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ㅡ 제아무리 높은 왕좌라도 결국 제 엉덩이 밑일 뿐이다
이경렬(전 주앙골라 대사)
등록일 : 2026.01.19
1월 7일 미국 미니애폴리스에서 불법 이민자 단속 과정에서 이민세관단속국의 총격으로 여성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희생자의 피가 아직 남아있는 현장에 주민들이 추모의 꽃을 남기고 지나가고 있다.png.jpg
1월 7일 미국 미니애폴리스에서 불법 이민자 단속 과정에서 이민세관단속국의 총격으로 여성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희생자의 피가 아직 남아있는 현장에 주민들이 추모의 꽃을 남겼다.

 

ㅡ 황금 왕좌 아래 감춰진 비천한 실존
몽테뉴는 그의 <수상록>(Les Essais)에서 권력의 본질을 꿰뚫는 일침을 가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왕좌에 앉아 있는 사람도 결국 자기 엉덩이 위에 앉아 있을 뿐이다.” 지위와 권력이 인간의 본질적 한계를 결코 넘어서지 못한다는 준엄한 평결이다. 지위가 신격화되고 권력이 무소불위의 칼날을 휘두를수록, 그 권좌를 지탱하는 것은 결국 한낱 고깃덩어리에 불과한 인간의 육체라는 사실을 망각하기 마련이다.

 

지금 세계를 휩쓸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와 그를 맹종하는 ‘마가’(MAGA)의 물결은 이 몽테뉴의 경고를 정면으로 부정하며 퇴행하고 있다. 그들은 마치 특정 개인이 국가의 운명을 영원히 구원할 수 있는 초월적 존재인 양 숭배하며, 그 권력의 광기 아래 타인의 생명을 짓밟고 있다. 그러나 기억하라. 백악관의 집무실 의자가 황금으로 치장되어 있을지언정 그 위에 앉은 자는 여전히 생리적 한계와 역사의 심판 앞에 놓인 한 명의 노인일 뿐이다.

 

ㅡ 역사적 퇴행: 네로의 하프와 히틀러의 벙커
역사에는 세계질서를 뒤흔들며 자신을 신과 동일시했던 ‘막무가내’의 인물들이 있었다. 로마를 불태우며 하프를 켰던 네로, 유럽을 피로 물들였던 히틀러가 그러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세운 질서가 영원할 것이라 믿었지만 그 끝은 비참했다. 네로는 성난 민중의 함성 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히틀러는 지하 벙커에서 자멸했다.

 

트럼프가 자행하는 동맹의 파괴, 국제 규범의 무시, 그리고 인종적 증오의 부추김은 이들 독재자의 초상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트럼프와 마가 세력은 지금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든다는 명분으로 민주주의의 기둥을 도끼로 찍어내고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질서를 파괴한 자들이 마주한 종착역은 예외 없이 ‘파멸’이었다. 그들이 쌓아 올린 바벨탑이 높을수록 그 파괴의 음향은 더 처참하게 세계에 울릴 것이다.

 

ㅡ 미니애폴리스의 비극: 르네 굿의 피와 리어왕의 광기
지난 1월 7일 미니애폴리스에서 일어난 르네 굿(Renee Good)의 비극적 죽음은 이 권력의 광기가 낳은 산물이다. 무고한 세 아이의 엄마이자 시민이었던 그녀가 이민당국(ICE)의 총구 아래 차가운 도로 위에서 생명을 잃었다.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할 시민이 국가가 고용한 칼잡이들에게 사살된 이 현장은 셰익스피어의 <리어왕>(King Lear)이 마주했던 광기와 닮아 있다. 권력이 곧 정의라고 착각했던 리어는 모든 것을 박탈당한 뒤에야 깨달았다. 자신이 “가련하고 벌거벗은 두 갈래 창조물”(a poor, bare, forked animal)에 불과했다는 것을.

 

지금 트럼프와 그 수하들이 자행하는 공권력의 사유화와 폭력은 그들이 스스로를 법 위에 군림하는 존재로 여기고 있음을 증명한다. 하지만 미니애폴리스의 눈 덮인 거리를 메운 수만 명의 분노한 함성은 리어왕이 마주했던 광야의 폭풍우와 같다. 그 폭풍우는 머지않아 트럼프가 구축한 오만의 성벽을 무너뜨릴 것이며, 그때 그가 마주할 것은 ‘위대한 미국’이 아니라 거울 속에 남겨진 추악하고 고독한 한 인간의 실존뿐일 것이다.

 

ㅡ 시민 케인의 고독과 버드맨의 허상
오손 웰즈의 <시민 케인>(Citizen Kane)은 모든 것을 소유하고 세상을 호령했던 언론 재벌 케인이 죽음의 문턱에서 얼마나 빈손이었는지를 보여준다. 그가 마지막으로 뇌까린 “로즈버드”(Rosebud)는 수만 개의 금괴로도 살 수 없었던 잃어버린 순수와 인간성이었다. 트럼프와 그 추종자들이 광적으로 집착하는 권력과 부는 죽음이라는 절대적 평등 앞에서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한다.

 

영화 <버드맨>(Birdman)의 주인공처럼 그들은 과거의 명성과 ‘강한 지도자’라는 허상 속에서 발버둥치고 있다. 분장과 특수효과로 치장된 버드맨의 슈트를 벗겨냈을 때 남는 것은 나약하고 뒤틀린 한 인간일 뿐이다. 미니애폴리스의 피로 얼룩진 권좌 위에서 승리를 외치는 그들의 모습은 무대 위에서 자기 최면에 빠진 채 추락하는 배우의 비극적 코미디와 다를 바 없다.

 

ㅡ 사막의 먼지가 된 오지만디아스의 비웃음
퍼시 셸리의 시 <오지만디아스>(Ozymandias)는 권력자들에게 던지는 가장 잔혹한 예언이다. 고대 이집트의 위대한 왕 오지만디아스(람세스 2세)는 자신의 위엄을 과시하기 위해 “나의 업적을 보라, 너희 권세 있는 자들이여, 그리고 절망하라!”라는 문구를 새겼다. 그러나 수천 년 후 나그네가 발견한 것은 모래 속에 파묻힌 거대한 석상의 잔해와 “끝없이 넓고 황량한 외롭고 평평한 모래”뿐이었다.

 

지금 트럼프가 쌓아 올리는 ‘미국 우선주의’의 장벽과 지지자들의 광신적인 함성은 영원할 것 같은 착각을 준다. 하지만 역사의 지평선에서 볼 때 그것은 사막의 바람 한 번에 흩어질 모래성에 불과하다. 셸리가 묘사한 ‘차가운 명령의 비웃음’(sneer of cold command)은 오늘날 트럼프의 냉소적인 표정과 소름 돋게 닮아 있다. 하지만 그 표정을 새긴 돌덩이조차 결국 풍화되어 먼지가 된다는 사실을 그는 외면하고 있다.

 

ㅡ 시민들이여, 저항하라: 역사의 법정에는 왕좌가 없다
이제 미국인들은 선택해야 한다. 오지만디아스의 부서진 석상 아래서 절망할 것인가, 아니면 그 석상을 무너뜨리고 인간의 존엄을 되찾을 것인가. 미니애폴리스에서 흐른 르네 굿의 피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을 언제까지 묵인할 것인가? 마가라는 광신적 집단이 휘두르는 증오의 깃발 아래 우리의 민주주의를 얼마나 더 방치할 것인가?

 

그러나 선택은 미국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트럼프와 마가가 파괴하는 것은 한 국가의 정치 질서만이 아니다. 전후 세계가 어렵게 쌓아 올린 국제 규범과 인류문명의 윤리적 토대다. 기후 위기, 전쟁, 난민, 혐오와 배제의 확산 앞에서 침묵은 곧 공범이다. 이 싸움은 국경을 넘어선 문제이며 따라서 그 응답 역시 전 세계 시민의 연대여야 한다.

 

지금 미니애폴리스를 넘어 전국적으로 번지고 있는 대규모 시위와 저항은 단순한 반정부 운동이 아니다. 그것은 “나도 인간이다”라고 외치는 실존적 투쟁이며, “왕좌에 앉은 자도 결국 우리와 똑같이 엉덩이로 앉아 있는 인간일 뿐”이라는 몽테뉴적 진실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트럼프가 반란법(Insurrection Act)을 운운하며 당신들을 위협할 때 저들의 눈을 똑바로 보라. 그곳에는 위대한 영웅이 아니라 권력을 잃을까 봐 전전긍긍하는 겁에 질린 한 노인이 있을 뿐.

 

저항은 워싱턴과 뉴욕으로만 전파되어서는 안 된다. 베를린, 파리, 서울, 요하네스버그,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울려 퍼지는 시민들의 목소리와 맞닿을 때, 그것은 비로소 트럼프와 마가가 두려워하는 세계사적 힘이 된다. 트럼프와 마가는 하나의 증상이자 경고다. 그들을 넘어서는 일은 같은 논리가 다른 이름으로 반복되는 것을 세계 차원에서 차단하는 일이다.

 

ㅡ 인간의 자리를 되찾는 길
헤이 유 트럼프, 그리고 자네의 광기에 가담하는 자들에게 경고한다. 너희들이 휘두르는 권력은 너희들의 비천한 본질을 가려주지 못한다. 그것은 잠시 빌려 입은, 지나치게 화려해서 곧 찢어질 연극 의상일 뿐이다. 맥베스(Macbeth)가 절규했듯, 너희들의 인생은 그저 “백치가 들려주는 이야기”(a tale told by an idiot)일 뿐이며, 너희들이 벌이는 소동은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음을.

 

미니애폴리스의 시민들이여, 깨어 있는 미국인들이여, 그리고 정의로운 세계인들이여, 저항을 멈추지 마라. 우리들의 발걸음이 모여 역사의 거대한 물줄기를 이룰 때 저 오만한 왕좌는 모래성처럼 허물어질 것이다. 역사의 법정에는 왕좌가 없다. 오직 우리들이 흘린 눈물과 그에 맞선 용기만이 기록될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인류 전체의 각성이다. 저들이 상징하는 반 지성, 폭력, 파괴의 정치에 맞서 세계시민들이 손을 맞잡을 때 저들은 더 이상 ‘미국의 문제’로 숨어 있을 수 없다. 문명을 인질로 삼은 권력은 세계적 연대 앞에서 무너져야 한다.

 

헤이 유 트럼프, 자네가 아무리 높은 자리에 앉아 세상을 호령한다 해도 자네는 결국 자네 엉덩이 위에 앉아 있는 가련한 필멸자에 불과하다. 이제 그만 찰나의 촛불을 끄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라. 그것이 자네가 남길 수 있는 마지막 ‘인간적인’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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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시민이여, 각성하라! 연대하라! 타도하라!

2026.01.20 07:28:31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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