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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양
2025년 8월 국회를 통과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안, 일명 '노란봉투법'은 원청의 '실질적 지배력'이 인정될 경우 하청 노동자의 교섭 상대방으로 원청을 포함하도록 해, 한국 노동운동의 오랜 숙원이었던 원·하청 직접 교섭의 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 법의 실효성을 담보할 시행령이 고용노동부에 의해 입법 예고되자(11월 24일), 노동계는 즉각 "구시대 악법", "교섭권 무력화 꼼수"라며 폐기 투쟁에 돌입했다.
노동부는 이번 시행령이 하청노동자의 실질적 교섭권을 보장하고 안정적인 교섭 틀을 만들려는 취지라고 설명하지만, 노동계는 이 시행령이 오히려 원청 자본에게 교섭을 거부할 수 있는 '무기'를 쥐여주는 꼴이라고 비판한다. 특히 이 시행령이 하청노동자의 교섭권을 보장하는 것처럼 미사여구로 포장되었음에도, 결국 한국 재벌의 고질적인 '초과착취' 구조를 건드리지 못하고 절차적 논란에만 매몰되면서, 법 개정의 본래 취지마저 무력화될 위기에 놓였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1. 노사 양측이 제기하는 시행령의 주요 쟁점
이번 개정 노조법 시행령을 둘러싼 노사 양측의 입장은 '교섭권 보장'이라는 명분 아래 극명하게 대립하고 있으며, 그 핵심은 '교섭창구 단일화'와 '교섭단위 분리'를 둘러싼 절차적 쟁점에 집중된다.
1) 노동계의 비판: 교섭권 무력화와 시간 끌기 전략의 허용
노동계는 이번 시행령의 핵심이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를 원청과 하청노조 교섭에 그대로 적용하려는 데 있다고 지적한다(금속노조 정책해설지). 그럴 경우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첫째, 하청노조의 교섭대표권 박탈 우려이다. 예를 들어, 한 사업장에 정규직노조, 자회사 노조, 사내하청 노조가 존재할 경우, 조합원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정규직노조가 교섭대표 노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소수 노조인 하청노조는 원청 자본과 정규직노조의 주도력 아래에서 힘을 쓰지 못하고, 실질적인 '원·하청 직접교섭'은 불가능해진다.
둘째, '교섭단위 분리'의 악용 가능성이다. 노동부는 대안으로 '교섭단위 분리 신청'을 활용할 수 있다고 하지만, 노동계는 이 절차가 자본의 '시간 끌기 소송전'에 악용될 것이라 우려한다. 노동위원회에서 분리 신청이 받아들여져도, 자본이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으로 쟁점을 끌고 갈 경우, 분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교섭 절차가 중단된다. 이 기간 자본은 하청노조를 탄압하고 조합원 이탈을 유도할 시간을 벌게 되어, 사실상 교섭이 무력화된다.
셋째, 자문 기구의 한계이다. 노동부가 설치하려는 가칭 '사용자성 판단 지원위원회'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자문 기구에 불과하다. 이로 인해 노사는 실질적인 교섭 대신 노동위원회와 법원을 오가는 지루한 소송전으로 내몰리게 될 것이라는 비판이다.
2) 자본 측의 우려: '무한 교섭' 요구와 노무 리스크 극대화
반면, 사용자 측과 보수 언론(조선일보 등)은 이번 시행령이 기업의 노무 리스크를 극대화하고 산업 현장에 막대한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첫째, '교섭단위 분리' 기준의 과도한 확대.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번 시행령은 기존 노동조합법에서 예외적으로만 인정되던 교섭단위 분리 기준을 31가지 경우로 대폭 확대했다. 이는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를 사실상 무력화하는 조치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둘째, 무한 교섭 요구에 시달릴 위험성. 현대차의 경우 협력사가 8,500곳에 달하는데, 교섭단위 분리 기준이 넓어지면 이들 하청노조가 개별적으로 교섭을 신청할 가능성이 커진다. 경영계는 원청 대기업이 하청노조 수백 곳과 일일이 교섭해야 하는 "1년 내내 상시적 교섭 요구에 시달리는 무한 협상 늪"에 빠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셋째, 노동위 판단의 불확실성. 시행령은 하청노조가 요구하는 교섭 의제 중 일부라도 원청의 '실질적 지배력'이 인정되면 교섭 의무가 부과된다고 명시했다. 이에 대해 자본은 하청노조가 산업안전 등 비교적 사용자성을 인정받기 쉬운 항목을 내세워 일단 교섭 테이블을 차린 후, 무리한 요구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일단 사용자성이 인정되면 원청은 교섭에 응할 수밖에 없으며, 이 과정에서 파업 등 노동 쟁의가 발생하면 기업 부담이 극대화된다는 것이다.
2. 현대제철 사례 분석: 명백한 사용자성에도 자본이 교섭을 무력화하는 방식
노조법 시행령을 둘러싼 절차적 논란이 무의미해지는 지점은, 이미 법원과 노동위원회가 원청의 사용자성을 명확히 인정한 사업장에서조차 자본이 교섭을 회피하고 있다는 현실에서 드러난다.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의 사례는 자본이 갖가지 핑계와 시간 끌기로 원·하청 교섭을 어떻게 무력화시킬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금속노조 충남지부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는 수년간 현대제철이 하청노동자를 불법파견 형태로 고용해왔다고 주장하며, 현재 정규직 전환을 위한 원·하청 직접교섭을 요구하고 있다. 현대제철의 불법파견은 이미 고용노동부의 시정명령(2021년)은 물론, 인천지방법원의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2022년)과 중앙노동위원회(2022년), 행정법원(2025년) 판결을 통해 현대제철이 하청노동자의 '사용자'임을 인정받았다. 즉, 현대제철은 법적으로 하청노동자의 '진짜 사장'임이 명백하게 확인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제철은 교섭을 해태(懈怠)하고 있다. 지회가 13차례에 걸쳐 교섭 요청 공문을 전달했으나 현대제철은 응답하지 않고, 대신 산업안전 협의체 구성을 제안하는 등 공식 교섭을 회피하는 변명성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울산함성, http://www.ulham.net/national/42186 참조).
현대제철은 불법행위에 대한 사죄와 문제 해결을 위한 교섭 대신, 행정소송 등 법적 절차를 통해 시간을 끌면서 문제 해결을 지연시키고 있다. 금속노조는 이미 "기업들이 판결 운운하며 시간을 끌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경고했는데, 이는 자본이 지루한 소송전으로 하청노조의 힘을 빼고, 법 개정의 실효성을 떨어뜨리려는 전형적인 전략이다.
이 사례는 노조법 시행령이 아무리 교섭 절차를 정교하게 규정하려 해도, 자본이 교섭을 거부하고 지연시키는 전략을 취할 경우 하청노조의 교섭권은 사실상 무력화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시행령이 노동위원회 판단과 소송 절차에 의존하는 한, 자본은 이 '시간 끌기' 전략을 합법적으로 구사할 수 있는 무기를 얻게 되는 셈이다.
3. 문제의 본질: 재벌 축적 구조와 '초과 착취'의 구조적 모순
개정 노조법 시행령이 이처럼 '진퇴양란'에 빠지게 되는 본질적인 원인은 법의 절차적 미비가 아니라, 한국 재벌의 구조적인 축적 전략에 있다.
한국 재벌은 노동자 '초과 착취'를 극대화하기 위해 원래 하나의 단일 사업장 내에서 정규직을 통해 완수되어야 할 공정을 인위적으로 쪼개어 외주화했다. 이 공정이 다시 수많은 무늬만 하청인 회사들에게 나누어지면서, 원청은 핵심 공정과 이윤은 장악한 채 노동 비용과 책임은 하청에 전가하는 다단계 착취 구조를 완성했다.
이러한 구조는 본질적으로 비정규직 채용을 통한 한국 재벌의 저임금 ‘초과 착취’ 전략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청노동자들은 원청의 지휘·명령 아래 원청 정규직과 동일하거나 더 위험한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법적 고용 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 형태를 감수해야만 한다.
노조법 2·3조 개정의 본래 취지는 이러한 구조적 착취의 모순을 해소하고, 실질적인 사용자에게 교섭 책임을 물어 하청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려는 데 있다. 그러나 이번 시행령은 이 ‘다단계 착취 구조’라는 구조적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 오직 '교섭단위 분리'와 '사용자성 판단'이라는 절차적 논란에만 집중하고 있다.
구조적인 문제를 먼저 해결하지 않고서는, 절차적 보완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재벌은 자신의 축적 구조를 위협하는 어떤 조치에도 강력하게 저항할 것이며, 법과 시행령의 미비점을 틈타 교섭을 무력화하는 전략을 지속할 것이다.
결국 민주당 주도로 통과된 노조법 개정안의 시행령은 현실에서 친재벌에 기울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는 지난 중대재해처벌법 개정 당시, 법의 취지에도 불구하고 산업계의 반발과 정부의 소극적 태도로 인해 실효성이 크게 떨어졌던 전철을 밟을 위험이 크다.
예컨대, 노동부가 교섭 촉진자로서의 역할을 등한시하고, 대표 악법인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와 시간 끌기 소송전으로 친자본 로펌만 배부르게 하는 '교섭단위 분리 제도'를 악용하게 된다면, 노조법 2·3조 개정의 본래 취지와 하청노조 교섭권은 사실상 무력화될 것이다.
또한 교섭단위 분리 판단을 맡는 노동위원회는 정부의 영향을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으며, 자본의 강력한 압력 앞에서 하청노조의 손을 들어주는 데 주저할 수 밖에 없다. '사용자성 판단 지원 위원회'도 법적 구속력이 없어, 자본이 불복하고 소송으로 시간을 끌 경우 하청 노조는 교섭의 기회조차 얻기 힘들어진다.
■ 결론: 구조 개혁 없이 ‘산업 평화’는 결코 없다
노조법 2,3조 개정은 한국 재벌의 초과착취 구조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외면한 채, 절차적 논란에 갇혀 실효성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하여 각국이 인재 육성과 혁신에 노력을 기울이며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한국 재벌은 여전히 구시대적인 저임금 착취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법과 제도의 틈을 파고들고 있다.
노동계의 주장처럼, 정부는 교섭을 해태하는 원청 자본을 견인하고 압박하여 교섭 자리에 앉히는 '교섭 촉진자'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더 나아가, 노조법 2·3조 개정의 본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재벌의 인위적인 공정 쪼개기와 외주화 전략을 근본적으로 규제하고, 동일 노동에 대한 동일 임금 원칙을 확립하는 구조 개혁이 병행되어야 한다.
구조적인 모순을 해결하지 않은 채 절차적 보완에만 의존하는 것은, 결국 자본에게 면죄부를 주고 노동자에게는 지루한 소송전만 안겨주는 '친재벌' 정책으로 귀결될 것이다. 한국 노동운동은 이번 시행령을 폐기시키고, 재벌의 초과착취 구조를 해체하는 근본적인 투쟁을 통해 법 개정의 실질적인 성과를 쟁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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