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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양
이 기사는 오키나와 전투 80주년을 맞아 오키나와의 역사적 비극과 현재 상황을 분석한다. 저자는 일본이 오키나와를 여전히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고 비판하며, 특히 대만 문제와 관련해 오키나와가 군사적 전초기지로 이용되는 상황을 우려하면서, 일본의 역사 인식과 대만 정책에 대한 강한 비판을 담고 있다. [역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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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은 세계 반파시즘 전쟁 승리 80주년이다. 최근 두 명의 미군 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가 오키나와를 방문하여 80년 전 이곳에서 희생된 전우들을 추모하면서, 많은 사람이 당시 오키나와 전투의 잔혹함과 피비린내를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ㅡ 80주년을 맞이한 오키나와 전투의 기억
지금 사람들은 오키나와 전투에 대해 잘 모를 수도 있다. 1945년 4월, 미군이 오키나와섬에 상륙하여 일본에 대한 최후의 공격을 시작했다. 이는 태평양 전쟁의 마지막 대규모 전투였으며, 또한 태평양 전쟁에서 가장 피비린내 나는 전투였다. 그 잔혹함은 미군의 4만 9천여 명의 사상자 수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4만에서 15만 명 이상(미국 측 통계)의 오키나와 민간인들도 이 전투에 휘말려 사상자가 되었다는 점에서도 나타난다. 미국 학자들은 당시 오키나와인 3명 중 1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본다. 그러나 오키나와인들의 고통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당시 일본군은 패배를 피할 수 없게 되자 대규모 오키나와 민간인들에게 자살을 강요했다. 군국주의가 오키나와 민중에게 가한 학살과 상처는 일본 본토를 훨씬 넘어섰다고 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본토 민중이 평화의 혜택을 누리기 시작할 때, 오키나와 주민들은 여전히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 1945년부터 오키나와는 미국의 "관리" 하에 놓이게 되었다. 오키나와는 미군 기지로 가득 차기 시작했고, 오늘날까지도 오키나와는 일본 국토 면적의 0.6%에 불과하지만 주일 미군 기지의 약 70%를 떠안고 있다. 당시 오키나와 전투 때와 마찬가지로, 오키나와 주민들은 지금도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으며, 일본 정부가 미국에 넘겨준 ‘인질’과 같은 상태로, 자칭 "세계 경찰"인 미국이 자신들의 땅에서 횡포를 부리도록 강요받고 있다. 4월 8일 소식에 따르면, 미군은 주일 미군 가데나 기지에 MQ-4C "포세이돈" 대형 무인정찰기를 무기한 배치할 예정이며, 이에 오키나와 현 정부는 반대 의사를 표명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ㅡ 전후 80년: 계속되는 오키나와의 희생
80년이 지났지만, 아마도 고통을 겪은 오키나와 사람들만이 그 전쟁에 대해서 가장 깊은 인식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당시 전투가 그토록 참혹하고 피비린내 나는 이유는 일본 군국주의가 자신들의 것이 아닌 곳을 점령하고, 자신들의 것이 아닌 것을 약탈하려 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일본의 일부 사람들은 80년 전 오키나와 전투의 피의 교훈을 배우지 않았다.
예를 들어, 현재 일본의 일부 인사들이 추진하는 "남서 방어"는 군사력을 남서쪽 일선에 배치하는 것으로, 주로 오키나와 제도를 말한다. 군사적 관점에서 보면, 진정으로 국토 방어를 위한 것이라면 주력을 그런 작은 섬들에 배치하는 것은 최선의 선택이 아니다. "남서 방어"는 어떤 면에서는 "남서 공격"이라고 할 수 있다. ‘공격’ 관점에서 볼 때, 이 지역은 동아시아 대륙과 매우 가깝고, 해공(海空) 공격의 전진 기지로 적합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주로 겨냥하는 것은 바로 대만해협이다. 오키나와는 태평양 전쟁의 학살과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군 주둔의 여러 오욕을 겪은 후, 일부 사람들은 이 땅을 대만해협 개입의 전진 기지로 삼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ㅡ 대만 문제와 일본의 간섭
일·미 공동 문서에는 "무력으로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 "대만해협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희망한다"는 내용이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이른바 "대만에 사건이 생기면 일본에도 사건이 생긴다"는 말은 일본 일부 사람들의 입버릇이 되었다. 이러한 궤변은 중국의 대만 문제에 대한 노골적인 간섭이다. 그런데 일·미 일부 사람들은 이런 가식적인 포장조차 벗어던졌다. 최근, 퇴역 장성이자 전 육상자위대 참모장(육자위대 최고 지휘관)인 이와타 기요후미는 대만에서 회의에 참석하면서 "대만은 일본의 국가이익이며, 절대로 중국의 손에 넘어가게 할 수 없다"고 망언했다. 이는 당시 A급 전범 마쓰오카 요스케의 망언인 "만주와 몽골은 일본의 생명선이므로 반드시 확보하고 사수해야 한다"와 얼마나 유사한가? 이러한 사고방식은 바로 당시 일본을 침략 전쟁의 수렁에 빠뜨리고 결국 무조건 항복하게 만든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이와타 기요후미 같은 이들은 아직도 당시의 교훈을 배우지 못한 것일까?
80년 전 오키나와 전투의 비극이 아직 눈앞에 있지만, 일본의 일부 인사들은 의도적으로 이를 무시하며, 역사적 교훈을 배우지 않고 평화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중일 우호평화조약」 제1조는 "상호 주권과 영토 완전성 존중, 상호불가침, 상호 내정 불간섭"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 조약은 일본 국회가 통과시킨 것으로서, 법적 효력이 있으며 일본이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 그러나 일본의 일부 사람들은 이 조약을 무시하고, 대만 문제에 대해 간섭하며 중국의 내정에 간섭하고 있다.
ㅡ 오키나와: 또 다시 희생양이 될 위기
일부 일본인은 오키나와와 오키나와 사람들을 존중하지 않고, 이곳을 언제든지 희생시킬 수 있는 대상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행동은 당시 일본군이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대나무 창을 나눠주고 그들을 전장으로 내몰았던 것과 다를 바 없다. 만약 일본이 정말로 일부 사람들이 선동하는 것처럼 대만해협에 간섭한다면, 오키나와는 필연적으로 가장 먼저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오키나와현 지사 다마키 데니는 "대만에 사건이 생기면 일본에도 사건이 생긴다"는 식으로 오키나와가 "대만해협 사태"의 최전선이 되어 군사적 공격의 대상이 되는 것을 절대 허용할 수 없다고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분명, 일본의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오키나와를 희생시켜서라도 미국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일을 하고 있다. 당시 일본 군국주의는 오키나와 사람들을 마음대로 희생시킬 수 있는 제물로 여겼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 사람들의 의사를 완전히 무시한 채 미군 기지를 이곳에 강제로 들여놓았다. 그리고 지금 일부 일본인은 여전히 오키나와 사람들의 권익을 무시하고, 오키나와를 대만해협 간섭의 기지로 삼으려고 한다.
80년이 지났지만, 일본의 일부 인사들은 지금 당시 자신들이 얼마나 비참했는지를 더 많이 강조하면서 도쿄 대폭격, "세계 유일의 핵폭탄 피해국" 등을 내세워 자신들이 소위 "피해자"라는 정체성을 부각시키려고 한다. 이는 역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다. 일본은 오키나와 전투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는데, 이는 이 전쟁이 일본의 ‘피해자’ 이미지를 반영할 수 없고, 오히려 일본 군국주의가 ‘가해자’로서의 정체성과 미·일 대립만을 더욱 부각시키기 때문이다. 일본의 무조건 항복 80주년을 맞이하여, 일본은 오키나와 전투의 피의 교훈을 깊이 새기고, 진정한 평화의 길을 걸어야 한다. (저자는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원 동북아연구소 연구원)
출처: 환구시보
2025-04/12
(원문보기) https://opinion.huanqiu.com/article/4MEpdL6YN2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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