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강내희(전 중앙대학교 교수)
등록일 : 2025.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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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러시아가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 디르이야 궁전에서 2월18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을 위한 장관급 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출처 : 라디오코리아  화면 캡쳐 )

 

도널드 트럼프가 지난 1월 20일에 미국 대통령으로 다시 취임한 뒤 그동안 원수지간으로 지내오던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외교 복원의 급물살이 일고 있다.

 

현재 양국 사이에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는 2022년 2월 이후 지금까지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전쟁을 종식하는 일이다. 트럼프의 전임 조 바이든 임기 동안 러시아와 미국 사이에는 전쟁 종식을 위한 노력이 특히 미국 측으로부터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미국은 전쟁 발발 직후였던 2022년 3월 말과 4월 초에 튀르키예의 이스탄불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진행된 휴전 협정을 무효로 만들었고, 승리의 가망이 전혀 없는 전쟁을 하도록 우크라이나를 계속 부추겨 왔을 뿐이다.

 

그런 흐름이 트럼프가 취임한 뒤 완전히 바뀌었다. 오히려 트럼프가 어떤 절박감에서인지 안달 나서 러시아와의 휴전 협상을 원하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러시아는 이스탄불의 협상에서도 볼 수 있듯이 외교적 타협을 통한 종전을 원하는 태도를 계속 드러내 온 셈이다. 그러나 네오콘이 장악한 바이든 행정부와 신나치 세력이 장악한 우크라이나 정부가 보여준 태도는 정반대였다.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퇴를 거듭하면서도 미국과 우크라이나는 어떤 협상도 거부해온 것이다. 심지어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와의 협상을 아예 금지하는 법령을 공포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한 뒤로 미국의 태도는 크게 바뀐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정권에서 대통령, 국무장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고위층 누구도 3년 넘게 러시아와 접촉을 전혀 하지 않은 것과는 대조적으로, 트럼프는 취임 후 얼마 되지 않은 2월 12일 푸틴 대통령과 통화했고, 3월 18일에도 통화했다. 짧은 기간에 트럼프가 푸틴과 두 번씩이나 통화했다는 것은 미국의 대러시아 태도가 크게 바뀌었다는 웅변적 증거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러시아에서는 트럼프와 미국의 태도 변화를 매우 미심쩍게 보는 시선이 강한 모양이다.

그것은 1990년대 초 소련이 와해하고 우크라이나 등 과거 소련 소속 공화국들이 독립해 나간 뒤 미국과 미국이 주도한 나토가 보여준 행태 때문일 것이다.

 

당시 미국의 국무장관 제임스 베이커는 글라스노스트 정책을 펼치며 독일 통일을 허용해준 소련의 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가 나토의 동진을 우려하자, 나토군은 “1인치”도 동진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소련에 속했던 동유럽국가들이 그 뒤로 대부분 나토에 가입하고, 급기야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우크라이나까지 가입을 추진하려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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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나토의  창립과  1990년 소련해체 후 동진 현황. 그림출처 : 나무위키

 

러시아는 그동안 미국이 자신이 한 약조를 초개처럼 여기고 번복을 밥 먹듯 해 온 것을 지켜본 터라 지금도 미국에 대해 신뢰하지 않는 경향이 크다. 지금 푸틴 정부가 미국과의 협상에 나서는 것을 놓고 러시아 내부에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은 이유다.

 

아래 소개하는 글은 러시아의 관영 싱크탱크 국제관계위원회(RIAC, Russian International Affairs Council)의 사무총장을 지낸 안드레이 코르투노프가 RIAC 웹페이지에 2월 25일 자로 기고한 것이다. 

 

<일괄 타결: 러시아와 미국은 역사를 다시 쓸 수 있는가?>

 

수년간 러시아-미국 관계는 깨어날 수 없는 혼수상태에 놓인 것으로 보였다. 외교는 적대, 제재, 그리고 갈수록 커지는 군사 대결 위험에 압도되어 죽어버렸다. 많은 이가 그 무엇도 이런 구도를 분쇄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고, 모스크바와 워싱턴은 변경 불가능한 갈등 노선에 갇혀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변화 속도는 놀랍다. 최근 리야드에서 러시아와 미국 고위 관리들 간 회담과 뒤이은 도널드 트럼프의 발언들은 지정학에서는 어떤 것도 예정돼있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런 사태 변화는 사라 코너가 나무 탁자에 “운명은 없다”를 새겨넣는 <터미네이터 2>의 한 상징적 장면을 상기시킨다. 그녀의 아들 존은 그런 생각을 확장한다. “우리가 스스로 만드는 것 말고는 어떤 운명도 없다.” 메시지는 분명하다—우리의 미래는 운명이 아니라 선택으로 만들어진다. 

 

수년간, 러시아와 서방의 분석가들과 정치인들은 미국-러시아 교착 상태는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일부 미국 전략가는 러시아를 구제 불능의 적으로 간주했고, 러시아의 “터보 애국자들”은 워싱턴과의 교섭은 어떤 것이든 함정이 된다고 경고했다. 심지어 양측 강경론자들은 대결은 핵 파국으로만 끝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펼쳐지는 사태는 시사하는 바가 다르다. 우리가 만드는 것 이외의 운명이 없다면, 오늘날 모스크바와 워싱턴 앞에 놓인 선택은 역사적 의미가 크다. 

 

서구는 단일체라는 환상

 

리야드 회담은 “집단서방”의 소위 단일성이라는 오래된 가정을 이미 해체하기 시작했다. 수년간 러시아 정책입안자들은 글로벌 정책은 워싱턴에서 브뤼셀까지 매끄럽게 작동하는 단일하고 집중된 “앵글로-아메리칸” 권력 구조에 통제된다고 믿었다. 트럼프 시대가 반복해서 보여준 대로 현실은 훨씬 더 파편적이다. 

 

트럼프의 미국은 조 바이든의 미국이 아니다. 워싱턴에서도 큰 분열이 눈에 띈다. 한편, 미국과 흔들림 없이 동맹해왔다고 늘 여겨지던 서유럽은 이제 미국의 압박을 놓고 내부 이견과 분개에 휩싸여 있다.

 

러시아에는 이 분열이 기회다. 대서양 횡단 합의가 해체되면 1년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틈새가 제공된다. 

 

타협 대 항복

 

물론, 회의도 존재한다. 비판자들은 워싱턴과의 합의는 어떤 것이든 함정이라고, 미국은 대단한 약속을 하지만 나중에는 어길 뿐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러시아가 경계를 풀면 서구는 배반과 협상 깨기라는 구래의 습관으로 되돌아갈 것이라고 말이다. 

 

그것이 근거 없는 걱정은 아니다. 역사는 러시아에 조심해야 한다고 가르쳐왔다. 그러나 외교는 보장의 문제가 아니다—그것은 기회의 문제다. 지정학에 철갑 합의 같은 것은 없다. 모든 협상은 무너질 수 있고 모든 약속은 번복될 수 있다. 진짜 문제는 드문 기회가 나오는 순간을 포착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런 순간이다. 

트럼프의 사절들—마코 루비오, 마이크 왈츠, 스티브 위트코프—이 노련한 협상가라 하더라도, 그들이 세르게이 라브로프나 유리 우샤코프 같은 인물들보다 외교에 대해 우월한 이해를 지닌다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러시아에는 글로벌 권력 정치의 복잡성을 다루며 수십 년을 보낸 경험 많은 외교관들이 있다. 미국 측이 모스크바를 압도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큰 오산이다. 

 

역사적 기회의 순간

 

앞으로의 길은 불분명하며, 러시아는 워싱턴과의 어떤 합의도 당장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올 것이다. 그러나 두려움에서 협상을 거부하는 것은 잘못일 것이다. 러시아는 1990년대의 위치와는 다르다. 러시아는 더 강해졌고, 더 자족적이며, 세계강대국으로 인정받는다. 이제 모스크바는 탄원하는 처지가 아니라 대등한 처지에서 협상에 들어간다. 

 

외교에서의 기회는 드물다. 기회란 흘려보내기가 쉽고 잡기는 훨씬 더 어렵다. 러시아와 미국이 합리적 타협—긴장을 완화하면서 모스크바의 핵심 이해관계를 보장하는—으로 나아갈 수 있으면, 향후 수년의 지정학적 지형을 바꾸는 순간이 될 수 있다. 

운명은 없다—우리가 만드는 선택 말고는. 끝.


안드레이 코르투노프의 글을 읽고 드는 생각은 러시아는 지금 자신에 차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전쟁 상황을 놓고 보면, 마음이 조급한 것은 미국으로 여겨진다.

전황을 뒤집을 수 있는 능력이 미국—그리고 서방—에 없다는 점은 그동안의 사태 전개가 명확하게 보여준 바다. 트럼프가 푸틴에게 계속 전화 연락을 하고, 휴전 제안을 하는 것은 그만큼 사정이 절박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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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내희

1951년 생
전 중앙대학교 인문대학 영어영문학과 교수
마케트대학교대학원 영문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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