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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봇물 터진 원청 교섭 요구, 그러나 갈 길은 멀다

 

3월 10일, 개정된 노조법 2·3조가 시행되었다. 이른바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이 법안의 시행을 계기로, 기다렸다는 듯이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공공운수노조 등 조직된 노동자들의 '원청 교섭'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민주노총은 노조법 2·3조 시행 첫날인 3월 10일, 5천여 명의 노동자를 집결시켜 "진짜 사장 나와라"며 원청교섭 쟁취 투쟁을 선포했다. 금속노조는 현대제철을 비롯한 57개 지회, 1만 7천여 명 규모로 원청 교섭을 요구하며 "거부 시 전 조직적 투쟁"을 예고했다. 공공운수노조 역시 "진짜 사장과 교섭하라"며 원청교섭 돌입을 선언했다. 돌봄노동자들은 청와대 앞에서 "보건복지부·성평등가족부·교육부가 진짜 사용자"라며 범정부 공동교섭을 촉구했고, 민주연합노조는 "대통령 공약대로 초기업교섭에 나서라"고 요구했다. 포스코 하청노동자들은 "우리의 진짜 사장은 포스코"라며 원청교섭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으며, 양대노총 공공노동자 3천여 명은 국회 앞에 결집해 노정교섭 실시를 요구했다.

 

그야말로 오랜 기간 억눌려 왔던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분노와 요구가 한꺼번에 분출되는 양상이다. 수십 년간 '간접고용'이라는 이름으로 은폐되어 왔던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이제 정면으로 묻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투쟁이 그대로 상승 발전해서 앞으로 노동운동의 새로운 전기를 열어줄지는 아직 미지수다. 왜냐하면 개정 노조법은 '원청의 사용자성 판정'에서부터 하청 노조에 대한 '창구 단일화' 요구까지 까다로운 절차들을 규정하고 있어서, 노동자들이 법에만 의존해서는 각종 장벽에 막히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최근 한화오션 사례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화오션은 하청노동자들의 교섭 요구에 대해 "2026년부터 사용자"라며 교섭을 거부하고 있다. 법 시행 첫날부터 원청 기업들은 온갖 핑계를 대며 교섭 회피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결국 기나긴 사법 투쟁의 늪으로 빠져들어, 지난 시기 '불법파견 투쟁'이 밟았던 절차를 되풀이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번 개정 노조법 2·3조의 실시는 단지 하나의 계기일 뿐이다. 앞으로 이를 진정으로 노동자들의 권익을 찾을 수 있는 발판으로 삼을 수 있을지는 전적으로 민주노총과 금속노조·공공운수노조, 그리고 해당 사업장 노동자들 주체의 투쟁에 달려 있다.

 

2. 드러난 본질: 원청이란 곧 재벌과 정부다

 

최근의 원청 교섭 요구 투쟁들을 살펴보면 명확한 특색이 드러난다. 즉 '원청'이란 결국 '재벌'과 '공공기관'이라는 것이다.

 

금속노조가 교섭을 요구하는 원청은 현대제철, 현대차, 한화오션 등 대표적인 재벌 기업들이다. 공공운수노조와 돌봄노동자들이 교섭을 요구하는 상대는 보건복지부, 성평등가족부, 교육부 등 정부 부처들이다. 민주연합노조가 범정부 공동교섭을 촉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그간 분산되고 고립된 채 진행되던 부품사와 비정규직들의 투쟁이 개별 단사 차원에서 진행될 때는 잘 드러나지 않았던 사실이다. 각각의 하청업체, 용역업체, 파견업체를 상대로 투쟁할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이제 '원청'이 교섭 대상이 되는 순간 그들은 결국 재벌과 정부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국에서 원청이란 다름 아닌 재벌이며,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정부(공공부문)이다. 그것이 본질이다. 이 양자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나는 한국 사회의 경제적 하부토대를 형성하고, 다른 하나는 그에 기초해서 세워진 상부구조 즉 국가권력이며, 후자는 그 자신이 사용자의 일부이자 전자를 엄호하는 관계에 있다.

 

재벌들은 자신들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직접고용을 간접고용으로 전환해 왔다. 그리고 정부는 노동법 개악과 규제 완화를 통해 이를 뒷받침해 왔다. 공공부문에서도 정부는 '민간 위탁', '외주화'라는 이름으로 직접 비정규직을 양산해 왔다. 재벌의 하청·비정규직 구조와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구조는 동전의 양면인 셈이다.

 

3.  왜 그간 한국 노동운동은 침체되었는가?

 

2000년대 들어 한국 노동운동의 중심은 비정규직 투쟁과 하청·부품사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이전했다.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제도화·관료화되면서 힘을 잃어가는 동안, 비정규직과 하청노동자들은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절박한 투쟁을 전개해 왔다.

 

그러나 이들 투쟁은 제대로 발전하지 못했고, 그 결과 전체 노동운동이 침체되었다. 그 일차적인 원인은 이러한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데 있다.

 

그간 비정규직 문제와 하청 문제는 추상적인 '신자유주의 탓'으로만 돌려졌다. 물론 신자유주의가 이러한 문제를 심화시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라는 추상적 개념만으로는 정작 이들 문제를 일으키는 구체적인 원흉인 '재벌'을 제대로 겨냥할 수 없다. 재벌은 면죄부를 받을 수 있었고, 투쟁의 방향은 흐려졌다.

 

더불어 한국 사회 대정부 투쟁(정치투쟁) 역시 제대로 그 성격이 규정되지 못했다. 일반적인 정치투쟁 내지는 기껏해야 미제에 종속된 정권에 대한 투쟁 정도로만 규정됨으로써, 일반적 정치투쟁이든 반제투쟁이든 제대로 발전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들 투쟁이 정작 현재 광범위한 노동자계급의 직접적인 고통의 원인이자 절실한 문제인 비정규직 문제와 하청 문제와의 연결고리를 제대로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광범위한 현장 대중이 참여하지 않는 정치투쟁과 반제투쟁은 결코 힘을 받을 수 없다.

 

결국 경제투쟁은 개별 사업장에 고립되어 힘을 발휘하지 못했고, 정치투쟁은 현장 대중과 유리되어 공허한 구호에 그쳤다.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이 결합되지 못한 채 각각 분리되어 진행됨으로써, 양자 모두 제대로 발전하지 못한 것이다.

 

4.  새로운 돌파구를 열기 위하여

 

이제 노조법 2·3조 개정을 계기로 한국의 비정규직, 원하청 문제의 본질을 새롭게 규정하고, 그 투쟁 방향을 올바로 설정해야 한다.

 

첫째, 원청 교섭 투쟁은 곧 반재벌 투쟁이라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개별 하청업체를 상대로 한 투쟁이 아니라, 재벌 본사를 직접 겨냥한 투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현대차, 한화, 삼성 등 재벌 그룹 전체를 상대로 한 조직적 투쟁이 필요하다. 한 사업장의 투쟁이 아니라, 해당 재벌 그룹 전체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대 투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둘째, 공공부문 원청 교섭 투쟁은 곧 정부 투쟁, 정치투쟁이라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개별 공공기관을 상대로 한 투쟁이 아니라, 정부 전체를 상대로 한 범정부 공동교섭 투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이는 단순한 경제투쟁이 아니라 정치투쟁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는 곧 정부의 노동정책, 공공서비스 정책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셋째, 재벌 투쟁과 정부 투쟁을 결합시켜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재벌과 정부는 동전의 양면이다. 재벌은 한국 자본주의의 물질적 토대이고, 정부는 그에 기초한 국가권력이다. 정부는 재벌을 엄호하고, 재벌은 정부를 통해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킨다. 따라서 재벌 투쟁과 정부 투쟁은 분리될 수 없으며, 하나의 통일된 투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넷째, 법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한화오션 사례에서 보듯이, 원청 기업들은 온갖 핑계를 대며 교섭을 회피할 것이다. 법적 절차에만 매달리면 기나긴 사법 투쟁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 법은 투쟁의 수단일 뿐, 투쟁 그 자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강력한 현장 투쟁, 대중 투쟁을 통해 원청을 압박하고, 법적 수단은 이를 뒷받침하는 보조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

 

다섯째,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청과 하청의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원청 정규직 노동자들이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적극 연대하고, 나아가 공동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재벌과 정부는 노동자들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원청과 하청으로 분할해서 지배해 왔다. 이러한 분할 지배를 깨뜨리는 것이야말로 노동운동 전체의 돌파구를 여는 열쇠다.

 

개정 노조법 2·3조 시행은 분명 중요한 계기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계기일 뿐이다. 이를 진정한 노동운동의 전진으로 만들 수 있을지는 전적으로 노동자들의 투쟁에 달려 있다. 원청 교섭 투쟁을 재벌 투쟁으로, 정부 투쟁으로, 그리고 양자를 결합한 전체 노동자계급의 투쟁으로 발전시킬 때, 비로소 한국의 노동운동과 전체 변혁운동은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진짜 사장 나와라"는 구호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그것은 수십 년간 은폐되어 온 한국 자본주의의 본질, 재벌 지배 체제의 본질을 폭로하는 구호다. 이제 그 진짜 사장들, 재벌과 정부를 정면으로 상대하는 투쟁을 조직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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