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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소식
2003년 10월 17일,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위에서 김주익 열사는 사측의 노조 탄압과 손배가압류에 항의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로부터 22년이 흘렀다. 그와 곽재규 열사의 희생은 노동운동의 불씨가 되었고, 산 자들은 그 뜻을 이어 오랜 세월 투쟁해 마침내 개정 노조법을 쟁취했다.
그러나 지금 국민의힘은 국회에서 개정 노조법을 흔들려 하고 있다. 지난 15일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은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을 노동쟁의의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며 보완 입법을 요구했고,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를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어불성설이다. 노조법이 개정되기 이전에도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에 맞선 파업은 수없이 있었다. 경영상의 결정은 노동자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헌법은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한다. 그럼에도 국가는 이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공권력으로 노동자를 짓밟아 왔다.
금속노조는 "이러한 역사는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우리 사회는 ‘경영 위기’만을 말하지만, ‘경영 실패’의 책임은 따지지 않는다. 위기의 부담은 언제나 노동자에게 전가되고, 헌법이 보장한 노동의 권리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김주익 열사는 이 뒤집힌 정의를 바로 세우라고 생명으로 외쳤다.
금속노조는 16일 성명을 통해 "김주익 열사의 뜻을 이어 노동자와 시민이 힘을 모아 개정 노조법을 만들어 냈다. 국민의힘은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노조법 후퇴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 고용노동부는 개정 노조법의 취지에 합당한 행정을 수행하라. 만약 또다시 노동자의 권리를 외면한다면, 금속노조는 절대로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고 밝혔다.

한진중공업은 1991년 노조간부 손배가압류 청구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탄압에 들어갔다. 특히 2002년엔 650명을 정리해고 했고, 그에 반대하는 노조의 활동엔 손배가압류를 자행했다. 또 조남호 회장은 2002임단협에서 노동조합에 임금동결을 강요하면서 주식배당금 78억원을 챙겨간다. 2002년 임단협이 타결되지 않고 2003년까지 넘어가자 동지는 2003년 6월 11일 밤 고공크레인에 올라가 129일간 지속되는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한진중공업 노사는 7월 19일 해고자 복직, 손배가압류 철회 등 주요현안과 임단협을 합의했으나 사측은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했고 조합원들은 7월 22일부터 전면파업에 들어갔다. 600여 조합원들은 크레인 밑에 수십 동의 천막을 치고 투쟁했다. 회사는 교섭을 회피하는 한편, 마산특수선지회 150명의 조합원에게 10월 15일까지 복귀하지 않으면 손배가압류를 하겠다고 협박했다.
10월 17일 아침 조합원은 2백명으로 줄어들고, 결국 동지는 2003년 10월 17일 식사를 나르던 밧줄에 목을 메달아 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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