "종합적인 지원"이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처리되었다. 구체적 내용이 불명확한 이 금액은 기존 방위비 분담금 외에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 영토에 주둔하는 미군을 위해 한국이 더 많은 돈을 내는 구조다. 국방비를 GDP의 3.5%로 증액하면 현재 약 2.8%에서 0.7%포인트 증가하여 연간 약 20조 원의 추가 부담이 발생한다. 증액분의 상당 부분이 미국 무기 구매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이재명 대통령이 10월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공식 환영식에 참석하고 있다.png
이재명 대통령이 10월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공식 환영식에 참석하고 있다

 

총 654억 달러(2024년 기준, 한국 GDP 3.5%)는 한국 국방 예산의 대폭 증액을 의미하지만, 이 돈이 한국의 자주국방 역량 강화로 이어지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미국 무기 체계에 대한 의존도만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이 654억 달러를 약속한 대가로 미국이 제공한 안보 보장은 무엇인가? "핵을 포함한 모든 역량을 활용해 확장 억지력을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재확인"하고 "주한미군 주둔을 통해 대한민국 방위에 대한 의지를 강조"했다는 것이 전부다. '재확인'과 '강조'는 새로운 약속이 아니다. 이는 기존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이미 명시된 내용을 반복한 것에 불과하다. 한국은 수백억 달러를 추가로 지불하면서도, 미국으로부터 어떤 새로운 안보 보장도 받지 못했다.

 

전시작전통제권 조항은 더욱 문제이다. "전시 작전 통제권의 전환을 위해 동맹 협력을 계속하기로 약속"했다는 것은 전작권 전환 시기를 명시하지 않은 채, 한국이 "미국의 지원을 받아" 군사력을 강화하라는 의미다. 즉, 한국은 더 많은 돈을 쓰면서도 여전히 전작권은 미국이 보유하는 구조가 유지된다.

 

4. 핵 협력이라는 화려한 환상
 
공동 설명서에서 가장 화려하게 포장된 부분이 바로 핵 관련 협력이다. "미국은 한국의 민간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로 이어지는 과정을 지지한다"고 했고, "미국은 한국이 핵추진 공격잠수함 건조를 승인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문구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심각한 문제가 드러난다.

 

"과정을 지지"한다는 것은 우라늄 농축 자체를 승인한 것이 아니다. "미국의 법적 요건에 따라"라는 단서 조항이 붙어 있어서, 미국 의회와 행정부의 추가 승인이 필요하다. 언제든지 번복 가능한 정치적 제스처에 불과한 것이다.

 

핵추진 잠수함도 마찬가지다. "건조를 승인"했지만 구체적 기술 이전은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조달 수단을 포함하여 요구사항을 발전시키기 위해 긴밀히 협력"한다는 표현은 아직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호주의 AUKUS 사례를 보면, 2021년 발표 후 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협상 중이다.

 

한미 원자력협력협정인 ‘123 협정’은 미국의 동의 없이 한국이 독자적으로 핵 기술을 개발하는 것을 제한한다. "평화적 사용"이라는 단서는 미국의 지속적 감시를 의미한다. 기술 주권 확보가 아니라 미국 의존이 심화되는 구조다. 한국은 3,500억 달러를 약속하고도, 핵 기술에 대한 실질적 자주권을 확보하지 못했다. 오히려 미국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종속적 구조가 더욱 공고해졌다.

 

5.  호혜가 아닌 일방적 시장 개방

 

 공동 설명서의 "호혜 무역 촉진" 부분은 제목과 달리 한국의 일방적 양보로 가득하다. 자동차 부문에서 한국은 연방자동차안전기준을 준수하는 미국 차량에 대한 5만 대 한도를 폐지하고, 배기가스 인증 과정에서 서류 요구를 면제하기로 했다. 반면 미국은 한국 차량에 대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농산물 부문에서도 한국만 양보했다. 농업 생명공학 제품 규제 승인 프로세스를 간소화하고, 미국 원예 제품 전담 데스크를 설립하며, 미국 육류와 치즈의 시장 접근을 보존하기로 했다. 여기서 "농업 생명공학 제품 규제 승인 프로세스 간소화"는 GMO(유전자 변형 농산물) 수입 승인 절차를 간소화하라는 요구다. 현재 한국은 GMO에 대해 상대적으로 엄격한 규제와 승인 절차를 운영하고 있는데, 미국은 GMO 옥수수와 콩을 대량 생산하면서 한국의 까다로운 승인 절차를 수출 장벽으로 보고 있다. 결국 이는 GMO 식품의 한국 수입을 더 쉽고 빠르게 만들라는 압박인 셈이다.

 

다음으로, "미국 원예 제품 전담 데스크 설립"은 한국 정부 내에 미국산 과일, 채소, 화훼류 등의 수입을 전담하는 특별 창구를 만들라는 의미다. 미국산 사과, 체리, 오렌지, 포도 등의 수입 승인과 검역을 신속하게 처리하는 원스톱 서비스를 요구하는 것으로서, 사실상 미국 농산물 수입을 위한 특혜 통로를 만들라는 것이다. 이는 한국 농업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조치입니다. 결국 두 가지 요구 모두 한국의 식품 안전 규제와 농업 보호 장치를 약화시키려는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한국 농산물에 대한 어떤 조치도 발표하지 않았다.

 

디지털 서비스 분야에서 한국은 미국 기업이 차별받지 않도록 보장하고, 네트워크 사용료 규제를 완화하기로 했다. 미국은 한국 기업에 대한 조치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지적재산권 분야에서도 한국은 특허법조약에 가입하기로 했지만, 미국의 추가 조치는 없다.

 

이는 '호혜'가 아니라 일방적 시장 개방이다. 한국은 자동차, 농산물, 디지털 서비스 등 모든 분야에서 규제를 완화하고 시장을 개방하지만, 미국은 아무런 상응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6. 조선업 투자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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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한화 필리조선소

 

 공동 설명서는 한국의 조선 부문 1,500억 달러 투자를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그러나 이는 한국 조선업의 발전이 아니라 미국 조선업 지원이다. 투자 대상은 "미국 조선소와 미국 인력"이며, "조선소 현대화"와 "미국 상선과 전투 준비 미군함의 수 증가"가 목표다. 즉, 한국 돈으로 미국 조선소를 현대화하고, 미국 인력을 고용하고, 미국 군함을 건조하는 것이다. 한국 조선업체들은 기술과 자본을 제공하지만, 수혜자는 미국이다.

 

미국의 존스법은 미국 연안을 운항하는 선박을 미국에서 건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동 설명서는 "한국에 미국 선박을 건조할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존스법 때문에 한국 조선소가 미국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여지는 극히 제한적이다. 결국 한국 기업은 미국에 공장을 짓고 미국인을 고용해야 한다.

 

더 심각한 것은 기술 유출 위험이다. 한국의 세계 최고 수준 조선 기술이 미국으로 이전되면, 장기적으로 한국 조선업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 그런데 기술 이전에 대한 보상이나 보호 조항은 전혀 없다. 한국은 1,500억 달러를 투자하면서도, 자국 조선업의 경쟁력 강화가 아니라 미국 조선업 부활에 기여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했다.

 

ㅡ 결론:   현금 조공과 공허한 약속


이번 한미 관세협정은 한국 외교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 한국이 약속한 것은 명확하고 구체적이며 즉각적이다. 3,500억 달러의 전략 투자는 구체적 금액과 구체적 분야가 명시되어 있고, GDP 3.5% 방위비 증액은 구체적 금액과 구체적 시한이 정해져 있으며, 360억 달러의 민간 구매는 구체적 계약으로 확정되었다. 그리고 시장 개방과 규제 완화는 즉각 이행하기로 했다.  총 4,514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632조 원의 현금과 즉각적 조치를 약속한 것이다.

 

반면 미국이 제공한 것은 모호하고 추상적이며 조건부다. 15% 관세는 기존보다 높거나 같은 수준이고, '의향' 표명은 법적 구속력이 없으며, '지지'와 '재확인'은 새로운 약속이 아니고, '협력' 약속은 구체적 내용이 없다.

 

이는 협상이 아니라 굴복이다. 한국은 민중의 혈세 632조 원을 미국에 바치면서, 한국 경제와 산업을 보호할 실질적 보장은 전혀 확보하지 못했다. 관세는 여전히 높고, 시장 접근은 제한적이며, 기술 주권은 요원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협정의 장기적 파급효과다. 한국은 막대한 재정을 미국에 투입하면서 자국 산업 육성과 복지 증진에 사용할 재원을 상실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필요한 50조에서 100조 원, 청년 실업 해소를 위한 투자, 저출산 대책에 쓸 돈이 모두 미국에 대한 '조공'으로 사라졌다.

 

한국 정부는 이 협정을 "동맹 강화"와 "전략적 파트너십"으로 포장하지만, 실상은 명백하다. 한국은 632조 원의 현금을 내고, 미국의 공허한 약속을 샀다. 답은 명백하다. 이 협정은 한국 민중이 아니라 미국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한국 정부는 민중의 혈세로 미국 조선소를 현대화하고, 미국 방산업체를 지원하고, 미국 농민을 보호하기로 약속했다. 그 대가로 받은 것은 언제든지 번복될 수 있는 외교적 수사뿐이다. 이것이 바로 2025년 한미 관세협정의 민낯이다.

 

역사는 이 치욕스런 협정을 길이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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