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젠강(霍建岗)/ 김정호 번역
등록일 : 2025.07.06
일본 우익은 ',이시다 담화',를 강력하게 반대했다.png

 

올해는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이자, 일본에게는 제2차 세계대전 무조건 항복 8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일본 총리 이시바 시게루(石破茂)는 원래 이 시점에서 역사 인식과 관련한 ‘이시바 담화’를 발표하려 했으나, 우익 보수세력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우익이 ‘이시바 담화’를 반대하는 이유는 그들이 침략 책임을 회피하고 역사적 사실을 혼동시키는 2015년 ‘아베 담화’가 부정당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며, 수십 년간 ‘노력’으로 구축해 온 ‘제2차 세계대전 사관(史觀)’에 치명적인 결함이 드러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도쿄 재판은 동아시아 공동의 2차 대전 역사 기억의 초석이자 동아시아 전후 질서의 기반이다. 비록 현재까지 일본 정부는 도쿄 재판을 공식적으로 부정하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조치를 통해 이를 무력화해왔다. 예를 들어, 도쿄 재판이 끝난 지 몇 년 되지 않아 일본 정부는 법률을 개정해 전범 유족에게 연금·부조금·위로금을 지급함으로써 ‘전쟁 범죄’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부정했다. 국회는 심지어 전범에 대한 사면·감형·가석방을 권고하는 결의안까지 통과시켰다. 표면적으로는 인정하지만 실제로는 무력화하고 점차 희석시킨 뒤 부정하는 것은 일본이 흔히 사용하는 수법이다. 전후 일본이 구축한 2차 대전 사관도 기본적으로 이 패턴을 따르고 있다.

 

일본이 구축한 2차 대전 사관의 핵심 중 하나는 침략을 희석하거나 부정하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도쿄 재판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못하지만, 사회여론과 학계가 침략을 부정하는 행위를 방치하는 데에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일본 정부와 천황은 공식적인 자리(예: 8·15 ‘전국 전몰자 추도식’)에서 일본이 과거에 일으킨 대외 침략 전쟁을 ‘과거의 전쟁’이라 칭한다. 일본 정부는 전쟁의 성격을 명확히 하지 않으며, 심지어 ‘과거의 전쟁’이 정확히 어떤 기간을 가리키는지도 모호하게 처리한다. 일본 정치인과 언론은 대부분 ‘태평양 전쟁’이라는 용어로 ‘과거의 전쟁’을 지칭하는데, 이는 전쟁이 일미(日美) 간의 태평양 전쟁이었다는 점을 강조해 아시아 침략의 성격을 희석하려는 의도다. 일본 국민 상당수도 이러한 잘못된 사관의 영향을 받고 있다. 2020년 《마이니치 신문》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과거의 전쟁’을 ‘태평양 전쟁’으로 인식하는 응답자는 38.5%에 달한 반면, 일본이 말하는 ‘15년 전쟁’(1931~1945년)으로 인식하는 응답자는 고작 2.7%에 불과했다.

 

일본 우익세력.png
일본 우익 분자

 

전후 초기, 당시 서독의 주류 사회는 나치 범죄와 홀로코스트 논의를 회피하는 경향이 강했고, 사람들은 패전 후의 고난과 재건에 더 관심을 두었다. 그러나 1960년대 좌익 학생운동은 독일 사회를 완전히 전환시켰다. 젊은 세대는 부모 세대에게 침략·식민지·학살의 역사를 반성하도록 촉구했고, 이는 사회의 역사 인식 방향을 점차 뒤바꾸며 2차 대전을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에도 올바른 사관을 고수하는 세력이 존재했다. ‘55년 체제’에서 개혁 세력이었던 사회당은 일본의 대외 침략을 인정하고 아시아 각국에 사죄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60년대 좌익 운동은 일본 주류의 2차 대전 사관을 재구성하는 데 실패했다. 동시에 1955년부터 냉전 종식까지 자민당이 계속 정권을 잡았기 때문에 잘못된 사관이 장기간 사회 주류를 차지할 수 있었다.

 

중·일 관계 정상화, 특히 1972년 《중일 공동 성명》에서 “일본 측은 과거 전쟁으로 중국 인민에게 중대한 손해를 입힌 책임을 통감하며 깊이 반성한다”는 내용은 일본 정계와 지식계 일부가 침략 역사를 재고하도록 촉진했다. 중국과 한국, 조선 등 주변국은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에 반대하며 일본이 2차 대전 사관에서 점차 올바른 길로 돌아서도록 노력했다. 1982년 ‘미야자와 담화(宫泽谈话)’는 일본 정부가 침략을 미화하는 교과서를 시정할 책임이 있다고 인정했고, 1993년 ‘고노 담화(河野谈话)’는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동원을 시인했다. 1995년 ‘무라야마 담화(村山谈话)’는 일본 정부의 전후 역사 문제에 대한 입장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는 “식민 지배와 침략이 많은 국가, 특히 아시아 각국 민중에게 큰 피해와 고통을 안겼다”며 “다시 한번 깊은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과를 표명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일본 우익과 민족주의 세력의 반발로 이러한 침략 역사에 대한 반성은 일본의 2차 대전 사관 구축이 올바른 길을 걷도록 이끌지는 못했다.

 

2012년 두 번째로 총리에 오른 아베 신조(安倍晋三)는 매년 8월 15일 ‘전국 전몰자 추도식’ 연설에서 더 이상 일본이 아시아 이웃 국가를 침략한 ‘가해’ 책임을 언급하지 않았고, 이에 대한 ‘반성’도 표현하지 않았으며, 피해자에게 ‘사과’하는 것은 물론 ‘불전(不战)’을 약속하지도 않았다. 아베 정부는 표면적으로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를 계승한다고 주장했지만, 2014년 일본 정부는 ‘담화 발표 전 일본 정부가 위안부의 강제성 주장을 검증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조사 보고서를 발표해 사실상 ‘고노 담화’를 부정했다. 2015년 ‘아베 담화’는 ‘무라야마 담화’의 취지를 부정한 것이었다. ‘아베 담화’에는 ‘침략’ ‘식민 지배’ ‘사과’ 등의 키워드가 등장했지만, 구체적인 침략 행위 인정이나 피해국에 대한 직접적인 사과는 없었다. 그는 “이미 여러 차례 통절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과를 표명했다”며 직접적인 사과를 회피했고, “자손 세대가 계속 사과해야 할 운명을 짊어질 필요는 없다”고 강조해 일본이 앞으로 과거의 침략과 식민 행위에 대해 사과할 필요가 없음을 암시했다. 역사관 측면에서 아베는 일본의 2차 대전 행위를 ‘시대적 배경’ 속의 ‘역사적 공동 책임’으로 귀결시키려 했으며, 일본이 잘못된 길로 이끌렸다고 주장했다. 또한 러일 전쟁이 “식민 지배 하에 있던 아시아와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다”며 일본 군국주의의 침략 본질을 은폐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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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2월 23일 일본 조총련 본부에 총을 쏜 일본 우익 가쓰라 토모시(56세)

 

동시에 일본 정부는 ‘일본 피해론’을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아베 정부는 가해 책임을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도쿄 대공습’을 기념하고 일본이 유일한 ‘핵폭탄 피해국’임을 강조했다. 후임인 스가 요시히데(菅义伟)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도 아베의 이러한 태도와 방식을 계승했다. 2023년 히로시마 G7 정상회의 기간, 기시다 정부는 참석한 지도자들에게 원자폭탄 투하 후 히로시마의 참상을 주로 보여주는 평화 기념 자료관 관람과 원폭 희생자 위령비 헌화 등을 통해 ‘피해자’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조성했지만, 이러한 참상을 초래한 대외 침략의 사실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이시바 시게루는 과거 일본의 침략 범죄를 인정하고 “과거 역사를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으며, “오직 잘못을 인정해야만 진정으로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만약 ‘이시바 담화’가 이시바의 기존 입장을 반복한다면, 이는 침략 역사를 흐리려 하고 전쟁 책임을 회피하려는 ‘아베 담화’에 대한 강력한 반격이 될 것이다. 때문에 일본 우익이 이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중국 현대 국제관계연구원 동북아연구소 연구원)

 

출처: 환구시보

2025년 7월 3일

(원문보기) https://opinion.huanqiu.com/article/4NKu6Q4nB2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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