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장민(노동자신문 편집국장)
등록일 : 2023.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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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는 추상적인 혁명운동이 구체적인 사회발전경로에서 어떤 특수성과 특별성을 지니는가에 대해 일관되게 주목하고 있었다. 마르크스는 이미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의 원자론을 비교하는 박사논문을 쓸 때 구체적인 사물의 운동이 지니는 ㅁ수성과 특별성에 주목하였다. 에피쿠로스는 데모크리토스와 달리 원자의 운동은 운명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즉 항상 조화되어 전진하는 운동이 아니라 원자와 원자가 충돌하면서 원래의 궤도에서 이탈하는 사선의 불규칙적인 운동을 한다고 보았다. 생명체 즉 인간도 원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역시 정해진 운명과 달리 불규칙적인 운동을 하며 인간의 경우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인간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서 자유로운 선택 즉 자율성이 있다. 


구체적인 인간은 추상적 인간 즉 종적 존재, 유적 존재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지만 구체적인 인간의 모습은 횡적으로 특수할 수 있고 종적으로 특별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헤겔의 변증법이 역사적 숙명론에 따른 개념의 자기 전개임에 반해 마르크스의 변증법은 자율성에 근거하여 자신과 타인, 그리고 외부 환경과 상호 작용하는 과정이다. 


마르크스는 아직 자본주의가 발전하지 않은 비서구사회에서, 혹은 자본주의가 발전한 국가에서 종족, 인종, 민족의 특수한 조건에서 자본과 계급의 특수성에 주목하였다. 이러한 특수성의 발현을 작동케 하는 기제가 사회의 자율성이다. 즉 마르크스에게 있어 운동의 자율성은 보편적인 자본운동과 계급투쟁이 특정 사회에서 특수한 형태로 발현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추상적인 사회주의 혁명은 현실에서 없다. 현실에 있는 것은 러시아혁명 중국혁명 베네수엘라혁명처럼 구체적인 사회주의 혁명이다. 사회주의혁명은 사회주의정당에 의해 주도되는 것이 공통점 즉 보편적이다. 하지만 민족주의자나 민주주의자 종교인이 참여하는 특수한 경우도 있다. 


마르크스가 민족과 사회주의 혁명에 대해 체계적으로 설명한 적은 없다. 마르크스 유럽적 관점에서 국가와 민족을 모두 자본주의의 소산으로서 그 실체를 같이 보고 있다. 즉 국가가 체계라면 민족은 그 안의 구성원을 의미한다. 그런 측면에서 국가와 민족은 자본주의와 함께 형성되고 소멸된다고 보았다. 국가 혹은 민족은 영토, 주권, 국민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유럽은 자본주의 초기까지 영토, 주권, 국민의 개념이 확립되지 못하였다. 유럽에서 절대국가 이전에는 왕과 귀족 및 백성의 공동체인 민족의 개념이 확립되지 못하였다. 이때까지 유럽의 왕이나 귀족은 유럽 전역에 걸쳐 상호 구분이 모호한 왕조에 속하였고 지역에 속박된 백성과는 완전히 다른 정치경제사회문화공동체였다. 영토는 왕조에 의해 분할, 교환, 합병되어 불가침성이 없었다. 소유영지와 거기에 속박된 백성은 마치 왕이나 귀족의 소유물과 같았기 때문에 통치를 정당화시키는 주권이나 국민의 개념도 희박하였다. 이런 관점에서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민족은 자본주의에 의해 생겨났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몰락하면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민족은 계급으로 구성돼 있다. 민족의 다수는 피지배계급이고 봉건사회의 피지배계급은 농민이지만 자본주의에서 노동자이다. 민족이나 민족을 구성하는 자본가와 노동자 등 계급은 주체이고 민주주의나 민족해방 조국통일은 과제이다. 따라서 주체와 과제는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조합이 가능하다. 즉 노동계급이 반드시 민주주의적이거나 민족해방에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노동자는 피지배계급의 다수로서 민족의 다수로 계급의 공통적인 과제인 민주주의나 민족해방, 조국통일에 무관심할 때는 변혁의 주체로 나서지 못했고 개입할 때는 변혁의 주체로 섰다. 


마르크스는 다수자의 혁명으로 나타나는 사회주의혁명에서 다수가 지향하는 민주주의와 민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노동자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독일 이데올로기』(1846)에 따르면 대공업은 개별적 민족의 특수성을 파괴하고, 민족성이 사라진 노동자계급을 양산하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에게 민족이 지니는 의미에 대해 공산당선언이 잘 설명하고 있다. 공산당선언의 배경시대인 1848년 혁명은 투표권 제한 문제로 생긴 민주주의투쟁이고, 제국주의 빈체제에 대한 제 유럽 민족의 해방투쟁이었다. 1871년 파리코뮌도 독일군의 파리 점령에 항의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1905년과 1917년 러시아혁명은 제국주의 전쟁에서 패배하는 가운데 피지배계급이 무능한 지배계급을 타도했기 때문이다. 『공산당 선언』은 “노동계급의 부르주아와의 싸움은 부르주아가 승리한 날에서야 비로소 시작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부르주아민주주의혁명 과정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와 연대하면서도 부르주아와의 싸움을 준비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르주아혁명과정에서 노동자는 자신의 주도권이 실현되는 공동투쟁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맑스,  민족해방투쟁에서 노동자계급의 지도적 역할 요구


마르크스는 이러한 민주주의 민족해방투쟁에 노동자들이 지도적 계급으로 역할하기를 요구했다. 이를 반영하여 1888년 『공산당 선언』 영어판은 ‘민족적 계급의 지위에까지 올라서며’라는 표현을 삭제하고 대신에 ‘민족의 지도계급의 지위에까지 올라서며’라고 수정하였다. 즉 노동자는 다양한 계급의 연합인 민족의 지도계급으로서 민족적 과제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완수한 후 사회주의 혁명으로 나아가야 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1848년 혁명과정에서 독일 통일을 독일공산당의 요구로 제시하였다. 또한 1871년 독일제국으로 독일이 통일될 때까지 두 사람은 독일 통일 문제를 독일 노동자의 주요 과제로 다루었다. 


헤겔 철학에 정통했던 마르크스에게 있어 헤겔이 변증법적으로 파악하고자 했던 인간, 민족, 인류는 사회주의 혁명 과정에서 완전히 분리할 수 없었다. 마르크스의 사회주의혁명 즉 공산주의는 개인적 차원, 민족적 차원, 인류적 차원 모두에서 실현되어야 과제였다. 마르크스가 참여했던 1848년 유럽혁명은 프랑스혁명이었고 독일혁명이었고, 유럽 각국의 혁명이었다. 당시 개별 국가의 혁명이 가능하려면 유럽을 지배하고 있는 빈체제를 붕괴시키는 유럽의 혁명이 필요하였다. 당시 유럽 전체, 그리고 남미 등 식민지 전체가 빈체제로 상징되는 구체제의 제국주의 아래 식민지에 불과하였다. 그야말로 유럽과 그 식민지의 초국적 정부가 있었다는 점에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나 수사적인 세계혁명과는 다른 상황이다. 


1848년 2월 혁명은 빈체제의 전복이라는 보편적인 목적이 있었지만 각국의 혁명은 각각 특수한 목적도 지녔다. 프랑스는 1789년과 1830년 이미 부르주아민주주의혁명을 거쳤기 때문에 1848년 2월 혁명은 노동자가 이미 권력의 주체로 참여하는 사회혁명이었다. 즉 부르주아민주주의혁명과 프롤레타리아혁명의 중간단계였다. 반면 전제 군주 아래 분열된 독일연방의 혁명은 부르주아민주주의혁명이었다. 독일 혁명의 성격은 자본주의가 어느 정도 발전한 가운데 발생한 부르주아민주주의혁명이다. 독일 혁명의 목적은 시민계급이 중심이 돼 민중들이 분열적인 봉건제도를 극복하고 프랑크푸르트 의회를 중심으로 민주적인 중앙집권적인 근대민족통일국가를 세우려는 것이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당선언을 집필한 직후 1848년 3월 하순 「독일에서의 공산당의 요구」를 집필하였다. 이러한 요구는 부르주아민주주의혁명과정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취해야 할 구체적인 강령이었다. 또한 이것은 부르주아 혁명에 의해서도 가능한 것이며,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을 준비하게 되는 기초가 되는 것들이다. 따라서 공산주의자동맹은 이 요구를 통해 이러한 강령이 프롤레타리아트뿐만 아니라 소부르주아와 소농민의 이익을 위한 것임을 선언하였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민주주의 투쟁이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투쟁에 유리한 조건을 창출한다고 보았다. 


마르크스의 이러한 태도는 반제국주의 반봉건투쟁 일반에 대한 지지로 나타나고 있다. 『공산당 선언』은 1846년에 크라코프 반란을 주도한 폴란드의 봉건귀족들의 반제투쟁을 지지하였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빈 체제에서 오스트리아의 지배 아래 있는 폴란드에서 봉건세력이 민족해방전쟁을 치르는 경우, 노동자정당은 이를 한시적으로 지지할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 말년에 독일이 통일되면서 유럽에서 민족문제는 실질적 해소됐고 보통선거가 확산되면서 유럽에서 민주주의 문제도 해소됐다. 


반면 제3세계는 민주주의 민족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에 노동자가 이 문제에 선두에 서야 변혁운동의 지도적 위치에 설 수 있다. 마르크스의 말년 즉 1880년 초반 유럽 자본주의의 최측근인 러시아에서 혁명운동이 활발하였다. 따라서 마르크스에게 있어 러시아는 유럽 노동계급에게 과거 아일랜드가 그랬듯 유럽 혁명의 지렛대로 작용할 수 있었다. 이는 발달한 자본주의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가 사회주의혁명에서 어떤 상호작용을 하는가의 문제이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지구적 차원이므로 비자본주의적 사회는 서구 자본주의가 이룬 성취를 획득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본주의의 모순이 비자본주의적 영역으로 확대되며 따라서 자본주의가 발달하지 못한 지역에서도 사회주의 혁명의 징조가 나타날 수 있다. 마르크스에 따르더라도 저발전 지역의 혁명운동이 선진 자본주의의 혁명운동의 동맹이자 기폭제로 기능할 수 있다. 실제로 아시아에서 공산주의 사상이 반제국주의, 반식민지 민족운동의 과정에서 확산되었고 민족해방운동과 긴밀히 연결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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