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
오피니언
-
전국노동
-
오피니언
-
전국노동
-
지역소식
-
전국노동
-
전국노동
한반도 평화는 언제나 멀고도 가까웠다. 지난 30여 년 북미·남북관계는 냉·온탕을 오가며 대결과 대화를 반복해왔다. 북한은 일관되게 대북 적대시 폐기를 요구했고 미국은 비핵화 없이 관계 정상화도 없다는 태도를 고수해왔다. 남한은 압박과 대화 사이를 오가며 분단관리의 조정자 역할에 머물렀으며, 미국의 그물망에 갇혀 북미 관계의 그림자 속에 제약되어왔다.
2018~19년, 남북·북미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열렸던 시기에도 이 같은 모순은 극복되지 않았다. 그러나 2025년 오늘, 세계와 한반도는 판이 달라지고 있다. 미국 중심의 단극 질서가 흔들리면서 다극화된 국제질서가 뚜렷한 형세로 드러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남한 역시 대북 정책과 외교 전략의 전환점을 마주하고 있다.
[표] 1993~2025년 북미·남북관계의 주요 흐름

ㅡ 그간 북한의 협상 전환 공통 요인들
지난 30여 년 동안 북한은 단순히 정세 변화에 따라 협상 테이블에 나선 것이 아니다. 그 전환은 언제나 구조적 조건과 전략적 판단이 맞물린 결과였다. 대표적으로 1994년 제네바 합의, 2000년 6.15 공동선언과 10월 워싱턴 조미 공동성명, 2007년 10.4 정상회담, 2018년 북미·남북 정상회담 등이 있다. 이들 시기에는 다음과 같은 공통 요인이 작용하였다.
첫째는 북한 내부 사정, 특히 경제 형편이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과 국제 고립 속에서 북한은 생존의 출구로 외교를 선택했다. 둘째는 미국의 채찍 이후에 뒤따른 당근이다. 클린턴 행정부는 경수로 제공과 관계 정상화를 약속했고, 트럼프는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안전보장을 명문화했다. 셋째는 남한의 중재자 역할이다. 김대중의 햇볕정책, 문재인의 ‘운전자론’은 북한이 남한을 통해 미국을 움직이려는 전략을 가능하게 했다. 넷째는 국제 전략환경이다. 중국·러시아의 지지, 유엔의 대북 제재 균열, 미국 패권에 대한 비판 여론 등은 북한에게 협상에 나설 수 있는 우호적 배경을 제공했다. 이러한 조건들이 충족될 때, 북한은 실리를 위한 대화에 나섰다. 협상은 북한에게 하나의 전술이자 전략이었다.
현재 북한은 ‘적대적 두 국가’, ‘전쟁 중인 교전국’이라는 기조 아래 대미 압박과 대남 단절 노선을 걷고 있다. 그러나 과거 사례에 비추어 볼 때, ① 북핵 보유 인정과 대북 적대 정책 철회 등 미국의 대북 전략 수정, ②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국면에서 러시아의 북미대화 중재, ③ 이재명 정부의 남북합의 이행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수반될 경우, 북한의 대미·대남 정책 변화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트럼프는 북핵 보유를 인정하는 발언을 하면서도, 대북 적대 정책을 중단하지 않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대북 확성기 중단, 전단 살포 금지, 9.19 군사합의 복원 의지 등을 밝혔으나, 미국의 대북 정책을 넘는 자주적 결단을 내릴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러시아의 중재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당장은 기대하기 어렵다. 게다가 북한의 경제 상황도 기술·경영 혁신과 '지방 발전 20×10 정책', 북·러 협력을 통해 일정 부분 호전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은 제반 조건이 충족될 때까지 북미·남북 대화를 서두르지 않을 것이다.
ㅡ 변화된 정세, 북한의 높아진 요구
2025년 오늘, 한반도를 둘러싼 전략환경은 과거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역동적이다. 미국은 여전히 글로벌 패권국이지만, 세계의 다극화가 진전되면서 그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축소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가자지구·시리아·레바논·이란-이스라엘 등 중동에서의 전쟁, 인도·태평양 전략을 통한 중국 견제 등 다중 전선에 개입하고 있는 미국은 구조적 제약에 직면하고 있다.
트럼프 2기는 북한을 ‘핵보유국(nuclear power)’이라 언급하며 핵을 기정사실화했지만, 대북 적대 정책을 실질적으로 전환하지는 않았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과의 연대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북·중은 2023년 이후 군사·경제 협력을 확대하였고, 북·러는 2024년 6월 18일 체결되어 12월 4일 발효된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을 통해 군사동맹 수준의 밀착 관계로 전환했다.
북한은 이같은 연대를 전략자산으로 활용하며, 미국의 압박을 반미 국제연대를 통해 무력화하고, 핵보유국 지위를 기정사실화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대북 전단 금지, 확성기 방송 중단, 9.19 군사합의 복원 의지 등 평화 메시지를 거듭 내놓고 있지만, 대북정책에서 실질적 자율성은 여전히 부족하다. 미국과의 공조가 외교의 전제 조건처럼 작용하면서 독자적인 남북 협력은 정치적 수사 수준에 머물고 있다.
북미관계의 정상화는 단지 상징적 조우나 선언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실질적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 안전보장, 내정간섭 중단, 단계적 대북 제재 해제, 인도주의 협력, 평화협정 체결과 주한미군 철수 등 구체적 조치들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들 조치가 복합적으로 작동할 때, 북한이 핵 군축 협상에 나설 가능성도 커진다.
북미 대화가 재개되더라도, 남북관계 복원에는 또 다른 문턱이 존재한다. 북한은 ‘미국과의 조건부 대화’에는 여지를 두면서도, 남측은 우회하거나 배제하려는 기조를 강화하고 있다. 남한을 ‘외세의 식민지’, ‘적대 국가’, ‘전쟁 도발의 전초기지’로 간주하며, 보수·진보 정권의 교체와 상관없이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과거에는 정부 간 소통이 막혀도 민간 채널이 있었으나, 지금은 민간 접촉마저도 차단되어 있다.
ㅡ ‘적대적 두 국가’ 주장에 대한 오해와 이해
2023년 12월 26일 조선노동당 중앙위 제8기 9차 전원회의는 “북남관계는 동족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교전 중인 국가 관계”라고 선언했다. 이는 북한 대남전략에서의 중대한 전환이며, 남측이 분단 이후 북을 적으로 규정하고 민간교류를 봉쇄했으며 체제통일을 목표로 해왔다는 역사적 인식에 기초한 것이다. 반복된 합의 파기와 적대 정책을 근거로 ‘동질성’의 전제를 제거하려는 선언이다.
북한은 자립적 사회주의 체계를 강화하는 한편, 북·중·러 협력과 핵 무력 고도화를 통해 대미 협상력을 제고해왔다. 핵무기를 더 이상 단순한 협상 카드가 아닌 전략자산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실질적 안전 보장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남한 일각의 남북 수교 주장은 문제다. 그것은 분단을 고착화하고 통일을 유보하며,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의 분할 지배 전략에 악용될 수 있다. 한반도 평화와 협력, 통일을 위한 단계적 접근은 필요하나, 이를 국가 대 국가 간 수교로 비약하는 것은 6.15 공동선언 정신에 어긋나며, 민족 자주의 방향을 흐리는 행위다.
반대로 점령·평정 가능성을 주장하는 견해도 비현실적이다. 이는 냉전적 사고에 갇힌 환상에 불과하며, 국제질서의 복합성과 남측의 조건을 무시한 오해이다.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선언은, 미국이 북한을 침공하지 않는 한, 무력통일 전략이 아니라 남측과의 거리 두기 및 북미 중심 전략 재편의 일환이다. 이런 접근은 남북 모두에게 해롭고, 민족 내부의 상호 인정과 현실 기반 전략을 외면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결국 ‘적대적 두 국가’는 미국의 앞잡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남측 정부를 배제하겠다는 협상 전술이며, 협상의 조건을 재정의하려는 전략적 선언이다. 이를 수교 혹은 무력통일로 해석하는 양 극단의 관점은 모두 편향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남북의 상호 인정, 시민사회 기반의 회복, 자주적 통일운동의 재구성, 남측의 전략 주도권 복원이다.
ㅡ 통일운동의 주체: 이제 남한 시민이 나서야 한다
통일은 북미 간 합의에만 의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근본적으로 통일운동의 주체는 민족 내부, 특히 남한 민중이어야 한다. 그러나 남한의 통일운동은 국가보안법과 반공 이데올로기에 의해 장기간 억압되어 왔으며, 통일에 대한 주체적 의식도 점차 약화되어왔다.
이재명 정부가 윤석열 정권의 내란과 탄핵을 거쳐 탄생한 점을 상기하면, 민주주의적 요구와 민족적 열망이 결합할 때, 남한에서도 강력한 통일운동의 조건이 조성될 수 있다. 통일운동은 민족 자주와 평화협력 강화, 반제·반분단 민주평화통일 세력의 연대와 연합에 기반해야 하며, 친일·친미·반통일·극우 세력에 대한 국민적 심판과 설득이 병행되어야 한다.
국제질서는 다극화로 재편되고 있고, 미국의 패권은 더 이상 절대적이지 않다. 한반도는 더 이상 ‘냉전의 유산’으로만 남을 수 없다. 오직 겨레의 주도적 의지와 준비된 외교 역량만이 평화와 통일의 문을 열 수 있다.
‘적대적 두 국가’라는 선언이 있었더라도, 이는 교류·협력의 문을 영구히 닫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실질적 신뢰를 복원하고 구조적 모순을 해소할 수 있다면, 그 선언 역시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다. 문제는 남한이 이를 준비할 수 있는가, 그리고 주체적 결단을 내릴 수 있는가이다.
북미관계와 남북관계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분위기를 읽는 감각이 아니라, 조건을 만들어가는 시민 참여의 운동과 정치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새로운 선택의 주체는 더 이상 미국도 북한도 아닌, 바로 남한 자체, 대한민국의 주권자, 국민 자신이다.
[울산함성 무료구독 신청] https://t.me/+ji13hLs-vL83ZTB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