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울산함성 편집국
등록일 : 2026.10.24
한국 조선업.jpg
현대중공업  선박 건조 현장

 

한국 조선업이 기이한 역설에 빠져 있다. 수주 잔량이 3~4년 치나 쌓여 있고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을 독식하다시피 하면서 연일 ‘대박’ 속보가 쏟아지는데, 정작 조선소 현장에는 배를 만들 사람이 없다. 주요 조선사들의 주가는 고점 대비 반토막이 났고, 스위스 대형 해운사 MSC가 1조 원이 넘는 대형 발주를 중국 조선소로 돌리는 등 수주 거부와 납기 지연의 현실화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언론과 시장에서는 이를 경직된 고용제도나 청년층의 3D 업종 기피 탓으로 돌리기에 바쁘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따로 있다. 지난 수십 년간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숙련 노동을 하청으로 내몰고, 이마저도 모자라 외국인 인력으로 땜질하려는 ‘재벌 대기업의 값싼 노동력 선호’와 ‘착취적 외주화 구조’가 결국 한국 조선업의 뿌리를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ㅡ 하청 착취와 숙련공 기피: 재벌이 자초한 노동력 고갈

 

오늘날 조선소 현장에서 기술자가 사라진 것은 자연스러운 인구 감소나 단순한 유행 변화 때문이 아니다. 2010년대 중반 불황기가 찾아왔을 때, 조선 재벌들이 단행한 무자비한 인원 감축과 구조조정이 그 시작이었다. 당시 현장을 지키던 숙련 용접공과 배관공 등 수십만 명의 기술자가 조선소를 쫓겨났다. 그리고 업황이 다시 호황으로 돌아서자 재벌들이 선택한 것은 정규직 복직이나 정상적인 고용이 아니었다. '위험의 외주화'와 '비용의 외주화'를 통한 물량팀·하청 구조의 극대화였다.   

 

현재 주요 조선소 현장 인력의 70~80% 이상이 하청·협력업체 노동자로 채워져 있다. 원청 재벌들은 사상 최대의 이익을 올리고 수조 원대의 주주 배당을 실시하지만, 정작 배를 만들어내는 하청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최저임금 수준의 박봉과 가혹한 위험 부담뿐이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도 원청 정규직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으며, 기성금(공사대금) 삭감의 피해를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구조에서 어떤 청년이 미래를 그리며 숙련공의 길을 택하겠는가. 결국 버티다 못한 국내 숙련 기술자들은 플랜트 현장이나 건설업계, 혹은 해외로 대거 이탈했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고 있다.   

 

ㅡ '외국인 인력 땜질'이라는 자멸적 단기 처방

 

기술 인력이 씨가 말라가자 정부와 조선 재벌들이 내놓은 해법은 가히 절망적이다. 원하청 불공정 거래와 저임금 구조를 개선할 생각은 하지 않고, E-7-3(전문인력) 및 E-9(비전문인력) 비자를 대폭 확대해 동남아 등지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로 현장을 메우는 땜질 처방에만 골몰하고 있다.   

 

물론 외국인 노동자들은 한국 조선업의 급한 불을 끄는 데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숙련된 기술과 단합된 호흡이 필수적인 조선업의 특성상, 언어 소통이 어렵고 숙련도가 낮을 수밖에 없는 단기 체류 외국인 인력으로는 기술의 전승과 품질 유지가 불가능하다. 안전사고 위험은 더욱 커지고, 건조 일정 지연과 상시적인 하자 발생으로 이어져 한국 조선업이 수십 년간 쌓아온 ‘세계 최고 품질’이라는 신뢰마저 무너뜨리고 있다.   

 

값싼 이주 노동력에 의존해 저임금 체제를 유지하려는 탐욕은 숙련 노동의 맥을 끊어놓았고, 결국 기술 경쟁력 자체를 스스로 파괴하는 자멸적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ㅡ 거대 중국의 추격과 한미 조선 협력의 허상

 

재벌들이 단기 이윤에 눈이 멀어 값싼 노동력만을 찾으며 제자리를 걸음 하는 동안, 경쟁국인 중국 조선업은 턱밑까지가 아니라 이미 한국을 앞질러가고 있다. 과거 ‘저가·저품질’로 치부되던 중국 조선소들은 거대한 내수 시장과 국가적 자금 지원, 압도적인 도크(Dock) 생산능력을 바탕으로 기술 격차를 급격히 줄였다. 그 결과 올해 글로벌 신규 수주 점유율에서 중국이 76%를 쓸어 담을 때 한국은 15%에 그치는 현상이 벌어졌다. LNG 운반선 등 핵심 고부가가치 선박 분야에서도 중국은 가격 경쟁력과 일정한 기술력, 충분한 생산능력을 무기로 한국의 입지를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재벌들과 정부는 미국의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사업이나 한미 조선 협력(MASGA)을 새로운 구원투수인 양 홍보하고 있다. 심지어 미국 조선소의 숙련공 부족을 메우기 위해 한국의 숙련 용접공과 배관공을 미국으로 보내는 비자 쿼터 신설까지 추진하고 있다. 국내 현장의 숙련공이 부족해 난리를 치르면서, 미국 재벌들의 자금과 시장을 위해 국내 유능한 인력마저 미국으로 빼돌리겠다는 한심한 발상이다. 주권적 산업 정책 없이 미국의 하수인 역할을 자처하는 이러한 방식은 한국 조선업의 기술·인력 수혈을 더욱 가로막을 뿐이다.   

 

ㅡ 조선 재벌의 대전환과 산업주권 확립만이 살길이다

 

한국 조선업을 망치고 있는 진범은 '노동자의 파업'도, '청년들의 눈높이'도 아니다. 이윤은 사유화하고 위험과 비용은 하청 노동자와 국가에 사회화해 온 조선 재벌들의 불공정하고 기형적인 경영 행태가 진짜 원인이다.   

 

한국 조선업이 살기 위해서는 단기적 이윤 추구에 매몰된 재벌 중심의 구조를 수술해야 한다.

 

첫째, 다단계 하청 구조를 폐지하고 다수의 직접 고용·정규직화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기술 노동에 정당한 대가와 안전이 보장될 때 비로소 청년 인력이 유입되고 기술 숙련도가 전승될 수 있다.

 

둘째, 원·하청 간 기성금 단가 후려치기와 불공정 거래를 법적으로 엄단해야 한다. 하청 업체 노동자들에게 적정 임금이 지급되도록 사회적 안전망과 제도적 장치를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셋째, 미국의 전략적 하수인 노릇을 그만두고 독립적인 산업주권을 확립해야 한다. 기술 유출과 인력 유출을 초래하는 종속적 한미 협력을 거부하고, 자체적인 기술 혁신과 국내 인력 양성에 대대적인 국가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

 

강력한 카드를 쥐고도 스스로 발등을 찍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를 제값 주고 대우하는 정당한 노동 생태계를 구축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수주 잔고가 쌓인다 한들 한국 조선업의 미래는 없다. 값싼 노동력만 탐하는 재벌체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것, 그것만이 한국 조선업이 다시 세계 바다를 호령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울산함성 무료구독 신청]  https://t.me/+ji13hLs-vL83ZTBl

삭제하시겠습니까?
취소
사진 및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왼쪽의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용량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취소

오피니언

재벌의 값싼 노동력 선호가 한국 조선업을 망치고 있다

울산함성 편집국

2026.10.24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