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지창영(시인, 문학박사)
등록일 : 2025.03.02

밥짓는 어머니.png.jpg

 

사람은 가까이 있는 사람과 어울리게 마련이다. 좋든 싫든 서로 부딪치며 살아가야 한다. 그런 삶 속에서 생각하고 느끼게 된다. 그러나 가까이 있는 사람과만 소통하는 것은 아니다. 멀리 있어도 서로 생각하고 말을 주고받으며 때로는 왕래하기도 한다. 멀리 있는 사람과 소통하는 경우는 대부분 자신과 닮은 사람이다. 생각이 닮든지 취미가 닮든지 지향하는 바가 닮은 사람이다.

 

시를 창작할 때도 시적 주인공과 가까운 것, 닮은 것을 잘 활용하면 더 멋진 작품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 가까이 있거나 서로 닿아 있거나 서로 관련 있는 성질을 인접성(隣接性)이라 하고, 서로 비슷한 성질을 유사성(類似性)이라 한다. 시적 대상의 인접성과 유사성을 찾아 최대한 활용할 때 작품의 사상과 정서가 풍부해진다.

 

어머니의 노(櫓), 나무주걱은 아래쪽이 닳아 있고 그곳에 뜬 하현달은 하염없었다

 

쌀을 퍼서 물에 담근다 한바닥 물에 잠긴 쌀알들이 저희 아래 물새알이라도 감춘 듯 한결같은 표정이다 들여다볼수록 착해지고 싶은 쌀

 

최씨네 봉제공장이 있는 독립문에서 충정로 뒷길 지나 아현동 비탈길을 올라 어머니 저문 대문을 들어서네, 부은 발등에 물을 끼얹네, 서둘러 밥을 짓네, 우묵한 양은솥이 밀어올린 온난전선, 잎잎이 순정한 어머니의 꽃잎, 더러는 드문드문 밤콩이 놓여 주걱 위에 가난은 혀에 달았지

 

밥물이 끓는다 눈보라가 끓는다 능선이 솟는다 꽃잎으로 잦혀진다

 

주걱에 묻은 밥알 떼어 입에 넣다가 울꺽 뜨겁다 사는 일이 달그락달그락 밥 차리는 일이다 밥냄새 피워올리는 번제, 식탁에 둘러앉는 일이다 길 위에 덩굴지는 밥그릇 행렬이다

 

(조정인, 「어머니의 나무주걱」)

 

이 시에서 시적 주인공은 나무주걱이다. 나무주걱은 작자의 아바타로서 작자를 대신하여 메시지를 전한다. 나무주걱은 밥 짓는 일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면서 어머니의 고단한 삶을 대변하기도 한다.

 

나무주걱.png

 

나무주걱과 인접한 것들, 즉 가까이 있는 것들로 쌀, 물, 양은솥, 밤콩, 밥알, 식탁, 밥그릇 등이 등장한다. 이들은 나무주걱의 이웃들로서 나무주걱을 주인공으로 돋보이게 하는 조연 역할을 한다. 이들이 있어 나무주걱의 역할이 부각되고 밥 짓는 모습이 실감나게 묘사된다.

 

유사성을 염두에 두고 선택된 것들도 있다. 노(櫓), 하현달, 물새알, 온난전선, 눈보라, 능선 등이 그것인데, 이들은 주걱과는 멀리 있고 밥 짓는 일과도 무관하지만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과 유사성이 있기 때문에 이 시에서 극적 효과를 발휘한다.

 

나무주걱과 닮은 것들로 노와 하현달이 등장하는데 이는 모양이 닮은 것들이다. 이들은 나무주걱이 단순히 주방 기구가 아니라 삶의 중요한 수단임을 보여 준다. 노는 인생 항로를 헤쳐 나가는 도구로서 만만치 않은 삶의 노정을 생각하게 한다. 하염없는 하현달은 밤 늦도록 일해야 하는 고단한 인생 역정을 연상시킨다.

 

노젓기.png

 

물새알도 그 모양이 쌀알과 유사한 사물로서 ‘물에 잠긴 쌀알들’의 ‘한결같은 표정’의 의미를 더 넓혀 준다. 단순히 곡물로서의 쌀알이 아니라 물새알처럼 생명이 있고 가능성이 있는 존재로서의 쌀알을 생각하게 한다. 이어서 등장하는 ‘들여다볼수록 착해지고 싶은 쌀’이라는 표현에 자연스럽게 더 적극적으로 공감하게 되는 것은 독자의 머리 속에 물새알과 쌀알이 함께 이미지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밥솥이 가열되는 과정을 온난전선으로 비유했는데, 이는 더워지는 성질에서 서로 닮은 것을 찾아 쓴 것이다. 밥물이 끓는 것을 눈보라가 끓는 것으로 묘사한 것은 그 모양이 닮아서 가능하다. 밥 짓는 과정을 기상현상과 연관지어 그 의미를 확 넓혔다. 단순히 끼니를 때우기 위한 방편으로서 밥을 짓는 것이 아니라 밥 짓는 일 자체가 우주적인 사역이라는 점을 암시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쌀들이 익어 밥솥 안에서 솟아오르는 모습을 ‘능선이 솟는다’라고 표현한 것도 모양에서 유사성을 찾은 것이다. 밥은 비록 솥 안에서 부풀어 오르지만 그 솟아오름은 산등성이만큼이나 큰 의미를 내포하는 것임을 넌지시 알려 준다.

 

이 시는 5연이 압권인데, 시적 화자는 ‘주걱에 묻은 밥알 떼어 입에 넣다가’ 울컥한다. 밥알 자체가 뜨겁기도 하지만 감정이 북받치는 것이다. 3연에 나타난 어머니 생각 그리고 밥 짓는 일의 숨은 의미가 감정을 고조시키는 것이다. ‘사는 일이’ 다름 아닌 ‘밥 차리는 일’이라는 점을 격하게 느낀 것이다. 밥 차리는 일은 ‘번제’라고 할 만큼 중요하고 엄숙한 일이다. 그래서 삶은 ‘식탁에 둘러앉는 일’이다. ‘길 위에’ 줄지어 가는 사람들도 결국 ‘밥그릇 행렬’이다.

 

5연이 설득력이 있고 공감과 감동이 증폭되는 것은 1~4연에 충분한 사전 장치를 해 놓았기 때문이다. 인접한 것들과 유사한 것들을 동원하여 밥 짓는 일을 절절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나에게 가까이 사는 이웃도 있고 멀리 사는 친구도 있듯이 시적 주인공에게도 이웃과 친구를 찾아 주어야 한다. 빨리 쓰고 싶은 마음을 잠시 누르고 먼저 주인공을 돋보이게 할 조연들을 최대한 찾아 보자. 인접성과 유사성(모양, 성질)이 그 기준이다. 인접한 이웃들을 찾아서 배치하고 모양이나 성질이 닮은 친구들을 찾아 연결하면 의미가 넓어지고 설득력이 커지며 치열성이 높아진다. 그런 만큼 독자에게 주는 공감과 감동도 커진다.

 

지창영 시인.jpg
지창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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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스러기

매번 잘 보고 있고

시창작에 큰 도움 받고 있습니다.

시가 무엇이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감이 조금씩 잡히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2025.03.02 13:46:59 답글
지창영
도움이 되신다니 다행입니다. 고맙습니다.^^
2025.06.26 20:26:04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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