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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양
엔비디아 젠슨 황 CEO가 10월 31일 한국에 20조 원 상당의 최신 AI 칩(GPU) 26만 장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와 재벌 언론은 이에 대해 "AI 3강 도약", "아태 AI 허브"라며 환호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 입장에서 이 '선물'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이는 대량 실업과 노동강도 심화, 감시 체제 강화를 가져올 '해고 통지서'에 다름 아니다.
ㅡ 재벌의 잔치, 노동자의 재앙
이번 GPU 공급 계획의 핵심은 삼성·SK·현대차 등 재벌 3사가 각각 5만 장씩, 네이버가 6만 장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정부도 5만 장을 받는다. 재벌들은 이를 활용해 'AI 공장'을 만들고 제조 공정을 전면 자동화하겠다고 밝혔다.
'AI 공장'이란 무엇인가? 디지털 트윈(가상 공장 시뮬레이션), 스마트팩토리, 로봇 자동화를 결합해 사람 손이 필요 없는 공장을 만드는 것이다. 비전 검사, 예지보전*, 공정 최적화 등의 이름으로 포장되지만, 본질은 생산 라인에서 노동자를 몰아내는 것이다.
* ‘예지보전’이란 설비의 실시간 데이터를 분석하여 고장 시점을 미리 예측하고, 최적의 시점에 유지보수를 수행하는 기술을 말한다.
현대차는 엔비디아와 4조 3천억 원을 공동 투자해 '피지컬 AI(물리적 AI)' 개발에 나선다고 했다. 자율주행과 로봇 자동화를 결합한 완전 무인 생산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삼성과 SK도 반도체·배터리·디스플레이 공정의 전면 자동화를 추진한다.
네이버클라우드는 조선·에너지·바이오 등 산업별 특화 AI 모델을 개발해 제조업 전반의 '디지털 전환'을 주도하겠다고 밝혔다. 통신 3사는 AI 무선 네트워크(AI-RAN)와 6G 기술 개발에 나선다.
결국 26만 장의 GPU는 한국에서 재벌의 자동화 투자를 가속화하는 도구가 된다. 재벌들은 이를 통해 인건비를 줄이고 노동자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려 할 것이다. 정부는 국민 세금으로 이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ㅡ 어떤 일자리가 사라지나?
AI 자동화가 본격화되면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것은 단순·반복 업무 종사자다.
첫째, 제조업 현장에선 조립·검사·포장 등 단순 공정 노동자가 1차 타겟이다. 머신비전(기계 시각)과 로봇이 결합되면 품질검사와 불량품 선별은 완전히 자동화된다. 조립라인도 협동 로봇과 AI가 대체한다. 중·고령 생산직 노동자들은 재교육도 받지 못한 채 정리해고 1순위가 될 것이다.
둘째, 물류·유통 분야에선 이미 쿠팡·마켓컬리 등 물류센터에서 자동화 피킹(상품 집기)과 패킹(포장) 로봇이 도입되고 있다. 대규모 GPU 확보로 경로 최적화, 수요예측, 자율주행 배송이 가속화되면 물류센터 노동자와 배송 노동자의 일자리가 대량으로 사라진다.
셋째, 사무직·서비스직의 경우 콜센터 상담사, 고객지원, 데이터 입력, 문서 작성 등 백오피스 업무는 생성형 AI로 대체가 가능하다. 금융권 오퍼레이션, 보험 심사, 법률 보조 업무 등도 타격을 받는다. 이미 은행과 보험사들은 AI 도입을 명분으로 대규모 명예퇴직을 진행하고 있다.
넷째, 배달·대리운전·택시 등 플랫폼 노동자는 알고리즘 통제가 더욱 강화된다. AI가 실시간으로 작업 배분, 경로 지정, 성과 평가를 하면서 노동자는 기계의 부속품으로 전락하게 된다.
ㅡ 남은 노동자는? 감시, 노동강도 심화
자동화로 일자리를 잃지 않는다고 해도 안심할 수 없다. AI는 노동자 감시와 통제를 극대화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우선, 실시간 감시 체제의 구축이 이루어진다. AI 비전 카메라, 웨어러블 센서, 차량 텔레매틱스 등으로 노동자의 모든 움직임이 실시간 추적된다. 작업 속도, 휴식 시간, 이동 경로, 심지어 표정과 자세까지 분석해 성과 평가에 반영한다. 화장실 가는 시간도 '비생산 시간'으로 기록되게 된다.
다음으로, 노동강도 강화다. AI가 '최적 작업 속도'를 계산하면, 그것이 새로운 작업표준이 된다. 인간의 한계를 고려하지 않는 알고리즘이 설정한 KPI(핵심성과지표)는 노동자를 끊임없이 압박할 것이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노동자들이 화장실도 못 가고 쓰러지는 이유가 바로 이 알고리즘 통제 때문이다.
셋째, 예측 불가능한 시프트(이동, 변화)이다. AI 스케줄링은 '수요 예측'을 명분으로 노동자에게 불규칙한 근무 시간을 강요한다. 오늘 출근하라고 했다가 내일은 쉬라고 하고, 주말 근무를 갑자기 통보한다. 생활 리듬이 무너지고 가족과의 시간도 보장받지 못하게 된다.
끝으로, 교섭력 약화다. 알고리즘이 작업 배분과 평가를 통제하면, 노동자 개인과 노조의 교섭력은 약화된다. 성과 측정 로직은 불투명하고, 이의를 제기해도 "AI가 계산한 것"이라는 답변만 돌아온다. 부당한 인사 조치에 대한 저항도 어려워진다.
AI 도입은 임금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킨다.
AI·데이터·로봇 운용 역량을 가진 소수 고숙련 노동자는 고임금을 받을 수 있다. 반면 단순 작업에 종사하는 다수 노동자는 저임금에 고용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같은 공장 안에서도 'AI 엔지니어'와 '단순 보조 인력' 사이의 임금 격차가 10배 이상 벌어지게 된다.
지역 격차도 커진다. 대형 데이터센터와 AI 공장이 들어서는 수도권·대도시 주변은 일부 고급 일자리가 생기지만, 그 외 지역은 일자리 자체가 사라질 수밖에 없다. 울산·거제 같은 제조업 도시는 조선·자동차 공장의 자동화로 대량 실업 사태를 맞게 될 것이다.
ㅡ '좋은 일자리 창출'은 거짓말에 불과
정부와 재벌은 "AI가 생산성을 높이고 고부가가치 일자리를 만든다"고 선전하고, 분석 자료는 "생산성 향상과 고부가가치 일자리 창출"을 긍정적 기회로 제시한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다르다. 자동화로 생산성이 올라가면 그 이익은 재벌 주주의 배당금과 임원 성과급으로 돌아간다. 노동자에게는 "더 적은 인원으로 더 많이 생산하라"는 압박만 돌아오게 된다.
'고부가가치 일자리'라는 것도 극소수에 불과하다. 26만 장의 GPU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AI 엔지니어는 기껏해야 수천 명이다. 반면 사라지는 일자리는 수십만, 수백만 개다. 더구나 그 '고급 일자리'도 대부분 서울 수도권에만 집중되고, 지방 노동자들은 접근조차 어려울 것이다.
그간 경험에 비추어 재교육 프로그램도 요식행위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50대 생산직 노동자에게 "파이썬 프로그래밍을 배우라"고 하는 것이 과연 현실적인가? 설령 배운다고 해도 20대 공대 졸업생과 경쟁해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까?
그 밖에, 전력 문제와 환경 파괴 역시 간과할 수 없다.
대규모 GPU 가동에는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다. 26만 장의 최신 GPU를 돌리려면 수백 MW(메가와트)급 전력이 필요하다. 이는 중소도시 하나가 쓰는 전력량에 맞먹는다.
이 전력은 어디서 나오나? 결국 석탄 화력발전소를 더 돌리거나, 원자력 발전소를 추가로 건설해야 한다. 재벌의 AI 공장을 돌리기 위해서 기후 위기는 가속화되고, 원전 사고 위험은 커진다.
냉각 시스템도 문제다. 고성능 GPU는 엄청난 열을 발생시킨다. 액침 냉각이나 직접 액체 냉각 시스템이 필요한데, 이는 막대한 물을 소비한다. 물 부족 지역에서는 지역 주민의 생활용수와 농업용수를 빼앗아 데이터센터에 공급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ㅡ 싸우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기술 발전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누가 기술을 소유하고 통제하느냐다. 지금의 AI 자동화는 한국에서는 재벌의 이윤 극대화를 위한 도구로 쓰일 수밖에 없다. 노동자를 해고하고, 남은 노동자를 더 쥐어짜고, 비정규직을 늘리며 감시하고 통제하는 데 쓰일 것이 뻔하다.
반대로, 만약 AI와 자동화 기술을 노동자와 사회가 통제한다면? 위험하고 힘든 일은 기계가 하고, 사람은 창의적이고 의미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다. 생산성 향상의 과실을 모두가 나눠 가지면서 노동시간을 줄이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
앞으로 1~2년 안에 콜센터, 사무직, 품질검사 등에서 자동화가 급속히 확산될 것이다. 3~5년 안에 제조라인 전면 재편과 대규모 로봇 도입이 이뤄질 것이다. 5년 후에는 산업별 AI 운영이 표준화되고, 준비되지 않은 노동자들은 영구적으로 노동시장에서 배제될 것이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지금 싸우지 않으면 노동자의 미래는 없다. 노조는 AI 도입 협약 쟁취 투쟁에 나서야 한다. 자동화 도입 시 사전 협의 의무화, 감원 시 재배치 우선권과 전환교육 보장, 임금 보호 기간 설정 등을 단체협약에 명문화해야 한다. 알고리즘 감시의 범위와 한계, 성과지표 정의와 검증 권한, 자동 의사결정에 대한 이의제기 절차도 확보해야 한다.
정부에는 전환 지원과 안전망 확대를 요구해야 한다. 재벌에는 자동화 이익의 사회 환원을 강제해야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기술을 누가 소유하고 통제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AI와 자동화 기술이 소수 재벌의 이윤이 아닌, 모든 노동자와 시민의 삶을 위해 쓰이도록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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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권과 건강권 없는 자동화는 소비 없는 성장을 낳는다 —기계화 시대, 인간을 위한 재분배 설계가 먼저다
문귀영(노동운동가)
2026.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