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허영구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
등록일 : 2023.05.10

가야산 정상.jpg

 

한 이틀 내린 비로 가야산으로 향하는 상가리 마을은 더 푸르고 도랑을 흐르는 물소리도 힘차다. 월요일이라 넓고 한산한 주차장 초입 ‘덕산 도립공원, 가야산 종합안내도’는 5개 코스별 소요시간을 설명하고 있다. 출발이 오후 2시가 가까운 시간이라 남연군묘에서 옥양봉-석문봉-가양봉을 거치는 3각형 모양의 등산을 하기에는 무리해 최고봉인 가야봉을 목표로 상가리 마을길을 걷어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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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지나자 예산가야지(가야사 절터)와 남연군묘에 다다른다. 역사 공부할 때 얼핏 기억한 내용인데 직접 탐방한 셈이다. ‘가야사’는 백제시대 대사찰인데 고려시대 무신난으로 조정을 농락하고 생계의 어려움을 겪자 1176년 초 망이, 망소이 등이 신분질서 타파를 외치며 반란을 일으켜 가야사를 점령했으나 토벌군에 진압당한 역사가 있었다. 

 

1846년 조선왕조 말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굶주린 백성을 동원해 경기 연천에 매장되어 있던 자신의 아버지 이구의 묘를 500리길 떨어진 덕산으로 이장하였다. 그냥 이장한 게 아니라 천년고찰 가야사 금탑을 허물고 절 전체를 불태웠는데 보광명전 철불삼존상도 녹아내렸다 한다. 풍수지리설에 근거해 묘를 이 곳으로 이장하면 후대에 두 명의 왕이 나온다(二代天子之地)고 해서 그랬단다. 그 때문인지 모르지만 자신의 아들 고종과 순종이 마지막 왕이 됐다. 그러나 이들을 마지막으로 조선왕조는 몰락하고 말았다. 

 

1866년(고종3년) 독일상인 오페르트가 조정에 통상을 요구하다 실패하자 미국인 젠킨스를 자본주, 프랑스 선교사 페론을 통역관, 서양인, 말레이사아인, 청나라인 등 무장한 100여명을 시켜 고덕으로 들어와 남연군묘를 훼손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대원군은 외세(洋夷, ‘서양오랑캐’) 배척을 강화하고 천주교 탄압을 강화하였다. 

 

대원군이 남연군의 묘를 옮기는데 사용했던 궁중식 상여는 덕산면 광천리 남은들에 기증했는데 ‘남은들상여’로 이름 붙여 보호각에 전시돼 있다. 가야사지를 발굴작업 한 흔적도 여기저기 눈에 띈다. 억불숭유정책을 펼쳤던 조선시대이자 권력을 위해서는 역사든 문화든 모든 것도 파괴할 수 있다는 인간세상의 오만함이 쓰려있는 현장이었다. 

 

남은들상여.jpg

 

역사를 뒤로 하고 가야산을 향한다. 바로 산에서 흘러내린 물을 항아리처럼 담은 저수지가 보인다. 나뭇잎과 물의 색깔이 어우러져 시원하고 상쾌하다. 얼마 전 수덕사 덕숭산에 올랐을 때 건너다보이던 가야산 정상의 철탑이 눈에 들어온다. 저수지를 끼고 산행을 시작한다. 산 속을 들어서는 초입에는 벼농사를 짓다만 다랑논이 버려져 있다. 골짜기 여기저기에서 물이 콸콸 흘러내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물을 받아 논농사를 지었을 것이다. 

 

본격적으로 등산로에 접어든다. 나무들이 쭉쭉 뻗어 있어 시원하다. 조금 오르다 늦었지만 컵라면으로 간단한 점심을 대신한다. 준비해 간 밥 한 숟갈에 곁들인 김장김치 맛도 좋다. 본격적으로 출발이다. 등산로는 흙길이라 편안하다. ‘100대 명산 플러스 우리산 100대산’에 속하는 산이지만 주말 지난 월요일이고 오후 늦은 시간이라 조용하다. 

 

어느 산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정상을 조금 남겨 놓은 지점부터 울퉁불퉁 바위도 보이고 경사도 급해진다. 그런데 약간 마르고 어린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난다. 몸을 부딪치며 졸졸 따라오다가 앞으로 와서는 배를 뒤집고 드러눕기도 한다. 집에서 기르던 고양이 같은데 스스로 집을 나왔거나 아니면 누가 유기한 것 같다. 배가 고픈지 짊어지고 있는 배낭 쪽으로 코를 들이댄다. 그러나 고양이에게 줄 수 있는 게 없다. 

 

그렇게 고양이와 함께 정상 올랐다. 고양이가 다른 등산객에게 다가갔지만 던져주는 과일은 먹지 않는다. 정상에서 주변을 조망한다. 아래로 저수지와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건너편으로 석문봉, 옥양봉 능선이 펼쳐진다. 커피 한잔 하고 준비해간 내용으로 인증샷을 찍는다. 늦은 시간이라 다시 같은 등산로를 따라 하산한다. 

 

가야산-저수지.jpg

 

숲 사이사이로 철쭉이 보인다. 엊그제 비로 떨어진 꽃잎과 함께 보랏빛 은은한 색이 산을 아름답게 꾸미고 있다. 한 참 내려오다 잠시 쉬려고 자리를 잡고 있는데 살이 통통한 고양이 한 마리가 재빠르게 몸을 피한다. 야생으로 잘 적응한 것 같다. 정상에 오를 때까지 따라왔던 어린 고양이도 잘 적응해 가기를 바란다. 

 

다시 저수지까지 내려왔다. 서쪽으로 넘어가는 해가 비추는 가야산 그림자가 바람따라 흐르는 물결에 흔들리고 있다. 위에서 승용차 한 대가 내려오는가 싶더니 차 문이 열린다. 산 노지에서 키운 느타리버섯을 수확해 가는 길인데 사지 않겠냐고 묻는다. 한 보따리에 만원만 달라고 한다. 덤으로 잎당귀도 얻었는데 코를 자극한다. 가야산의 향기를 다 얻은 느낌이다. 

 

출발할 때와 달리 산비탈 마을을 따라 내려왔다. 사람이 사는 것 같긴 한데 인기척이 없다. 빈 집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마을 어귀는 정말 예쁘고 한가롭기까지 하다. 원효가 당나라 유학을 가던 중 이 곳에서 잠을 자다 목이 말라 바가지 물을 마셨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해골에 고인 물이었다는 전설이 서려 있는 상가리 큰 길을 만난다. 길가에 초록 짙은 보리밭이 물결친다.

 

 가야산(예산), 2023.5.8.월

 

가야산-보리밭.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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