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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가 지나 봄눈 쌓인 미륵산을 향했다. 부론면에서 문막읍을 돌아 귀래면 운계리에서 등산을 시작했다. 귀래(貴來)는 ‘귀한 분이 오셨다’는 뜻으로 신라말 경순왕이 고려에 나라를 바치고 주유하면서 이곳에 머물렀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등산로 초입 계곡은 벌목이 이뤄졌고 새로운 묘목이 심어져 있다. 등산객은 보이지 않는다. 눈이 쌓여서 그런지 산불감시원도 없다. 등산로에 수북했을 낙엽 위로 눈이 쌓여 있다. 추위가 풀린 탓인지 물기를 품고 있다.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가팔라지고 미끄럽다. 준비해 온 아이젠을 신고 오른다.
속이 허옇게 드러난 참나무에 다가가 보니 딱따구리가 나무속 벌레를 잡아먹기 위해 껍질을 벗겨 놓았다. 손으로 만져보니 정말 딱딱한 나무속인데 부리의 힘이나 강도가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정상에 올라서니 쌓인 눈 위로 수많은 새의 발자욱이 찍혀 있다. 크기로 볼 때 까마귀들이 집단적으로 내려앉아 회의를 했든지 휴식을 취한 것으로 추정된다. 인적이 드문 산은 이렇게 새들의 천국이다.

미륵산은 황산사 뒤 암벽에 부처의 상반신이 새겨진 마애불인 미륵불상이 있어 이름지어졌다 한다. 정상에서 인증샷 찍고 잠시 삶은 계란, 빵에 차 한잔하며 휴식을 취한다. 교통편 때문에 더 가지 못하고 원점회귀 한다. 맑았던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오고 옅은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그래도 우수경칩이 지난 탓인지 눈이 빨리 녹는다. 아이젠 밑으로 물먹은 눈덩이가 달라붙어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나뭇가지에 붙은 꼬리표가 바람에 흔들린다. 어느 등산모임인가 하고 봤더니 어떤 이가 전국 1만 9천 산(山)과 봉(峰)우리를 등정한 기념,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제목의 방송에도 출연했다고 써 놓았다. 나도 오랜 기간 산을 다니고 있지만 기껏해야 2~3천일 텐데 대단하다. 어디나 고수가 있듯이 아무도 없는 산길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꾸준히 걷는 이가 있다는 것이다.

하산한 뒤 차를 몰고 구불구불 지방도를 따라 달린다. 한참 지나 왼쪽으로 충북 충주 소태면을 두고 오른쪽 방향 부론면 법천리로 향한다. 남한강이 시야에 들어온다. 잠시 남한강변을 달려 귀가한다. 페북에 사진을 올렸더니 소태면이 고향이라는 한 지인이 “제 고향 마을에서도 산 너머로 보이던 산”이라는 댓글을 달아줬다. 여기서 내 고향은 수많은 산봉우리 뒤에 있다. 미륵불은 석가모니 부처가 열반에 든 후 56억 7천만 년이 지나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출현할 부처라는데. 우리는 짧은 한 생, 어딘가에서 고향을 그리워 한다.
533회, 미륵산(원주 귀래, 689m), 202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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