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찬욱의 총반격
  • - 민가협 40주년을 축하하며 -
한찬욱(사월혁명회 사무처장)
등록일 : 2025.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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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90년대 민가협 어머니들이 거리에서 양심수를 전원 석방하라고 외치고 있다. [사진제공-민가협 40주년 기념사업회]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

 
오늘은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가 창립된 지 40주년이 되는 날이다.

 

또한, 올해는 경술국치 115주년, 분단 80주년, 4월혁명 65주년, 5.18광주항쟁 45주년이 되는 해이다.

 

하지만 아직도 종미친일반민족세력이 광화문에서 태극기 부대라 칭하며 준동하고, ‘빛의 혁명’으로 탄생한 이재명 정부가 국민주권정부라 자임하지만, 남북관계 복원은 요원하고 국가보안법은 시퍼렇게 살아있고 양심수는 아직도 차가운 감옥에 있다.

 

민중은 진실과 정의를 지향해서 힘을 모은다.

 

그리고 역사는 정의와 진실의 앞길을 가로막는 일체를 용납하지 않는다.

 

바로 그 진실과 정의로운 앞길을 가는 단체 중 하나가 민가협이다.

 

민가협, 진보적 자주·민주·통일 운동 단체로 발전

 

민가협은 1985년 12월 12일에 출범했지만, 그 뿌리는 박정희 유신독재 시기인 1974년 민청학련 사건을 계기로 결성된 ‘구속자가족협의회’와 1976년 ‘한국양심범가족협의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0년대 유신독재의 총칼이 지배하던 엄혹한 시기 이에 저항하던 학생과 남민전 사건 그리고 장기수로 있었던 재일동포간첩단 사건 관련자와 정치적 박해를 받던 재야인사들 가족들이 석방 운동에 나선 것이 민가협의 시발점이 된다. 

 

양심수는 1979년 12·12 군사반란과 1980년 5·17 내란으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이 공안 수사 기구를 통해 학생, 노동자, 재야인사, 정치인을 무자비하게 구속하면서 대거 발생한다. 

 

특히 5·18광주항쟁으로 미제국의 실체를 깨달은 학생들이 민족통일민주쟁취민중해방투쟁위원회(약칭 삼민투)를 조직해 1985년 5월 23일부터 26일까지 서울지역 5개 대학교 학생 73명이 연대해 서울미국문화원 점거농성을 벌이면서 반미 시국사건 구속자도 늘어난다. 

 

이때 구속 학생 학부모들이 ‘구속학생학부모협의회’를 결성한 것이 계기가 되어 구속노동자가족협의회, 양심수후원회, 장기수가족협의회, 청년민주인사가족협의회가 함께 모여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를 결성한다. 그리고 각 협의회의 대표로 공동의장단을 꾸려 구속자 석방 운동을 펼친다.

 

이후 민가협은 양심수 석방과 국가보안법 등 제반 악법 철폐를 위해 투쟁하였다. 그뿐 아니라 경찰 공안 수사기관과 안기부 등 공안 기구와 교도소에서 자행되는 고문 등 심각한 인권 유린과 맞서 싸운다.

 

주로 어머니들로 모여있는 민가협은 어머니 본래의 모성애를 바탕으로 온몸을 바쳐 헌신적으로 싸워왔다. 어머니들은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상황에도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특히 노상에서 밤을 새우며 싸우는 일이 잦았지만, 양심수 석방을 위해 철야 단식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어머니들은 몸 성할 데가 없는 지경이었다. 그런데도 어머니들은 그 아픈 몸을 이끌고 투쟁의 현장에 항상 나타났다.

 

민가협은 민족민주운동의 울타리였고, 그 어떤 집회 현장이나 투쟁의 자리에서 보랏빛 두건을 두르고 항상 맨 앞 열에 서서 대열을 선도했다. 그뿐 아니라 투쟁의 현장에서 시위하다가 전투경찰에게 끌려가는 학생들을 겁 없이 구출하는 사람들이 바로 민가협 어머니들이었다. 권력의 시녀로 타락한 사법부를 향해 질타와 항의를 멈추지 않았던 분도 바로 어머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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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가협 어머니들이 참석자들과 함께 2014년 10월 16일, 탑골공원앞에서 민가협 1000회 목요집회를 끝마치고 기념사진을 남겼다. [사진제공– 민가협 40주년 기념사업회]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

 

 행동하는 양심, 어머니들의 비폭력 저항운동 <목요집회>

 

민가협을 이야기하려면 ‘양심수후원회’와 지난 4월 돌아가신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을 빼놓을 수 없다. 고인은 “민가협 이름 자체가 우리 사회가 민주화가 되어야 구속자가 해결된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저는 남민전으로 구속된 사람이어서 앞에 나서지 못하고 뒤에서 활동해야만 했다. 앞에 나서는 것은 금물이었다“라고 소위 '공안사범자'라 구속자 석방 운동의 고충을 말씀하셨다. 

 

양심수 석방운동은 바로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이기도 했다. 

 

민가협은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해 민변. 인권운동사랑방과 함께 국가보안법 폐지 국제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특히 1999년에는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범국민행동연대’ 결성을 주도하고 국가보안법 폐지 범국민연대회의 결성을 견인해 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민가협은 단순히 구속자 석방만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보다 근원적으로 양심수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행동하는 진보 운동 단체로 발전한다. 

 

그것이 바로 보랏빛 두건을 쓴 어머니들의 비폭력 저항운동인 <목요집회>였다.

 

<목요집회>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탑골공원에서 1993년 9월 23일부터 매주 목요일 오후 2시에 거의 빠지지 않고 유신독재 시절부터 각종 조작사건으로 구속된 통일운동가, 노동자, 농민, 빈민, 청년 학생 양심수들을 석방하기 위해 국가보안법 철폐! 양심수 전원 석방! 등을 외치며 집회를 열어왔다.

 

그뿐만 아니었다.

<목요집회>는 그 주에 있었던 가장 사회적으로 쟁점이 되는 문제와 인권문제를 다루었다. 그러다 보니 미선이 효순이 사건, 광우병 촛불, 용산 참사, 총체적 관권 부정선거 등 크나큰 사건은 모두 <목요집회>의 중점 투쟁 이슈가 되었다. 

 

물론 집회의 주요 사안은 공안탄압과 공안 조작사건이 기본이었다. 그중에서도 소위 ‘이석기의원 내란음모 조작사건’, 통합진보당 강제 해산, 범민련 남측본부 공안탄압 등은 <목요집회>에서 당사자들과 연대하며 대중 투쟁으로 발전시켰다. 그뿐 아니라 미국의 부당한 대북적대정책을 규탄하고 미군 철수도 부르짖었다.

 

<목요집회>는 이제 민가협의 창립 이념이자 주된 투쟁 사업이 되었다. 

<목요집회> 투쟁에는 통칭 ‘어머니’로 불리는 회원들이 평범한 가정의 주부에서 거리의 민주·통일투사로 우뚝 서며 민족해방과 민중해방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가족에게는 자애로운 어머니였지만, 고난받는 사람, 약자들에게는 한없이 아름답고 빛났던 ‘어머니’였다. 

 

그러나 세월에는 장사가 없듯이 2000년 코로나19 이후로 어머니는 <목요집회>를 중단해야 했다. 하지만 <목요집회>는 그동안 무려 2020년 2월까지 27년간 총 1,257회를 진행했다.

 

 이인모 선생과 비전향 장기수 송환 운동

 

민가협은 <목요집회> 말고도 1989년부터 ‘양심수후원회’와 함께 장기구금 무연고 출소자에 대한 지원 사업과 1989년 사회안전법이 폐기되면서 풀려난 인민군 종군기자 이인모 선생의 송환 운동에도 참가했다. 

 

1992년 양심수후원회 제4차 총회에서 ‘인민군 종군기자 이인모 노인 송환운동’을 특별사업으로 채택하고 민가협과 기독교인권위원회, 천주교, 불교 등 인권·종교 단체들과 ‘이인모 노인 송환을 위한 추진위원회’ 결성하여 1993년 3월 17일 송환을 이루어 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물론 민가협의 ‘비전향 장기수 송환’ 사업에는 양심수후원회의 권오헌 명예회장의 절대적인 헌신이 있었다. 고인은 ‘비전향장기수’를 ‘조국통일의 염원을 안고 수십 년을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양심을 지켜온 사람들’이라 정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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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9월 북측으로 송환된 비전향 장기수들의 모습 (사진출처=통일부 블로그)

 

민가협은 이후 25여 인권·종교·사회단체로 구성된 ‘비전향장기수 송환추진위원회’에 양심수후원회와 함께 주도적으로 참가한다. 그리고 1999년 2월 25일과 12월 31일 마지막 출소한 비전향장기수 21명을 포함한 63명의 비전향장기수를 ‘6‧15공동선언 제3항’에 의거 2000년 9월 2일 마침내 북녘 고향으로 송환하는 데 중요한 일익을 담당했다.

 

그뿐 아니라 민가협은 사회안전법(1989년), 사상전향제도(1998년), 준법서약서(2003년) 등 구시대 악법에 맞서 투쟁하면서 마침내 폐지를 이루어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특히 안기부, 경찰 대공분실, 검찰 공안부, 공안문제연구소(경찰청 산하) 등 공안수사기구에 대한 감시활동과 문제제기를 통해 2004년 7월에 공안문제연구소의 폐지를 이끌어내는 밑바탕이 되었다.

 

그 외에도 민가협은 인권 이슈를 사회공론화하기 위하여 1989년 세계인권선언기념일에 첫 공연을 개최하고 매년 겨울 ‘인권콘서트(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를 2007년까지 18년간 공연했다. 그리고 총 49회에 걸쳐 열린 인권강좌 및 시민 교육(2000~2007)과 하루감옥체험 등 대중 교양 활동도 했다. 

 

민가협은  40주년을 맞이해서 12월13일 서울 한양대 올림픽체육관에서 <민가협 40주년 기념 사업회>와 함께 특별 헌정 공연 '어머니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을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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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광장 어머니회 '소속 여성들이 부에노스 아이레스 5월광장에 모여 흰 손수건을 머리에 두른 채 '실종자를 기억하라'고 외치며 항의집회를 갖고 있다.   출처 : 부산일보

 

 아르헨티나의 ‘5월광장 어머니회’

 

우리나라에 민가협과 유가협이 있다면, 지구 반대편 남미 아르헨티나에는 ‘5월광장 어머니회(Asociación Madres de Plaza de Mayo)’가 있다.

 

‘5월광장 어머니회’는 미국을 등에 업은 아르헨티나 군부가 1976년 이사벨 페론 대통령을 축출한 후 1983년까지 8년 동안 호르헤 비델라 장군(1976~81년 집권)의 군사정권이 저지른 범죄행위로 실종 희생된 아들딸을 찾기 위해 창립되었다. 아르헨티나 인민은 8년 동안 군사정권에 맞서 전국적인 반체제 운동을 벌였지만, 군사정권은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함께 ‘콘도르 작전’이라 불리는 이른바 ‘더러운 전쟁’을 벌여 공산 게릴라와 노조 활동가들 외에도 수많은 진보적 예술가, 과학자, 언론인, 지식인 등 수만 명을 납치 구금 고문 처형하는 범죄행위를 저지른다. ‘더러운 전쟁’은 비델라의 후임 로베르토 비올라 장군에 의해 1983년까지도 계속된다. 

 

1977년 4월 30일에 카사 로사다 대통령궁 앞의 ‘5월광장’(Plaza de Mayo, 1810년 ‘5월혁명’의 현장)에서 학살 사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첫 항의집회를 시작했다. 그날 이후 어머니들은 항의의 뜻으로 흰색 천에 실종된 자식의 이름을 수놓은 스카프를 두르고 매주 목요일 오후 3시 30분에 5월광장의 탑(la Pirámide de Mayo) 주변을 도는 행진과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군부는 나중에 마지못해 납치·실종된 사람이 9천 명이 넘는다고 시인했고, 문민정부의 한 위원회는 실종자 수를 약 1만1,000명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5월광장 어머니들’은 그 수가 약 3만에 달한다고 주장한다. 실종· 사망자 수를 확정을 짓지 못하는 것은 납치· 유괴·학살이 워낙 비밀스럽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5월광장 어머니들’의 창립 회원 중에서도 3명이 실종되었다. 이들 중 빌라플로르 어머니는 아들과 며느리를 찾아 6개월 동안 경찰서, 병원, 정부기관 등을 헤매다가 그 자신도 ‘행방불명자’가 되었는데, 어머니는 1978년 12월 8일에 붙잡혀 처형되었다.

 

우리나라의 민가협처럼 아르헨티나 어머니들의 운동은 암울한 군사독재하에서 고립, 위축되었던 여러 부문의 운동을 되살리는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어머니들은 언제나 경찰과 대치한 험악한 운동 현장에서 돌파구를 마련하고 활기를 불러일으켰다. 아울러 새로운 투쟁 전형을 만들어나가면서 국제적으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5월광장 어머니회’의 운동의 중요성

 

사월혁명회 황건(1939~2025) 전 상임의장은 『사월혁명회보』(106호, 2012년 10월) “아르헨티나의 민가협 ‘5월광장 어머니들’의 투쟁기”에서 어머니들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르헨티나 어머니들의 운동은 ‘여성들의 운동’이기는 하지만, 다른 나라의 전통적 여성해방운동들과는 다른 독특한 운동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일부 나라들에서는 여성해방운동이 전통적으로 남성지배 체제로부터의 해방, 성폭력·학대로부터의 해방, 남녀평등, 사회 각 부문에 여성들을 진출시키는 운동이라고 인식되지만, 아르헨티나 어머니와 할머니들은 이런 문제들에는 별 관심이 없고, 그 대신 여성운동의 대의에 모성애의 가치를 포함시켜 여성해방운동의 개념과 범주를 확대하는데 기여했다고 평가된다.”

 

아르헨티나 태생의 미국 여권운동가로 ‘5월광장 어머니들’을 해외에 소개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리타 아르디티(Rita Arditti)는 이렇게 썼다.

 

“아르헨티나 어머니들은 가정의 안전을 지키는 여성의 전통적 권리를 요구했다. 어머니들은 전통적 정당 정치와 상관없이 사랑과 돌봄의 가치에 바탕을 둔 새로운 정치참여 형태를 창조했다. 그들은 모성애로 뭉쳐 남성 없는 운동 방식을 만들어냈다. 아르헨티나에서 여성들의 전통적 역할은 가정에 있었다. 여성은 그 무엇보다도 먼저 어머니이며, 가정과 자녀들의 양육자, 보호자, 교육자라는 것, 그리고 여성들의 그런 전통적 권리를 되찾자는 것이 ‘5월광장 어머니’들의 기본 인식이다.”

 

필자는 원칙주의자는 아니지만, 원칙과 현장을 중시한다.

 

특히 아르헨티나의 대다수 ‘5월광장 어머니들’이 지키고 있는 세 가지 원칙은 한국의 민족민주운동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1) 피학살 자식들에 대한 금전 보상을 거부한다. 생명을 금전으로 환산할 수 없으며 정신을 돈과 바꿀 수 없다.

2) 기념물 건립에 반대한다. 기념물은 자식들의 정신을 화석화시켜 건축물과 돌 속에 가두는 것이다. 

3) 유해 발굴과 검시를 거부한다. 자식들은 죽은 것이 아니라 현재의 민주화 운동의 현장 속에 살아 있다. 운동에 참여하는 모든 젊은이들이 우리의 자식들이다.

 

 어머니의 소원은 양심수 즉각 석방과 국가보안법 폐지 그리고 남북관계 복원이다.

 

지난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새롭게 선 민주주의, 그 1년’ 외신 초청 기자회견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군의 대북 전단 살포 의혹과 관련해 ‘남북 긴장 완화를 위해 정부 차원의 사과가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자칫 종북몰이나 이념 대결의 소재가 될까 걱정돼 차마 말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내란수괴’ 윤석열과 김용현, 여인형 등이 무인기 평양 침투를 비롯해 오물 풍선 직접 격추와 원점 타격을 지시하는 등 전쟁을 일으켜 전시계엄을 시도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는데 무엇이 걱정된다는 말인가! 

 

또한 2023년부터 군심리전단이 직접 대북 전단을 살포하여 군사적 충돌을 유도하였다는 증언도 나왔는데 정부 차원의 사과를 못 한다는 말인가!

 

민(民)은 12·3 내란 사태 발발 이후 탄핵소추안이 12월 14일 가결될 때까지 응원봉을 들고 엄동설한에 11일간 매일 국회 앞 집회에 나왔다. 그리고 매주 토요일 18차례 ‘빛의 광장’에서 범시민대행진을 진행하면서 123일 만에 ‘내란수괴’ 윤석열을 대통령직에서 파면시켰다.

 

오천 년 역사에서 일제에 맞선 조선의 ‘3·1혁명’과 한국의 ‘4·19혁명’ 그리고 박근혜 탄핵을 위한 ‘촛불혁명’과 ‘내란수괴’ 윤석열 탄핵과 파면을 이끈 ‘빛의 혁명’이 전 세계의 인민에게 희망과 혁명의 상징이 된 것을 이재명 정부는 모른단 말인가!

 

이재명 국민주권정부가 종북몰이와 이념 대결에 맞설 의지가 없으면 남북관계 복원과 내란외환세력 척결은 공염불(空念佛)이 된다.

 

민중은 진실과 정의 그리고 평화를 지향해서 힘을 모으고 종북몰이와 이념 대결에 맞서 구속과 희생을 무릅쓰고 앞으로 그동안 나아갔다.

 

무엇이 두렵단 말인가!

눈치를 보지 마라!

‘촛불혁명’의 어부지리로 대통령에 당선된 문재인과는 다르게 이재명 대통령이 민가협 어머니를 반갑게 맞이한 것은 감사드리지만 형식적인 인사로 치부되어서는 안 된다. 

 

지난 문재인 정부의 과오를 국민주권정부라 자임하면서 이재명 정부는 따르려고 하는가!

어머니의 소원은 양심수 즉각 석방이다!

국가보안법 폐지이다!

남북관계 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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