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
오피니언
-
오피니언
-
전국노동
-
전국노동
-
오피니언
-
오피니언
-
전국노동

인공지능은 인간의 지적 능력을 능가하고 있다.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분석하고 종합해 최적의 선택지를 제시하는 능력에서 AI는 이미 다수의 전문직을 압도한다. 법률, 금융, 의학, 산업 전략까지 인간의 판단이 필요하다고 믿어왔던 영역의 상당수가 알고리즘에 의해 재편되고 있다.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던지게 되는 질문이 있다. 국가의 운명과 존립을 다루는 외교 분야 역시 언젠가는 인공지능의 영역이 되는 것은 아닐까.
답은 부정이다. 외교는 AI가 가장 마지막까지 도달하지 못할 세계다. 외교의 본질이 정보처리나 협상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판단과 책임 그리고 관계의 형성에 있기 때문이다. 외교는 불완전한 정보와 상충하는 이해관계 속에서 펼쳐진다. 모든 선택에는 계산할 수 없는 위험이 따르고, 그 위험을 감수할 것인지 여부는 인간이 결정해야만 한다. AI는 가능성을 나열할 수는 있겠지만 선택했을 때의 정치적, 도덕적 책임을 떠안지는 못한다.
외교의 요체는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다. ‘결단’을 내리는 것이다. 상대국의 의도를 온전히 파악할 수 없는 상황에서 때로는 손해를 감내하면서 장기적 관계를 택하고, 때로는 장기적 이익을 포기하면서 국가의 존엄을 지켜야 한다. 이러한 판단은 데이터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관의 문제이며 책임의 문제다. 외교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품격과 용기 위에서 작동한다.
한국은 외교의 인간적 역량이 더욱 필요한 국가다. 이 점은 외교 현안을 몇 번만 따라가 봐도 금방 체감하게 된다. 미완의 전쟁 상태, 주변 강대국들의 전략적 이해가 충돌하는 지정학, 안보와 경제가 연계된 산업 구조는 한국 외교를 본질적으로 고난도의 범주로 들인다. 어느 하나의 사안도 단선적으로 접근할 수 없다. 하나의 선택은 반드시 다른 영역에서의 충격으로 반동된다. 어떤 결정도 무중력 지대에 남지 않는다.
예컨대 한국의 대외경제 정책은 단순한 통상 문제가 아니다. 관세협상은 산업 정책, 고용 구조는 물론 한미 간의 안보동맹과 직결된다. 특정 국가에 대한 대규모 투자는 민간 기업의 결정이더라도 큰 그림으로는 기술 통제와 공급망 재편이라는 국제정치의 흐름 속에서 전략적 의미를 갖춘다. 이러한 문제를 숫자와 조건의 문제로만 다룬다면 외교는 이미 실패한 것이다. 외교란 복합적인 사안을 하나의 전략으로 엮어내는 작업이다.
2월 10일 열린 국무회의는 재경부가 주도하는 ‘전략경제협력지원단’을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외무부는 반발하고 있다. 지원단 설치에 관한 ‘운영규정’ 개정 내용을 들여다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외무부의 무책임과 무사안일과 무능력이다. 자업자득이다. 그러나 대외 경제협력 사안은 예민한 외교의 영역이다. 재경부가 주도할 일이 아니다. 사실 통상외교도 원래대로 외교라인에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요는 그럴 능력과 자세가 안 되어 있는 지금의 ‘외무부’는 해체하고 ‘진짜 외교부’를 탄생시켜 경제통상 외교를 통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보 영역에서의 외교는 복잡성이 더욱 증폭된다. 한국은 동맹의 구조 속에서 자율성을 확보해야 하는 이중 과제를 안고 있다. 동맹은 생존의 도구지만 자율적 판단을 제약하는 틀이기도 하다. 이러한 긴장의 관리 여하에 따라 한국은 전략적 주체가 될 수도, 영구적인 종속 변수로 남을 수도 있다. 군사 기술이나 병력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외교적 판단의 문제다. 언제 협조하고 언제 문제를 제기하며 언제 침묵할 것인지는 정해진 매뉴얼에 없다.
한국 외교는 태생적으로 인공지능적 최적화와 충돌한다. AI는 과거의 패턴을 기반으로 안정적인 선택을 권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외교가 직면하는 상황의 대다수는 과거의 연장이 아니라 새로운 국면의 시작이다. 전례가 없는 상황에서 전례 없는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 한국 외교의 일상이다. 따라서 한국은 어떤 국가보다 외교관의 전략적 상상력과 결단력을 요구한다.
문제는 지금 우리의 외교 체계가 이러한 요구를 감당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냉정히 말해 그렇지 않다. 현재의 외교부는 외교를 수행하는 조직이 아니다. 외국과의 사무를 겨우 처리하기에도 벅찬 ‘외무부’일 뿐이다. 전략을 생산하기보다 기존의 국제 질서와 강대국의 방향성을 전제로 그 안에서의 적응만이 소임이다. 이른바 ‘무사고 안전주의’가 조직의 기본 생리다.
이런 체계에서 외교관 개인의 판단은 내재적으로 억제된다. 중요한 결정일수록 조직의 책임이 분산되고 누구도 최종 판단의 주체가 되지 않는다. 실패하지 않는 것이 성공이 되고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능력이 된다. 이로써 단기적으로는 조직을 안정시킬는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국가의 전략 능력을 마비시킨다. 스스로 국익을 정의하지 못하는 조직이라면 결국 타국의 국익을 관리하는 하청 기관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외무부’는 외교를 위험한 판단의 영역이 아니라 실수 없이 처리해야 할 행정 업무로 이해한다. 이런 조직이라면 인공지능은 안락한 반려자가 된다. 전략적인 판단을 요구받지 않기 때문이다. 핵심은 인공지능의 발전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인간 외교관이 스스로 판단하지 않도록 길들여진 구조다. ‘외무부’가 이 구조를 유지한 채 AI를 도입한다 한들, 그것은 외교의 고도화가 아니라 오히려 외교의 포기다. 데이터 분석과 문서 작성은 기계에 맡기더라도 전략을 설계하고 책임지는 주체는 필히 인간이어야 한다. 하지만 ‘외무부’는 전략가를 키울 능력이 없다.
‘외무부’ 해체론은 과격한 주장일 수도 있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문제 제기이기도 하다. 조직을 없애자는 감정적 구호가 아니다. 외교를 외교답게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에 대한 논의다. 외무부적 사고를 해체하지 않고서는 어떤 인재도 외교관으로 성장할 수 없다. 전략을 제안하면 위험한 인물로 낙인찍히고 문제를 제기하면 조직 부적응자가 되는 구조에서 진짜 외교는 언감생심이다. ‘외무’하기에 급급한 외무부는 조속히 해체해야 한다. 그리고 복합적인 사안을 하나의 그림으로 그려낼 줄 아는 ‘진짜 외교부’를 탄생시켜야 한다.
진정한 외교부는 역할부터 달라야 한다. 정책을 집행만 하는 기관이 아니라 국가 전략을 생산하는 핵심 기관이어야 한다. 외교관은 보고서를 잘 쓰는 관리가 아니라 국가의 선택지를 설계하는 전략가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실패를 감수할 수 있는 제도, 책임을 개인에게 귀속시키는 구조, 그리고 무엇보다 외교를 ‘위험한 판단의 영역’으로 인정하는 문화가 필수다.
외교는 위험을 수반한다. 위험을 회피하는 외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외교의 탈을 쓴 행정일 뿐이다. 인공지능은 위험을 계산할 수 있지만 감당할 수는 없다. 이 지점에서 인간 외교관의 존재 이유가 발생한다. 한국처럼 선택의 비용이 큰 국가일수록 인간적 능력은 더욱 절실하다.
기술의 시대에 외교를 인간에게 맡겨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외교는 국가의 세계관을 선택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어떤 질서에 편입될 것인지, 어떤 가치를 우선할 것인지, 어떤 위험을 떠안을 것인지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결단에 속한다. 그리고 그 결단의 질은 조직이 만들어낸다. 지금의 외무부로는 그 결단을 기대하기 어렵다. 해체는 파괴가 아니라 출발이다. ‘외무부’를 해체하고 전략과 책임을 중심으로 한 ‘진짜 외교부’를 세우는 것, 그것이 인공지능 시대에 한국이 외교를 통해 진짜 대한민국으로 번영하기 위한 첩경이다.
[울산함성 무료구독 신청] https://t.me/+ji13hLs-vL83ZTB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