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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원주시 호저면 농가레스토랑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생기를 담아’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한살림운동이 시작된 고장이라 하니 음식 하나하나에도 친근감이 간다. 식사 후 천도교 2대 교주 해월 최시형 선생 피체지(체포된 곳)로 향한다. 큰길에서 보니 앞에는 들판이고 뒤로는 병풍처럼 산이 펼쳐진 송골마을이 보인다. 해월이 숨어 있다 체포된 원진녀 생가에 도착한다. 집 뒤로 참나무 한 그루 우뚝 서 있다.

집 오른쪽에 비석 하나 서 있다.
“이 자리는 원진녀(元鎭汝)씨 집이 있던 곳으로서 겨레의 거룩한 스승 해월 최시형(海月 崔時亨)선생님이 송경인(宋景仁)이 인솔했던 경병(京兵) 4~50명에게 포덕(布德) 39년(1898년) 4월 5일 낮에 피체된 곳이다.”
이번 동학의길 안내를 맡은 역사 전공 후 교직에 있다가 최근 정년하신 선생님은 해월이 섬강에서 작은 배를 타고가다 남한강과 만나는 흥원창에서 다시 큰 배로 갈아타고 한양으로 압송됐다고 한다 .
다시 큰길로 나오니 마을 입구에 김대호(金大治) 글 짓고 장일순(張壹淳) 글씨체로 비석 하나 서 있다.
“모든 이웃의 벗, 崔보따리 선생님을 기리며, 天地卽 父母요 父母卽 天地니 天地父母는 一體야 니라, 海月 선생님 法說에서”, 35년 동안 보따리 하나 들고 전국을 다니며 포덕한 해월선생의 모습과 그의 사상을 표현해 놓았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은 대성학원 설립, 민주화운동, 도농직거래 한살림 운동 등을 했던 분이다.


다시 섬강을 건너 고속도로를 타고 경기도 여주시 금사면 주록(走鹿)리로 향했다. 마을 입구에서 ‘동학의 길’을 따라 해월 선생 묘소를 향해 걷는다. 마침 ‘여강길 11코스’와 겹친다. 사슴이 뛰놀았던 전설처럼 청정한 원적산 계곡을 따라 오른다. 곳곳에 계곡 휴양지와 전원 주택이 들어서 있다. 지난 초봄 내린 습설로 군데군데 소나무가 부러져 있다. 4km정도 오르자 사찰, 성혈사(聖穴寺)가 있다.
오른쪽 등산로를 따라 300여m 오르니 해월선생 묘다.
“해월 선생은 1827년 3월 21일, 경주 동촌 황오리에서 태어났다. 1861년 6월 수운 최제우 선생을 뵙고 동학에 입도했다. 1863년 8월 14일 수운선생으로부터 수심정기(守心正氣) 네글자와 함께 도통을 받았다. 1864년 3월 10일 수운선생이 순도하기 직전 해월은 고비원주(高飛遠走)의 유언을 받았다. 그 뒤 35년간 방방곡곡을 순행하며 민중의 언어로 다시 개벽의 동학을 포덕했다. 1894년 보국안민과 광제창생의 동학혁명은 선생의 영도 아래 개벽의 횃불이 되고, 3.1만세운동과 촛불혁명의 뿌리가 되었다. 해월선생은 1898년 4월 5일 원주 송골에서 피체되어 경성으로 압송, 6월 2일 순도하였다. 송파나루 건너 산에 안장되었다가, 1900년 3월 12일 이곳 여주 천덕봉 아래에 모셨다.”

비명은 ‘천도교 제2세 교조, 해월 신사 최시형 묘(天道敎 第二世 敎祖, 海月 神師 崔時亨 墓’)다. 해월은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머슴살이, 제지소 노동자로 살았다. 공부를 못해 글을 제대로 읽을 수도 없었지만 동학 입도 후 도를 깨달았고 이를 간파한 수운으로부터 도통을 물려받았다고 한다.
해월은 ‘사람 섬기기를 한울같이 한다(事人如天)고 했고, 나아가 자연에도 한울이 내재한 물물천 사사천(物物天事事天)의 범천론적 사상(汎天論的思想)을 설파했다.
해월이 처형당한 후 도통은 3대 손병희로 이어졌고 1905년 천도교로 개칭하였고 사람이 곧 한울이라는 ‘인내천(人乃天)’을 동학의 종지(宗旨)로 선포했다. 왕은 하늘이 내린 존재이고 노비나 종에게는 영혼조차 없다고 믿었던 봉건지배체제 하에서 ‘사람(백성)이 하늘’이라 설파했으니 불온하기 그지없는 사상이고 체제전복 세력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1세기가 더 지난 지금도 최고 권력자는 스스로 ‘왕’처럼 나대고, 그 체제를 ‘제왕(帝王)적 대통령제’라 부르고 있다.
참배하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남한강 물줄기가 보인다. 해월이 송골에서 체포되어 탄 배가 흘러 내려간 강이다. 440여년 전에는 단종(조카)이 세조(삼촌)에게 권좌를 빼앗긴 채 탄 배가 거슬러 간 강이다. 강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인간세상과 무관하게 흘러갈 뿐이다. 그게 자연법(法)이다. 다시 하산한다.
골짜기 논에 알을 낳은 산개구리들이 개골개골 합창을 하다가 사람 발자국 소리를 듣고는 일제히 멈추기를 반복한다. 세상만물 모든 게 물물천 사사천(物物天事事天)인가?
(2025.3.13.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