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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풍지역은 흐린 날씨라는 예보만 믿고 집을 나섰다 충주, 수안보 지나 연풍으로 들어서고 은티중리길 따라 은티마을 회관에 도착한다. 산행을 준비하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해 준비해간 우의를 입는다. 노인회관에서 어르신이 나오더니 비가 오는데 어떻게 산행을 하느냐며 걱정한다. 지난달 초 직벽구간에서 큰 사고가 있었다면서 성터 방향으로 올라가라고 말한다.

괴산 사과 조형물을 지나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올라간다.
‘백두대간 은티산장’을 지난다. 평일이라 그런지 한산하다. 사과나무 과수원을 따라 올라가니 삼거리가 나오고 왼쪽방향으로 ‘괴산의 명산 희양산 3.8km’ 표지판이 길을 안내한다. 큰 바윗돌이 집 앞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민가가 끝나고 본격적인 등산로다. 표지석 ‘백두대간 희양산’ 주변으로 많은 산악회 꼬리표가 붙어있다. 고도 400m 지점이다. 왼쪽으로는 희양산, 오른쪽으로는 구왕봉(호리골재)이다.

희양산 방향으로 올라가는 데 450m 지점에서 삼거리가 나온다. 오른쪽으로 직진해 지름티재로 가야하는데 성터, 희양폭포 방향으로 가게 되었다. 거기다가 안내표지가 제대로 없어 헤맨다. 소로로 접어들었는데 약도에 나와 있는 희양폭포도 보지 못했다.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나뭇잎에 맺힌 빗물까지 우두둑 떨어진다. 곳곳에 시루떡 쌓아놓은 듯한 바위들이 장관이다. 계곡에는 넓적한 마당바위가 보인다. 굴러떨어진 바위가 나무에 걸려 있기도 하다. 숲이 우거져 있지만 희양산이 바위산임을 보여준다.

구불구불 오르다보니 오래된 성터에 다다른다. 신라와 후백제 견훤이 국경선 경계를 넓히기 위해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던 곳이다. 929년(경순왕 3년)에 쌓았으니 1,100여년 세월이 지났다. 왼쪽으로 시루봉, 오른쪽으로는 희양산이 1km 남았다. 싸리꽃이 활짝 피어있는 능선을 따라 걷다보니 희양산 정상과 직벽구간 갈림길이 나온다. ‘주의안내’ 표지판에는 “이곳은 긴 직벽구간으로 추락의 위험이 대단히 높은 곳으로 노약자나 체력이 약한 등산객은 되돌아가시기 바랍니다”라고 쓰여 있다.

처음에는 희양산 정상에 가지 말고 되돌아가라는 말인지, 아니면 정상 가는 곳에 직벽이 있으니 다른 곳으로 돌아가라는 말인지 헷갈렸다. 곧 방향을 잡고 정상으로 직진했다. 비는 멈췄지만 안개가 걷히지 않아 주변을 조망하기는 어려웠다. 계곡 아래로부터 걷힌 구름이 하늘 위로 올라가고 있다. 멋지고 신비스러운 광경이다.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 절벽이다. 바위 틈새에 뿌리 내린 소나무들이 조화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드디어 희양산이다. ‘희양(曦陽)’은 ‘햇빛이 비치면 하얗게 빛난다’는 뜻이다. 멀리서 보면 산 전체가 하나의 화강암 덩어리로 흰 눈이 쌓인 모습이다. 정상에서 스스로의 모습을 볼 수 없다. 다만 주변의 멋진 산들을 조망할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안개가 다 걷히지 않아 속리산, 주흘산, 뇌정산, 대야산 등을 바라볼 수 없다. 희양산은 소백산맥의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을 뿐 아니라 백두대간의 정중앙이다.

올라오면서 비를 맞았고 몸이 젖은 상태에서 정상에 서니 약간의 추위가 느껴진다. 무더위에 대비해 냉커피와 찬물만 준비했는데 뜨거운 물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래도 여벌로 가져간 티를 갈아입고 나니 몸에 온기가 돈다. 100대 명산이라 정상에 서면 등산객이 있을 줄 알았는 데 아무도 없다. 비도 내리고, 한 달 전쯤 희양산에서 발생한 큰 사고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제 하산이다. 정상 근처 큰 바위 사이에 소나무 한 그루가 외롭게 서 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을 거치며 수많은 등산객들의 카메라에 담기고 기억에 남아 있을 것이다. 구름이 걷히면서 시야가 넓어진다. 이제 직벽구간을 밧줄을 잡고 내려가야 한다. 200여m 급경사로 이뤄진 바윗길이다. 그런데 8개의 밧줄이 늘어뜨려져 있는데 바위에 박아 둔 철심(⨆)은 4개 정도만 있다. 비나 눈이 내리면 발을 디뎌야 하는 경사진 바위가 미끄러울 수밖에 없다.
팔에 힘이 빠지면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형국이 되어 추락할 수 있다. 긴 밧줄이 뒤틀리면 몸이 바위에 부딪혀 역시 위험한 상황에 처할 것이다. 암벽등반 코스가 아니라 일반 등산객들의 주등산로인데 이렇게 위험하게 방치하고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40여년의 산행에서 가장 위험한 등산코스를 만났다. 국립공원에 속하지 않으니 산림청과 지방자치 단체는 즉각 안전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다행이 무사고로 다녀간 등산객들은 무용담으로 이야기할지 모르지만 위험천만한 코스다.
직벽구간을 내려와 지름티재까지 오는 도중에 미로바위가 있었다는데 지나치고 말았다. 괴산과 문경에 걸쳐 있는 지름티재에 당도한다. 내려오면서 나무 울타리가 꽤나 길게 늘어서 있었는데 1982년 조계종이 특별수도원으로 지정한 봉암사 땅이라 한다. 1년 365일 중 부처님오신날에만 일반 신도들에게 개방한다. 희양산을 오르는 등산로가 괴산 연풍쪽에만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신라 헌강왕 5년(879년) 지증대사 도헌이 “산이 병풍처럼 사방에 둘러쳐져 있어 봉황의 날개가 구름을 흩는 것 같고 강물이 멀리 둘러싸여 뿔 없는 용의 허리가 돌을 덮은 것과 같은데, 스님들의 거처가 되지 못하면 도적의 소굴이 될 것”이라며 봉암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희양산을 오르는 최단거리는 가은읍 원북리에서 봉암사를 통해 오르는 코스라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막혀 있다. 스님들의 수도 도량이라 개방할 수 없다는 주장과 세상의 진리는 중생들의 삶 속에 있으니 개방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공존하고 있다.
지름티재는 ‘지름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많이 돌아와야 했다. 은티마을로 하산한다. 2.2km를 내려오니 성터와 지름티재가 갈라지는 삼거리다. 직벽구간을 밧줄을 잡고 올라가려면 지름티재로 올라가야 한다. 구름이 걷히고 흰색의 희양산이 모습를 드러낸다. 가파른 절벽도 시야에 들어온다. 주변이 높은 산으로 둘러 쌓인 마을 길을 걸어 마을회관에 도착한다. 동네 넓은 주차장, 식당들은 한산하다 못해 적막감이 감돈다.
연풍면에서 바로 집으로 향하지 않고 25km 정도 떨어진 문경 가은아자개 장터로 향한다. 지인이 운영하는 ‘희양상회’로 가서 오랜만에 차한잔 하며 이야기 나누고 희양산 막걸리 몇 병 사서 집으로 향한다. 가은읍에는 은성탄광 자리에 문경석탄박물관이 있다. 탄광하면 강원도 태백산이 연상되지만 백두대간을 따라 높은 산들이 있는 곳에는 석탄이 발견되고 광산이 개발되었다. 문경지역 탄광도 1938년 시작해 1994년 폐쇄될 때까지 56년 동안 서민들의 추위를 녹이는 연탄을 공급했다. 그때를 생각해 아자개장터에서 까맣고 구멍 뚫린 연탄빵도 샀다.
가은읍을 벗어나 중부내륙고속도로에 들어섰다. 오른쪽으로 왕관을 쓴 모습으로 문경새재도립공원의 주산으로 ‘우두머리처럼 의연하게 솟은 산’이라는 뜻을 지닌 주흘산(主屹山)이 우뚝하다. 자동차는 금방 터널을 통과한다. 예전 같으면 꼬박 하루를 걸어서 넘어야 할 새재다. 그런데 1시간 남짓 만에 두 번을 넘나들었다. 문경새재의 유명세에 가려있지만 조령산과 마패봉 사이를 넘는 괴산 구간인 연풍새재도 유명하다. 이 구간의 백두대간을 걷지는 못했지만 차로나마 희양산에서 문경•연풍새재를 넘어 귀가한다. 멋진 산행이었다.
559회, 희양산(999m), 2026.7.1.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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