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경렬(전 주앙골라 대사)
등록일 : 2026.03.30
공식 참전을 선언한 예멘 후티군대.png
공식 참전을 선언한 예멘 후티군대.

 

전쟁은 언제나 두 겹이다. 하나는 폭격과 보복이 불꽃을 튀기는 눈앞의 물리적 충돌이고, 다른 하나는 막대한 전쟁 비용을 과연 누구에게 떠넘길 것인가를 두고 벌어지는 소리 없는 쟁탈전이다. 지금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과 주변 세력을 상대로 벌이고 있는 전쟁 역시 이 비겁한 공식을 따르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걸프협력회의(GCC) 국가들에게 전쟁을 계속하려면 약 5조 달러, 멈추려면 그동안 이룬 것의 대가로 2조 5천억 달러를 내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 이란전쟁은 겉으로는 군사 작전을 표방하지만 실상은 전 세계 에너지 시장과 경제를 볼모로 잡는 인질극에 가깝다. 이 전쟁의 본질은 누가 더 많은 미사일을 쏘느냐가 아니라, 제멋대로 벌여놓은 전쟁의 청구서를 끝내 누구의 주머니에 찔러 넣느냐에 있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꼬임에 빠져 이번 전쟁을 한 번의 결정적인 타격으로 끝낼 수 있으리라 낙관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들의 오판을 비웃듯 정반대다. 미국은 대외적으로 지상군 투입 없는 제한전을 공언하면서도, 실제로는 해병대와 82공수사단 증파를 추진하면서 이란 본토에서의 지상전 옵션까지 만지작거리고 있다. 종전 협상을 구걸하면서 확전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는 애초의 구상이 완전히 헝클어졌음을 자인하는 고해성사다. 한편 개전을 기획한 장본인 이스라엘은 협상국면이 펼쳐지지 않도록 노골적으로 방해하고 있다.

 

미국은 항공모함 전력의 운용에서도 초조함을 드러낸다. 제럴드 포드호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부시호의 긴급 파견을 준비하는 등 중동 수역에 항모 전력을 겹겹이 쌓아 올리고 있다. 이미 압도적인 전력이 배치된 상황에서도 또다시 빈틈을 막으려 급급한 모습은 화력의 과시라기보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전쟁이 주는 불안감을 가리려는 몸부림일 수밖에 없다. 800만의 미국 시민들은 어제 미국 전역에서 트럼프와 그의 행정부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작전은 더욱 발악에 가깝다. 남부 레바논을 깊숙이 압박하며 리타니강까지 이어지는 새로운 완충지대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그 과정에서 교량과 도로, 의료 체계와 언론 현장까지 무차별적인 타격 대상이 되고 있다. 100만 명이 넘는 주민들이 대규모 피란에 나섰고, 국제기구들은 민간 피해와 의료 시스템의 완전한 붕괴를 경고하고 있다. 이러한 군사적 폭주는 적대의 사회적 기반을 넓혀 전쟁의 끝을 더욱 멀리 밀어낼 뿐이다.

 

전쟁은 이제 이란과 이스라엘이라는 두 나라만의 울타리를 넘어섰다. 이란의 친구들인 이라크 인민동원군(PMF),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가 각자의 전선에서 유기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전쟁은 통제 불가능한 다면전으로 치닫고 있다. 언론은 친이란 세력들의 공격 수위가 전면적 지역 확전으로 번질 수 있는 단계까지 올라갔다고 전한다. 후티는 3월 28일 이스라엘 본토 공격을 공식화하며 판을 키웠다. 전선이 사방으로 흩어질수록 ‘승리’라는 기준은 모호해지고, 전쟁의 비용을 분담해야 할 주체들 역시 연막 뒤로 교활하게 숨어들기 마련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적 우위가 아니다. 정작 중요한 질문은 “그들이 이 전쟁을 끝낼 능력이 있는가”이다. 두 나라 모두 이 질문 앞에서 고개를 돌리고 있다. 미국 정보 당국조차 이란 미사일 전력의 작은 부분만을 파괴했을 뿐이라며 고개를 내젓고 있다. 공습의 강도와는 무관하게 이란의 보복 능력은 여전히 시퍼렇게 살아있다는 뜻이다. 상대의 숨통을 끊었다고 승전보를 울리기에 이란의 저항력은 너무도 견고하다.

 

실제로 이란의 반격은 결코 체면치레에 그치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마천루가 불타오르고 걸프 지역의 모든 미군 시설은 복구할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었다. UAE와 사우디아라비아 내 미군 기지는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받아 부상자가 발생했다. 서방 언론들이 이란의 피해만을 부풀려 보도하고 있을 때 막상 미국과 이스라엘은 골병이 들고 있었다. 이란이 호르무즈를 봉쇄하고 예멘의 후티가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압박하며 전 세계 물류의 목줄을 죄는 상황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이 설령 일부 전장을 장악한들 그것은 승리가 될 수 없다. 패배는 이미 정해졌다.

 

이 대목에서 세계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미국과 이스라엘의 무모한 전쟁 때문에 다른 나라들이 평안한 삶의 요동과 경제적 비용의 폭등을 감내해야 하는가. 호르무즈와 바브엘만데브의 통항이 얼어붙고 에너지 수송로가 흔들리는 충격파는 곧바로 서울과 도쿄, 베를린의 평범한 시민들에게 전달된다. 특히 한국처럼 에너지와 해상 물류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경제는 더욱 취약하다. 전쟁의 방아쇠는 워싱턴과 텔아비브가 당겼는데 그 청구서는 왜 아무 상관없는 전 세계 소비자와 기업들이 나눠 짊어져야 하는가.

 

이번 전쟁은 시작부터 ‘사후 책임’에 대한 일말의 설계도 없었다는 점에서 극도로 무책임하다. 미국은 군사적 압박과 협상을 병행한다지만 실상은 병력과 항모를 증강하면서 상대의 항복만을 강요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안보를 핑계 삼아 레바논과 이란을 폐허로 몰아넣고 있다. 이런 식의 전쟁은 처음엔 ‘억제’라는 고상한 이름으로 불리지만, 시간이 흐르면 결국 ‘비용의 외주화’라는 추악한 본색을 드러낸다. 자신들이 저지른 사고의 뒷감당을 시장의 혼란과 제3국의 희생으로 메우려 하는 것이다. 비열한 구조다.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한다. 무도한 전쟁을 벌인 쪽이 모든 비용을 전적으로 부담해야 한다. 국제정치의 최소한의 책임 원리다. 전쟁으로 이란의 민간 시설과 사회 기반이 파괴됐다면 미국과 이스라엘은 그에 상응하는 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해협의 안전 확보와 항로 복구에 드는 막대한 비용은 물론이고, 호르무즈와 바브엘만데브 해협에 통항료가 부과될 경우 이 역시 전쟁 개시국에 전액 부담 지워야 한다. 남이 벌인 불장난의 뒷정리를 세계가 무기력하게 대신해주는 부조리한 구조는 수용할 수 없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전쟁을 이길 수 없다. 군사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전쟁의 끝을 설계하지 못한 채 무모하게 시작했기 때문이다. 상대의 능력을 과소평가했고 세계가 입을 경제적 타격을 부수적 피해쯤으로 여겼다. 전부 책임을 져야 한다. 아울러 트럼프는 중간선거 후 탄핵을 받아야 하고, 네타냐후는 국제형사재판소의 반인도 범죄 심판을 받아야 한다. 지금 중동에서 타오르는 불길은 단지 전장의 불길이 아니다. 잘못된 나라가 시작한 전쟁의 비용을 먼 나라들이 치르는 국제질서의 악습에 붙은 불이다. 철저히 밟아 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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