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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영구적 세계 주도’ 포기와 역사적 역설
2025년 12월 4일 백악관이 발표한 최신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는 전 세계에 충격을 던졌다. 이 보고서는 냉전 이후 미국이 추구해 온 ‘영구적 세계 주도’ 목표가 “근본적으로 바람직하지도, 실현 가능하지도 않다”고 선언하면서, 글로벌 패권 개념에서 벗어나 이익 우선의 실용 외교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복귀 후 펼친 ‘미국 우선주의’ 외교정책의 공식적인 선언문이다.
그러나 이 보고서가 시사하는 전략적 조정은 단순한 정책 변화를 넘어선다. 본질적으로 미국은 ‘영구적 세계 주도’를 포기할 수는 없다. 이를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것은 곧 스스로 자멸의 길로 빠지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점은 적어도 트럼프 정부 시기에 이러한 전략 조정을 감행함으로써, 객관적으로 그러한 자멸의 상황이 실제로 도래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현재 세계는 단일 패권 세력(미국)과 다극화 세력(중·러, BRICS) 간의 대결이 결정적인 국면에 들어섰으며, ‘공수 전환기’가 막 시작된 시점이다. 여기서 상호 경쟁하는 한쪽의 잠시의 물러섬은 상대에게는 결정적인 승기를 제공하면서, 자신을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드는 도화선이 된다.
2. 자해 행위: 동맹 해체와 유럽에 대한 ‘찬물 세례’
미국의 전략적 퇴각이 자멸로 이어지는 첫 번째 원인은 동맹체제의 자발적 해체에 있다. NSS 보고서는 유럽 동맹국에 대한 전례 없는 노골적인 폄하와 비판을 쏟아냈다. 보고서가 유럽을 “문명 소멸” 위험에 처한 쇠퇴하는 대국으로 묘사하고, 심지어 유럽 내부에 ‘저항 세력’(애국적 유럽 정당, 즉 극우세력)을 육성하고 환영하겠다고 밝힌 대목은 충격적이다.
프랑스 《르몽드》가 “역사적 단절”이라 평했듯이, 이는 2차 대전 이후 80년간 미국 외교의 근간이었던 대서양 동맹을 공개적으로 폄하하고 유럽 내정에 노골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선언이다. 유럽 외교관들이 “찬물 세례”라며 실망감을 표출했음에도, EU 지도자들이 공개적인 항의를 자제하는 것은 이미 이러한 미국의 태도에 익숙해졌음을 보여준다.
트럼프와 ‘미국 우선주의’ 진영은 동맹을 안보의 자산이 아닌 수탈의 대상으로 간주하며, 동맹 내부의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 이러한 행위는 단기적으로는 미국 국내 정치적 이득을 가져올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미국 패권의 가장 강력한 기반이었던 동맹체제의 신뢰와 응집력을 근본적으로 파괴한다. 한번 해체된 동맹의 신뢰는 재복구가 극도로 어렵다. 미국이 스스로 동맹 내부를 해체시키는 행위는 경쟁국이 수십 년간 막대한 자원을 투입해도 달성하기 어려웠던 목표를 자발적으로 실현시켜주는 것과 같다.
미국이 서반구와 ‘핵심 국가이익’에 집중하며 글로벌 패권을 추구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전략적 공백은 경쟁상대인 중국과 BRICS 등 다극화 세력의 상승 기세를 더욱 강하게 만들 것이다.
NSS 보고서는 중국에 대한 표현을 ‘체계적 경쟁’에서 ‘상호 혜택과 공정성을 우선하는 경제관계의 재조정’으로 바꾸었다. 데이비드 삭스 CFR(미국 외교관계위원회) 아시아안보 선임연구원이 "대국 경쟁 시대의 종식"을 선언한 것은, 미국이 더 이상 중국을 전방위적으로 봉쇄할 능력이 없음을 사실상 인정하는 수사적 표현에 불과하다.
가장 심각한 결과는 ‘중간 지대’의 이탈 가속화이다. 미국이 ‘트럼프 관세’를 통해 동맹을 수탈하고 소외시키면서 발생하는 동맹 내부의 약화는, 인도, 아르헨티나,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이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균형을 추구하던 국가들마저 미국을 버리고 BRICS 품에 ‘확실히’ 안기도록 만들 것이다. 이들 국가에게 미국은 이미 예측 불가능하고 신뢰할 수 없는 파트너가 되었으며, 중국과 BRICS는 안정적인 경제성장과 새로운 금융질서(탈(脫)달러화)를 제공하는 매력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이 서반구에 집중하는 동안, 유라시아와 글로벌 사우스는 중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다극 질서로 빠르게 재편될 것이다.
3. 근본 동력: 14억 인구의 사회주의 대국의 부흥
이 모든 현상의 밑바탕에는 중국이라는 현재 왕성하게 부흥하고 있는 14억 인구의 사회주의 대국이 있다.
미국이 전략적 퇴각을 선언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원인은, 더 이상 중국의 경제적, 기술적 성장을 막을 수 없다는 패배감의 반영이다. 중국은 단순히 거대한 시장을 가진 국가를 넘어섰다. 인공지능(AI), 로봇공학, 친환경에너지, 생명공학, 그리고 군사기술 분야에서 중국의 과학기술 발전은 이미 미국의 봉쇄망을 뚫고 대등하거나 일부 영역에서는 우위를 점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미국이 ‘대국 경쟁 시대의 종식’을 선언하고 중국을 ‘경제 경쟁자’로 대결의 성격을 변화시킨 것은, 중국을 체제적 도전자로 규정하고 전면전을 벌이는 데 따르는 막대한 비용과 실패 가능성을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결국, 미국이 ‘영구적 세계 주도’를 추구하지 않겠다는 선언은, 그 선언 자체로 인해 패권의 종말을 가속화하는 자기실현적 예언이 될 것이다. 트럼프의 전략적 조정은 현재 진행형인 공수 전환기를 미국에게 더욱 불리한 방향으로 결정짓는 촉매제로 작용할 것이며, 이는 21세기 세계 질서의 최종 승패를 결정짓는 중대한 분기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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