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 정치세력화 논쟁]
안길성 (노동운동가)
등록일 : 2023.09.07
현대모비스.png
현대 모비스 모듈, 부품사 13개 지회 조합원 400여명이 지난 8월 23일  아산에서 확대 간부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현재 노동자계급은 민주노총 내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분할되어 있다. 그 대표적인 산별조직인 금속노조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 


금속노조의 60%는 한국 자동차시장의 80%를 독점하고 있는 현대차그룹의 노동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현대차그룹의 대표적인 계열사는 현대모비스라 할 수 있는데, 그 정규직들은 현대차지부 모비스위원회와, 경남지부 현대모비스창원지회로 각각 편재되어 있다. 


이와는 별도로 현대모비스의 비정규직들은 아산, 서산, 평택, 화성, 충주, 김천, 천안, 울산, 광주, 경주 등 전국 18곳에 흩어진 채로 해당 금속노조 지역지부 산하 ‘지회’로 편재되어 있다. 지난해 법원에서 현대위아, 현대제철 사내 비정규직들에 대한 불파판정이 잇달으자, 현대차재벌은  현대모비스 비정규직들을 정규직화 시켜준다는 명목으로 본질상 비정규직의 또 다른 형식에 불과한 ‘자회사’로 재편하는 꼼수를 썼다.


 이렇듯 현대모비스 노동자들은 동일한 현대모비스 생산직·물류직 노동자이고 또한 동일한 본조인 금속노조에 소속되어 있음에도, 정규직들로 구성된 현대자동차지부 모비스위원회와 경남지부 현대모비스창원지회, 그리고 비정규직들로 구성된 전국 18곳에 13개 생산직 비정규직(모듈,부품 자회사) 지회와 물류 9개 지회로 분할된 채 이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에는 임단투를 포함한 일상적 교류가 거의 없다시피 한다.


본조인 금속노조 또한 이들에 대해 공동교섭이나 공동요구를 내건 투쟁을 감히 생각도 못하고 있다.  오히려 자본에 의해 억지로 분리된 정규직-비정규직 체계를 그대로 인정한 전제 위에서 형식적인 임단투를 지도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자신들이 금속노조 조직원인 만큼  현대모비스 노동자들은 통상임금의 1%에 해당하는 금속노조 조합비를 매달 꼬박꼬박 내야 한다. 그런데도 이들의 가장 절실한 요구인 정규직-비정규직 간의 차별 해소와 관련해 금속노조가 전혀 기여하는 바가 없기 때문에, 조합원들 사이에선 "내가 낸 조합비가 도대체 어떻게 쓰이고  있는거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위의 현대모비스는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현대차그룹 내의 다른 계열사인 현대위아, 현대글로비스, 현대트랜시스 등의 사정도 비슷하다. 현대차지부 내에서조차 비정규직 3지회(울산, 아산, 전주)는 금속노조 지역지부인 금속노조(본조), 금속노조충남지부, 금속노조전북지부에 각각 소속되어 해당 조직들이 이들을 따로 관리한다. 그 때문에 현대차지부와는 의미있는 연대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으며, 그렇다고 해서 금속노조 본조 차원에서 양자 간 깊이 있는 교류나 공동투쟁을 매개하는 것도 아니다. 현대차 계열사들의 상황이 이러할 진대 2차 밴드, 3차 밴드에 속하는 일반  하청부품사 비정규직들의 상황은 더욱 말할 나위가 없다. 


민주노총 산하의 다른 산별 조직들도 사정은 금속노조와 비슷하다. 예컨대 공공운수노조나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의 경우도 정규직과 비정규직들이 서로 별도의 조직체계에 속한 채,  상급조직은 이들의 임단협을 형식적으로 개별 지도한다.  당연히 각자의 요구에만 매몰될 뿐, 이들의 근본적 이해를 반영하는  요구를 도출할 수 없다.


그렇다면 과연 금속노조나 민주노총이 앞으로 시간이 가면 점차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 갈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을까?  아래 금속노조의 예를 보면 그런 기대가 난망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금속노조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전략적 연대를 성사시키는 관건은 ‘기업지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현대-기아차, 현대중공업과 같은 전략사업장의 ‘기업지부’들이 금속노조 중앙교섭에 참여해야만 이 같은 차별의 원인 제공자인 대자본(재벌)을 상대로 직접 교섭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열쇠를 쥐고 있는 이들 대기업 ‘기업지부’들은 중앙교섭에 불참함으로써, 원청 대자본(재벌) 또한 산별교섭을 회피할 수 있는 좋은 핑계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의 금속노조 중앙교섭 의제는 기껏해야 하청 중소부품업체 수준에 맞춰질 수밖에 없었으며, 금속산업 전체의 임금격차나 신분차별 문제는 애시 당초 제기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 같은 '기업지부 문제'는 지금으로선 좀처럼 해결될 전망이 없다. 지난해 금속노조는 내부적으로 ‘조직혁신토론’을 전개하였는데, 이 때도 물론  ‘기업지부 해소’  문제가 안건으로 포함되었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는 ‘역시나’ 하는 실망으로 변했다. 이처럼 핵심적 문제에 있어 여전히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또다시  해결을 무한정 연기하고 만 것이다. 다음 회의록 내용은 그와 관련된  부분이다.


 "기업지부 해소 관련 토론 검토하였으나 11기(현재 12기 집행부ㅡ주)에 산별교섭이 정상화될 때까지 유예하는 것으로 부칙 14조가 개정되었고, 기업지부가 금속 산별 운동 강화를 위해 복무할 수 있는 방안과 지역지부 강화를 위한 중•단기적 전략 수립을 해야 하나, 아직 마련하지 못한 상태로 장기적 과제로 설정하고 사업과 투쟁을 통해 조건을 마련”해 나간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산별교섭 강화를 위한 업종별교섭, 초기업단위교섭 등 사업장교섭을 넘어서는 교섭형태를 (금속노조가)시도하였으나 아직 정형을 만들어내지는 못하”고 있다고  자체 평가했다.
(청색 인용부분 출처: <금속노조 조직혁신 토론안>, 2022년12월29일)


그렇다면 이 같은 장벽들을 부수고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이, 그리고 나아가 전체 2100만 노동자계급이 정규직-비정규직, 원-하청 노동자 간의 계급적 연대를 실현할 수 있는 계기와 동력을 우리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문제는 외부가 아닌 우리 '내부'에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과거 군부독재 시절처럼 정부나 자본이 노골적인 외압을 가하는 것도 아니고, 법적으로 상급단체를 금지하는 것도 아니다.  지금의 금속노조는 객관적으로 보면 과거 전노협이나 금속연맹(금속노조의 전신)보다 훨씬 막강한 권력을 지니고 있다.  소속 사업장조직의 조합비를 본조로 집중시킬 수 있어서 과거  금속연맹보다 수십 배 이상의 재정규모를 갖고 있다. 규약상으로도 산하조직에 대한 ‘조직강제력’을 갖고 있어 사업장조직이 금속노조의 위임 없이는 교섭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속노조가 산별노조로서 제대로 된 이름값을 하지 못하고 현대차, 현대중공업과 같은 대기업 전략사업장들이 ‘기업지부’라는 이름으로 독자적인 행동을 하도록 방치하는 이유는, 그 근원을  따져보면 결국 조합원들이 단사 차원의 조합주의에 머물러 있는 탓이 크다. 또 여기에는 개량주의에 젖어 있는  활동가들의 책임을 빼놓을 수 없다. 따라서 지금은 이 같은 협소한 단사주의와 조합주의, 개량주의를 뛰어넘어 전계급적 차원의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추동할 수 있는 새로운 계기가  필요하다. 


정치조직인 계급정당 건설 혹은 ‘노동 중심성’이 관철되는 ‘진보연합정당’의 건설이 그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들 조직은 원래 경제적 이익에만 국한하지 않고 노동해방을 자신의 궁극적 목표로 삼으며, 이를 위해서 정치권력의 획득을 직접적인 임무로 설정한다. 따라서 이 같은 정당은 자신의 당원들을 자연스럽게 단사주의를 초월할 수 있도록 교육시키며, 이러한 대의를 위해  심지어는 자신을 희생할 것조차 요구할 수 있다.


이런 정당의 당원들은 자연스럽게 정규직-비정규직, 원-하청 연대의 필요성을 받아들일 것이다. 정당은 또한 전국적으로 조직되어 유기적으로 행동하는 결사체이기에  조직적으로도 당연히 단사주의를 뛰어넘게 된다. 이 때문에 이러한 정당은 정규직-비정규직, 원-하청 연대를 추동하는데 있어  큰 일익을 담당하거나, 혹은 이러한 연대를 직접적으로 자기 임무로 설정하는 ‘노동자 연대조직’에 대해 강력한 후견과 지원을 보낼 수 있다. 


제2의 정치세력화는 이처럼 노동자계급의 대단결을 촉진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당 건설과정이 정규직-비정규직, 원-하청 간의 분열을 극복하고 단결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어야 한다. 이 문제는 정치세력화가 이루어지고 나서야, 즉 창당 이후에나 천천히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 반대로 정치세력화 과정 자체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복무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럴 때만 '제2 정치세력화'에 대한 현장의 광범위한 지지와 동력을  재격발시킬 수 있으며, 그러한 분명한 자각 없는 정치세력화란 형식에 불과하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당은 또다시 의회주의 혹은 출세주의에 빠져들고, 지난 민주노동당의 전철을 밟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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