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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양

"사고 10일 전 보고서에 '끼임 사고 예방 조치 중점 관리 바람'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네팔에서 온 41세 노동자가 죽었다."
중대재해없는 세상만들기 울산운동본부가 10월 21일 공개한 '울산지역 중대재해 판결문 분석' 자료는 한국 경제성장의 화려한 이면에 감춰진 참혹한 진실을 드러낸다. 1999년부터 2022년까지 24년간 울산에서만 1,447명이 산재로 사망했다. 같은 기간 산업재해는 76,772건. 하루 평균 8.8건의 산재가 발생하고, 2.5일에 한 명씩 노동자가 죽어간 셈이다. (관련기사: 울산함성, http://www.ulham.net/local/40504)
1962년 울산특정공업지구 지정 이후 63년. 울산은 '산업수도'라는 이름으로 불렸지만, 그 영광의 이면에는 이름도 기억되지 못한 채 기계에 끼이고, 폭발에 휩싸이고, 추락해 죽어간 수천 명의 노동자가 있었다. 그들의 피와 땀으로 현대, 삼성, SK는 세계적 재벌로 성장했고, 창업주 일가는 수십조 원의 부를 축적했다. 그리고 그 경제 권력은 2대를 넘어 3대, 4대로 '세습'되고 있다.
ㅡ 죽음을 예견하고도 방치한 자들
2022년 7월 14일, 양산시 자동차부품 제조업체 엠텍에서 네팔 국적 노동자 티○○ 씨(41세)가 다이캐스팅 기계에 머리가 끼여 사망했다. 안전문 방호장치는 파손된 상태였고, 안전문이 열리면 기계가 멈추는 '인터록 장치'는 애초에 설치되지 않았다.
더 충격적인 것은 사고 10개월 전부터 외부 안전점검기관이 수차례 '사고 발생 위험성 높음', '즉시 개선 필요'라고 경고했다는 사실이다. 사고 10일 전 보고서에는 "최근 울산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하였으므로 끼임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안전 조치사항을 중점 관리하기 바란다"는 문구까지 있었다.
그러나 경영진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법원은 "치명적인 안전 정보가 현장으로 전달될 경로 자체가 차단되었다"고 판단했다. 외국인 노동자인 피해자는 관련 위험을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고, 그가 소속된 팀의 팀장조차 안전점검 내용을 전달받지 못했다. 죽음은 예견되어 있었고, 예방 가능했으며, 그럼에도 방치되었다.
2022년 5월 26일, 울산 신성산업에서는 입사 두 달도 안 된 신입 직원이 블로우 성형기에 머리가 끼여 숨졌다. 노동자들은 인터록 센서에 금속 클립을 끼워 방호장치를 무력화한 채 작업했다. 기계를 멈추면 생산에 차질이 생긴다는 이유였다. 울산공장에는 클립을 보관하는 용기가 따로 있을 정도로 이 관행은 일상적이었다.
2021년 1월부터 2022년 5월까지 총 24회에 걸쳐 '기계 가동 중 방호문 개방 작업의 위험성'이 지적되었다. 2021년 10월에는 동종 업계 및 자사 공장에서 발생한 유사 끼임 사고 사례를 이메일로 보고받았다. 그러나 아무도 개선하지 않았다. 사고 직후 현장 관리자는 CCTV에 포착된 채로 증거인멸을 시도했다. 인터록 센서에 부착된 클립들을 제거하면서 말이다.
ㅡ 대기업은 '법꾸라지', 중소기업만 처벌받는다
울산지방법원은 엠텍 대표이사에게 징역 2년, 신성산업 경영책임자들에게 각 징역 1년 6월을 선고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비교적 무거운 실형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중소기업이었다.
같은 기간 울산에서 발생한 대기업 중대재해는 어떻게 되었나?
2022년 5월 19일, 에쓰오일 대형 폭발사고로 10명이 사상했다. 고용노동부는 대표이사 대신 안전보건 담당임원(CSO)만 검찰에 송치했고, 검찰은 대표이사와 CSO 모두 불기소 처분했다. 2022년 4월 2일, 현대중공업에서 가스절단기 작업 중 폭발로 1명이 사망했다. 고용노동부는 3년 6개월째 수사 중이다.
2025년 9월 30일 기준, 울산운동본부가 집계한 중대재해 사망자는 27명이지만 노동부 공식 집계에서는 5건이 누락되어 있다. 현대중공업 2건, 울주군청 1건, 삼성 E&A 1건, 온산항 1건. 대기업과 공공기관 중대재해는 아예 통계에서 사라진다.
김형기 민주노총법률원 울산사무소 공인노무사는 "대기업은 기소조차 되지 않거나 장기 수사로 흐지부지된다"며 "비싼 변호사 쓰면 처벌 안 받는다는 공식이 작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25년 8월까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1심 판결을 받은 56건 중 실형은 단 5건. 평균 형량은 징역 1년, 벌금 1억 원. 법인 벌금은 평균 1억 1,140만 원으로 법정 상한 50억 원의 2.2%에 불과하다.
더 기가 막힌 것은 SK멀티유틸리티 사건이다. 2022년 12월 20일, 석탄 하역 중 과적된 덤프트럭이 전도되어 하청노동자가 질식사했다. 법원은 원청과 하청 대표이사에게 중대재해처벌법 무죄를 선고했다. "운전자 오조작이 직접 원인"이며 "덤프트럭 전도 사고까지 예견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실질적인 안전관리체계 구축 노력조차 입증되지 않았는데도, '예견불가능'이라는 한 마디로 경영책임자는 면죄부를 받았다. 반면 중소기업 경영자들은 "유족과 합의하고 사후 시정조치를 했어도 집행유예로 선처할 수 없다"며 실형을 선고받았다.
ㅡ 3대째 '세습'하는 재벌, 오늘도 죽는 노동자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개인 재산은 약 6조 원으로 추정된다. 아버지 정몽구로부터 물려받은 제국이다. 할아버지 정주영이 1967년 설립한 현대자동차는 울산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성장했다. 1999년부터 2022년까지 울산에서만 1,447명이 산재로 사망하는 동안, 정씨 일가는 3대째 수십조 원의 부를 세습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2020년 아버지 이건희로부터 약 26조 원의 유산을 물려받았다. 상속세만 12조 원. 할아버지 이병철이 1938년 창업한 삼성은 87년의 역사 동안 한국경제의 정점에 군림해왔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반도체 공장에서 백혈병에 걸렸고, 건설 현장에서 추락했으며, 하청 공장에서 과로사했는가?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아버지 최종현으로부터 그룹을 물려받았고, 그의 아들들은 이미 그룹 계열사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4대 세습이 진행 중이다. 2022년 12월 SK멀티유틸리티에서 하청노동자가 질식사했을 때, 원청 대표이사는 중대재해처벌법 무죄를 선고받았다.
더 비열한 것은 위험의 외주화, 위험의 이주화다. 오세일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원청이 위험한 작업을 하청에 떠넘기고, 하청은 다시 이주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구조"라고 고발했다.
울산지방법원 판결 4건 중 1건은 네팔 국적 노동자가 피해자였다. 입사 두 달도 안 된 신입 직원, 한국어도 서툰 이주노동자에게 제대로 된 안전교육도 없이 위험한 기계를 맡겼다. 방호장치는 파손되어 있었고, 외부 전문가들은 10개월 전부터 위험을 경고했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죽었다.
현대중공업에서는 어떤가? 김경택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노동안전보건실장은 "형식적인 안전관리체계로는 중대재해를 막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현대중공업의 안전보건관리체계는 서류상으로는 완벽하다. 매뉴얼도 있고, 안전관리자도 있고, 정기 점검도 한다. 그러나 실제 위험한 작업은 모두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수행한다.
용접, 도장, 절단, 고소작업. 추락하고, 끼이고, 폭발하고, 질식하는 위험은 모두 하청 노동자의 몫이다. 원청은 안전한 사무실에서 공정을 관리하고, 납품 단가를 깎고, 공기를 단축하라고 압박한다. 하청업체는 생존을 위해 안전장비를 생략하고, 작업시간을 단축하고, 가장 값싼 노동력인 이주노동자를 투입한다.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울산에서만 81명이 중대재해로 사망했다. 2022년 18명, 2023년 13명, 2024년 23명, 2025년 9월까지 27명. 법이 만들어졌지만 죽음은 멈추지 않았다. 대기업은 기소되지 않고, 중소기업만 처벌받고, 하청 노동자와 이주노동자만 죽어간다.
ㅡ 재벌체제는 혁파되어야 한다
한국의 '경제 기적'은 노동자의 피로 쌓아올린 것이다. 1960년대 이후 압축 성장의 이면에는 광주대단지 사건(1971), 청계피복노조 전태일 분신(1970), YH무역 사건(1979)이 있었다. 1980년대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수많은 노동자가 해고되고, 구속되고, 고문당했다. 1990년대 IMF 외환위기 때 200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2000년대 비정규직이 양산되었으며, 2010년대 이후 산재 사망은 매년 2,000명을 넘었다.
그 과정에서 재벌은 성장했다. 정부의 특혜 금융, 세금 감면, 노동 탄압을 등에 업고 독과점 지위를 확립했다. 그리고 그 부는 '세습'되었다. 창업주의 아들이 회장이 되고, 손자가 부회장이 되고, 증손자가 이사로 입사한다. 수십조 원의 부가 상속세를 내고도 고스란히 대물림된다.
반면 노동자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1999년부터 2022년까지 울산에서만 1,447명이 산재로 사망하는 동안, 울산지역 사망만인율은 2023년 기준 1.21로 전국 평균 0.98보다 높다. 재해율은 1.05로 전국 평균 0.66의 1.6배다. 63년 동안 '산업수도'로 한국 경제를 떠받쳤지만, 노동자들은 여전히 산재에 떨고, 해고를 걱정하고, 비정규직으로 내몰린다.
중대재해처벌법은 2022년 1월 27일 시행되었다. 김용균(2018, 태안화력발전소), 이한빛(2016, 구의역), 김군(2020, 이천 물류창고) 등 젊은 노동자들의 죽음이 이어지자 시민사회와 유족들이 5년간 싸워 만든 법이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법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이것은 법 집행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구조의 문제다. 재벌이 경제를 지배하고, 정치를 좌우하고, 언론을 통제하고, 사법부마저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 노동자의 죽음은 멈추지 않는다.
재벌체제는 하루빨리 혁파되지 않으면 안 된다. 소수의 가문이 수십조 원의 부를 세습하고, 수백만 노동자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구조는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 재벌의 독과점을 해체하고, 일감 몰아주기와 부당 내부거래를 근절하고, 순환출자를 금지하고, 대주주 지배구조를 개혁해야 한다. 하청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고, 원청의 안전 책임을 강화하고, 중대재해 발생 시 대표이사를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 노동자의 경영 참여를 보장하고, 이익을 공정하게 배분하고, 노동조합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이제는 국민연금을 통한 재벌의 공기업화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때다. 국민연금은 이미 삼성전자 지분 7.6%, SK하이닉스 7.3%, 현대자동차 약 7~8%를 보유한 주요 주주다. 1,000조 원이 넘는 국민연금 기금은 국민 모두의 노후자금이자, 동시에 재벌 지배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다.
국민연금이 단순한 재무적 투자자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 주주로서 경영 감시와 의사결정에 참여해야 한다. 노동자 안전을 위협하는 경영진을 교체하고, 하청 착취를 근절하며, 이익을 소수 대주주가 아닌 사회 전체와 공유하도록 강제해야 한다. 나아가 재벌 기업을 단계적으로 공기업화하여, 사적 이윤이 아닌 공공의 이익을 위해 운영되도록 경제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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