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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내륙지역 산불이 며칠째 계속되고 있는데 바람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현지에 살고 있는 지인에게 전화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시국이 하 수상하여 세파에 밀려다니느라 한 동안 강을 건너다니기만 했다. 우중충한 날씨처럼 사람들의 모습도 어두워 보인다.
바람 부는 오후 집을 나섰다. 남한강대교 개치나루터에 도착한다. 사전에는 두 개울의 물이 합치는 곳을 ‘개치’라고 풀이해 놓았으니 법천천과 한강이 만나는 나루라는 뜻일게다. 지금은 교량으로 차들이 지나다니지만 예전 이곳은 ‘충주시 앙성면 웃바우 마을의 버렁말 나루와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의 개치 나루를 오가는 뱃길’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섬강까지 이어지는 여강(驪江)길 2코스(세물머리길)이다. 다리 이름은 남한강대교이지만 강 이름은 명백하게 ‘한강’(국가하천, 환경부)이다. 여주사람들은 관내를 휘돌아 흐르는 한강을 ‘검은 말(驪)을 닮은 강(江)’이라는 뜻으로 여강이라 불렀다.

한강은 남한강과 북한강이 양수리(두물머리)에서 만나 서울을 가로지르는 강이 아니다. 한강은 태백시 창죽동 검룡소에서 출발해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보구곶리까지 길이 494.44㎞이다. 한반도에서 압록강, 두만강, 낙동강에 이어 네 번째로 길다. 북한강은 임진강, 섬강, 홍천강과 함께 한강의 지류다. 그렇다면 본류인 한강 중 북한강과 만나는 부분까지를 남한강으로 부른 데는 어떤 정치적 사연이 숨어 있었나?
한강을 바라보며 자전거길을 따라 걷는다. 강가 버드나무 가지에 연두색 물감을 뿌려놓은 듯 하다. 봄이 되면 미술하던 어린 시절 12색 크레용에서 24색 왕자파스를 사게 됐을 때 초록색보다 더 연한 연두색으로 봄의 풍경화를 그리던 때가 생각난다. 강가를 걸으면서 어린 시절 봄날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릴 수 있어서 좋다. 몇 장 사진으로 찍어도 좋다.
한강과 섬강이 만나는 흥원창이다. 조선시대 소양강창, 가흥창(충주)과 함께 좌수참(左水站)에 소속되어 인근 고을의 세곡을 보관하던 곳이다. 경제의 중심지이자 학자들의 왕래도 잦은 곳이어서 부론(富論)으로 불리었다 한다. 물류가 흐르는 곳에 돈이 모이고 사람이 오가게 마련이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옛 흥원창 전경 산수화와 1,800년대 후반에 촬영된 옛 세곡선 운반선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노를 저으며 고단했을 흰옷의 선원노동자 모습도 보인다.
이제 여주자산을 배경으로 섬강이다. 저 멀리 섬강교 두 개가 보인다. 흰구름이 흘러가면서 파란 하늘이 드러난다. 길가에 자란 냉이와 말냉이도 캔다. 강가 버드나무에 잎이 돋아나고 예쁜 꽃이 피어났다. 섬강교 아래다. 충주댐 59km, 팔당대교 83km, 천주교 원주교구 순례길인 ‘님의 길’ 표지판에는 서지마을 9.1km, 배론성지 60.7km이다. 자신의 가치, 철학, 종교, 취미는 다양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따라 걷고 또 걷는다.
섬강교 위로 올라간다. 동판에 ‘연장 390M, 준공 1971.10.20, 시공 대림산업주식회사’가 새겨져 있다. 54년 전에 완공된 다리다. 1971년 12월 1일 영동고속도로가 2차로로 완공될 당시 다리로 사용되었는데 1994년 4차로로 확장되면서 건너편 새로운 도로와 함께 다리도 만들어졌다. 그래서 건너편 고속도로 다리 위로 차들이 쌩쌩 달리는 데 반해 이곳은 지방도라 한산하고 조용하다.
다리 위를 걸으며 한강쪽으로 섬강물이 흘러가는 모습을 내려다본다. 강가에서 보는 느낌과 사뭇 다르다. 북쪽으로는 높은 다리가 하늘을 가르고 흐르는 강물까지 3개의 푸른 도화지가 펼쳐진 듯 하다. 여주자산 등산로 입구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서 섬강교를 건너 강가로 내려간다. 흐르는 강물보다 훨씬 넓은 강바닥에 자갈이 펼쳐져 있다. 조약돌을 비롯한 수 많은 돌이 강물에 실리고 깎여 각양각색의 모양을 뽐내고 있다. 척박한 도시의 도로변이나 아파트 베란다에 몇 개만 가져다 놓아도 운치가 있을 듯하다. 각자 마음 가는 대로 이름을 붙이면 될 것이다.
역시 강변에서 냉이와 쑥도 좀 캐고 출발했던 길을 되돌아간다. 강바람이 거세다. 다시 흥원창에서 세물머리(한강, 섬강, 청미천) 위로 내려앉는 노을을 바라본다. 개치나루 근처에 다다를 즈음 하늘에는 겨우내 한반도에서 지냈던 기러기떼들이 북쪽으로 날아가고 있다. 강가에는 아직 떠나지 않은 물닭떼들이 잠자리로 모여들고 있다. 나도 거처로 돌아갈 시간이다. 강물은 쉼 없이 아래로 아래로 흘러간다.
(2025.3.28.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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