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ㅡ 임금피크제 합법화와 투쟁 무력화라는 독소조항 담겨 있어
안길성 (노동운동가)
등록일 : 2025.12.05

정년연장.png.jpg

 

1.  윤석열 쿠데타 저지 투쟁, 민주당이 갚아야 할 ‘정치적 빚’

 

이번에 언론을 통해 보도된 더불어민주당의 ‘정년연장 방안’은 민주당의 본질을 다시 한번 유감없이 드러냈다. 민주당은 지난 조기 대선에서 윤석열 일당의 쿠데타를 저지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 노동자들과 시민의 지지 기반 위에서 승리했다.  윤석열 정권이 '계엄령 1호'로 민주노조 활동 금지와 극심한 노동 탄압을 통해 한국 재벌 체제를 유지하려던 속셈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을 때, 쿠데타를 분쇄하고 영하의 추위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이에 맞서 싸운 것은 바로 민주노총을 필두로 한 노동자들이었다.

 

민주당은 이 '제2의 촛불혁명'에 대한 빚을 지고 있으며, 이를 갚기 위해 지난 조기 대선 과정에서 ‘국민연금 수령 개시 연령과 연계한 정년연장’을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는 고령화 시대에 노동자들이 연금 수령 공백기(소득 크레바스) 없이 안정적으로 노후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최소한의 약속이었다. 따라서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 정권은 이 약속을 온전히 이행함으로써 노동자계급에 대한 정치적 빚을 갚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였다.

 

그러나 이번에 예고된 입법안은 그 내용과 시기 면에서 심각하게 불충분하며, 오히려 노동자 권익을 후퇴시키는 ‘함정’을 내포하고 있어 우려를 넘어 분노를 자아낸다. 이는 과거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과정에서 보여주었던 '용두사미식' 입법 태도를 다시 한번 반복하는 것이다.

 

2.  정년연장의 '취지 퇴색':  13년 후의 약속

 

민주당이 채택을 염두에 두고 제시한 것으로 보이는 중간안(2안)의 내용을 보면, 정년연장의 실효성이 얼마나 퇴색되었는지 명확히 드러난다. 해당 방안은 지금으로부터 3년 후인 2029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정년이 1세 연장되는 것을 시작으로 한다.


문제는 이 시점에는 국민연금 수령 개시 연령이 이미 65세로 늦춰져 있다는 사실이다. 즉, 2029년에 정년이 61세로 연장된다고 해도, 여전히 4년의 소득 공백(크레바스)이 발생한다. 더 심각한 것은, 정년이 국민연금 수령 시기와 완전히 맞닿게 되는 65세가 되기까지는 2039년까지, 무려 13년이라는 긴 세월을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다.

 

당초 공약의 핵심은 '연금 수령 연계'를 통한 노동자의 안정적인 노후 보장이었다. 하지만 이 입법안은 노동자의 절박한 현실을 외면하고, 사용자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일정을 극도로 지연시켰다. 현재 국민연금 수령 연령이 단계적으로 늦춰지는 속도를 고려할 때, 2039년까지 기다리는 것은 사실상 '약속의 이행'이 아니라 '약속의 방기'에 가깝다. 이 기간 수많은 노동자들은 소득 크레바스에 내몰려 불안정한 노후를 감당해야 한다.

 

3. 가장 심각한 독소조항ㅡ 임금피크제 합법화와 민주적 절차 무력화

 

이번 입법안에서 가장 심각한 악법의 소지가 있는 조항은 정년연장과 연계하여 임금 삭감(임금피크제 등)을 단행할 경우, 원래 과반수 노조의 동의가 필요한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대상에서 제외시켜 주겠다는 내용이다.

 

이 조항은 정년연장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대표적인 독소조항이다.

 

첫째, 정년연장의 실익이 훼손된다. 정년연장의 본래 취지는 노동자의 고용안정과 소득 보장이다. 그러나 이 조항은 사용자에게 정년연장을 빌미로 임금피크제를 손쉽게 도입할 수 있는 면죄부를 부여한다. 임금피크제는 이미 대법원에서 정당성 여부가 엄격하게 심사되는 등 논란이 많은 제도이며, 그 도입은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소득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이 조항은 사실상 임금피크제를 합법화하고 강제하는 악법이 될 수 있다.

 

둘째, 노동 민주주의의 훼손이다. 취업규칙을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할 경우,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도록 한 것은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민주적 절차이다. 이 조항은 이 민주적 절차를 우회하여, 사용자가 소수 친사용자 측 인사들과의 야합만으로도 노동조건의 핵심 사항을 일방적으로 변경할 수 있는 위험한 선례를 남긴다. 이는 과거 노동계에서 '직권조인'의 악몽으로 불리던, 노동조합의 정당한 교섭권을 무력화시키는 행위가 되살아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결국 민주당은 노동자들의 절박한 요구를 입법으로 수용하는 척하면서, 그 안에 자본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트로이 목마'를 숨겨 넣았다.

 

4. 국회 청원 대신 단결된 투쟁으로 나아가자

 

이번 민주당의 정년연장 입법안은 노동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일깨워 준다. 국회와 기성 정치권에만 의존해서는 노동자들의 권익을 제대로 지킬 수 없다.

 

민주당은 노동자계급의 지지로 집권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이해관계와 타협하는 불충분하고 기만적인 입법안을 내놓았다. 이는 노동자들의 권익은 오직 단결된 투쟁을 통한 강한 압박만이 스스로 지킬 수 있다는 냉엄한 현실을 재확인시켜 준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운동은 이제 국회 청원이나 로비 등의 안일한 방식만으로는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임금피크제 합법화라는 독소조항을 막고, 국민연금 수령 연령과 연계된 실질적인 정년연장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전면적인 투쟁 태세로 전환해야 한다.

 

노동자계급은 자신들의 희생을 발판 삼아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모든 시도에 맞서, 스스로의 힘으로 노동조건과 노후를 결정할 권리를 쟁취해야 한다. 단결하고 투쟁하는 것만이 이 불충분한 입법안을 폐기시키고, 진정한 노동자 권익을 확보하는 유일한 길이다.

 

[울산함성 무료구독 신청] https://t.me/+ji13hLs-vL83ZTBl 

삭제하시겠습니까?
취소
사진 및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왼쪽의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용량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취소

오피니언

2008년 광우병 국민저항과 종속적인 관세협상

김장민(정치경제학연구소 프닉스)

2025.12.07

오피니언

민주당의 ‘정년연장’ 방안, 노동자계급에 대한 또 하나의 배신

ㅡ 임금피크제 합법화와 투쟁 무력화라는 독소조항 담겨 있어

안길성 (노동운동가)

2025.12.05

한국민중,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을 저지하는 연대에 동참해야

김장민(정치경제학연구소 프닉스)

2025.12.02

오피니언

국민의힘을 해체하는 확실한 방법이 있다.

김장민(정치경제학연구소 프닉스)

2025.12.01

오피니언

[한국과 마스가-3] 미국 조선 노조와 한국식 '초과 착취' 모델의 종언

김정호 (울산함성 편집위원)

2025.11.30

오피니언

폭스바겐의 선택이 한국 기업에게 던지는 질문

ㅡ'융합'과 '고립' 사이, 한국 기업은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김정호 (울산함성 편집위원)

2025.11.28

오피니언

"한 명이 불법파견이면, 우리 모두가 불법파견이다"ㅡ 현대제철 2심 판결과 '투쟁 전망'

안길성 (노동운동가)

2025.11.28

오피니언

 노조법 ‘2,3조’ 시행령의 딜레마ㅡ 재벌의 '초과착취' 구조를 외면한 절차적 접근의 한계

김정호 (울산함성 편집위원)

2025.11.27

오피니언

​ ​분열의 역사적 원인을 찾아 단결하고 정치적 노동운동에 복무하자!

노동계급 정치세력화의 원칙과 방향

백철현(전국노동자정치협회 편집위원장) ​

2025.11.27

오피니언

 글로벌 청년은 '쿨한 중국' 보는데, 한국 청년의 '혐중' 왜 유독 심할까?

김정호 (울산함성 편집위원)

2025.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