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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거대한 비겁함의 침묵을 뚫고 정의의 포성이 터져 나왔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내부에서 자행된 '5인 미만 사업장 쪼개기'와 '직장 내 괴롭힘'에 맞서 양규서·함계남 두 조합원이 30미터 고공과 지상 천막에서 목숨을 건 배수진을 치고 있을 때, 수도권 노동계와 진보진영이 일관해 온 것은 지독한 관망과 정파적 눈치 보기뿐이었다.
바로 그 순간, 저 먼 남쪽 부산에서 반가우면서도 서슬 퍼런 연대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부산경실련, 부산기독교교회협의회(부산NCCK), 노무현재단, 부산우리민족돕기운동본부 등 부산 지역 12개 시민사회·종교 단체들이 일제히 연명 성명을 내고, 민주노총 지도부의 무책임한 관료주의를 격렬히 규탄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민주노총을 향해 명확한 조사 기한과 농성 조합원에 대한 민·형사상 면책이 보장된 진상조사위의 조속한 가동을 촉구했다. 나아가 편법 고용과 집단 괴롭힘으로 사지에 내몰린 피해자의 즉각적인 복직과 원상회복을 강력히 요구했다. 지독한 침묵의 카르텔에 갇혀 있던 양규서·함계남 두 동지의 절규에 비로소 사회적 응답이 돌아온 순간이다.
돌아보면 부산은 늘 역사의 굽이마다 정의의 물꼬를 튼 격랑의 발원지였다. 1960년 4·19 혁명의 불씨가 된 마산·부산의 저항, 1979년 유신 독재의 시퍼런 압제 아래 전 국토가 숨죽이고 있을 때 독재의 사슬을 끊어낸 부마민주항쟁이 그러했다. 다른 지역과 기성 정치권이 셈법을 두드리며 좌고우면할 때, 부산의 시민들은 그 어떤 두려움도 떨쳐버리고 가장 먼저 거리에 촛불을 켜고 불의에 맞서 함성을 터뜨렸다.
이번 부산 시민사회와 종교계의 결단은, 그 유구한 역사적 자존심과 민주주의의 피가 여전히 부산 땅에 뜨겁게 요동치고 있음을 온 세상에 증명해 보였다.
반면, 이번 사태를 대하는 기성 노동계와 활동가의 태도는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 만큼 초라하고 부끄럽다. 자본의 부당함과 정부의 노동 탄압에는 '총파업'과 '민중 항쟁'을 외치던 민주노총 총연맹과 공공운수노조 지도부가 정작 자기 내부의 비리와 꼼수, 폭력 앞에서는 이토록 비겁할 수 있단 말인가.
"산별 내부 문제라 권한이 없다", "이미 법적으로 끝난 일이다"라며 법률주의의 장막 뒤로 숨어버린 그들의 얼어붙은 관료주의는, 노동운동이 그토록 비판해 마지않던 악덕 사업주의 해명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도록 정파적 이해득실을 계산하며 눈을 감았던 진보정당들과 노동운동가들은 저 남쪽에서 들려온 부산 시민들의 일갈 앞에 고개를 들지 말아야 한다.
동지의 생명이 벼랑 끝 한 줄 밧줄에 매달려 있을 때, 당장의 조직적 안위와 셈법을 먼저 따지는 노동조합과 활동가들은 이미 그 혼을 상실하고 존재 이유를 잃어버린 것이다. 5인 미만 사업장 쪼개기로 근로기준법을 악용하고, 정당한 문제 제기를 사직 종용으로 짓밟은 노동조합이 앞으로 무슨 자격으로 세상의 불의를 비판하고 노동법 개정을 외치겠는가. 그것을 주변에서 방관만 하는 주변의 활동가들이 아무리 그럴듯한 이론을 설파한들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그들의 말을 누가 신뢰할까.
부산의 민주 시민들과 종교인들이 보여준 것은 단순한 동정이나 한 줄의 연대가 아니다. 그것은 타락해 가는 한국 노동운동과 진보정당을 향한 철퇴이자, "이 땅의 정의와 도덕성은 아직 죽지 않았다"는 준엄한 선언이다.
민주노총과 공공운수노조 그리고 한국의 진보진영은 부산의 경고를 뼈아프게 들어야 한다. 헛된 계산기를 내려놓고, 지금 당장 양규서·함계남 두 동지의 복직과 실질적인 진상조사, 민·형사상 면책이라는 최소한의 공의(公義)를 실천하라. 부산이 당긴 정의의 불씨는 이제 전국으로 번져나갈 것이다. 비겁한 침묵을 깨고 자정의 길로 나설 것인가, 아니면 역사와 대중의 심판을 받고 고립될 것인가. 민주노총은 선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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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계남(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 서울지부 해고자)
2025.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