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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ㅡ 한미동맹 재검토를 향하여 (1)
이경렬(전 주앙골라 대사)
등록일 : 2026.01.17

주한미군 사령관과 일본 방위상의 만남.png

 

ㅡ 나 몰래 결정되는 내 운명

일본 언론에 따르면 1월 12일 주한미군사령관 제이비어 브런슨은 하와이에서 일본 방위상 고이즈미 신지로를 만나 “한미일 3국의 방위협력을 한층 강화해 나갈 중요성을 확인”했다. 한국과 사전에 협의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우리 몰래 주한미군사령관이 일본 방위상을 만날 이유가 무엇인가. 한국의 동의나 통제 바깥에서 한미일 협력을 논한다는 말은 미일이 합의하면 한국은 당연히 따르는 하부구조요 ‘똘마니’라는 미국의 인식을 드러내는 것이다.

 

한미일 3국 방위협력이란 중국을 겨냥한 3국 군사동맹을 의미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5일 시진핑 주석을 만나 한중관계의 ‘전면적인 복원’을 기약하고 온 마당에, 중국을 적으로 상정하는 3국의 연합을 미국은 일개 사령관을 앞세워 우리 등 뒤에서 꾀하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는 알고 있었을까. 우리 운명이 우리가 알지도 못한 채 결정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동맹 안에서 어디로 갈 것이냐” 대신 “동맹 말고 어디로 갈 것인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ㅡ 종속된 궤도로서의 동맹

연관되는 픽션들이 여럿 있다. 우선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 영화 〈이지 라이더〉, 그리고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다. 셋 모두 자유를 주어진 공간에서 움직임의 자율성으로 본다. 『길 위에서』의 샐과 딘에게 자유는 정착을 거부하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삶의 리듬이다. 〈이지 라이더〉의 와이어트와 빌은 할리데이비슨이라는 메커니즘으로 이동 속도를 높인다. 스탠리 큐브릭의 〈2001〉에서 이동은 도로가 아니라 중력과 대기를 벗어난 우주궤도를 따른다.

 

세 작품은 모두 우리의 자유라는 믿음이 결국 파열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길 위에서』에서 딘의 자유는 무책임으로 귀결되고, 〈이지 라이더〉에서는 사회적 폭력에 의해 제거되며, 〈2001〉에서 인간은 자신이 만든 인공지능 ‘핼’에 의해 위협받는다. 자유는 특정한 사회·기술·제도의 맥락 안에서 불가능할 수 있다. 자유는 “어디로 가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바꾸어 물어야 한다.

 

한미동맹은 한국 외교의 유일한 ‘길’이자 ‘궤도’였다. 『길 위에서』의 주인공들이 길에서 자유를 찾듯, 한국은 동맹이라는 궤도 안에서만 안보와 경제성장을 추구해 왔다. 자율이란 철저히 설계된 시스템 안에서의 미동이었을 뿐이다. 또 〈2001〉에서 인간이 ‘핼’에게 이용당하듯, 우리 역시 우리가 생존을 위해 구축한 동맹이라는 시스템에 의해 착취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미동맹은 조건 없는 자유의 길이 아니라 미국의 이익으로만 흐르도록 설계된 맥락 안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ㅡ 경계의 파열과 동맹의 좌절

한미동맹 안에서의 자유는 항상 주인국의 윤허를 요구한다. 『길 위에서』와 〈이지 라이더〉의 주인공들이 사회적 규범과 충돌하며 좌절하듯, 동맹의 틀 안에서 한국의 국익이 미국의 전략과 충돌하는 순간 우리의 자유로운 선택지는 소거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2025년 8월말 워싱턴에서 발언했듯, “우리는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서 벗어나는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 〈2001〉의 우주 공간에서조차 인간이 기술에 종속되듯, 다극화하는 지금의 국제질서 속에서도 한국은 여전히 동맹이라는 굴레를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다.

 

ㅡ 고립의 수용: 메이저 톰의 결단

데이비드 보위의 노래 ‘Space Oddity’(우주 괴짜)에서 메이저 톰은 체계와의 연결을 끊고 우주에 남는다. 더 이상 타자가 규정한 언어와 의미세계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고뇌 끝의 선언이다. 동맹 파기에 대한 공포는 미국이 우리의 구세주라는 숭미적 맹종에 뿌리를 둔다. 그리하여 주인님으로부터 버림받는 ‘고립’에 대한 두려움이다. 하지만 고립은 때로 하나의 당당한 존재 양태가 된다. 메이저 톰은 외부 지상관제소의 명령 없이 스스로의 위치를 결정하겠다는 의지를 표출한다. 동맹의 굴레를 벗는 고립은 진정한 자주를 향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ㅡ 내면의 윤리와 책임으로서의 자주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솔라리스〉의 ‘의식의 바다’가 인간의 내면을 반영하듯, 동맹의 종료는 우리 내부의 생존의지를 시험하는 준엄한 장치다. 주인공 켈빈이 지구로 돌아가지 않는 선택을 하는 것처럼 우리 역시 동맹이라는 익숙한 멍에를 짊어지지 않을 권리가 있다. 자주란 단순히 외부 세력을 몰아내는 행동이 아니다. 스스로의 운명에 대해 책임을 지는 자세와 결기다. 〈솔라리스〉 인물들이 보여주는 윤리적 결단처럼 동맹 파기는 고통스러운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이 우리를 ‘동맹의 찌꺼기’로부터 ‘역사의 주체’로 다시 세울 수 있다.

 

ㅡ 침묵과 동의: 세계와의 새로운 관계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서 뫼르소는 세계의 의미를 강요하는 세상의 요구에 응답하지 않음으로써 자유에 도달한다. 우리는 동맹이 강요하는 끊임없는 ‘임무 완수’와 ‘가치 증명’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제 사회의 비정한 침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해방의 시작이다. 국가의 자유란 더 이상 강대국의 동의를 받을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세계가 우리에게 결코 우호적으로 응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떻게 소화해낼 것인가의 문제다.

 

ㅡ 귀환 없는 자주, 인간 이후의 조건

『길 위에서』로 시작된 여정은 동맹의 파기와 고립을 거쳐 진정한 해방으로 귀결된다. 이 과정은 국가의 자유를 외부의 승인과 보호로부터 내부의 자주로 이동시킨다. 그러나 진정한 자주는 동맹 이전의 과거로 귀환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겐 귀환할 과거도 없다. 뫼르소가 세계에 동의하되 사회로 복귀하지 않듯, 우리도 탈동맹 세계에서 새로운 위치를 모색해야 한다.

 

자주는 안락한 보호막으로의 귀환을 결코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러한 귀환 불가를 단언하는 비장한 각성이다. 세상은 항상 과도하게 밝거나 지나치게 넓다. 뫼르소가 느끼는 부조리다. 하지만 우리는 그 앞에서 변방화 될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스스로 살아갈 자리를 결정해야 한다. 더 이상 동맹이라는 체제에 우리 운명을 맡기면 안 된다. 바로 그 독립성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한 차원 더 자유롭고 선진화된 진짜 대한민국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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