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
전국노동
-
전국노동
-
오피니언
-
오피니언
-
전국노동
-
전국노동
-
역사교양

1.
SVB(실리콘밸리은행)가 파산하자 미 연준은 금융기관의 연쇄도산을 차단하기 위한 긴급 조처들을 재빨리 취했다. 법적 보호한도인 1인당 25만달러를 넘어 파격적으로 파산 은행의 예금 전액을 보증하기로 했다. 이는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 때 무이자 예금만 한도 없이 보증해주었던 것에 비하면 한 단계 더 나아간 조치다. 또 기업들이 채권 가격 하락으로 인한 손실을 보지 않도록, 채권 담보 가치도 시장 가격이 아닌 액면가로 평가해주기로 했다. 이 같은 조치들은 평소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이로써 잠시 급한 불은 껐지만, 사실상 스태그플레이션이 조기에 잡히리라는 기대는 이제 물 거품이 됐다. 연준이 취한 이런 조치들은 모두 반인플레이션 정책 기조와는 어긋날 뿐 아니라, 당연히 이런 조처들로 인해 시중 유동성이 다시 급격히 불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이 그토록 신봉하던 '시장 원칙' 또한 저버렸다. 평소 주장하던 투자자들은 자신의 결정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한다는 기본원칙을 저버렸기에, 앞으로 ‘모럴헤저드’(도덕적 해이)를 들먹이는 것 자체가 낯 뜨거운 일이 되버렸다. 이처럼 모든 것을 내주더라도 은행의 연쇄 도산 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이 미연준을 압도했다고 볼 수 있다.
SVB파산이 미친 영향은 미국 내에만 그치지 않는다. 지난주 영국 재무장관 헌트가 이번 파산 사태에 휘말린 영국 기술 스타트업들을 구제할지를 이미 검토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기술 기업 210여 곳이 헌트에게 서한을 보내 “영국 기술 부문 자체의 존립이 위험”에 처했다고 경고했다고 한다.
2.
미연준이 이 같은 긴급사태를 당하고도 앞으로 계속해서 기존의 빅스탭 금리 인상 보폭을 유지할 만큼 ‘강심장’이라고 보는 사람은 별로 없을 성 싶다. 골드만삭스 이코노미스트들은 12일(현지시각) 보고서에서 오는 3월 21~22일 예정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 인상을 하지 않을 것으로 예측했다. 당초 0.25%포인트 금리 인상을 예상했지만, 지난주 SVB 붕괴 후 금융 시스템의 취약성을 고려할 때 향후 더 이상의 금리인상은 위험하다는 경고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5월, 6월, 7월 FOMC와 관련해선 0.25%p씩 금리가 인상될 것으로 보았는데, 이는 사건 발생 직전 연준의장 파월이 겁주었던 빅스탭 제스처와는 큰 격차가 있다.
이럴 경우 그렇잖아도 틈만 있으면 꿈틀대는 물가는 다시 준동을 시작할 것이다. 돈이 많이 도는데 물가가 오르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부동산에 투자하려는 사람이 다시 생기고, 주식시장도 소위 ‘안도랠리’를 시도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3월 14일 뉴욕증시는 다우존스 지수가 1.05% 오른 32,154를 기록했고, 나스닥 지수도 2.14%나 올랐다. 실리콘밸리은행(SVB)의 파산 사태로 직격탄을 맞았던 미국 지역은행주들도 단 하루 만에 일제히 반등했는데, '제2의 SVB'로 위기설이 돌았던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은 약 27% 치솟았다.
하지만 아직 놓아하긴 이르다. 만약 물가가 잡히지 않고 계속 해서 오르면 연준은 기준금리를 결코 인하할 수 없을뿐더러, 추가적인 인상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는 4.5~4.75%인데, 이것은 ‘고금리의 장기화’를 의미한다.
14일엔 미국 2월 소비자물가지수(CPI), 15일엔 2월 생산자물가지수(PPI)가 각각 발표된다. 2월 CPI 상승률은 다우존스 조사에서 전년 대비 6.1%, 블룸버그 조사에서 6.0%로 예측됐다. 1월의 6.4%보다 다소 낮아지긴 하지만, 하락폭은 소폭에 그칠 것이라는 예상이다.
3.
이번 스태그플레이션의 본질은 다름 아닌 ‘과잉생산’ 문제에 있다. 따라서 그 해법 역시 과잉생산력을 제거하는 길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애초 미연준이 고금리 정책을 취했던 취지는 이를 통해 한계기업들을 질서 있게 도태시켜, 이들 한계기업에 묶여 있던 자원(원료, 노동력)을 해방시킴으로써 물가인상 압력을 근본적으로 줄이려 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미연준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환자(미국경제)에게 더 이상 수술 매스를 대는 것이 무리라는 사실이 판가름 난 만큼, 이제 조기에 한계기업을 퇴출시켜 속박된 자원을 해방시킬 수 있다는 기대는 물 건너간 것이나 마찬가지다. 자본주의 과잉생산을 상징하는 이들 한계기업들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경제를 압박할 것이고, 조금만 상승요인이 가해지는 즉시 섭씨 90도 근처를 오르내릴 정도로 항시적으로 가열되어 있는 경제는 곧바로 수증기를 내뿜듯 물가를 끌어올릴 것이다.
4.
결론은 고금리의 지속이다. 인플레이션이 지속됨에 따라 ‘고금리’가 지속될 수밖에 없으며, 그것은 조만간 그동안 부풀려진 ‘풍선’이 폭발을 시작할 수밖에 없음을 뜻한다. 이미 GDP의 105%에 이르는 1900조원의 가계부채를 떠안고 있는 한국경제는 그 한 가운데에 서있다고 할 수 있다. 윤석열 정권이 노동탄압의 손을 결코 멈추려 하지 않고, 오히려 서두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