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가지 배경 분석
안길성 (노동운동가)
등록일 : 2023.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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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권은 지난 해 5월 10일 출범 후 짧은 집권 기간 동안 외교적 실책과 말실수, 비전 없는 정국운영, 이태원 사건 등으로 집권 초기임에도 불구하고 줄곧 20% 내외의 낮은 지지율에 머물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을 동원하여 민주당 이재명 총재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국정원 요원들의 민주노총 본부와 경남지부 수색 등 제1야당 민주당과 노동진영에 대한 강공책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말 화물연대파업 진압 이후 윤석열 정권의 인기가 얼마간 올라가자 진보진영 내에서는 윤석열 정권에 대해 판단이 엇갈리고 있다. 우선 그를 준비 안 된 대통령으로 판단하는 견해를 들어보자.

 

“우격다짐으로 끼워 맞춘 부품이나 장치가 삐거덕삐거덕 억지스럽게 움직인 달까. …이것저것 막 던져보다 뭐 하나 얻어걸리면 다행인 정치랄까. 철학과 의지는 고사하고 딱히 순서도 없다. 그냥 대통령 마음대로 즉흥적이다. 난데없이 노동·교육·연금 개혁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래서 언제, 어떻게? 며느리도 모른다. 그냥 먼저 걸린 게 귀족노조 딱지 붙여 무릎 꿇린 화물연대였다. 여기서 ‘재미 봤다’고 여기는지 노조 부패를 들먹이며 회계장부를 공개하라 했다. … 이렇게라도 지지율을 올리겠다는 심보인가. 더 떨어질 것도 없으니 밑져야 본전인가.”

(김소희, “대통령 권력에 취했나… 윤석열의 ‘내맘’ 정치”, 한겨레21, 2023.1.1.)

 

이처럼 윤석열 정권을 전혀 준비 안 된 설익은 정권으로 보는 견해와는 달리,  나름대로 소신을 갖고 능숙하게 권력을 이용할 줄 아는 정권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윤석열 정권의 정국 운영방식은 매우 뚜렷하다. 문재인 정권이 헌법개정 외 그 무엇을 다할 수 있었던 180여석의 ‘거대’ 여당, 그리고 80%의 국민 지지율, 남북정상회담 등 획기적 남북관계 진전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 권력’을 정말 잘 사용할 줄 몰랐던 것과는 달리, 윤석열 정권은 100여석 밖에 안 되는 ‘최소’ 여당과 정권 지지율 30% 내외, 자고 나면 사회참사·경제참사·전쟁참사를 일으키는 정권임에도 ‘그 권력’을 참 잘 사용한다.… 결론적으로 윤석열 정권은 절대 ‘만만하지도’ 않고, 정국 운영방식도 매우 확연하다.”

(김광수, “정세 인식과 反윤석열 투쟁 방향에 대한 소고(小考)”, 민플러스, 2022.12.9.)


윤석열 정권의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 취임 후 지금까지 기껏해야 40% 안팎에 머무르는 낮은 지지율로 거대 야당과 노동계에 강공책을 펼치고 있는 것을, 단순히 검찰출신 윤석열의 ‘독불장군’ 식 국정운영이라고만 치부해도 되는 것일까? 현 정세의 특징을 이해하고 노동진영의 올바른 전략수립을 위해선 우선 이 문제부터 답해야 할 것 같다.

 

  1. 미국 트럼프의 사례

 

윤석열이 개인적으로 남의 말을 잘 듣지 않고, 특히 남들 위에 서려는 권력욕과 권위의식이 강하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난해 대선 초기 윤석열 선거캠프가 난맥에 빠졌을 때 이를 단기간에 수습한 과단성도 갖고 있다. ‘조국사태’ 때는 집권 여당과 청와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완강히 버티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이는 이후 그가 대통령이 되는데 밑천이 되었다. 이 같은 윤석열의 개성에 비추어 본다면 지금처럼 높지 않은 지지율과 여당이 국회 소수파라는 사실을 아랑곳 하지 않고, 강경하게 밀어붙이는 그의 정국운영 방식을 이해할 만하다.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등장한 사례는 지금의 윤석열 정권을 이해하는데 얼마간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

윤석열 보다도 훨씬 개성이 강한 트럼프의 출현 역시도 처음에는 ‘우연적’ 현상으로 해석되었다. 하지만 나중에 그것은 세계 유일 패권국가 미국이 처한 국내외적 상황에 비추어 일정한 필연성이 있음이 밝혀졌다.

 

트럼프 정부가 우격다짐으로 바꿔놓은 자유무역주의로부터의 후퇴(그것은 사실상 신자유주의 세계화 전략의 중대한 수정을 의미했다!)와 대중국 관계의 근본적 전환은, 이후 민주당 바이든 정부가 들어선 후에도 원상복귀 되지 않은 채 오히려 날로 강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역사적 시각에서 보자면, 트럼프는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정통 워싱턴 정계 출신이 감히 넘을 수 없는 관례를 깨트리는데 상당한 기여를 하였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의 정책들은 급속히 쇠락중인 패권국가 미국에게 있어 분명 필요한 것이었으며, 후임자들은 그것을 답습하기만 하면 되도록 발판을 깔았던 것이다.


이렇듯 한 나라 대통령의 통치 방식은 그것이 처음에는 아무리 우연적으로 보일지라도, 단순히 대통령 개인의 개성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윤석열 정부의 무모하다시피 한 강공책 역시도 한국사회가 현재 처한 일정한 상황의 반영이라고 할 것이다. 

 

2. 두 가지 배경

 

그렇다면 윤석열 정권의 강경노선의 배경은 무엇일까? 다음 두 가지 측면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첫째, 미국이 추진하는 ‘신냉전’ 전략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패권국가 미국은 날로 쇠락하는 자신의 국제적 지위를 만회코자 스스로 앞장서 추진해 왔던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을 부정하고 있다. 그 대신 대중국 포위를 핵심으로 하는 새로운 진영대결 정책으로 선회하였는데, 윤석열 정권의 정책은 자세히 보면 이 같은 국제 정세의 흐름과 긴밀히 맞물려 있다. 


만약 미국과 윤석열 정권이 바라는 대로 실제로 신냉전 구도가 현실화 되면, 그런 상황에선 이데올로기 내지는 진영논리가 우선적인 가치판단의 기준이 된다. 그럴 경우 중세식 ‘마녀사냥’이 판치게 되면서 대중의 정권에 대한 요구는 낮추어 지고, 사회적으로 불만이 폭발하는 임계점은 높아지게 된다. 대중이 불만을 폭발시키는 임계점 수위는 그 사회가 처한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이처럼 ‘신냉전’의 특성을 이용할 경우 윤석열 정권은 한국사회의 각종 모순의 심화와 정권의 실책에 따른 대중들의 불만을 일정 정도 무마시킬 수 있다. 

 

그 비슷한 사례가 영국의 2차 대전 시기의 경험이다. 당시 영국은  미국이 참전하기 직전까지 유럽대륙을 석권한 독일의 막강한 공군과 로켓 신무기의 공격을 받아 근 일 년 간 혼자서 버티어야만 했다. 이 기간 동안 런던 시민들은 집들이 폐허가 되고 극심한 고통을 받는 가운데서도, 처칠의 리더십에 의지하며 정부 지시에 충실히 따랐다. 그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겪는 현실의 고통과 불만을 히틀러에 대한 적개심으로 전화시킨 바 있다.
 
 둘째, 국내적으로 보면 한국 경제가 그 구조적 모순이 폭발하고 있는 시기와 맞물려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 경제는 그간  30년 주기를 갖는 축적체제를 형성해 왔다. 그런데 지금은 1987년 이후 새롭게 형성된 재벌주도의 축적체제, 즉 비정규직에 기반 한 후기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 축적양식이 4차 산업혁명의 본격화 및 국제질서의 재편기를 맞이하여 그 한계가 점점 분명해 지고 있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한 설명을 조금 덧붙이자면, 한국의 재벌들은 1990년대 들어 외주화, 고용 유연화, 비정규직 확대를 주요한 내용으로 하는 소위 ‘신경영’ 전략을 추진해 왔다. 1990년대 후반의 IMF 외환위기를 무사히 넘긴 후 이 같은 신경영 전략에 기반 한 새로운 축적체제는 한국사회에 확고히 정착되었다. 때마침 확장기를 맞이한 세계경제와 거대한 이웃 중국 경제의 고도성장은 이 같은 한국 경제의 새로운 발전을 위한 우호적인 외부환경을 제공하였다. 


이 같은 한국경제 모델은 세계 각국이 기존의 금융 중심 패러다임에서 제조업으로의 전환을 미처 이루지 못한 2014년까지만 해도 여전히 유효한 듯 보였다. 철강, 조선, 자동차, 전자, 반도체 등 한국경제를 대표하는 주력산업은 이 시기에도 계속해서 호황을 누렸는데, 우리는 이 시기까지를 한국 후기 신식국독자 체제의 상대적 안정기라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상대적 안정기는 세계 각국이 금융위기의 충격으로부터 점차 회복되기 시작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편으로 각국은 ‘제조업’에 다시 주목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경향은 마침 경제 전반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몰고 온 ‘4차 산업혁명’과 접목되면서 가속화되었다.  다른 한편, 이 무렵부터 중국이 산업화 과정을 일차 마무리함으로써 이제 중국은 한국의 거대한 수출시장이 아닌 무서운 경쟁상대로 돌변하였다.

 

특히 중국은 튼튼한 기초과학을 바탕으로 친환경에너지, 양자통신, 인공지능, 전기자동차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분야에서 기초과학이 취약한 한국을 크게 앞지르고 있다. 이제 한국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동안 황금알을 안겨주던 중국시장에서 밀려나고 있으며, 다른 세계시장에서도 중국에 밀려 점차 국제시장 점유율이 협소해지고 있는 형국이다. 


 이상 두 가지 요인에 의해 1990년대 이후 정착되어 온 한국의 ‘비정규직(저임금) + 중간수준 응용기술’에 기초한 경쟁력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 
 특히 최근 코로나19 사태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한국 경제는 민간 및 공공부문 부채의 누적, 부동산 거품, 수출부진 등 지난 1997~98년 외환위기 수준을 넘어서는 총체적 위기에 다가서고 있는 징후가 여러 군데서 포착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더 이상 다른 해결 방도를 찾을 길 없는 한국의 통치계급은 윤석열 정권의 집권 초기 ‘합법성’이 아직 유효하고 레임덕이 발생하지 않고 있는 지금과 같은 시기를 이용하여 강공책을 펼침으로써, 어떻게든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를 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이러한 강공책은 일견 무모한 듯 보이지만, 앞서 언급한 국내외적 배경을 고려한다면 나름의 합리성이 있다고 보여 진다. 즉 여소야대 형국에서 어차피 집권세력은 운신의 폭이 제한될 수밖에 없는데, 만약 윤석열 정권의 이 같은 강공책이 먹혀 들어갈 경우 대야 관계에 있어 기선을 제압할 수 있고, 그 여세를 몰아 2024년 총선에서 지금의 여소야대 형국을 뒤집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이후에는 본격적인 합법적인 파쇼적 억압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가능해 진다. 


결론적으로, 윤석열 정권의 지금의 강경책은 마땅한 위기 수습 방도가 없는 한국 통치계급의 어쩔 수 없는 공세의 측면이 강하다. 즉 그것은 강함보다는 약함의 반영이다.*

 

* 손정목(통일시대연구원 부원장)씨 역시 이와 비슷한 견해를 보여준다. 즉  “우려스런 점은 윤석열정권이 파쇼화로 치닫고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과도 다르다. 과거 군부독재를 연상케 하는 반북, 반민주, 반노동 정책들은 미국의 패권몰락 위기에 따른 한국의 친미수구세력들의 지배력 상실 위기가 근본 원인이다. ”(손정목, “2023 정세전망과 한반도 평화의 길”, 통일시대, 2022.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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