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장민(정치경제학연구소 프닉스)
등록일 : 2024.05.21
범민련 남측본부, 해산과 함께 ',한국자주화운동연합',(가칭) 결성 결의.jpg
2024년 4월17일 범민련 남측본부는 해산과 함께 ' 한국자주화운동연합' (가칭) 결성 을 결의했다.


I. 서론 : 남북 통일운동의 관계에 있어 문제점

 

이글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외국의 경우 같은 민족 혹은 인접국 사이에는 어떻게 평화공존과 자유교류가 정착됐는지 살펴본다. 

둘째, 한반도에서 평화통일과 평화공존을 실현하는 조건은 이것과 어떻게 다른지를 살펴본다.

셋째, 북조선이 평화통일 노선을 폐기한 것이 일시적 전술인지, 아니면  돌이키기 힘든 전략인지를 살펴본다. 


넷째, 동독, 북조선과 같이 분단된 사회주의 국가에서 민족 개념의 변화에 따른 통일 노선의 변화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한다. 

다섯째, 북조선과 달리 남한이 평화통일 노선을 폐기했다가 필요하면 다시 채택하는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연구한다. 

 끝으로, 북조선과 구별되는 남한 사회의 독자적인 정치 경제 사회적 조건에 입각하여, 북조선과 차별화되는 구체적인 평화공존 혹은 통일운동 방향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II. 평화통일은 전술인가

 

1. 평화통일과 평화공존의 해외사례

 

유럽은 민족과 국가형성 과정에서 수많은 전쟁을 거쳤다.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으로 오늘날 유럽의 민족과 국가가 대부분 형성되는 평화체제를 구축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1866년 전쟁 이후 서로 분리돼 평화조약을 체결하였으며,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병합한 적이 있었지만 2차 대전 이후 평화공존을 하고 있다. 오늘날 유럽연합이 하나의 공동체로 나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민족통일이란 문제가 나올 수 없다. 

 

',국제법 출발점',이 된 베스트팔렌 조약.png.jpg
"국제법 출발점"이 된 베스트팔렌 조약 (1648년)

 

미국은 1775년 독립전쟁 당시 캐나다에게 “영국의 식민지가 아니라 미국과 통합된 아메리카 제국을 건설하자.”라고 하면서 통일전쟁을 도발했다. 미국은 1812년 영국과 전쟁을 하면서 캐나다를 침공하는 등 캐나다 병합을 포기하지 않았다. 미국과 영국의 식민지 캐나다는 1846년 오리건 평화조약을 통해 전쟁상태를 끝내고 상호 체제를 존중하기로 했다. 하지만 미국과 캐나다 사이에 국경 분쟁이 이어지고, 그때마다 미국은 캐나다 병합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았다. 

 

미국은 1859년부터 12년 동안 샌환제도(San Juan Islands)에서 영국군과 대치한 끝에 결국 이 지역을 병합시켰다. 남북전쟁이 끝난 직후 1866년 아일랜드계 퇴역군인을 중심으로 결성된 페니언형제단 3천여 명이 미군 군복을 입고 영국령 캐나다를 침공하였고, 미국 정부는 이들을 사실상 지원했다. 결국 영국이 1867년 캐나다를 독립시키면서 미국에게 침략명분을 주지 않았다. 이후 미국과 캐나다는 평화공존과 자유왕래를 정착시켰다.


2. 한반도에서 남북 2개 국가 평화공존의 허구성

 

남북이 가야할 길은 하나의 민족으로서 평화 통일이 되거나, 각각 존재하면서 평화공존과 자유교류를 실현하는 것이다. 남북의 무장상태와 북미의 핵무기를 고려하면 전쟁에 의한 통일은 실현가능한 선택이 아니다. 전쟁은 논외인 것이다. 통일반대론자들은 같은 민족인 게르만족은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 여러 나라로 분리돼 평화롭고 유럽연합 이후 국경도 사라져 게르만족이 살아가는데 불편이 없으니 남북이 굳이 통일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미국과 캐나다가 같은 영어권이 민족 성분도 비슷한데 통일되지 않고 불편 없이 잘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반도가 분단된 것은 일제의 식민지정책과 미소의 분할 통치 때문이다. 그리고 한반도에서 평화와 평화통일이 실현되지 못하는 이유는 남북이 서로 다른 체제이므로 상대방을 흡수하려는 체제경쟁을 한다는 점, 미국이 한미동맹과 한미연합사령부 및 유엔사령부를 통해 남한을 지배하면서 중러를 견제하는 군사기지로 삼고자 전쟁을 종결하는 평화협정(조약)을 거부하고, 한반도에서 군사긴장과 분단을 고착화시키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도 통일국가의 불투명한 위상 때문에 분단 상태에서 전면전이 발생하지 않는 현재의 한반도 상태를 선호한다. 특히 미국이 군사긴장과 분단정책을 포기한다면, 남북은 이미 다른 체제이지만 상호간의 존중과 공존을 약속했기 때문에 체제의 이질성으로 인한 불안요소를 극복할 수 있다. 체제이질성은 미국의 군사지배정책이 폐기된다면 점차 극복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정도가 다를 뿐 북 역시 외부의 위협이 없다면 중국 및 베트남의 사례에서 보듯이 유연한 체제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950년 시작된 전쟁을 종식시키고, 군사적 대결을 강요하는 미국의 정책을 폐기하지 않는 한 통일은 물론 평화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통일할 필요 없이 남북이 평화롭게 살면 된다는 주장은 현 상태에서 불가능하다. 남북 2개 국가가 평화공존을 하려면 종전조약을 통해 상호 체제를 인정하는 외교관계를 수립하여 전쟁의지를 포기하고 육지의 군사분계선과 해상의 북방한계선 대신 국경을 확정해야 한다. 

 

미국, 중국, 북조선의 군대 사령관이 전쟁을 일시적으로 중단시키는 정전협정을 정전 3개월 안에 국가 간의 종전조약을 협상하도록 했으나 이행되지 못했다. 1954년 제네바회담에서 소련, 중국, 북조선은 종전조약을 제안했지만 미국의 국무장관인 존 포스터 덜레스가 협상을 거부했다. 남한은 북조선을 타도해야 할 불법정부로 규정했으며, 미국은 소련이 북조선을 괴뢰국가로 만들고자 한다며 한국의 입장을 지지했다. 이후에도 미국은 평화협정(조약)을 체결하기 위한 협상을 거부해오고 있다.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정전협정 한글본. 한국일보 자료사진.png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유엔군 수석대표 윌리엄 해리슨 중장(왼쪽 앉은 이)과 북한측 수석대표인 남일(왼쪽 앉은 이) 대장이 휴전협정에 서명하고 있는 모습

 

결국 남북 간의 평화통일을 달성하던지 평화공존을 달성하던지 두 경우 모두 체제이질성과 군사대결을 극복해야 가능한 것인데, 미국이 이를 반대하고 있다. 즉 평화통일의 조건과 평화공존의 조건이 동일하므로 이 조건이 성사되지 않는 한 둘 다 불가능하다. 결국 평화공조 운동과 평화통일 운동의 구체적인 경로는 전쟁종식, 상호체제 인정과 불가침 선언 등 동일하다. 이러한 평화가 구축돼야 이후 평화공존을 하던지 나아가 평화통일 논의를 하던지 가능한 것이다. 


III. 북조선의 평화통일 포기는 전략인가?

 

1. 동서독의 사례

 

독일공산당은 분단 직후 미군 철수, 평화협정 체결, 미국 주도 유럽동맹 반대, 저항권과 선거를 통한 친미정부 전복을 주장했다. 또한 독일공산당은 동독을 통일국가의 표본으로 삼았고 자유선거를 통해 이를 선택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독일공산당은 동독 집권당이 주도하는 민족전선(Volksfront)에 가입했다.

 

독일공산당은 통일이 된 이후에도 당분간은 의회주의적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존속할 것이며, 이 문제는 자유선거를 통해 선출된 전 독일을 위한 국회의원들이 결정할 사항이라고 봤다. 독일공산당은 자신의 집권 혹은 통일국가의 정부에 있어 연립정부의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브란트 수상은 지붕역할을 하는 형식적인 전체 국가 아래 동서독이 실질적인 국가로서 존재한다고 봤다. 반면 동독의 울브라히트 수상은 독일국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양독은 별개의 국가라는 1민족 2국가를 주장했으며, 이런 입장을 반영하여 68년 헌법은 통일의 방식으로서 국가연합을 상정하였다. 나아가 호네커는 사회주의 민족개념을 도입하여 2민족2국가로서 헌법의 통일조항을 폐기했다. 

 

브란트 수상은 동방정책을 추진하여 1970년 8월 12일 소련과 불가침조약을 맺었으며, 12월 7일에는 폴란드와 불가침조약을 체결하여 오데르 나이쎄선 국경을 인정하였다. 또한 1972년 11월 9일 기본조약의 가조인의 국제적 난관을 없애기 위해 전승 4대국 회의를 열게 하였다. 이 회의에서 4대국은 “4대국의 전 독일에 대한 권리와 책임은 동서독의 기본조약체결과 유엔 동시가입 이후에도 존속하며, 제2차 세계대전의 전승국과 독일 사이에 평화조약이 성립될 때까지 독일과 서베를린에 관한 처리는 유보된다.”고 선언하였다.

 

1972년 ‘양 독일 관계의 기초에 관한 조약’(기본조약)은 양독 상호간의 독립과 주권을 인정하여 실질적인 1민족 2국가 인정되었다. 1973년 양독은 유엔에 동시에 가입했으며, 이후 양독 사이에 17개의 조약이 체결되었다. 또한 교류가 급증하여 1982년까지 3만명의 동독인이 서독으로 이주하였다. 

 

동서독 기본조약 체결(1972.12.21) - 동베를린 개최 회담에서 서독 에곤 바 수상실 장관과 미카엘 콜 동독 각료회의.png
동서독 기본조약 체결(1972.12.21) - 동베를린 개최 회담에서 서독 에곤 바 수상실 장관과 미카엘 콜 동독 각료회의
국무차관 간에 기본조약이 체결되었다.

 

1989년 가을 소련이 독일통일에 대해 무력행사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하였다. 1990년 1월 양독과 4대국이 회의를 열어 양독의 자결권을 인정하였다. 이들 외무장관들은 2월 13일 오타와 외무장관 회담에서 통일조약을 승인하고 통일독일의 주권을 보장하는 대신 나토의 잔류를 합의하였다. 

 

1990년 5월 18일 동독의 3월 18일 총선결과에 힘입어 제 1차 국가조약인  ‘화폐 경제 사회동맹을 창설하는 조약’이 체결되었다. 이에 따라 동독의 경제헌법이 실효되고 서독의 사회적 시장경제제도가 도입되었다. 또한 양독 마르크를 1대 1로 교환했으나, 결과적으로 서독의 상품이 동독에 범람하고 동독의 물가가 상승하는 부작용이 발생하였다. 8월 3일 양독의 연방의회 구성을 준비하기 위한 선거조약이 성립됐으며, 8월 23일 동독 인민의회회의는 기본법 23조에 따라 서독에 편입하는 것을 의결하였다. 

 

8월 31일 제2차 국가조약인 ‘독일 통일 달성에 대한 독일연방공화국과 독일민주공화국간의 통일조약’이 체결돼 동독헌법은 실효되고, 서독의 독일민주공화국으로 흡수되는 통일이 완성되었다. 통일조약은 기본법 개정의 효력이 있어 기본법 개정의 절차에 따랐다. 9월 12일에는 2+4 국가들간에 ‘독일과 관련한 종결 규정에 관한 조약’이 체결됐으며 이는 현 영토 확인과 무력포기, 대량살상무기 포기, 34만 5천 병력유지, 소련 철군 등을 포함하였다.


2. 북조선의 평화통일 노선 후퇴

 

북의 입장변화는 2024년이 아니라 그 전에 핵무기를 완성해 가는 과정에서 형성돼 왔다. 미국에 의해 강제되는 전쟁상황을 근본적으로 전환하기 위해 핵 무력과 경제건설이라는 병용노선을 채택했다.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는 2013년 3월 새로운 국가전략인 '핵·경제 병진노선'을 채택했다. 5년 후 2018년 4월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병진노선의 성공을 선언하고 '사회주의 경제건설'을 새로운 전략으로 채택했다. 즉 핵무장으로 안보 문제를 해결한 상태에서 인민들의 삶 문제에 주력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내부 전략에 따라 대남전략, 대미전략도 수정됐다. 2021년 노동당 규약에 따르면 조선로동당은 남조선에서 미제의 침략무력을 철거시키고 미국의 정치군사적 지배를 청산하며 강력한 국방력으로 군사적 위협들을 제압하여 조국의 평화통일과 민족의 공동번영을 이룩하기 위하여 투쟁한다. 2010년 규약에 있던 “일본군국주의의 재침 책동을 짓 부시며 사회의 민주화 생존의 권리를 위한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을 적극적으로 지지성원하며” 부분이 삭제됐다. 

 

또 ‘우리 민족끼리’라는 표현을 삭제하고 ‘강력한 국방력으로 평화통일을 앞당기겠다’는 표현을 추가했다. 북이 핵무기-경제건설 병진노선에 따라 핵무기 개발을 완료하고 실전에 배치함으로서 미국과의 전쟁공포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 핵무기를 지렛대로 삼아 주한미군 철수 나아가 통일까지 북미협상으로 이뤄내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이와 함께 2021년에는 외무성 산하 조국통일국이 폐지됐으며, 노동당 통일전선부가 대남사업을 중단함으로서 민경련과 민화협도 폐지되고 6·15공동위와 아태평화위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게 됐다. 

 

북조선의 태도변화는 통일문제보다는 미국과 핵 대결을 통해 안보문제를 풀고 내부 건설에 주력하겠다는 의지라고 볼 수 있다. 월간조선(2021.08)에 따르면 조선노동당의 규약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와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 부분이 삭제된 것에 대해 이종석과 정세현 두 통일부 장관,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연구센터장은 북이 대남혁명을 포기했다고 평가했다. 

 

2024년 초 북조선의 입장변화는 남한과 더 이상 평화통일 논의를 하지 않겠다는 점, 2개 국가로서 서로 교전국의 지위를 갖는다는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23년 12월 31일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 남북 관계를 동족이 아닌 ‘적대적이고 교전 중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했으며, 지난 1월 열린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서는 “헌법에 있는 ‘자주’, ‘평화통일’, ‘민족 대단결’이라는 표현들이 이제는 삭제돼야 한다고 본다”고 말한 바 있다. 북은 이런 입장변화에 따라 남한에 대해 대한민국, 한국이라는 국호를 공식으로 사용했다. 호칭변화는 남한의 자주계열도 그래도 답습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제8기 제9차 전원회의 2일차인 27일 회의.jpg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23년 12월 27일 노동당 제8기 제9차 전원회의 에서 "2024년도 투쟁방향에 대한 강령적인 결론을 했다"고 조선중앙TV가 보도했다

 

이날 회의는 '당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를 비롯한 대남사업 부문의 기구들을 정리, 개편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며 근본적으로 투쟁원칙과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실제로 북조선은 1월 12일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 조국통일범민족련합 북측본부, 민족화해협의회, 단군민족통일협의회 등 평화통일 담당기구를 정리했다. 노동당 통일전선부는 주요 기능을 외무성과 군 정찰총국으로 이관하는 등 축소 개편되고 있다. 2024년 1월 15일 제14차 최고인민회의 제10차 회의에서 조선조국평화통일위원회, 민족경제협력국, 금강산국제관광청 등 국가가 담당하는 통일 및 교류 기관을 폐지하기로 했다. 조국전선도 폐지하기로 했다. 


3. 사회주의민족 개념과 통일 노선의 변화

 

민족은 동질성과 동등성을 기반으로 한다. 동질성에 포함되는 것은 신체구조와 언어 같은 인종적 특성, 문화와 경제의 공동체, 동일한 지역기반 등이다. 유대인처럼 각지에 흩어져 있더라도 이스라엘과 같은 하나의 조국 혹은 가나안 지역처럼 하나의 향토를 가질 수 있다. 동등성은 민족공동체 안에서 무차별적인 형제애, 자매애로서 평등성이며 주로 신분적 평등, 형식적 평등을 의미한다. 

 

유럽의 경우 영토, 주권, 국민이라는 동질성은 근대 부르주아 형성기인 절대왕정시대에 형성됐다. 동등성은 부르주아 국가 시기에 국민의 개념과 함께 확립됐다. 한국, 일본과 같은 농경정주 국가의 경우 동질성의 역사는 고대국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동등성은 유럽과 마찬가지로 근대 부르주아 국가 시기에 완성됐다. 중세시기에는 신분에 따라 언어와 법률이 다르고 신분적 종속관계가 남아 있어, 민족공동체 내에 형식적 평등이 존재하지 않았다. 

 

자본주의 민족개념이 신분적 차별을 철폐했지만 경제적 차별은 수용하고 있다. 계급대립이 소멸된 사회주의국가에서 민족개념을 새롭게 정립했다. 중국은 한민족이 다른 민족을 지배하는 과거의 민족개념에서 중국사회주의 국가 내 구성원 전부를 중국사회주의민족에 포함시키는 새로운 민족개념을 정립하고자 한다. 중국은 고구려 등 한반도 북부 및 만주의 역사를 중국 역사에 포함시키는 동북공정을 비롯하여, 중국 변방의 역사와 소수민족을 중국의 역사와 중국사회주의민족에 포함시키는 다양한 공정사업을 해오고 있다. 동독의 경우 서독이 통일정책으로 압박해 오자, 동독은 사회주의민족이므로 서독과 민족이 달라 1민족1국가 논쟁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즉 통일이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북은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부터 북을 김일성 민족, 혹은 태양민족이라고 호칭하고 있다. 북이 아직까지는 남북을 포함한 한민족 혹은 조선민족을 김일성 민족, 태양민족으로 호칭하고 있으나 만약 남을 김일성민족 태양민족에서 제외한다면 남북은 민족이 다르므로 통일이 아니라 2개의 국가로 남아야 한다. 

 

2024년 1월 15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 따르면 조선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북조선은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 평정, 수복하고 공화국령역에 편입시킨다. 즉 남북이 별개의 국가이므로 통일전쟁이 아니지만 북조선이 남한을 흡수하니 사실상 통일이 되는 것이다. 

 

또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 연설에서 새 헌법 조문에 북반부, 자주와 평화통일 및 민족대단결 등 남북을 동족으로 오인하는 표현을 삭제할 것을 주문했다. 북조선은 특히 이 연설 직후 1월 중에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을 철거했다. '조국통일 3대헌장'은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 7.4남북공동성명의 조국통일3대원칙(1972), 고려민주연방공화국 통일방안(1980),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을 묶은 '민족공동의 통일강령'(1997) 등을 내용으로 한다. 


IV. 남한 통일운동의 운명

 

1. 남한 사회와 통일운동의 상대적 독자성 

 

남북합의서에 따르면 남북은 하나의 민족으로서 통일로 가는 과도기에서 각자 남북에 실질적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특수한 관계이다. 남북은 과거에 하나였고 미래에도 하나가 돼야 하지만 이질적인 체제 아래 80여 년을 따로 살아왔다. 남북은 한민족이라는 울타리에 속해 있지만 그 울타리 안에서 남북의 조건은 다르다. 남북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구조로 다르고 계급구성도 다르므로 사회모순과 과제 및 해결방법도 다르다. 당연히 남북이 평화공존 혹은 평화통일로 나아가야 하나, 그 경로와 방법이 동일할 수 없다. 따라서 북조선이 제기하는 과제는 북조선의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므로 북조선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을지언정, 북조선의 과제와 해결방법을 그대로 남한에 적용할 수 없다. 따라서 평화공존과 평화통일의 공동의 목적이 동일하더라도 북조선의 주장을 그대로 남한에서 적용할 수 없는 것이고, 남한은 남한의 상황을 반영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북조선은 수령 중심의 당과 인민의 일체를 강조한다. 따라서 각종 법률과 헌법은 물론 조선노동당 강령까지 조직적 논의를 통해 상황에 맞게 일사불란하게 조정한다. 집단주의 사회로서 의사결정과 조직행동의 유연성을 발휘하고 있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미래에 세계정세와 남북미 정세의 변화에 따라 남북통일과 남북미 관계에 대해 급격한 입장변화를 취할 수 있다. 

 

하지만 남한은 각 조직과 개인의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기 때문에 남한 전체가 하나의 조직처럼 의사결정과 조직행동을 일사불란하게 할 수 없다. 노선과 정책을 정하는 것도 어렵고 그것을 수정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북이 정세에 따라 평화통일정책을 취했다가 폐기하고 다시 취할 수 있지만, 남한이 평화통일노선을 폐기한다면 다시 채택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설사 그런 결정을 일부 단체들이 한다고 해도 그 결정을 대다수가 따르기 어렵고 조직행동도 갑자기 변화되기 어렵다. 

 

남한 평화통일노선과 조직을 폐기한 후 정세 변화가 생길 때 역량 손실 없이 과거의 평화통일 역량을 회복할 수 없다. 기존의 평화통일단체를 갑자기 해산하고 다른 대안단체를 만든다면, 대다수의 동의를 얻기 힘들고 과거의 동력을 새로운 대안단체나 대안운동으로 손실 없이 가져가기도 어렵다. 따라서 남한의 평화통일단체는 북과 달리 평화통일노선의 폐기에 대해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2. 통일운동단체의 발전적 해체

 

북조선이 평화통일 논의를 중단한다는 것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목표로 하는 민족공동위원회로 발전할 수 있는 각종 남북해외의 협의체를 해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6.15남측위원회가 1월 31일 총회를 통해 운동방향과 조직의 변화를 확인하고 올 상반기 내에 새로운 연대조직을 내오기로 했다. 6.15공동선언실천 해외측위원회는 3월 12일 임시위원장회의를 열고 조직을 해산하고 각 지역, 단체마다 특성을 살려 반미, 반일, 반윤석열 투쟁을 전개해나가기로 했다.

 

범민련 남측본부는 2월 17일 총회에서 해산을 결정하고 한국자주화운동연합(가칭·자주연합)을 결성해 사업을 계승하기로 했다.  4월 26일 범민련 해산 당시 선임된 '새조직 건설을 위한 수임기구' 4명의 준비위원들이 '반미·반제'를 기본 과제로 하는 새로운 전국적 운동조직 건설에 대해 단체 참가자들에게 공식 제안하는 간담회를 열었다. 


북이 교전상태임을 확인함에 따라 당분간 종전을 위한 평화협정 논의도 중단되기 때문에 남한의 평화협정운동본부는 미군철수운동본부로 개칭됐다. 


3. 자주화 운동의 내용과 목적 그에 따른 자주전선 구축

 

1) 자주화 운동의 내용과 목적

 

통일운동.jpg
2001년 8.15민족통일대축전때  평양시내를 행진하는 남북노동자 3단체(한국노총·민주노총·조선직업총동맹)

 

인민대중의 자주란 노동자민중의 계급적 억압으로부터의 해방과 전 계급적인 전 계층적인 민족의 외세로부터 해방과 민족해방의 귀결로서 민족통일국가의 수립이다. 발전된 자본주의 분단국가로서 남한에서 인민대중의 자주란 조직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노동자민중의 자본주의 변혁이며, 역시 조직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노동자민중의 평화통일의 실현이다. 

 

최근의 입장변화는 평화통일을 평화공존으로 대체할 수 있냐의 문제이다. 북조선의 최근 입장은 남북이 별개의 국가로서 평화공존을 해야 하나 적대적인 교전관계에 있다는 것이고, 원하지 않는 전쟁이 발생하면 남한을 정복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북의 입장 변화가 남한의 평화통일운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남한의 평화통일운동단체들은 그 명칭과 목적에서 통일을 빼고 평화공존과 평화통일을 가로막는 장애들을 철거하는 자주화운동을 전면으로 내세울 전망이다. 그 핵심은 미국의 한반도 지배정책과 군사긴장 정책, 구체적으로는 한미동맹과 한미일 군사공조에 대한 반대, 주한미군철수운동이다. 구호로서는 온건한 반전평화와 급진적인 반미반제이다. 온건한 반전평화 관점에서는 북미평화협정이 중요한 경로가 되지만 반미반제의 경우 북의 핵 역량을 강조하면서 힘에 의한 미국 등 제국주의 세력의 축출을 주장하면서 상대적으로 협상을 전제로 하는 평화협정 목소리를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자본주의 사회변혁과 반미를 중심으로 한 반제국주의 투쟁의 관점에서, 무조건 모든 전쟁에 반대하고 이유 불문하고 평화를 절대선으로 내세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점에서 과거 대부분의 자주계열은 “반전평화 슬로건이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남한에서 반전평화 슬로건은 실천적으로 반미반제로 귀결되고 대중적인 포섭력이 반미반제보다 강하기 때문에 일부 자주계열이 이러한 온건한 슬로건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문제는 반미반제이든 반전평화이든 이러한 자주화 자체가 한반도에서 노동자민중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노동자민중의 궁극적인인 목적은 낮은 차원에서 남북의 평화공존, 공동번영이고 높은 차원에선 평화통일이다. 따라서 자주화란 남북의 공존, 번영,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경로이자 중간 목적이라고 볼 수 있다. 


2) 자주전선으로서 대중투쟁 전선과 정치전선

 

첫째 자주화를 실현하기 위한 노동자민중 투쟁전선이 구축될 전망이다. 주로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준비해 오던 남북해외로 구성된 평화통일단체들이 발전적인 해체를 하고 새로운 자주전선을 형성하는 것이다. 

 

둘째 민주주의와 자주화를 실현하기 위한 대중 투쟁전선이 재정비될 전망이다. 평화통일 노선의 위상 변화와 새로운 노동자민중 중심의 자주적인 투쟁전선이 형성됨에 따라, 이를 포용할 수 있도록 주체와 요구 측면에서 좀 더 포괄적인 대중 투쟁전선을 정비하고 확대하는 것이다. 민중연대, 진보연대, 민중공동행동 등 갈수록 유명무실해진 상설적인 투쟁공동체가 활성화되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 

 

셋째는 과거 민주노동당처럼 노동자민중의 자주적 권력을 창출하기 위한 진보적 정치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다만 대중적 진보정당으로서 민주노동당이 정파연합당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교훈에 비춰 단일정당보다는 연합정당 형태로 시도될 것으로 보인다. 연합정당이라도 원내 정당으로서 구심정당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과거 원내 진보정당인 정의당이 하지 못했던 구심 역할을 새로운 원내 진보정당인 진보당이 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통일선봉대.jpg
민주노총  산하의 노동자 통일선봉대

 

진보당은 민주주의와 자주를 내걸고 민주당과 사안별 연대를 하면서 노동과 자주를 기반으로 하는 정치노선을 강화하여 궁극적으로 진보연합정당의 주축이 돼야 한다. 진보연합정당은 과거 민주노동당처럼 “노동자민중을 중심 주체로 삼아 우리사회의 자주와 평등을 실현하겠다.”는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한다. 진보연합정당은 후기자본주의 사회와 저출산고령화사회의 다양한 계층의 요구도 반영해야 하지만 자주와 평등이라는 기조를 중심에 두어야 한다. 

 

진보당은 정의당 괴멸 이후 원내에서 진보정치의 대표주자로서 역할을 자임하던지 민주당과의 밀월관계를 강화하여 제도적 기득권을 구축하는 갈림길에 있다. 진보당의 우경화는 인천연합이 통합진보당을 집단 탈당하여 자유주의 세력과 원칙 없는 혼성정당을 만들고 의회정치로의 몰입 끝에 노선적으로 파탄나고 조직적으로 붕괴되는 전철을 밟을 수 있다. 

 

진보당이 3석을 얻은 것은 스스로의 노력은 기본이지만 노동자민중의 투쟁과 지원의 성과이다. 2012년 촛불집회 이후 반이명박전선의 요구가 전면적인 야권연대로 나타났고,  2024년 총선에서 박근혜 탄핵 이후 듣보잡 윤석열의 집권과 이에 대한 저항이 야권연대로의 요구와 표심으로 나타났다. 2020년 총선에서는 민주당이 진보당과의 비례연합정당을 반대했었다. 

 

2027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할 경우 2028년 총선에서 여당인 민주당은 국정개혁에 힘을 실어야 한다는 명분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약화시키거나 위성정당을 통해 의석을 독점할 수 있다. 민주당에 의존하는 원내 진출 전술이 위험하다는 것이다. 즉 노동자민중의 단결된 지지를 기반으로 원내에서 독자적인 기반을 확대해야 한다. 

 

진보당이 원내에서 자리 잡으려면 우선적으로 과거 권영길, 노회찬, 심상정 의원의 사례처럼 민중의 호민관으로서 의정활동의 모범을 보여줘야 한다. 기본소득당의 용해인 의원은 이런 측면에서 어느 정도 호평을 얻고 있다. 스타 정치인만으로는 부족하므로 울산과 창원 등 노동자밀집지역에서 독자적으로 당선돼야 하고, 선택적 야권연대를 통해 의석을 확대해야 한다. 또한 국회 내에서 자유주의 정당과 사안별 연대를 하는 조건으로 원내교섭단체 기준을 낮추고, 정당명부 의석을 확대하고, 정당명부 결합제도와 대통령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는 등 노동자민중의 정치적 자주권 실현에 도움 되는 정치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VI. 결론 : 남한 통일운동의 방향

 

남북의 평화공존을 당면한 과제로 삼아 궁극적으로 평화통일을 이뤄 남북이 모두 공동 번영하는 것은 여전히 노동자민중의 이상이다. 노동자민중이 이러한 전 인민적 요구를 지도적 지위에서 대중투쟁과 진보정치를 통해 관철해 나갈 때 자신의 계급적 해방과 자본주의 변혁도 실현할 수 있다. 

 

적대적인 국제정세의 변화와 북조선의 핵무장 완성으로 인해 북조선이 탄력적으로 평화통일 노선을 일시 후퇴시켰다. 남한의 경우 북조선과 같이 노선과 조직을 신속하게 유연하게 변화시킬 수 없다는 점에서 평화통일 노선의 성급한 폐기는 적절하지 않다

 

각 단체의 조건에 따라 낮게는 평화공존, 높게는 평화통일의 목적을 여전히 분명히 해야 한다. 또한 각 단체의 조건에 맞게 반전평화 혹은 반미반제로 슬로건을 조정하되 서로 연대하여 민주주의와 자주화를 실현하려는 폭넓은 대중투쟁 전선을 공동으로 구축하고, 노동자 민중이 주체되는 자주와 평등을 실현하려는 대중적인 진보정치 전선 즉 진보연합정당 건설에 나서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남북해외의 3차 협의체의 재편과 이러한 재편 과정에서 역동성을 기반으로 하는 폭 넓은 상설투쟁체의 확대강화, 진보연합정당을 건설하기 위한 진보당의 원내 독자 기반 구축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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